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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5-33
나의 영원하신 기업 - 2 / 임현수 목사
여호수아서를 읽다가 가장 집중력이 떨어지고 성경을 덮고 싶은 곳이 바로 오늘 본문인 13장에 들어서면서부터입니다. 요단강 도하 작전을 통해 가나안에 진입하는 이야기나 여리고를 무너뜨리고 아이 성을 정복하는 이야기, 가나안 서편의 남부와 북부지역의 강력한 연합군과의 전쟁에서 당당하게 승리하는 이야기를 읽다보면 요단강이 갈라지는 것처럼 자신의 앞길이 열릴 것 같은 환상에 사로 잡히게 되고, 여리고같은 불가능의 벽이 무너질 것 같은 희망이 보이고, 어떤 난관이 닥쳐도 반드시 승리할 수 있다고 하는 용기가 생깁니다.
적어도 12장을 읽을 때까지는 그러한 흥분이 쉽게 사그라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13장에 들어서면서부터 지루하게 이어지는 땅 분배이야기는 성경을 읽는 사람들의 집중력을 떨어뜨리기에 충분합니다.
그렇지만 저는 역설적으로 여호수아 13장부터가 다행히도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지루하지 않은 내용이라 생각 되기도합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우리나라 사람들이 땅을 너무 너무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만큼 땅에 대한 애착심이 강한 민족도 없을 것입니다. 땅 때문에 다투는 일도 많고, 또 땅 때문에 망하는 경우도 많고, 땅을 제일 중요한 부의 상징으로 여기는 관계로 땅 이야기만 나오면 자연스럽게 관심을 갖게 됩니다. 우리의 조상들은 소위 집문서를 아주 소중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6.25 전쟁과 관련하여 월남한 분들은 지금도 그 때의 집문서를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통일이 되기만 하면 올라가서 내 땅을 찾으리라 하는 마음으로 집문서를 보유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상황은 우리 나라 사람들이 갖고 있는 내 집 마련의 정서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절박한 것입니다. 그들은 광야에서 40년간 방황하면서 언제 우리도 땅에 정착해서 그곳에 농사하며 살 수 있을까 하는 것을 꿈처럼 생각했고, 자기의 부모들이 그것을 꿈으로만 생각하다가 결국엔 소원을 성취하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어가는 것을 직접 목격했습니다.
그래서 땅이야기가 계속 되고 있는 것 입니다. 오늘 본문인 13장을 보기 전에 먼저 12장을 보겠습니다.
12장 전에 11장 끝에 보시면 사람들은 전쟁이 끝났더라고 합니다. 수 11:23 "이와 같이 여호수아가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신 말씀대로 그 온 땅을 취하여 이스라엘 지파의 구별을 따라 기업으로 주었더라 그 땅에 전쟁이 그쳤더라"
12장은 승리의 일람표(一覽表)로서 도합31왕을 이긴 전과(戰果)입니다.
12장의 내용은 이스라엘 자손이 요단 저편에서 요단 이편까지 쳐서 멸한 왕들을 열거하고 있습니다.
수 12:1 "이스라엘 자손이 요단 저편 해돋는 편 곧 아르논 골짜기에서 헤르몬 산까지의 동방 온 아라바를 점령하고 그 땅에서 쳐죽인 왕들은 이러하니라"
그렇다면 이러한 내용을 기록케 하신 의도가 어디에 있을까 하는 물음이 생깁니다. 왜냐하면 11장 끝에서는 [전쟁이 그쳤더라]고 기록하고 13장에서는[얻을 땅의 남은 것은 매우 많도다]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 입니다. 그렇다면 아직 전쟁이 끝난 것은 아닙니다. 그런 문맥에서 12장의 의미를 구해야 할 것 입니다. 여기서 우리들은 이들이 너무나 많은 전쟁을 하였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31명의 왕들과 싸운 일이 보통일은 아닙니다.
그들은 지금 7년 동안의 전쟁을 치르면서 피곤하여 쉬고 싶었습니다.
수 18:3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되 너희가 너희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신 땅을 취하러 가기를 어느 때까지 지체하겠느냐 "
그러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쉬고 싶었고 하나님께서는 아직 쉴 때가 아니라고 말씀 하십니다. 이런 현상을 우리 나라의 복음운동에 적용시켜 보겠습니다. 우리 한국 땅을 바라보면서 우리나라에도 전쟁이 그친 것이 아닌가 하는 염려가 듭니다. 한국 교회는 31왕을 정복 하듯이 많은 싸움과 성과를 올린 것은 분명합니다.
한국의 민족복음화 운동의 성과는 경이적인 기록임에 틀림없습니다.
한국교회가 얻은 기업은 대단 합니다. 교회가 6만 교회가 됩니다. 해방 이전에 300개 밖에 안되던 시절을 생각하면…천문학적인 발전… 입니다.
산마다, 골짜기 마다 기도원이 가득 합니다. 국회의원의 44%가 기독교인 이라고 말 합니다. 짧은 역사 속에 가장 많은 순교자를 낸 기록을 갖고 있습니다.
한국교회가 점령한 곳이 많습니다. 경제계에서도 많은 기업을 점령했습니다. 교육계에서도 학원 복음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군대에서도 전군신자화 운동을 하면서 수 십 만명에게 세례를 베풀고 있습니다. 연예계와 체육계의 복음화도 대단한 실적을 쌓았습니다. 대학교 캠퍼스도 많이 점령 했습니다.
새벽기도회의 열기도 대단 했습니다.
여의도 광장에서 열렸던 집회에는 1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여 민족 복음화의 비젼을 불태웠습니다.
선교사 파송 공식 세계 제2 국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에 와서 갑자기 듣는 소리가 뭐냐하면 이제 한국교회는 부흥을 멈쳤고, 성장이 침체되고 후퇴하고 있다는 소식 입니다. 성장 그래프가 하향곡선을 귿는 내리막길, 마이너스 성장을 하고 있다는 자조(自嘲)적인 얘기들이 난무합니다.
그래서 전쟁은 그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 하십니다. [얻을 땅의 남은 것은 매우 많도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우리한국교회는 너무 빨리 유럽교회를 닮아 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염려를 지울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한국교회는 서구 교회와 같은 조기(早期)노령화(老齡化)를 경계해야 합니다.유럽의 교회들과 북미의 교회들 가운데 너무 늙어버린 교회들을 많이 봅니다. 한 때 그리도 빛나던 영광이 영원히 사라져 버린듯한 교회의 모습을 보면 슬퍼집니다. 그러나 성경은 뭐라고 말씀 하십니까?
빌 3:12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딤후 2:3 "네가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을지니"
계 2:10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아직은 쉴 때가 아닙니다. 아직은 허리 띠를 풀 때가 아닙니다. 아직은 안도의 한숨을 쉴 때가 아닙니다.
이제 주께서는 말씀 하십니다.
1. 얻을 땅의 남은 것은 매우 많다고 하십니다.
수 13:1 "여호수아가 나이 많아 늙으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나이 많아 늙었고 얻을 땅의 남은 것은 매우 많도다"
더더욱 우리는 할 일이 많은 시대에 할 일이 많은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우리가 받은 것보다 아직 받지 못한 기업이 더 많습니다.
아직도 정복해야 할 땅이 많습니다. 아직도 점령해야 할 마음들이 너무 많습니다. ….유업으로 받을 기업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아직 최선은 오지 않았습니다. Best is not yet!
기독교의 복음은 갈수록 좋은 포도주를 내었던 가나의 결혼잔치 집처럼 갈수록 맛을 내며 갈수록 기쁨이 더해지는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교회는 갈수록 부흥해야 하고 세월이 더 할수록 신앙의 뿌리가 깊어지고 많은 열매를 맺는 것이 정상입니다. 그런데 교회들 가운데도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노령화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잘못된 것 입니다.….아직 최선은 오지 않았습니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의 젊은 세대에게 이 땅을 분배했습니다. 당연한 일이지요.
여기에 우리가 알아야 할 일이 있습니다. 이 젊은 세대는 어떤 세대입니까?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하겠다고 약속하신 세대입니다. 광야에서 모세가 보낸 정탐꾼들이 가나안 정탐을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그들은 ‘가나안 땅은 젖과 꿀이 흐르는 곳이지만 거주민들이 강하고 성읍이 견고하여 우리는 들어갈 수 없다.’는 보고를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소리를 높여 부르짖으며 울며 하나님을 원망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노하셔서 전염병으로 그들을 쳐서 멸하려다가 모세의 간절한 기도를 들으시고 마음을 바꾸셨습니다.
하나님을 원망한 세대는 광야에서 사십 년을 방황하며 소멸되고 스물 살 이하의 세대만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하셨다고 하였습니다. 예외가 두 사람 있었는데 여호수아와 갈렙입니다.
민수기14장과 신명기1장을 보시면 됩니다.
여호수아는 바로 그 세대, 스무 살 이하의 세대, 젊은 세대,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도록 하겠다
고 약속하신 세대에게 땅을 나눠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젊은이들을 통해, 청소년들을 통해, 어린이들을 통해 큰 일을 하시기 원하십니다. 당신의 뜻을 펼쳐 나가시기 원하십니다. 새 역사를 이루시기 원하십니다.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그런 계획을 이루어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자기가 살 땅을 얻기 위해서 그렇게 열심히 싸우지 않았습니다.
젊은 세대, 어린 세대가 가나안 땅에서 잘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평생을 목숨을 걸고 싸웠습니다.
모세가 출애굽의 역사를 이끌어 나갈 때 여호수아는 모세를 따르며 도왔습니다.
여호수아서 1장 1절은 여호수아를 “모세의 수종자 눈의 아들 여호수아”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모세는 자기는 들어가지도 못하게 되어 있는 땅으로 백성을 인도하기 위해 그렇게 애썼습니다. 여호수아는 모세의 그런 모습을 보면서 배웠을 것입니다. 모세와 여호수아는 자기들은 누리지도 못하는 가나안으로 백성들을 인도하고 갔습니다.
여호수아의 이와 같은 행동은 우리에게‘우리는 젊은 세대를 위해서 무엇을 하고 있나?‘ 하는 질문을 갖게 합니다.‘우리는 너무 우리 세대만을 위해서, 우리 자신만을 위해서 살고 있지 않나?’하는 반성을 하게 합니다.
여호수아를 생각하면서 우리도 다음 세대를 생각해야 하며 다음 세대를 위하는 사람들이 되어야겠다는 깨달음이 새로워지기 바랍니다.
오늘은 5월 어린이 주일입니다. 어젯밤에도 다운타운 예배를 드리면서 어린이들을위해 기도해 주었지만 어린 자녀들과 청소년들을 생각하며 기도하면 좋겠습니다. 그들이 온 세상에 영향을 주는 위대한 사람들이 되도록 축복했습니다.
임마누엘 칸트라는 유명한 근대 철학자가 있습니다. 아마 세계 철학사 속에서 칸트만큼 우뚝 선 철학자는 없을 것입니다. 이 사람은 자기가 태어났던 고향을 떠나본 일이 없이 조그만한 한 대학 도시에서 살다가 갔습니다. 그러나 철학을 하는 사람들이라면은 칸트는 세계철학의 한 저수지라고 말 합니다.
그러니까 과거 칸트 이전의 모든 철학 사상을 칸트라는 철학사상의 저수지에 담았다가 그리고 다시 재분배 해 주었던 근세 철학에 사실 아버지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칸트는 고향을 떠나지 않고 조그만한 마을에서 그것도 대학 교수 자격도 못 얻고 시간강사로 한평생을 보내며 살았던 사람이지만은 그런 그의 마음속에 세계와 우주를 품고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성 어거스틴도 그런 사람입니다. 아프리카 북부의 조그마한 도시에서 평생 몇십명 안되는 조그마한 교회를 목회하던 분 입니다. 그러나 그는 신 구교를 초월하여 기독교 신학의 저수지 역할을 한 사람입니다. 그도 세계와 우주를 품고 살았습니다.
이런 자세가 필요합니다.
이런 분들은 언제나 아직도 정복할 땅이 많다고 생각하며 살았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세계를 품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내가 어느 곳에 있든지 무엇을 하든지 우리 자신들은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온 세계를 향해서 가슴을 열고 그것을 품고 주의 뜻을 성취할 수 있는 그런 역할들을 감당해 나가야 될 용사들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 하나님은 우리 모두에게 기업을 주십니다.
오늘 본문을 비롯해서 여호수아서 전체에서 우리들이 기억해야 될 핵심 단어가 하나 있는데 그것은 [기업]이라는 단어 입니다. 본문에도 10번 정도 나옵니다.
13장의 바른 해석을 위해서 중요한 열쇠 단어는 기업 이라는 말 입니다.
시 105:11 "이르시기를 내가 가나안 땅을 네게 주어 너희 기업의 지경이 되게 하리라 하셨도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기업이 무엇 일까요?
영어로 우리는 Heritage 라는 말을 씁니다. 부모나 근친으로부터 물려받은 재산과 사업을 말합니다.
고대 이스라엘에서는 토지가 주된 기업이었는데, 그것을 하나님의 은사(선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신약에 오면서 기업은 유대인뿐 아니라, 이방인도 포함된 모든 참된 신자가 받는 것입니다(엡 3:6). 기업은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일체의 축복을 포함하고 있습니다.(마 25:34, 고전 6:9, 갈 5:21).
하나님께서는 기업을 주시는 분 이십니다.
기업이라는 명사는 홀로 의미를 발생하지 못 합니다. 이 단어는 동사가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주었다는 말과 받았다는 동사입니다. 그러므로 13장의 주제는 하나님이 기업을 주셨다와 그래서 이스라엘이 받았다는 것 입니다.
본문을 보면 *주었다(8, 15, 24, 29) 받았다(8, 23, 28, 31)는 말이 반복됩니다.
수 13:8 "므낫세 반 지파와 함께 르우벤 사람과 갓 사람은 요단 동편에서 그 기업을 모세에게 받았는데 여호와의 종 모세가 그들에게 준 것은 이러하니"
수 13:15 "모세가 르우벤 자손의 지파에게 그 가족을 따라서 주었으니"
수 13:24 "모세가 갓 지파 곧 갓 자손에게도 그 가족을 따라서 주었으니"
수 13:29 "모세가 므낫세 반 지파에게 주었으되 므낫세 자손의 반 지파에게 그 가족대로 주었으니"
수 13:8 "므낫세 반 지파와 함께 르우벤 사람과 갓 사람은 요단 동편에서 그 기업을 모세에 게 받았는데 여호와의 종 모세가 그들에게 준 것은 이러하니"
수 13:23 "르우벤 자손의 서편 경계는 요단과 그 강가라 이상은 르우벤 자손의 기업으로 그 가족대로 받은 성읍과 촌락이니라"
수 13:28 "이는 갓 자손의 기업으로 그 가족대로 받은 성읍과 촌락이니라"
수 13:31 "길르앗 절반과 바산 왕 옥의 나라 성읍 아스다롯과 에드레이라 이는 므낫세의 아들 마길의 자손에게 돌린 것이니 곧 마길 자손의 절반이 그 가족대로 받으니라"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주셨는데 아직도 기업을 받아 누리지 못하는 지파가 아홉 지파 반이나 되었습니다. 그래서 나누어 기업이 되게 하라고 하십니다….
성경에 나오는 기업은 장차 받을 영원한 기업에 대한 예표입니다.
히 11:8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 벧전 1:4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영원한 기업이 중요합니다.
하늘 나라에서 누릴 기업이 있느냐는 것이 문제..
하나님은 자기 백성에게 기업을 주십니다.
성령님이 받을 기업에 보증이 되신다 했습니다.주실 기업이 너무 많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한 사람도 빠짐없이 누구나 기업을 받습니다.
가족대로(29) 가족을 따라(15,24) 분배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기업은 쟁취하여야 합니다.
선한싸움을 싸운 후에야 그 기업에 참여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기업은 누려야 합니다.
엡 1:18-19 "너희 마음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떤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알아야 합니다. 자기 기업을 알아야 합니다.
3. 기업을 주셨을 때 이미 얻은 것 때문에 방심하지 말고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 끝까지 순종하라고 교훈합니다.
본문 13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13]"그술 사람과 마아갓 사람은 이스라엘 자손이 쫓아내지 아니하였으므로 그술과 마아갓이 오늘날까지 이스라엘 가운데 거하더라"
이 말씀의 앞에는 정복한 땅의 이름들이 나옵니다.
그런데 정복한 땅을 열거 하다가 왜 갑자기 정복하지 못하고 남겨둔 땅이 있었다는 사실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까? 왜 갑자기 그술과 마아갓을 쫓아내지 못했다는 사실을 이야기 합니까?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방심 혹은 안주를 꼬집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든 족속을 진멸하라는 명령을 들었으면서도 많은 족속을 정복했다는 이유로 그술과 마아갓을 남겨 놓은 것입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어느 정도 성취하고 나면 안주하려는 마음을 갖게 됩니다. 안정을 추구하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이 정도면 됐다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이미 얻은 것 때문에 방심하고 안주하는 교회가 되면 결국은 그 남겨 놓은 것이 화근이 되어 우리의 발목을 잡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명령을 따를 때는 끝까지 순종해야 합니다. 철저히 순종해야 합니다. 내 마음대로, 내 판단대로 이 정도면 됐다는 생각은 아주 위험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현재 누리는 것으로 만족하며 안주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만유의 주재이신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도 이루어질 수 있도록 주님의 명령을 따라 끝까지 충성하시기 바랍니다.
4. 우리의 진정한 기업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 모든 백성 들에게 땅을 선물로 주었습니다. 그런데 오직 레위 지파에게만 땅을 주지 않았습니다.
[32]"요단 동편 여리고 맞은편 모압 평지에서 모세가 분배한 기업이 이러하여도"
[33]"오직 레위 지파 에게는 모세가 기업을 주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들에게 말씀하심같이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기업이 되심이었더라"
왜 레위 지파에게만 기업을 주지 않았습니까?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에 보면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기업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을 갖게 됩니다. 그렇다면 과연 레위 지파에게만 여호와가 그들의 기업 입니까? 다른 모든 지파에게는 땅이 기업이고 레위 지파만 여호와가 기업 입니까? 저는 그렇지 않다고 믿습니다.
레위 지파에게 기업을 주지 않은 것은 단순히 레위 지파만을 위한 것은 아닙니다. 결국 레위 지파는 온 백성에게 샘플로 보여 주신 것입니다. 땅이 아니라 하나님이 기업이라는 것을 온 백성에게 가르치기 위해서 레위 지파에게는 기업을 주지 않은 것입니다. 그리고 그 레위 지파는 물론이고 다른 모든 지파의 백성들도 그들을 바라 보면서 여호와 하나님이 참된 기업 이심을 기억하게 만들려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업이 무엇입니까?
땅입니까?
아니면 여호와 하나님이십니까?
교회가 진정으로 추구할 것이 과연 무엇입니까?
건물입니까?
아니면 잃어버린 영혼을 찾는 일입니까?
건물을 사거나 땅을 사는 것은 오직 잃어버린 영혼을 추수하기 위한 수단으로만 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분명히 기억하지 못하면 우리는 건물을 마련하고 하나님을 잃어버릴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시지 않은 아름다운 건물을 마련하고 우리끼리 좋아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그런 건물을 보시고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구약성경 예레미야 애가는 이스라엘이 땅을 빼앗긴 후에 눈물의 선지자 예레미야가 기록한 것입니다. 예레미야 애가 3:19-24 은 진정으로 우리의 기업이 무엇인가를 잘 보여줍니다. 이 말씀은 이스라엘이 땅을 빼앗긴 후에 기록한 것입니다.
"[19]내 고초와 재난 곧 쑥과 담즙을 기억하소서 [20]내 심령이 그것을 기억하고 낙심이 되오나 [21]중심에 회상한즉 오히려 소망이 있사옴은 [22]여호와의 자비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23]이것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이 크도소이다 [24]내 심령에 이르기를 여호와는 나의 기업이시니 그러므로 내가 저를 바라리라 하도다"
그들은 모든 땅을 빼앗겼습니다. 한 평의 땅도 자신들에겐 이제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기업으로 주신, 선물로 주신 모든 땅을 빼앗겼지만, 그들은 그 땅을 빼앗긴 순간에 여전히 여호와가 우리의 기업이시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비록 땅을 빼앗겼을지라도 여호와는 여전히 그들의 기업인 것 입니다. 왜그렇습니까? 사실상 처음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의 기업은 땅이 아니라 하나님이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비록 땅을 빼앗기고 절망가운데 있지만 그들은 절망하지않습니다.
진정으로 여러분의 기업은 여호와이십니까? 하나님께서 내게 선물로 주신 땅이 아니라 그 선물을 주신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의 기업입니까? 우리가 진정으로 그렇게 고백할 수 있다면 우리에게 땅이 있고 없고는 그리 중요한 일이 아닐 것입니다. 이 믿음의 순례길을 걷는 저와 여러분의 삶에서 언젠가 진정으로 이런 참된 삶의 고백이 나오기를 원합니다.
[17]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 지라도
[18]나는 여호와를 인하 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19]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하박국 3:17-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