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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11
지금은 울며 금식하며 기도할 때입니다. / 임현수 목사
지금 우리나라는 그 어느 때 보다도 어려운 시기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100일도 안된 대통령을 탄핵 하자는 거리의 행진들, 소고기 문제로 시작해서 청와대를 쓸어 버리라는 지령에 따라 과격하게 움직이는 성난 젊은이들의 모습을 보면 큰일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물론 엄청난 인파가 거리로 몰려 나온 진정한 동기가 무엇인지 가난한 마음으로 생각해야하고 그들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고 무조건 보수를 감싸주고 보수를 주장해서도 안된다고 생각 합니다.
지금 우리나라의 모든 문제는 보수와 진보 라는 양 극대 진영의 힘겨루기처럼 보여져 안타깝습니다. 서로 비판하고 비난하고 심지어 입에 담지 못할 독설을 내뱉는 사람들, 매스컴을 이용해 파워를 행사하는 사람들, 개인적인 분노의 감정을 객관화 시켜 마치 온 국민이 자기들 편에 서있는것 처럼 착각하는 사람들… 들어 보면 한가지 한계가 있는데… 이런 상대적인 논리의 싸움은 시대에 따라 상황에 따라 입장에 따라 관계에 따라 얼마든지 바뀔 수 있는 악순환의 반복의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사실 입니다.
우리 모두는 할 말이 없는 사람들 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긍휼 하심을 구할 뿐 자기의 의를 주장하며 핏대를 올릴 자격이 있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전쟁과 분열과 불만과 싸움이 있다는 것은 그 사회에 죄가 많다는 증거입니다.
무엇인가 사람들의 마음에 쓴 뿌리가 많다는 증거입니다. 그렇다면 근본적인 대책은 죄를 용서 받고 악에서 떠나야 하고, 쓴 뿌리라는 마음의 상처가 치유되어야 할 것 입니다.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 앞에 부끄러움이 없는 삶을 사는 적극적인 회복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그렇다면 나라가 어려운 시기를 만났을 때에... 우리 성도들은 어떻게 해야만 할 것인가?... 성경은 우리에게 어떻게 말씀하고 있는지를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오늘도 주의 말씀을 통하여 은혜안에서 강건해 지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첫째, 자기 민족을 사랑한 믿음의 선진들을 본받아야 합니다
성경에 기록된 수많은 믿음의 선진들은 한결같이 나라와 민족을 사랑한 애국자들이었습니다. 모세는 바로의 궁전에서 바로 왕의 딸의 왕자로 자랐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자신은 애굽사람이 아니라 지금 애굽나라에서 종살이를 하고 있는 히브리 사람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애굽의 궁전에서 호화롭고 편하게 살 것인가... 아니면 종살이하며 고생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하는 일을 할 것인가... 이런 문제로 갈등을 하다가 화려한 바로의 궁전을 떠나 핍박가운데 있는 자기 동족을 구하기로 다짐하고 자기의 일생을 바치기로 한 것입니다(히 11:24∼25). 이것은 말처럼 쉬운 결단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결국 40년 동안 광야를 거쳐 가나안 땅에 이르기까지... 모세는 고난 받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해낸 진실로 나라와 민족을 사랑한 애국자였습니다.
출애굽기 32:32절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죄를 지었을 때, 모세가 하나님께 나아가 백성들을 위하여 기도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여! 저들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제 이름을 생명책에서 지워서라도 저들을 구할 수만 있다면 그렇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러면서... 기도하였습니다. 참으로 모세는 백성과 나라를 진심으로 사랑한 위대한 애국자였습니다.
엘리사 선지자도 얼마나 나라와 민족을 사랑했는지 모릅니다. 엘리사가 있는 동안에는 이웃나라 원수 블레셋이 감히 이스라엘을 넘보지 못했다고 그랬습니다.
한번은 아람 나라의 왕이 번민에 빠졌습니다. 도대체가 어떻게 된 일인지... 특공대를 조직하여 이스라엘을 정탐하거나 작전을 세워서 이스라엘을 침략하려고 하면... 어김없이 정보가 누출이 되고 탄로가 나서 실패로 끝나고 맙니다.
"혹시 우리 중에 스파이가 있는 것이 아니냐?" 그러면서 왕이 잠도 못 자고 걱정을 하니까... 한 신하가 그렇게 말합니다. "왕이시여! 그렇게 되는 이유는 이스라엘에 엘리사라는 선지자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왕이 침실에서 하는 말도 다 알아내서 이스라엘 왕에게 전하기 때문입니다" 하고 전했습니다.
아람왕은 즉시 "그 엘리사가 어디 있는지 알아내라! 당장 잡아 오라!" 하고 명령했습니다.
그때에 한 신하가 말하기를 "왕이시여 그 엘리사는 도단 성에 있나이다!" 하고 보고하므로 왕은 즉시 말과 병거와 많은 군사들을 보내어 밤에 그 성을 완전히 포위했습니다. 사환이 아침 일찍 일어나 밖을 나가보니 아람군사들이 완전히 포위를 했습니다. 꼼짝없이 포로가 되어 죽게 생겼습니다.
그러나 엘리사 선지자는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와 함께한 자가 저와 함께한 자보다 많으니라" 그러면서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주여! 저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하니 하나님께서 그 사환의 눈을 여시니... 사환은 불말과 불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두른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왕하 6:11∼17).
뿐만 아니라 엘리사 선지자가 "아람 군사들의 눈을 어둡게 하옵소서!" 하고 기도하니까 또 기적이 일어납니다. 엘리사의 말대로 군사들의 눈이 전부 보이지 않게 되어... 서로 더듬거리며 부딪치고 대혼란이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저들을 성으로 인도하여 칼 하나 쓰지 아니하고 전부 포로로 잡아 들였습니다. 그러나 포로로 잡은 저들을 죽이지 아니하고 오히려 잘 대접하여 다시 그들의 나라로 돌려보냈습니다. 그 이후로 다시는...아람나라는 이스라엘에 감히 얼씬도 못하고 침범하지 않게 되었던 것입니다(왕하 6:23).
엘리사가 이제 늙고 죽을병이 들어서 세상을 떠나게 되었을 때... 왕은 엘리사에게 찾아와서 눈물을 흘리며 하는 말이 "아버지여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여!" 하면서 탄식했습니다(왕하 13:14). 엘리사는 전쟁에 나아가 싸우는 장수는 아니었지만... 그러나 그는 참으로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 되었고... 이스라엘 민족의 정신적인 방패요, 영적인 지도자였던 것입니다.
엘리사 선지자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감히 주변의 이방 나라들은 쳐들어올 엄두를 못 내었고... 나라가 평안하였습니다. 참으로 엘리사 선지자는 나라를 위기에서 건졌으며... 진실로 나라를 사랑한 애국자였습니다.
또한 우리는 그 어느 누구보다도 나라를 사랑하고 자기의 목숨을 바쳐 민족을 구원한 에스더를 생각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만이라는 사람이 모르드개를 미워한 나머지 모르드개 뿐만이 아니라 그의 민족인 이스라엘 전체를 죽이려고 날짜까지 정해서 왕의 허락을 받아 놓고 있었습니다.
이런 사실을 에스더의 삼촌인 모르드개가 알고 왕후 에스더에게 말했습니다.
"너도 이스라엘 사람으로서 아하수에로 왕의 왕후가 된 것이 바로 이런 때를 위함이 아니겠느냐?" 하고 전할 때에... 에스더는 참으로 난감했습니다.
삼촌의 말을 들으니 정말 딱하게 되었지만... 그러나 아무리 왕후라고 할지라도 왕이 부르기 전에는 왕에게 갈 수가 없었습니다. 만일 왕이 부르지도 않았는데 왕에게 들어가는 사람은 그 사람이 왕후라고 할지라도 사형에 처하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왕실의 엄격한 규율 이었습니다.
모르드개가 에스더에게 전한 내용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너는 왕궁에 있다고 혼자서만 무사할 것 같으냐?... 모든 유대인 중에 홀로 면하리라 생각지 말라 이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대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비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위를 얻은 것이 이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아느냐!"
모르드개의 말을 들은 에스더는 충격을 받고...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당신은 가서 수산에 있는 유대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삼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들로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겠습니다"
그러면서 말하기를 "죽으면 죽으리이다!" 그랬습니다. 민족을 구하기 위하여 죽음도 각오한 것입니다(에 4:16).그래서 에스더는 왕이 부르지 않았지만 3일을 금식기도하고... 모든 백성들도 금식하며 기도하고... 죽음을 각오하고 왕 앞에 들어갔습니다.
왕이 보니까 에스더가 명하지도 않았는데 들어왔습니다. 깜짝 놀라서 금홀을 내어 밀며 가까이 오라고 했습니다. 에스더를 보니까 너무 아름다웠습니다. "네 소원이 무엇이뇨? 나라의 절반이라도 주겠노라... 네 소원을 말하라!" 할 때에...에스더는 그 모든 사실들을 전하게 되었습니다(에 5:1∼3).
결국 멸망 직전에... 유다 민족을 구출하게 되고... 이스라엘 민족을 죽이려고 했던 하만이 자기가 준비했던 장대에 높이 달려 사형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의 명절인 부림절의 기원이 되었습니다(에9:26). 부림절 과자
성경을 보면 모든 믿음의 선진들은 한결같이 나라를 사랑한 애국자들이었습니다.
나라를 위하여 눈물을 흘리며 기도했고... 국가가 위기에 처했다면 자신의 생명을 바쳐서라도 충성했던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께서도 얼마나 민족을 사랑하셨는지 모릅니다. 감람산에서 예루살렘을 바라보시면서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셨습니다(마23:37). 이런 예수님의 탄식은 애국의 눈물이요, 애국의 탄식이었습니다
느헤미야는 수산궁에서 술 맡은 관원으로 있으면서 편안히 지냈습니다.
그런데 본국 유다에서 두어 사람이 와서 하는 말이... 그들 가운데 간신히 사로 잡힘을 면하고 남아 있는 사람은 그 도에서 큰 환난을 만나고 능욕을 받으며 예루살렘 성은 훼파되고 성문들은 다 불타 버리고 말았다는 보고를 듣게 되었습니다.
이때 느헤미야가 어떻게 했습니까? 본문 4절에 보면 "내가 이 말을 듣고 앉아서 울고 수일 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여" 그랬습니다.
하나님의 사람 느헤미야는 나라가 어려움에 처하게 되었을 때 울고 슬퍼했습니다. 가슴을 치며 금식하고 기도했습니다.
오늘 우리도 믿음의 선진들과 같이 나라가 어려운 시기를 맞았을 때 무엇보다 하나님 앞에 나와 기도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둘째로, 지금은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사무엘은 자기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지 않는 것을 죄라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어떻게 내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지 않는 죄를 범하랴" 그랬습니다(삼상12:23). 그런데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이 나라가 이렇게 어려워지기까지... 우리가 얼마나 이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하나님께 간절히 눈물로 호소하며 기도했습니까? 나 하나 잘되기 위해서는 간절히 기도하면서도... 이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얼마나 안타까운 심정으로 기도했습니까?... 우리는 좀더 이 겨레와 이 나라를 위해서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다니엘은 하루에 세 번씩... 창문을 열어놓고 조국 이스라엘을 향하여 기도했습니다(단6:10). 간신들의 시기로 인하여 생명의 위협을 받고, 이제 사자의 밥이 될 수밖에 없는 이런 위험한 처지에서도... 그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조국을 위해서... 간절히 기도했던 것입니다. 기도하는 이 신앙이야말로 우리의 선진들이 가졌던 믿음의 위대한 유산이요, 우리에게 보여준 신앙의 용기입니다.
엘리야는 우리와 똑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었지만... 그가 기도할 때... 수년동안 비가 오지 않게도 하고 또 오게도 했습니다(약5:17∼18). 하늘에서 불이 내려 제물을 태우기도 했습니다. 엘리사는 죽은 아이를 기도로 살려냈고...
바울과 실라는 빌립보 감옥에서 기도와 찬미로 땅이 흔들리고 옥문을 열리게 했습니다. 스데반은 기도로 하늘이 열렸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앉아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모세는 금송아지를 만들어 섬겼다가... 멸망당할 위기에 처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간절히 중보 기도를 했을 때 하나님은 모세의 기도를 들으시고 뜻을 돌이키셨습니다.
다니엘은 포로 된 백성을 위해... 3주 동안 슬피 울며 기도했고, 에스라와 느헤미야는 기도함으로 무너진 예루살렘 성을 52일 만에 수축했습니다.
자유당 시절에 국무총리 서리를 지낸 이윤영 목사님이 계시는데 이런 말을 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은 우리나라 땅 모양이 호랑이를 닮았다고도 하고 토끼를 닮았다고도 하고 버선, 새우, 심지어는 춤추는 기생을 닮았다고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모습은 기도하는 모습입니다. 제주도는 벗어 놓은 신발이요, 본토는 무릎 꿇고 두손을 높이 모으고 기도하는 사무엘의 모습입니다. 우리 민족은 기도해야 하는 민족이고 기도로 세계를 지배해야 할 사명을 타고난 민족입니다. 우리 민족은 무력으로 세계를 지배할 민족이 아니라 기도로 세계를 지배할 민족입니다" 그랬습니다.
그러고 보니 정말 우리나라 지도의 모습이 기도하는 모습입니다. 가장 큰 나라 사랑은...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번 한 주간 이라도 나라를 위해 기도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셋째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역사를 바꾸는 기도를 배울 수 있을까요?
1. 역사에 대한 열린 의식이 있어야 합니다.
사람들이 왜 기도하지 않을까요?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고 느끼지 못하는 까닭입니다. 여러분 주변을 천천히 열린 눈으로 돌아보십시오. 여러분의 가정을 보십시오. 자녀들을 보십시오. 배우자를 보십시오. 찢긴 가슴으로 아파하는 이웃들을 보십시오. 한 나라의 지도자가 "대통령 못해 먹겠다"고 고백할 정도의 우리 사회, 우리 민족의 답답한 현실을 보십시오. 만일 우리가 이 역사의 장에서 들려오는 소식을 참으로 듣고 있다면 그 정직한 현실을 보고 있다면 그 아픔을 느끼고 있다면 어떻게 기도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오늘 주께서 저와 여러분에게 역사에 대한 열린 의식을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2. 역사의 주인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역사를 바꾸는 기도를 하려면 먼저 역사의 주인에 대한 믿음이 전제되어 있어야 합니다.
역사의 주인이 누구이십니까? 물론 하나님이십니다.
☛1) 하나님은 문제보다 크신 분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5절에 느헤미야가 하나님을 부르면서 제일 먼저 붙인 수식어가 '크신' 하나님(Great God)이었습니다. 만일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보다 문제가 여전히 더 크게 보인다
면 우리는 어떻게 될 까요? 결국 우리는 그 문제아래 눌리고 절망해 버릴 것입니다. 더 이상의 희망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물위를 걷던 베드로가 물속으로 빠져 들어간 이유가 아니었습니까? 그가 시선을 주님께 두고 있는한 파도가 두려움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시선을 파도에 두기 시작하자 주님은 작게 보이고 파도만 크게 보인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문제가 아무리 심각하고 크게 보여도 아직 주 하나님이 더 크게만 보인다면 그리고 그 하나님이 우리를 도우시는 위대한 하나님이심을 믿을수 있다면 우리는 주저앉을 이유가 없습니다. 여러분의 오늘의 고단한 역사가 바꾸어지기를 소망하십니까? 그러면 문제보다 크신 하나님을 신뢰하십시오.
☛2) 하나님은 약속을 지키시는 분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5절에서 느헤미야는 기도를 시작하며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언약을 지키시는 하나님"이시라고 고백합니다. 지금의 역사적 현실이 아무리 참담해도 그는 아직도 자기 민족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약속의 책이고 성경의 하나님은 약속의 하나님이십니다.
☛3) 하나님은 긍휼을 베푸시는 분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19세기말부터 시작하여 20세기초에 기독교가 가진자들 소위 기득권자들에게만 관심을 가지는 종교로 오해되어 혹독하게 비판된 때가 있었습니다. 소위 기독교가 선교되는 과정에서 지나치게 식민주의적이고 제국주의적인 정치적이고 물량적인 방법들이 사용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기독교는 강자의 종교로 곡해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20세기 초부터 일부 신학자들가운데 성경을 지배자의 관점이 아닌 눌린자의 관점에서 다시 연구하고 읽기 시작하는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이런 신학적 운동은 해방신학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우기 시작했습니다. 해방신학의 강조점들 가운데는 반 기독교적인 것들이 적지않습니다.
그러나 해방신학이 기독교계 전반에 기여한 분명하고 긍정적인 요인 하나가 있었는데 그것은 약자에 대한 하나님의 관심에 우리가 주목하게 된 것입니다. 성경을 읽어 보면 특히 구약에서 하나님의 특별한 애정의 대상으로 언급되는 4가지 종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에 대한 언급은 문자 그대로 성경에 넘쳐 납니다. 이들이 누구인지 아십니까? 고아와 과부 가난한자들 그리고 나그네들인 것입니다. 한 신학자는 "성경에 나타난 이들에 대한 하나님의 관심은 거의 편애에 가깝다"는 표현까지 썼습니다.
그러면 도대체 이런 하나님의 관심과 편애의 이유가 무엇 때문일까요?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긍휼입니다. 긍휼이 무엇입니까? 긍휼이란 약자들이나 약점을 지닌 사람들에 대한 불쌍히 여기심의 덕인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바로 이 하나님께 호소하는 것입니다.
다시 5절의 하반부를 보십시오. 그는 "긍휼을 베푸시는 주여, 간구하나이다"고 기도합니다. 성경은 우리 하나님이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라고 증거합니다. 여기서 풍성함이란 끝이없는 넉넉함을 뜻하는 말입니다.
그래서 일찍이 예레미야 선지자는 주의 백성들의 범죄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아직도 살아 숨쉬는 이유를 이렇게 고백합니다.
"여호와의 자비와 긍휼이 무궁하심으로 우리가 진멸 되지 아니함이니이다. 이것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이 크도소이다."(렘애3:22-23)
그렇다면 응답받는 기도-어떻게 드려야 할까요?
1. 기도의 장애가 옮겨져야 합니다.
기도응답을 방해하는 여러 가지 장애가 있을수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강력한 장애는 기도하는 사람들 자신의 죄 문제라고 할수 있습니다. 혹은 기도 대상자의 삶속에 있는 죄문제들입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신실한 죄의 자백은 죄에서 우리를 께끗케하며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막힘없는 기도의 통로를 여는 것입니다.
본문의 6-7절입니다. "이제 종이 주의 종 이스라엘을 위하여 주야로 기도하오며 이스라엘 자손의 주앞에 범죄함을 자복하오니 주는 귀를 기울이시며 눈을 여시사 종의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나와 나의 아비집이 범죄하여 주를 향하여 심히 악을 행하여 주의 종 모세에게 주께서 명하신 계명과 율례와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였나이다."
그는 자기의 조상들의 범죄함을 자복하면서 자신의 책임을 또한 포함시키고 있음을 주목하십시오. "나와 나의 아비집이 범죄하여---" 그는 또한 자신들의 죄와 악을 합리화시키거나 미화시키지 않습니다. 축소하지도 않습니다. "--심히 악을 행하였다"고 고백하지 않았습니까?
어떤 교인들이 주차 금지된 곳에 차를 주차하며 양심에 꺼렸던지 한분의 아이디어로 창문에 메모를 남겼다고 합니다. "15분간 이 근처를 돌았습니다. 주차 안하면 직업을 잃을 것 같아 할수 없이 여기에 주차합니다. 우리죄를 사하여 주옵소서"했더니 나와 보니까 위반 티켓이 붙어 있었는데 이렇게 쓰여 있었다고 합니다. "이 근처를 15년간 돌고 있습니다.
티켓을 드리지 않는다면 직업을 잃을 것같아 할수 없이 위반 벌금을 드립니다. 우리를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소서"이것을 우리는 관점의 차이라고 할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죄를 볼 때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본래 자백이란 말은 죄를 보시는 하나님의 관점에 동의하고 인정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모든 진지한 기도는 우리의 죄를 자백하는 것으로 시작되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렇게 함으로 기도의 장애가 옮겨지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기도의 통로가 열리는 것입니다.
2. 기도의 근거를 주장해야 합니다.
응답받는 기도의 한가지 현저한 특성이 있습니다. 그것은 응답받는 기도에는 기도의 성경적 근거가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야고보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약4:3)고 말합니다. 즉 야고보는 응답하지 못하는 기도에는 잘못된 근거가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이기심이라는 비 성경적 근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기도의 성경적 근거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말씀과 기도는 분리되지 않습니다. 말씀을 알고 그 말씀을 믿고 붙들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때 우리의 기도는 맹목적이 아니고 기복적이 아닌 성경적 기도가 되는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그렇게 기도한 것입니다. 8-9절의 말씀이 그것입니다.
"옛적에 주께서 주의 종 모세에게 명하여 가라사대----"지금 느헤미야는 주께서 모세에게 약속하셨던 말씀을 주장하며 이스라엘의 회복을 구하고 있는 기도인 것입니다.
성경적 기도의 가장 분명한 정의는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는 방편 혹은 통로라고 할수 있습니다. 에스겔36:36-37의 말씀을 보십시오. 여기 주께서는 이스라엘의 회복을 약속하시며 "내가 이루리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이루시면 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37절에 주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래도 이스라엘 족속이 이와같이 내게 구하여야 할지니라--"약속하셨지만 주의 백성들이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우리의 기도를 통해서 약속하신바를 이루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주님은 우리에게 약속해 놓고 우리가 기도하기를 기다렸다가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는 하나님의 약속을 실현하는 방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을 알고 기도하는 백성들이 되기위해 약속의 말씀인 성경을 가까이 하십시오. 기도한다는 사실이상으로 무엇을 기도하는가가 중요한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교인한분이 앵무새를 샀는데 유일하게 한마디 하는말이 "키스해 주세요"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놓고 황당한 경우들이 많아 이 앵무새에게 경건한 말을 가르칠 필요를 느꼈다고 합니다. 마침 어떤 목사님이 기르는 앵무새가 경건한 말을 잘한다고 해서 목사님께 훈련을 부탁했더니 목사님 댁에 그 앵무새를 보내라고 하시더랍니다. 그래서 교인 앵무새가 도착하자 목사님이 자기 앵무새장에 함께 집어넣었습니다. 목사님 앵무새가 먼저 인사를 하면서 "다같이 기도하십시다."하니까, 교인 앵무새가 "키스해 주셔요"하더랍니다. 이때 목사님 앵무새가 지금까지 한번도 안한 말을 했다고 합니다. "오 주께서 기도를 응답하셨습니다"고.
기도의 사실 이상으로 중요한 것은 기도의 내용입니다. 약속의 말씀이 기도의 내용을 형성할 때 주께서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그리고 얼마나 기쁨으로 응답하시겠습니까?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주님의 약속의 말씀으로 우리의 기도의 근거가 되게 하십시오. 그것이 바로 응답받는 기도의 비밀입니다.
3. 기도의 대상을 신뢰해야 합니다.
누가 기도의 대상입니까? 물론 하나님이십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의 기도에서 당연히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하면서도 얼마나 자주 세상을 보고 사람의 눈치를 보고 있는지요? 마치 하나님만으로 충분하지 않은 것처럼 말입니다.
지금 느헤미야의 경우 현실적으로 가장 도움을 받아야 할 대상은 자기가 모시고 있는 아닥사스다 왕이었습니다. 느헤미야는 날마다 그를 만나는 위치에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바로 자기의 문제를 왕에게 아뢰이지 않은 것을 주목하십시오. 지금 그는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습니다.
먼저 하나님의 도움을 구한 것입니다. 물론 그는 현실적으로 아닥사스다 왕의 행정적인 결재가 없이는 예루살렘성의 중건이 불가능한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왕의 결재에 앞서서 하나님의 결재가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는 기도응답의 싸인을 받고 싶어한 것입니다. 사람이 허락하더라도 하나님이 그 사람을 움직이셔서 허락하시기를 기도한 것입니다.
요즈음 우리가 많이 듣는 말이 '만사는 인사' 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인사는 천사'입니다. 사람의 일은 궁극적으로 하늘의 일인 것입니다.
사람을 움직이시는 것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느헤미야는 하나님께서 아닥사스다왕을 통해 이 허락이 이루어지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11절의 기도를 읽어보십시오. 지금 그는 "--이 사람앞에서 은혜를 입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합니다. 하나님이 아닥사스다 왕을 움직이셔서 그의 신임과 허락을 얻게 해 달라고 기도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쉽게 이 문제를 왕에게 말하지 않고 기도만 계속했다는 것은 그가 궁극적으로 하나님만을 신뢰한 것을 보여 주지 않습니까?...하나님 말고 다른 분 없습니까? 가 아닙니다.
시편기자처럼 고백할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나의 구원이 그에게서 나는도다. 오직 저만 나의 반석이시오 나의 구원이시오 나의 산성이시니 내가 요동치 아니하리로다"(시편62:1-2)
기도의 응답을 소원하십니까?
그렇다면 무엇보다 기도의 대상을 신뢰하십시오. 하나님을 신뢰하십시오. 그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이십니다.
그의 자녀들을 자상한 사랑으로 돌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는 전능하시고 전지 하십니다.
예수님은 이 하나님을 보여주시고자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의 아들이 되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이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대신하고 십자가에 죽으시고 우리로 하나님과의 새로운 관계안에서 살아가도록 죽으신지 사흘만에 다시 사셨습니다. 이 예수님을 영접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신다고 성경은 약속합니다. 우리가 진실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전능하시고 전지하신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고 그의 능력을 신뢰하시고 기도할 수 있으시다면 무엇을 걱정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이제 당신의 문제를 갖고 하나님앞에 나오십시오. 그분을 슬프게 했던 당신의 모든 죄를 자백하며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그 앞에 엎드리십시오. 그리고 이제 오직 하나님만을 신뢰하겠다고 고백하여 보십시오. 당신의 황폐한 삶의 마당에 견고한 은혜의 성곽이 건설되기 시작할 것입니다.
지금은 나라와 민족과 교회를 위해서 기도해야 할 때입니다. 나라를 사랑한 믿음의 선진들을 본받아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디모데전서 2:2절에 보면,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이는 우리의 평안을 위함이라" 했습니다.
우리 모두 한 마음과 한 뜻으로 일치단결하여 나라와 민족과 교회를 사랑하며 위하여 기도할수 있다면 모든 문제는 마침내 전화위복의 계기가 되고 우리 민족과 교회가 하나님의 긍휼하심과 사랑을 받게 되는 놀라운 기적의 역사가 일어날 줄믿습니다. "특새에 빠지지 맙시다" "힘내어 기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