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다지파의 왕
삼하 2:1-11
주요내용 = 왕 예수님, 영권론
사울은 죽고 이제 다윗이 유다 지파에 올라가서 왕이 됩니다. 참고적으로 다윗은 그의 일생에 왕으로서의 기름부음을 3번 받습니다. 첫 번째는 15년 전 선지자 사무엘에게서 아무도 모르게 기름부음을 받고, 두 번째는 본문의 말씀으로 자기 고향 유다지파에 의해서 유다 지파의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 그 후 7년 6개월에 12지파의 왕으로 완전한 이스라엘의 왕이 됩니다.
이러한 다윗은 그리스도의 그림자로서도 귀한 예표가 됩니다. 즉 예수님께서 세상에 초림하셨을 때 소수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예수님이 왕이신줄 몰랐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셔서 하나님의 우편에 앉으시고 성도들에게 성령을 부어주심으로 왕이신 것이 드러나게 되셨고, 나아가서 재림하시므로 온세상 우주 만물까지도 완전히 새롭게 하실 날이 있게 됩니다.
이와 같이 우리 성도의 신령한 영권도 마찬가지입니다. 먼저 그리스도를 믿어 중생하여 왕권을 받지만 자신도 모릅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더 성장하여 믿음으로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함께 사는 경험을 할 때 영적권세가 나타나기 시작하고 장차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면 그 때는 온전히 나타나게 됩니다. 여기서 보여주는 중요한 진리는 왕권의 점진성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은 단지 다윗의 이야기에 그치지 않고 우리들의 영적인 예표로서도 귀한 의미가 있습니다. 그리고 또 중요한 것은 다윗이 유다 지파의 왕이 되기까지의 과정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입니다. 이 과정을 잘 알 때 우리도 제 2차적인 왕노릇이 가능합니다. 그럼, 그 과정은 어떠했습니까?
1.다윗의 군대의 강성입니다.
1절에 "그 후에" 라고 했습니다.
여기 그 후에란 1장과 2상 사이에 어느 정도의 시간이 경과하였음을 보여주는 관용구입니다. 역대상 12장을 보면 다윗이 사울의 전사 소식을 듣고도 얼마 동안은 블레셋의 시글락에 그대로 머물러 있었고 그 때 용맹한 많은 용사들이 다윗에게로 몰려왔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군사적으로 강성해졌습니다.
우리에게도 이러한 강성의 과정이 필요합니다. 잠16:32에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 했습니다. 이 구절에서 성이 마음을 비유한 것이라면 용사는 그 의지, 결심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다윗에게 몰려온 용맹한 용사들은 바로 성도들의 의지를 가리킵니다. 그런데 이 의지는 단순한 의지가 아닙니다. 이 의지는 복음에 관한 충분한 이해의 부요 즉 말씀충만입니다. 그래서 복음의 말씀에 견고히 서는 담대한 믿음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여호수아처럼 강하고 담대하여 믿음으로 나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다윗이 여호와의 지시를 따라 헤브론에 입성한 일입니다.
다시 1절 "그 후에 다윗이 여호와께 물어 가로되 내가 유다 한 성으로 올라가리이까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올라가라 다윗이 가로되 어디로 가리이까 가라사대 헤브론으로 갈지니라"
그런데 2-3절을 보니까 혼자 가지 않고 자기 두 아내와 자기를 따르는 모든 종자들과 권속들을 다 데리고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그 수효가 많아서 한 성에 다 거하지 못하고 각성에 거하게 했습니다. 그러자 유다 사람들이 올라와서 다윗에게 왕으로 기름을 부었습니다.
여기 다윗이 여호와께 여쭈어 지시받은 곳이 바로 유다 지파의 헤브론 성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지시해 주신 장소인 헤브론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이는 하늘 시온의 아버지 우편에 좌정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엡2:3-8에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니라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다른 곳으로 가면 안됩니다. 하나님께서 높여주시고 온전케 하신 예수님 안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들이 간 헤브론이란 뜻이 오묘합니다. 그 뜻은 '연합, 친교'라는 뜻입니다. 이와 같이 성도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연합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연합의 비밀에 견고히 서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혼자 가면 안됩니다. 다윗과 그 군사를 따른 모든 식솔들은 바로 그들 삶의 상징입니다. 그래서 다윗이 그 모든 가족들과 함께 그 성에 거주했듯이 우리의 삶 전체가 이 연합의 믿음으로 적용되어야 합니다. 이것을 구원적인 삶이라고 부릅니다. 이것이 성도의 영적 헤브론 생활입니다.
물론 전에도 원리상으로는 예수 안에 있었지만 세속의 환경의 강대함과 믿음의 부족으로 서지 못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용사의 믿음으로 말씀에 섰습니다. 영적권세란 얼마나 견고히 서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알파와 오메가이십니다. 그러므로 중생이나 성화나 영화나 원리는 같습니다. 다만 얼마나 예수 그리스도 위에 섰느냐에 따라 그 수준이 달라질 뿐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의 그 믿음에 굳게 서서 영적 헤브론의 왕권을 취하시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다윗의 왕권은 여기서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3.다윗은 왕의 신분으로 남을 축복하고 섬겼습니다.
4절 중반부터 7절까지 내용인데 5절만 보면 "다윗이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에게 사자들을 보내어 가로되 너희가 너희 주 사울에게 이처럼 은혜를 베풀어 장사하였으니 여호와께 복을 받을지어다" 축복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외적의 위협에서 지켜 주기로 약속하였습니다.
여기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은 사울의 절대적인 지지자들입니다. 그들은 사울이 자신들을 적에게서 구원해 준 일을 잊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사울이 전사했을 때 목숨을 걸고 적진을 뚫고 들어가 사울과 그의 아들의 시체를 거두어다가 장사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다윗이 그들의 지지를 받기는 어려운 대상들입니다. 그 증거로 그들은 그토록 다윗의 격려를 받고도 이스보셋을 따랐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들의 노고를 치하하고 끊임없는 외세의 위협에 처한 그들의 보호자가 되어주기로 약속했습니다. 이와 같이 성도들이 진정한 왕권 행사자가 되기 위해서는 가장 낮아지고 섬겨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 종이 되어야 하리라"(마20:25-28) 하셨습니다.
성도는 믿을 때 이미 예수 안에서 원리적으로는 모두 영권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다만 그 믿음에 굳게 섰느냐의 유무에 따라서 나의 영의 현실히 달라집니다. 그러므로 헤브론에 거하자는 것은 그 확신에 더 강하게 서자는 말이고 또 온 가속으로 거하지는 것은 그 확신을 모든 삶에 적용하자는 의미입니다. 제가 이 부분을 애써 설명하는 이유는 우리는 결국 복음에 서야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매사에 못한다가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가능자요 승리자요 복된 자라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나 더욱 나타나려면 섬겨야 합니다. 이것이 더욱 영권으로 충만하는 길입니다. 그래서 제일 좋은 길은 바로 고전 13장의 사랑인 것입니다.
4.그러나 아직 육적권세가 잔존하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8절-11절의 내용입니다. 8절 "사울의 군장 넬의 아들 아브넬이 이미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을 데리고 마하나임으로 건너가서 - 온 이스라엘의 왕을 삼았더라"
여기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은 다윗을 대적하여 왕이 됩니다. 그럼 이 다윗의 왕권에 도전하는 이 이스보셋의 세력은 무엇을 뜻할까요? 사울이 육적인 것을 대표하기 때문에 이스보셋은 그 육신적인 것의 잔재를 뜻합니다. 여러모로 그에 관해 연구해 보면 과연 그러합니다. 먼저 그의 이름 이스보셋이 그렇습니다. '이스보셋'은 '부끄러운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죄의 상징입니다. 또 그의 본래의 이름도 역시 그렇습니다. 그의 본명은 에스바알도 역시 '바알의 사람'이란 뜻입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보나 그는 육신적 권세의 상징입니다.
또 그가 왕이 된 장소도 그렇고 그를 따랐던 지방을 다섯 곳으로 지목하여 기록함도 그러합니다. 그 장소는 마하나임인데 그 의미는 '두 진영, 두 군대'라는 뜻이요, 다섯 지방은 육신의 정욕을 상징합니다. 그러므로 왜 열 한지파를 다섯으로 나타냈는가를 놓쳐서는 안됩니다. 그러니까 헤브론과는 반대로 아주 호전적이고 충돌적입니다. 이처럼 성도에게는 아직도 영혼을 거스려 싸우려는 육적인 세력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다만 다른 것은 사울의 시대보다는 세력이 약해졌다는 것입니다. 전에는 다윗이 쫓겨다녔지만 이제는 싸우면 다윗의 나라가 이깁니다. 그러나 이기는 것은 이미 이긴 자였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그리스도 안의 믿음에 설 때 전과는 달리 이기게 됩니다. 이것이 달라진 것입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더 이상 방황하지 마시고 승리의 우편인 헤브론에 거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 견고히 서서 매사에 믿고 시인하므로 승리하고 또 승리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