형통한 삶 (잠 17:10-12)
10 한 마디 말로 총명한 자에게 충고하는 것이 매 백 대로 미련한 자를 때리는 것보다 더욱 깊이 박히느니라 11 악한 자는 반역만 힘쓰나니 그러므로 그에게 잔인한 사자가 보냄을 받으리라 12 차라리 새끼 빼앗긴 암콤을 만날지언정 미련한 일을 행하는 미련한 자를 만나지 말 것이니라
이 시간에도 “형통한 삶”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형통이 무엇일까요? 형통의 일반적인 의미는 형통의 히브리어에서 봅니다. 형통 (찰레아흐)의 원어적 의미는 ‘번성한’(prosperous)이란 뜻입니다. 영어성경에는 ‘번성한’ 또는 ‘성공적’(successful)이란 말로 번역돼 있습니다. 하지만 좀 더 진정한 형통의 뜻은 다릅니다.
성경은 요셉을 형통한 자라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그 말씀을 기록했을 때가 요셉이 애굽에 팔려가 종살이하고, 또 억울한 누명으로 감옥에 갇혔을 때였습니다. 상황이 칠흑 같이 어두울 때입니다. 그럼에도 형통한 자라 했던 것은 그의 삶에 하나님이 그와 온전히 함께 하셨을 뿐 아니라 사람 보기에는 어렵지만 요셉을 통해 이루어질 높으신 하나님의 위대한 목적은 이루어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로리 베스 존스는 ‘주식회사 예수’라는 책에서 “예수님의 성공에 대한 정의는 바로 ‘하나님의 뜻대로 하시는 것’이었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되고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것이 형통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대로 할 때 처음은 어려울 수 있지만 결말은 요셉과 같이 누구보다 더 아름답고 큽니다.
형통한 자가 되려면 어떤 믿음이어야 하나요?
1.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받아야 합니다.
10절 “한 마디 말로 총명한 자에게 충고하는 것이 매 백 대로 미련한 자를 때리는 것보다 더욱 깊이 박히느니라” 사람들 중에는 말을 무서워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말은 물론 매도 무서워하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10절 말씀이 그 말씀입니다. 총명한 자는 한 마디 말에도 깊이 듣지만 미련한 자는 매 백 대를 때려야 조금 깨닫습니다.
태형이란 매질하는 형벌입니다. 시시하게 때리는 벌이 아닙니다. 율법에서 죄수에게 태형을 가할 때 40에 하나 감한 매를 때렸습니다. 40대를 맞으면 죽을까 봐서 하나를 감해 준 것입니다. 그러니까 백 대란 두 번 죽고도 남을 무서운 벌입니다. 이걸 맞고도 깨닫지 못한다면 죽어도 쌀 사람입니다.
함께 잠을 자는데 어떤 사람이 자다가 자꾸 놀라 소리를 지릅니다. “당신 무슨 일 있었습니까?” “예, 옛날 말 잘못해서 끌려가서 고문을 받았는데 그 때의 일이 꿈에도 악몽이 되어 무의식 중에 자꾸만 소리를 지르게 됩니다.” 얼마나 고통스런 일을 당했으면 세월이 흘렀어도 깊은 의식 속에 새겨 있을까요? 그러나 진정 형통한 자가 되려거든 이들보다도 더 깊이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새겨 들라는 것입니다.
말씀이 통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잠9:8에 “거만한 자를 책망하지 말라 그가 너를 미워할까 두려우니라 지혜 있는 자를 책망하라 그가 너를 사랑하리라” 말씀이 통하지 않으면 매로 통할 수밖에 없습니다. 날마다 하나님 앞에서 징계만 받고 산다면 그 삶이 어찌 형통하겠습니까? 더 이상 징계 받는 길을 그치고 사랑 받는 사람 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성경은 복을 언급할 때마다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라고 했습니다. 보통 말고 섣불리 듣지 말라는 것입니다. 형통은 말씀을 삼가 듣는데서 출발합니다. 시편 1편 잘 아시지요? 1-3에 “복 있는 사람은 -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우리들도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하실 때 들으십시다. 말씀으로 하실 때가 좋은 때입니다. 성경으로 설교로 권면으로 기타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가 가장 좋은 때입니다.
2. 자아를 하나님 앞에 순복시켜야 합니다.
11절 “악한 자는 반역만 힘쓰나니 그러므로 그에게 잔인한 사자가 보냄을 받으리라” 왕정시대에 가장 큰 죄는 반역죄입니다. 왕위를 찬탈하기 위하여 역적모의하는 죄입니다. 그러면 3족을 멸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중국에서 대역죄는 9족을 멸하였고, 조선에서는 3족을 멸하였다고 합니다. 그만큼 무서운 죄입니다.
이런 반역이 우리 마음 안에서도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우리 안의 완악한 마음이 그것입니다. 이것을 자아라고 하는데 이 자아가 이제까지 얼마나 하나님께 반역해왔으며 또 앞으로도 얼마나 반역할 것인지 누구나 예측할 수 없다가 아니라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너무나 거역해 왔고 거역할 것이 뻔하기 때문입니다.
거짓말탐지기를 발명한 사람이 레오나르도 킬러 박사입니다. 레오나르도 킬러 박사는 거짓말 탐지기로 25,000명을 시험한 후에 결론을 내렸습니다. “인간은 정직하지 못하다.” 열 번만 시험해도 정직하지 못한 걸 알텐데 25,000번이나 했으니 믿을 수 있겠죠.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율법을 가지고 1,500년간이나 인생은 죄인이며 스스로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 수 없음을 보여주셨습니다. 자신을 몇 번이나 실험해 봤습니까? 25,000번도 더 거스르며 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이기지 못합니다. “그에게 잔인한 사자가 보냄을 받으리라.” 하나님께서 더 강한 자를 붙여 놓으시기 때문입니다. 사기꾼 야곱을 위해 더 고단수 사기꾼 외삼촌 라반을 붙이셨습니다. 그것은 그 완악한 인간의 수법 버리고 두 손 들고 하나님을 의지하도록 더 강한 자를 붙이신 것입니다.
고전1:25에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강하실 정도겠습니까? 전지전능하신 분을 누가 이깁니까? 내가 져야지 하나님은 이길 수 없습니다. 자식 이긴 부모는 없다지만 하나님께서는 다 지셔도 우리를 바로 훈련시키심에 있어서만은 절대로 지시지 않습니다.
그런데 어리석은 자는 하나님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시12:4에 “그들이 말하기를 우리의 혀가 이기리라 우리 입술은 우리 것이니 우리를 주관할 자 누구리요 함이로다” 그러나 이것이 형통을 막는 원흉입니다. 그래서 잠28:13에 “자기의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하지 못하나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자는 불쌍히 여김을 받으리라”
시128:1-2에도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길을 걷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 했습니다. 그러므로 진정 형통하기 위해 날마다 바울처럼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전15:31) 순복하시기 바랍니다. 순종이 내가 깨지는 것입니다. 순종을 못하겠으면 복종이라도 하셔서 나를 깨뜨리시기 바랍니다.
3. 우리의 생각을 잘 지켜야 합니다.
12절 “차라리 새끼 빼앗긴 암곰을 만날지언정 미련한 일을 행하는 미련한 자를 만나지 말 것이니라” 악을 모의하는 미련한 자와 함께 행동하는 것이 매우 위험하고 어리석은 일임을 새끼 빼앗긴 암콤에 풍자하여 경고하는 말씀입니다.
성경에서 암곰이 두 곳에서 나옵니다. 본문과 왕하 2장입니다. 왕하 2장을 보면 선지자 엘리사가 여리고에서 벧엘로 올라가는 도중, 엘리사를 대머리라고 놀리는 어린이들을 수풀에서 암콤 두 마리가 나와서 아이들 42명을 죽였습니다. 아이들이 사방으로 도망쳐 목표가 수십 개로 분산 되었을 텐데 곰이 얼마나 빠른지 42명이나 당하고 말았습니다. 곰이 뒤뚱거리는 것 같아도 아주 민첩하고 나무에까지도 올라가니 피할 수 없습니다.
새끼를 빼앗긴 암콤은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 무서운 힘에다 모성애까지 합세해서 그리고 매우 흥분되어 모든 움직이는 대상을 적으로 보기 때문에 갈기갈기 찢어놓습니다. 곰을 만나더라도 새끼 빼앗긴 곰은 만나지 않아야 합니다. 그런데 악하고 미련한 사람을 만나는 것이 그보다 더 위험합니다. 범죄자가 되면 도망 다니기 바쁩니다. 자신의 인생을 갈기갈기 찢어놓는다는 교훈입니다.
그래서 잠1:10-19에 “내 아들아 악한 자가 너를 꾈지라도 따르지 말라 그들이 네게 말하기를 우리와 함께 가자 우리가 가만히 엎드렸다가 사람의 피를 흘리자 죄 없는 자를 까닭 없이 숨어 기다리다가 스올 같이 그들을 산채로 삼키며 무덤에 내려가는 자들 같이 통으로 삼키자 우리가 온갖 보화를 얻으며 빼앗은 것으로 우리 집을 채우리니 너는 우리와 함께 제비를 뽑고 우리가 함께 전대 하나만 두자 할지라도 내 아들아 그들과 함께 길에 다니지 말라 네 발을 금하여 그 길을 밟지 말라 - 그들이 가만히 엎드림은 자기의 피를 흘릴 뿐이요 숨어 기다림은 자기의 생명을 해할 뿐이니 이익을 탐하는 모든 자의 길은 다 이러하여 자기의 생명을 잃게 하느니라” 남을 해하는 것이 곧 나를 해하는 자멸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더 위험한 것은 자기 생각입니다. 남이 나를 꾀지 않더라도 내 생각이 나를 꾑니다. 마음 잘 지키시기 바랍니다. 여러 가지를 교훈 삼으시기 바랍니다. 특히 잠언을 늘 읽어 지혜를 얻으시기 바랍니다. 머리 잘못 쓰면 그 결과는 누구도 책임질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그 아들 예수님을 십자가에 달리셔서 우리의 저주를 지게 하심으로 순종하는 자에게 온전히 복되고 형통하게 해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듣고, 완악한 자아를 깨드리고, 악하고 미련한 생각을 버리고 온전히 순종하십시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육 간의 완전한 평안과 형통을 받아 누리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출처: 한국강해설교연구원 글쓴이: agas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