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는 소리
소한을 지나 대한으로 접어들었다. ‘설’을 며칠 앞두고 큰아들이 제일 먼저 집에 왔다.
긴 연휴에 늦게 올만도 하긴만 우리 장손이 나와 같이 있기에 일찍 온 것이다. 자부(子婦)는 오자마자 콘센트를 주문하여 방마다 다 교체한다. 엉킨 듯 어지럽던 전깃줄이 잘 정돈되어 봄이 불러 돋아난 새싹처럼 깔끔하다.
기다리지 않아도 봄은 오는데, 장손의 농사를 준비하는 모습이 마치 밭에 봄을 심는 것 같다. 오는 봄을 맞이하며 쑥국새 짝을 찾는 소리가 허공을 가르며 봄을 불러오고 있다.
오는 봄에 나의 마음의 밭에 무슨 씨앗을 뿌려야 할 것인가를 생각해본다.
나는 봄에 나만의 씨앗을 뿌린 적이 없기에 가을에 추수할 것이 없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겨울의 마지막 몸부림인 듯 눈이 펑펑 쏟아진다.
아들딸들의 카톡방이 불이 났다. 나는 봄을 부르는 소리 같은데, 아들딸들은 눈 때문에 집에 못 가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의 소리를 카톡에 뿌리는 것 같다.
매화의 꽃눈이 살포시 고개를 들려하고, 목련나무에서 꽃망울이 한껏 부풀었다.
눈이 덮어 더욱 싱싱한 생명체 꽃망울들 금방이라도 터질 듯하다.
봄이 오는 소리, 이는 자연의 순리며 질서다. 그러나 이 당연한 소리도 심적 마음이 열려 있지 않으면 들을 수 없다. 그래서 맑고 푸른 새싹과 미소 짓는 꽃들이 부르짖는 열락(悅樂)의 소리에 귀를 기울일 줄 아는, 마음의 문을 여는 연습을 해본다.
봄이 오는 소리, 이는 자연의 눈뜸이며 생명의 소리다. 생명의 동작에 귀를 기울인다.
그 소리는 생명 있는 사람의 꿈이며 행복이고 희망의 동작이다.
봄이 오는 소리는 귀로 듣는 소리만은 아니다. 가슴으로 듣고 마음으로 느끼는 소리다.
마음으로 느끼기에 나이 들어 허약한 소음이 아닌 꿈이 있고 힘이 있는 청춘의 활력 넘치는 봄의 소리다.
봄에 새싹이 움트고 꽃을 피움은 가을에 튼실한 열매를 기대하는 춘화현상(春花現象)을 겪고 있는 과정이다. 지금 내리고 있는 눈의 설경과 혹한을 겪고 나야 진정한 봄이 오는 소리를 들을 수 있고, 가을에 좋은 열매를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날이 차가워진 연후에 소나무와 잣나무가 나중에 시듦을 안다”는 논어 자한 편에 나오는 이 글귀는 추사 김정희가 소나무와 잣나무를 그린 세한도(歲寒圖)의 발문에 써놓은 것이다. 이는 엄동설한 후에는 반드시 봄이 온다는 자연의 이치를 말한 것이기도 한 것이다.
내 인생의 봄은 갔다. 그러나 그것은 물리적으로 흘러간 봄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 인생 마음의 봄은 이 엄동설한(嚴冬雪寒)에도 아직 나의 가슴에 뛰고 있다. 그것은 첫사랑의 달콤한 꿈이며 추억이고, 영원으로 이어지는 정신세계의 사랑이다.
지금 저 모양성과 방장산에 펼쳐지는 설경은 올겨울 마지막을 장식하는 눈꽃이다.
봄의 소리는 형체가 없다. 그것이 몰고 온 그윽한 봄의 향기도 형체가 없다. 그러나 사실은 형체 없는 것이 이 세상을 움직이는 원동력이다. 봄이 오는 소리는 모든 생명의 탄생에서 태동(胎動)하는 소리이기 때문이다. 얼마나 더 수행해야 ‘봄이 오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욕심 부리지 말자.
그냥 소소한 일상이 행복을 여는, 늙지 않고 익어가는 삶을 살아가면서 ‘봄이 오는 소리’를 들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