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비유를 들다
① 부자가 서로 떨어지다"비유하자면, 어린 아들이 유치하고 소견이 없어서
아버지를 버리고 도망하여 타관으로 멀리 가서
여러 지방을 떠돌아다닌 지가 오십 여년이 되었습니다.
그 아버지는 걱정이 되어 사방으로 수소문하고 찾아다니다가 지친 끝에
어떤 도시에 머물러서 큰 집을 지어 놓고 오욕락(五慾樂)을 즐기었습니다.
그 집은 큰 부자로서 금과 은과 자거와 마노와 진주와 유리도
한량없이 많았습니다.
코끼리. 말. 소와 양들과 연(輦)과 수레들도 역시 많고
논과 밭과 하인들과 방문객들도 수없이 많았습니다.
주고받는 재산의 이자를 늘리는 일이 타국에까지 두루 퍼져
장사하는 사람들과 거간꾼들이 없는 곳이 없었습니다.
천만 억 사람들이 에워싸서 공경하였으며 항상 왕족들도 좋아하고 사모하였습니다.
벼슬아치와 명문호족들이 모두 존중하고 있어서
이러한 인연으로 오고가는 손님이 많았습니다.
이런 대목을 가지고 법화경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그런 소리를 해요.
이 장자는 다른 신분이 없습니다.
그냥 보통 사람인데 거부장사, 장사를 해가지고 거부장자가 되어
이러한 위치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비록 비유기긴 하지만은 그래서 여기 보면 벼슬아치와 명문호족들이 존중한다,
왕족들도 좋아 하고 어떤 때는 바라문까지도 옆에 같이 시립(侍立)하고
있는 것으로 그렇게 표현되니까.
그 때만 하더라도 벌써 경제가 우선적인 그런 사회적 분위기였다,
이런 표현을 해요.
이것을 가지고 전체적으로 인도사회가 그랬다 하기에는 좀 곤란하지만
그래도 법화경 연구하는 사람들은 이런 것을 보고
그때도 경제 우선적인 그런 사회적 분위기였다.
돈 많은 사람에게는 왕족들도 와서 굽신거리고
호족, 명문 벼슬아치도 돈 많은 사람에게 굽신거렸다고 표현하는 사람도 있어요.
일리가 전혀 없는 것도 아니죠.
부유하고 귀한 것이 이와 같아서 큰 세력을 가졌으나
나이는 점점 늙어 아들 생각이 더욱 간절하였습니다.
자나 깨나 생각하는 일이 '죽을 때가 되었는데 어리석은 아들은 나를 버리고
떠나간 지 오십여 년이라, 창고마다 넘치는 이 많은 재산을 어떻게 한단 말인가.”
그 때에 궁한 아들이 옷과 밥을 구하려고 이 마을 저 마을로
이 지방 저 지방으로 다녔습니다.
혹 얻는 때도 있지마는 어떤 때는 소득이 없어서 굶주리고 야위어서
몸에는 옴과 버짐이 가득하였습니다.
참 아버지와 아들의 처지를 표현한 게송인데 너무 엄청난 차이죠.
부자가 된 아버지는 심지어 별별 사람들이 왕족들까지도 와서 잘 보이려고 하고
또 벼슬아치와 명문호족들도 전부 거기 와서 잘 보이려고 한다.
그런 정도로 창고에 넘치는 재산, 이런 것들도 표현이 되는데
이런 것을 소유한 아버지와 못난 아들이 밥을 구하러 이 마을 저 마을로
이 지방 저 지방으로 다녔다.
그리고 혹 얻을 때도 있고 못 얻을 때는 굶을 때도 있겠죠.
굶주리고 야위어서 몸에는 옴과 버짐이 가득한, 정말 따분한 그런 신세다.
인도에 가보면 일찍이 성지(聖地)를 간다고 차를 타고 새벽녁에 출발을 하지요.
그러면 한참 가다가 볼일도 보기 위해서 마을 어귀 같은데 차를 세워 놓고
모두 볼일 보게 하는데, 보면 그 마을에 거의 다 그렇습니다.
시골 마을이라고 하는 데는 온전한 집을 찾아보기가 어렵습니다.
도시 이외는 그런데서 어슴푸레한 새벽녘에 꾸물꾸물 움직이는 모습들이
하나씩 둘씩 보입니다.
그 사람들이 뭔고 하니 그 동네 주민이 새벽에 일어나서 움직이고
볼일도 보고 하는 그런 광경인데,
그 모습을 보면 저게 사람인가 아니면 뭐 개인가 뭐 돼지인가
짐승이라 하드라도 병이 들어가지고 겨우 몸을 움직일 정도의 모습 같은
그런 모습입니다.
그 뭐 빨래라든지 얼굴 세수라든지 이런 건 도저히 상상도 못할 정도로
그 모습이 초췌하고 초라하고 추하고 더럽고
이거 뭐 몸에 옴과 버짐가득하다 하는 게 지금도 인도의 천민들은
역시 그런 생활을 하고 있어요.
사실 그런 모습을 우리가 한번 떠올리고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려서
그걸 한번 대비시켜보자 이거죠.
우리는 똑같은 그 아버지에 아들임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불쌍한 처지가 되어있고,
아버지는 그렇게 명문호족과 왕족들까지도 잘 보이려고 찾아오고 하는
그런 상당한 지위에 그러 부자가 되어있다.
그게 말하자면 똑같은 우리의 아버지죠.
그런 재산을 내가 그대로 다 수용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거지생활을 한다는 거죠.
그래서 그분은 부처님이라고 하고 그 다음에 못난 아들은 우리들 중생이라고 한다.
이렇게 비유해서 봅니다.
지금 우리가 잘 살고 있는데 그게 우리에게 해당되겠나 하지만
물질적으로 잘 사느냐 못 사느냐 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여기 비유라고 하는 것은 우리들의 헐벗은 마음, 못 난 정신을 그렇게 표현한 거죠.
비유라고 하는 것이 늘 그렇습니다.
그래서 그 비유는 좀 더 확대하고 좀 더 깊이 있게 우리가 이해하려고
노력을 해야 되죠.
그래서 이제 부자가 서로 만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