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밥상 위에 한랭전선이 북서풍을 타고 휘몰아친다. 몇 숟가락 뜨다가 자리를 떨치고 일어난다. 가끔 냉전이 시작될 때면 피신하던 작은 방으로 꼬리를 내린다. 이보전진을 위한 일보후퇴 작전이다.
감정을 추스르고 곰곰이 생각해 본다. 너무 심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오늘 농원에 가기로 약속을 했었지만, 태풍이 비바람을 몰고 온다고 하는데도 가야 하는지 알 수가 없다. 다음으로 미루자고 한 것이 그렇게도 그녀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였을까. 약속도 안 지키는 파렴치로 몰아세운다. 그녀의 저기압을 당해 낼 길이 없어 작은 방으로 피신하여 TV를 켠다. 얼마나 지났을까. 세찬 바람이 불고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하늘이 영판 내 마음을 알아주는 것 같았다. 거실로 나와 그녀의 동태를 살핀다. 그녀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림 그리기에 빠져있다. 길게 가면 손해 볼 것 같아 커피 한잔을 들고 슬그머니 그녀의 곁에 앉는다. “커피 한잔해요.”라고 했더니 불쑥, 하는 말. “오늘 농장에 안 가길 참 잘했네요.” 자고로 여자의 마음은 갈대라고 했던가.
태풍이 지나간 후에 무더위를 무릅쓰고 농원이 갔다. 조수석에 앉은 그녀는 쓴소리를, 한 것이 미안한 듯 자식들 이야기, 친구들의 이야기를 재탕 삼탕 주절주절 댄다. 알사탕도 입안에 넣어준다. 화해의 증거물이다. 여자가 서릿발 내리면 일단 피신하고 보는 것이, 상책이라는 선인들의 지혜를 깨닫는 순간이다. 그래도 “여보, 내가 너무 심했지요, 미안해요.”라는 그 한마디 하기가 그렇게 힘들었을까. 헤게모니 써움을 할 시절은 이미 서산으로 기울고 황혼 길에 접어들었는데.
농원에 도착하자마자 물 한 컵을 따라주더니 작업지시를 한다. 옥수수를 먼저 따고 잡초를 제거하라고, 그것은 어명 같지만, 아직도 내가 쓰임새가 있다는 존재의, 이유이기도 하다. 큰 머슴으로 살아가지만 한 푼어치의 품삯도, 작업 수당도, 보너스도 없다. 언제나 무임승차다. 하지만 엉뚱한 방법으로 일조를 한다.
지난봄 문텐로드 벚꽃 터널을 구경하고 돌아오는 길에 신호 위반을 했다. 교통경찰에게 “미안합니다. 좀 봐 주면 안 될까요?”라고 통사정을 하고 있는데 그녀는 갑자기 창문을 열고, “아저씨 예, 이 양반 맨날 위반하고 다녀요, 고마 콩밥 미기뿌소.” 한다. 어이가 없다. 교통경찰도 신기한 눈빛으로 싱긋 웃어넘긴다. 언어의 역발상이 오히려 상대의 감정을 순화시키는 촉매제가 되는 것 같아 나도 피식 웃고 만다. 엉뚱하면서도 담대한 그녀를 좋아하는 건 나만의 특권이다. 현업에서 은퇴한 후에 생활의 패턴이 많이 달라졌다. 세월 따라 하나둘 뚝뚝 끊어지는 인연으로 만남이 줄고 딱히 하릴없고 나갈 일 없으면 하루가 무료해진다. 잔소리를 먹고는 살지만, 곁에 있는 아내가 소중할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큰 수술을 두 번이나 받아야 했던 그녀의 고통이 내 삶의 올가미가 된다. 나의 헌신이 우리의 행복을 연장할 수 있다면 어떠한 시련도 감내하려고 굳게 다짐을 한다. 엄청난 고통을 견뎌내고 아내의 자리로 돌아온 그녀가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혹여 잘못되어 내 곁을 떠났다면 그 슬픈 고독을 내 어찌 감당할 수 있단 말인가.
살아생전에 많은 추억을 남기고 싶어 여행을 많이 다녔다. 이제 장거리 해외여행은, 자제를 하고 국내 여행을 많이 다닌다. 설악동 주진 골을 설렵하고 내연산 보경사의 사백 년 묵은 탱자나무에 감탄하고 열두 폭포의 호쾌한 물살에 여독을 씻는다. 제주도 곶자왈의 태곳적 숲속 향기를 심호흡하고 오대산 월정사와 상원사의 오솔길을 걸으며 산사의 고즈넉함에 젖는다.
철없이 살아온 지난 세월이 개탄스럽고 50년 세월을 함께 해온 아내의 고마움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머슴살이를 자원했다.
둘이 함께 씨 뿌리고 가꿔온 유기농 채소에 아삭한 오이냉국 한 사발이면, 힘든 하루도 시원하게 넘어간다.
누가 뭐래도 나는 나머지 삶을 아내의 충직한 머슴으로 살아가련다. 여행길 나서면 모범 운전수가 되고 건강을 지켜주는 살뜰한 셰프가 되련다. 그것은 내가 짊어지고 가야 할 삶의 무게이며 하늘이 내게 준 숙명이다.
이젠 머슴살이가 참 편하다.
첫댓글 현명하게 살아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