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별시의 백미(白眉), 정지상(鄭知常)의 절창(絶唱) ‘송인(送人)’> 해암(海巖) 고영화(高永和)
남호(南湖) 정지상(鄭知常 ?~1135)의 송별시 『송인(送人)』은 맑고 수려한 어운(語韻)과 아름다운 시상(詩想)으로 인해 우리나라 이별가 한시로서는 최고의 백미(白眉)로 평가받는다. 조선조 18세기 한시로 문명(文名)이 가장 높았던 석북(石北) 신광수(申光洙 1712∼1775)는 남포에서 임 보내던 노래인 『송인』에 대해 ‘천년에 미칠 정지상의 절창(絶唱)’이라고 평했다. 이별의 슬픔을 노래한 『송인』은 대동강의 숱한 길손들의 이별의 눈물이 보태져 남포로 떠난 이를 그리는 슬픈 서정시라 할 수 있다. 혹시 이때 대동강변의 버들가지를 꺾어 주면서, 이별의 안타까움을 위안했는지도 모르겠다. 정지상은 800여 년 전에 세상을 떠났지만 『송인』은 우리나라 송별시의 대표작으로 꼽히며, 내면에 감동의 극치를 각인시켜 준다.
한편 정지상의 <송인(送人)>은 2편이 전하고 있다. 7언 절구와 5언 율시이다. 우리에게 압권으로 회자되어 전하는 것은 칠언절구이다. 그러나 둘 다 대동강 남포를 배경으로 이별의 정한(情恨)을 극대화하였다. 조선후기 신위(申緯 1769~1845)는 정지상(鄭知常 ?~1135)의 <송인(送人)>과 이색(李穡 1328~1396)의 시 <부벽루(浮碧樓)>를 비교하여, 한 마디로 ‘위장부전요조랑(偉丈夫前窈窕娘)’ 즉, 대장부 앞의 요조숙녀이라고 하였다. 이색(李穡)의 작품에서 보여준 훤칠한 위장부의 모습과는 달리, 정지상(鄭知常)의 <송인>은 감수성이 풍부한 화자의 심금을 중요한 일면으로 드러내기 때문이다.
● 정지상(鄭知常)은 서경(西京 평양)인으로 초명은 지원(之元)인데, 시문에 뛰어나서 김부식(金富軾)과 쌍벽을 이루었다. 정치적으로 묘청(妙淸)과 함께 서경천도를 주장하여, 김부식과 대립하다가 나중에 김부식에게 죽임을 당한 불우한 시인이었다.
○ 다음은 정지상(鄭知常)의 ‘대동강(大同江)에서 님을 떠나보내는 <송인(送人)>’을 소개하겠다. 옛날 시인묵객들이 ‘송인(送人)의 시운(詩韻)’을 때론 ‘누선(樓船)의 시운(詩韻)’이라 부르기도 하며, 수없이 ‘정지상(鄭知常)의 송인(送人)에 차운(次韻)한 시를 남겼다. 아래 <송인(送人)>의 1,2,4구에 ‘多’ ‘歌’ ‘波’가 압운(押韻)자이며 운자(韻字)는 평성 ‘가(歌)’이고 7언 절구이다.
1) 송인[送人] 대동강(大同江) / 정지상(鄭知常 ?~1135)
雨歇長堤草色多(우헐장제초색다) 비 갠 긴 언덕엔 풀빛이 푸르른데
送君南浦動悲歌(송군남포동비가) 남포로 임 보내며 슬픈 노래 울먹이네.
大同江水何時盡(대동강수하시진) 대동강 물이야 어느 때 마를거나
別淚年年添綠波(별루년년첨록파) 해마다 이별 눈물을 푸른 강물에 더하는 것을.
○ 고려전기의 뛰어난 시인 남호(南湖) 정지상(鄭知常)의 대동강(大同江)에서 님을 떠나보내는 <송인(送人)>은 『동문선(東文選)』 등에 실려 전하는 우리나라 한시 중 송별시(送別詩)의 백미로 일컬어진다. 이 시는 이별을 제재로 한 한시의 걸작이며, 중국 왕유(王維)의 시 <송원이사안서(送元二使安西)>와 함께 이별시의 압권으로 평가받고 있다.
1행(起)에서는 비 내린 뒤 강변정경을 그리고 있다. 비극적 정서를 자아냈던 비도 그치고 강 언덕 긴 둑에 한결 짙어진 풀빛은 지속될 한(恨)의 길이를 상징하고 있다. 2행(承)의 슬픈 노래는 이 시의 주제이기도 하고, 효과음이기도 한데, 강나루에 은은히 울려 퍼지는 뱃노래의 구슬픈 가락은 심금에 와 부딪히는 울림이다. 3행(轉)에서는 이별과 상관없이 유유히 흘러가기만 하는 푸른 강물에 대한 애꿎은 원망을 표현하며, ‘별루(別淚)’라는 시어로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는 작가의 심정을 드러내고 있다. 4행(結)에서는 해마다 강물을 바라보면서 이별의 슬픔을 노래할 사람이 있어서 강물이 마르지 않을 것이라는 뛰어난 시구로 마무리했다.
○ <송원이사안서(送元二使安西)> 왕유(王維 699~759)
渭城朝雨浥輕塵 위성의 아침비가 먼지를 적시고
客舍靑靑柳色新 객사에 푸르고 푸른 버들잎 새로워라.
勸君更進一杯酒 그대에게 다시 한잔 술을 권하니
西出陽關無故人 이제 떠나면 옛 친구 아무도 없다네.
당나라 문인 왕유(王維·699~759)가 안서(安西)로 사신 떠나는 친구 원이(元二)를 전송하며 지은 시다. 이상하게도 친구와 이별할 때면 비가 내린다. 친구는 비를 맞으며 서역으로 떠난다. 가면 술 한 잔 할 친구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술 한 잔 더 권한다. 애틋한 마음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위성(渭城)은 장안(長安) 북서쪽 지역으로 당시 이 곳까지 전송하는 풍습이 있었다고 한다.
● 위에 소개한 7언 절구, 운자(韻字)가 평성 ‘가(歌)’인 정지상(鄭知常)의 ‘대동강(大同江)에서 님을 떠나보내는 <송인[送人]>’은 한시를 짓는 소객(騷客 시인과 문사) 가운데 평하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로 지금까지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고 있다. 그래서 대동강 부벽루에 들린 수많은 시인묵객들이, ‘정지상(鄭知常)의 운(韻)에 차(次)하여’라는 시를 남겼다. 대표적으로 서거정(徐居正 1420~1488), 성현(成俔 1439~1504), 송규렴(宋奎濂 1630~1709), 1822년 권복인(權復仁), 김윤식(金允植 1835~1922) 등이 있다. 또한 이 시는 대동강의 부벽루(浮碧樓) 정자에 걸려 있는데, 이 부벽루에는 고려, 조선 시대의 숱한 시인들이 여기에 올라 대동강의 아름다움을 읊었다고 한다. 중국에서 사신이 올 때는 반드시 평양에 들렸고, 평양에서 꼭 찾는 명소가 부벽루였다. 거기에 걸려있는 이 시를 보면서 모두 신품(神品)으로 극찬하였다 한다.
2) 송인[送人] 임을 보내며 / 정지상(鄭知常 ?~1135)
庭前一葉落(정전일엽락) 뜰 앞에 잎 새 하나 떨어지자마자
床下百蟲悲(상하백충비) 평상 아래 온갖 벌레 구슬피 우네
忽忽不可止(홀홀불가지) 훌쩍 가는 그대 잡지도 못하는데
悠悠何所之(유유하소지) 하염없이 그 어디로 떠나가나요.
片心山盡處(편심산진처) 산도 다한 저 끝엔 외로운 내 마음
孤夢月明時(고몽월명시) 달 밝은 밤이면 외론 꿈만 꾸겠지
南浦春波綠(남포춘파록) 남포에 봄 물결 푸르게 되거든
君休負後期(군휴부후기) 그대의 재회 약속 저버리지 마소서
○ 고려시대 불우한 천재 시인 정지상(鄭知常)의 <송인(送人)>으로 ‘支’운자(韻字) 5언 율시이다. 남편을 멀리 떠나보내고 홀로 남아 그 남편을 그리워하는 아내의 심정을 읊었다. 이 시는 3행과 4행의 ‘홀홀’과 ‘유유’ 그리고 5행과 6행의 ‘한 조각 마음’과 ‘외로움 꿈’의 대구(對句)가 눈에 띈다. 어려운 단어를 사용하지 않으면서도 이별의 마음을 절절하게 표현하고 있다. ‘『상촌집』에는 이 「송인」에 대해 ‘온 세상이 다투어 전하면서 지금에 이르도록 절창(絶唱)으로 떠받들고 있다.’는 언급이 있다. 그의 시를 옛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했는지를 보여준다. 지금 헤어지는 자리인 남쪽 포구에 봄 물결이 출렁일 때 만날 것을 잊지 말라고 신신당부하는 것으로 이별의 의식을 마감하지만, 이는 지켜지지 않을 기약임을 시인이 모를 리 없다. 인간사에서 어쩔 수 없는 이별이지만, 때맞추어 변화하는 자연의 모습에서 이별에 순응하는 것을 배우고 거기에 이별의 쓴맛 대신 이별의 멋까지 느낀다면, 가을의 이별이 마냥 고통스러운 것만은 아닐 것이다.
● 다음은 ‘정지상(鄭知常)의 <송인(送人)>에 차운(次韻)한 시(詩) 몇 편을 소개한다.
3) 기자궁을 찾아가 정지상의 시에 차운하다[過箕子宮次鄭知常韵] 보유(補遺)이다. / 김윤식(金允植 1835~1922)
含毬門外夕陽多 함구문(含毬門) 밖 석양이 짙은데
野老猶傳麥秀歌 시골 노인 아직도 맥수가를 전하네
白馬何須懷故國 백마야 어찌 꼭 고국을 그리워했으랴
大同江水少風波 대동강에는 바람과 파도 없거늘
[주1] 함구문(含毬門) : 평양성의 남쪽 성문. 동쪽 성문은 대동문(大同門)이다.
[주2] 맥수가(麥秀歌) : 기자(箕子)가 은(殷)나라의 옛터를 지나며 읊었다는 노래를 가리킨다. 맥수가는 일명 상은조(傷殷操)라고도 부른다.
[주3] 백마 : 《시경》 〈유객장(有客章)〉에 “귀한 손님이 흰 말을 타고 오셨네.〔有客有客 亦白其馬〕”라는 구절이 있는데, 이를 기자가 백마(白馬)를 타고 주(周)나라에 조회를 한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
4) 평양에서 정지상의 누선 시에 차운하다[次平壤鄭知常樓船韻] / 성현(成俔 1439~1504)
城郭崢嶸往事多 성곽은 가팔라라 지난 일이 많았을 텐데
漁人空唱採菱歌 어부는 부질없이 〈채릉가〉만 부르네
傷心獨有江頭月 마음 아파라 유독 강 머리의 달만 있어
萬古無言照素波 만고에 말없이 흰 물결을 비춰주누나
[주] 채릉가(採菱歌) : 악부(樂府) 청상곡(淸商曲)의 이름이다. 양 무제(梁武帝)의 〈채릉곡(採菱曲)〉에 “강남의 소녀가 팔목에는 진주를 감고, 황금 비취로 머리 꾸미고 고운 얼굴로 일어나, 조용히 계수나무 노 저으며 채릉을 노래하네. 채릉을 노래해도 마음 기쁘지 않아, 비단 소매로 얼굴 가리고 그리운 님을 바라누나[江南稚女珠腕繩, 金翠搖首紅顔興, 桂棹容與歌採菱. 歌採菱, 心未怡, 翳羅袖, 望所思.]”라고 하였다. 또는 마름을 따면서 부르는 노래이다. 남조(南朝) 포조(鮑照)의 〈채릉가(採菱歌)〉에 “맑은 한수 남쪽에서 능가를 부른다.〔菱歌淸漢南〕” 하였다.
5) 대동강 노래[浿江詞] 정지상(鄭知常)의 운을 사용하여 짓다(用鄭知常韻). / 송규렴(宋奎濂 1630~1709)
二月江南春水多 이월 강남에 봄물이 많아
隔江何處採菱歌 강 건너 어디선가 채릉가 들리네
採菱採菱歸宜早 마름을 따고 마름을 따서 일찍 돌아갈지어다
日暮長洲生夕波 해 저무는 긴 모래섬에 저녁 물결 이나니
6) 평양(平壤) 대동강(大同江)의 누선(樓船) 위에서 정지상(鄭知常)의 운(韻)에 차하다[平壤大同江樓船 次鄭知常韻 三首]. 3수 중 3번째 / 서거정(徐居正 1420~1488)
客舍靑靑柳色多 객사는 푸르르고 버들 빛은 싱그러운데
春風一曲渭城歌 봄바람 속에 한 곡조 위성가를 부르네
爲報主人休進酒 주인에게 말하노니 술을 더 들지 마소서
今年別淚又添波 금년의 이별 눈물이 또 물결을 더할 테니
위성가(渭城歌)는 곧 이별곡(離別曲)인 양관곡(陽關曲)과 같은 뜻으로, 왕유(王維)의 송원이사안서(送元二使安西) 시의 “위성의 아침 비가 가벼운 먼지를 적시니, 객사는 푸르디푸른 버들 빛이 새롭구나. 한 잔 술 더 기울이라 그대에게 권한 까닭은, 서쪽으로 양관 나가면 친구가 없기 때문일세.[渭城朝雨浥輕塵 客舍靑靑柳色新 勸君更進一杯酒 西出陽關無故人]”라고 한 시에서, 제1구만 재창(再唱)을 하지 않고 나머지 3구는 모두 재창을 하는 것을 이른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