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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옆에 분들과 다시 한 번 인사 나눕니다.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네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벌써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간이 왔네요. 그렇죠 한 해를 마감할 때마다 느끼는 건 정말 시간이라는 것이 엄청 빨리 흘러가고 있다고 하는 걸 느낍니다.
특히 우리 어른들은 나이가 들면 들수록 더 속도가 빨라짐을 느끼시죠? 아마 우리 청소년들은 10km, 20km로 속도를 내고 간다면 이제는 50 60, 70km, 80km로 지금 달리고 있는 나이대를 살고 있는 우리이기에 1년이 마치 하루가 지나간 것 같이 느껴지는 아주 짧게 느껴지는 시간을 느끼게 됩니다.
오늘 본문의 비유는 종말론적인 그런 내용을 담고 있는 달란트의 비유입니다. 여러분 적인 종말론적이다는 말은 우리 인간은 유한하다는 말을 포함합니다. 특히 우리 인간에게 있어서 시간은 유한합니다. 한정된 시간 속에서 살아갑니다.
우리 개인적으로 언젠가 우리의 시간이 멈출 때가 있겠죠 엊그제 갑작스러운 그런 사고를 당한 사람들을 보셨죠?
얼마나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가족들과 즐겁게 여행을 다녀오는 그 과정에 그런 일들을 겪을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개인적인 종말 분명히 우리에게는 언젠가는 다가올 겁니다. 뿐만 아니라 인류의 시간이 멈추는 최종적인 종말도 분명히 옵니다. 이 한계를 우리는 그 누구도 넘어설 수 없습니다. 시간의 제한.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삶을 그냥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나름 삶의 계획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마치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만약에 그런 마음으로 살아간다면 하루하루가 더욱 의미 있고 우리의 삶 가운데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주인은 3명의 종에게 각각 달란트를 주고 타국으로 떠나죠. 그리고 얼마 후에 돌아와서 그 달란트를 받은 자들에 대하여 정산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우리에게 주는 의미가 무엇일까요?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마치 이 주인과 같이 다시 오실 것이다. 그리고 그때는 이제 정산하는 시간이 있을 터인데, 각각 이 세 사람은 평가를 각각 받습니다. 한꺼번에 그룹으로 받지 않고요. 가정별로 또는 교회별로 그렇게 평가받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하나님 앞에 서게 될 때는요. 개인 개인별로 하나님 앞에 서게 됩니다. 내 부모님이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는 부모님이라고 내가 신앙생활을 내가 신앙이 있다고 착각하면 안 되죠.
우리 공동체가 열심히 예배드린다고 내가 그 자리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 나는 예배드리는 사람이라고 착각해서도 안 됩니다. 우리는 책임 있는 한 사람으로서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 앞에 바로 서 있어야 합니다.
먼저 오늘 한 달란트 받은 종에 대한 심판을 함께 나눠보려고 합니다. 그런데 이 3명의 달란트 받은 사람 가운데 이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의 평가가 아주 혹독하게 오늘 본문 가운데 이루어지고 있지요.
왜 이렇게 가혹할까? 그는 한 달란트를 받았고, 그 한 달란트를 손해 보지 않고 주인에게 되돌려주었습니다. 어쩌면 받은 것을 축내거나 잃어버릴까 봐 자기 나름대로의 방법으로 그렇게 했습니다.
요즘 뭐 여러분들 사업이나 경제적으로 얼마나 어렵습니까? 정말 뭔가를 부풀려 나가고 점점점점 이렇게 채워나간다는 것이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닌 시대를 살고 있잖아요. 그러니까 이 한 달란트 받은 사람도 아마 그러한 두려움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대로 돌려준 것, 그것마저도 이거 선방한 거 아니냐라고 표현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본문을 보니까 이 주인으로부터 최악의 평가를 받게 됩니다. 먼저 우리 달란트를 받은 이 비유 안에서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 중에 하나는 우리 모두는 각각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달란트가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 누구도 나는 받은 것이 없어요라고 말할 사람이 없습니다. 달란트의 분량의 차이는 10 5달란트, 2달란트, 한 달란트처럼 각각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그것은 우리가 따질 것이 아닙니다.
왜 나는 한 달란트밖에 주지 않았냐라고 말할 자격이 없습니다. 나는 왜 이 대한민국에 태어나게 하셨습니까? 나는 왜 이렇게 생겼습니까? 나의 집안은 왜 이 모양입니까? 우리가 다룰 영역이 아니라는 것이죠. 그것은 내가 결정할 수도, 내가 바꿀 수도 없는 겁니다. 나에게 주신 달란트는 내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정해진 거예요.
그런데 그것을 왈가왈부하는 것은 의미가 없고 중요한 건 내게 있는 달란트를 가지고 나는 어떻게 살아가느냐 그것이 중요합니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이 우리 각자에게 달란트를 주셨다는 거예요. 나라는 존재, 나에게 주어진 생명, 나에게 주어진 시간, 나에게 주어진 자유와 관계들, 그리고 나에게 주어진 복음, 수많은 여러분들이 누리고 살아가는 그러한 것들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달란트입니다.
그런데 이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어땠습니까? 주인에게 그 달란트를 받아서 고스란히 땅에 묻어두었습니다. 주인이 책망하는 부분이 이것입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여러분 이 삶의 태도가 왜 만들어졌을까요? 왜 이런 일을 이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이행했을까요?
그 사람 안에는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특별히 이 사람이 말하는 내용을 이렇게 보니까 주인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어요.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해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다. 한마디로 주인을 굳은 사람으로 무섭고 인색하고 자기 이익만 챙기는 그런 사람으로 이 종은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조금도 자비가 없고 냉엄한 사람이기 때문에 섣불리 내가 이 돈을 굴리다가 혹시라도 손해를 보면 처분당하게 될 것을 두려워하는 나머지 실패할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말미암아 이러한 일을 저버리게 되었다는 것이죠. 그래서 이어지는 말씀을 보면
내가 두려워하여 두려워하여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습니다.
여러분 두려움을 가진 사람들은요. 이 한 달이언트 받은 사람처럼 삶의 방식이 소극적입니다. 늘 피해 의식에 갇혀 있어요. 행동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몸도 마음도 움츠려 들어 있습니다. 무엇을 해도 나는 망할 거야. 무엇을 해도 나는 잘 안 될 거야. 그리고 뭔가 100% 안전이 보장되어 있는 일이 아니면 움직이지 않으려고 합니다.
근데 여러분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 보지만 100% 안정이 보장돼 있는 일이 과연 있을까요? 그러니까 이 두려움이 가득 찬 사람들의 결말은 늘 똑같습니다. 그냥 안 하고 가만히 있는 게 잘하는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어요. 결국 자기에게 주어진 것을 그대로 묻어버린 이 한 달란트 받은 사랑과 같은 인생을 살아가는 겁니다. 자신의 경험과 자원, 나의 감정마저도 묻어버려요.
억제합니다. 여러분 기쁘면 기쁘다 슬프면 슬프다 또 뭔가 이렇게 내가 느끼는 감정이 있으면 그 감정을요.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과 같이 나누는 것이 건강합니다. 이걸 그냥 묻어두려 하고 또 책임지려 하지 않으면 나의 삶이 점점 좁아지고 점점 약해지는 거예요.
그런데 코로나 이후에 우리나라 사람들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소극적으로 살아가는 은둔형의 사람들이 많이 늘어났습니다. 행동 반경이 점점 좁아지고 갈수록 축소합니다. 여러분 이건 점점점점 위험한 징조가 일어날 수 있는 이유들이 여기에 있습니다.
그냥 묻어둔 것에 대한 주님의 그 주인의 심판은 무엇입니까? 가지고 있는 것마저도 빼앗아버립니다. 그리고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아 슬피 울며 일을 갈게 합니다. 강제로 격리시켜버렸어요. 자기는 죽어가는 게 100% 안전하고 그리고 큰 문제없이 살아가는 것이 목표였던 사람이 결과적으로는 자기가 생각하는 삶과 전혀 다른 반대의 결과를 얻게 되었다는 것이죠.
여러분 문제는 우리 안에 두려움이라는 게 있습니다. 여러분들 안에 있는 두려움은 무엇인가요? 이 종은 주인에 대한 오해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주인이 한 달란트를 맡기고 가는데 여러분 우리가 지금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한 달란트 이렇게 달란트라고 표현을 하니까 이게 별것 아닌 것 같아 보이지만 액수로 따지면 어마어마한 금액이라고요. 한 달란트만 하더라도 금액의 엄청난 금액입니다.
근데 그 큰 금액을 자기에게 맡겼다. 근데 여기에서 이 사람은 의심을 하는 거죠. 주인의 사랑과 호의 주인의 믿음을 의심하는 겁니다.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인색한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실수를 용납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성경 속에서 우리에게 계속적으로 보여주시는 것은 계속 기회를 주시는 분이세요. 실패해도 넘어져도 다시 일으켜 주시고 또 기회를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에 대한 관점이 우리 안에 어떠한지를 점검하길 원합니다.
만약에 이 한 달란트 받은 사랑같이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만으로 가지고 계신 분들 계십니까?
그렇다면 우리가 그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나기를 원합니다. 여러분 믿음과 두려움은 반대되는 개념입니다. 믿음이 우리 안에 들어올 때 우리 안에 두려움은 점점 몰아내질 수 있는 것입니다. 한 해가 지나고 이제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합니다. 또 새로운 해는 어떤 일을 내가 맞이하게 될지 예측 불허의 삶이죠.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릅니다. 무언가 새로운 일을 시작하려고 하면 우리 안에 두려움이 생기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 모릅니다. 안 가본 길을 걸어가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죠 어쩌면 그 길은 모험의 길입니다.
하지만 믿음은요.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주님의 인도함을 따라 가는 그 길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믿음으로 걷는 사람들의 그 말씀들을 우리에게 하시면서 끊임없이 하는 말이 뭐냐 하면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내가 너의 하나님 됨이니라.
이 주인의 이 판정은 무엇입니까? 26절에 보니까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해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내가 알았느냐 악한 것, 게으른 것을 악한 것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두려워서 뭔가를 시도조차 하지 못하는 이 한 달란트 받은 사람 그는 그 두려움으로 말미암아 점점 게을러지는 단계까지 가고 만 것입니다.
우리 안에 혹시 하나님에 대한 불신앙 게으름으로 말미암아 혹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 있지 않은지를 점검하길 원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현대는요. 우리를 점점 게으르게 만드는 상황들이 참 많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이 점점 편리해지기 때문에 그래요. 이제는 집에서만 딱 앉아 있어도 모든 걸 다 할 수 있습니다. 먹을 걸 주문하면 배달 오지요. 또 인터넷으로 구입만 해도 그냥 다 살 수 있습니다. 밖에 나가서 직접 사는 것보다 더 싸게 더 좋은 것들을, 신선한 것들을 얻을 수 있는 시대이죠. 그러다 보니까 우리가 점점 더 게을러지지 않는가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근데 여러분 게으름 나태는 죄라고 성경은 이야기합니다. 이것이 우리를 무기력하게 하는 영적인 병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 나태 가운데 우리 안에 무관심이라는 게 드러나게 되는데요. 우리 안에 냉담한 마음을 만들고, 그러므로 말미암아 점점 무정한 사회를 만들어 갑니다. 소시오패스, 사이코패스라고 하는 그런 말들을 가끔 듣게 되죠. 묻지마 폭행, 왜 이런 증상들이 일어날까요? 타인들에 대한 관심이 없습니다. 다른 사람의 고통에 관심이 없습니다. 누군가 아파하고 눈물을 흘리면 함께 아파하고 눈물을 흘려야 하는 게 우리인데 다른 사람들의 아픔에 공감하지 않습니다.
그런 것이 없어져 버리다 보니까 이제는 다른 사람의 그 아픔에 공감을 느끼지 못하는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다른 사람의 아픔을 보면서 쾌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게 바로 사이코패스 소시오패스라고 하는 것이죠.
여러분 거기까지 가는 것도요. 이 게으름이라고 하는 것에부터 이렇게 시작하는 그 과정이 있다라는 것을 기억하기를 원합니다. 나 외에 다른 것에 관심을 두지 않는 것 여러분 관심이 없으면 결국 아무것도 안 하게 됩니다. 그게 바로 우리 현대인들에게 발견되는 모습이라는 거예요. 본문 속에 주인의 평가를 보십시오. 악하고 게으른 종, 악하고 게으른 종, 게으른 사람은 사랑할 수 없습니다.
사랑은 부지런해야 가능합니다. 그리고 사랑할 때 생산적이고 창의적인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 게으름을 악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지난 한 해를 뒤돌아보십시오. 혹여나 내가 나에게 주어진 시간, 나에게 주어진 은사를 내 게으름으로 말미암아 두려움으로 말미암아 이 한 달란트 받은 사람처럼 파묻어버리고 잊지는 않았는지, 반면에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 받은 사람들을 보십시오. 이 사람들을 보면 받자마자 바로 가서 그곳으로 장사하였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남겼다는 것이죠. 주인이 자신들에게 달란트를 맡긴 목적을 이해하고 그 주인의 뜻을 이행한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한 달란트 받은 사람에게 주인이 어떤 책망을 했습니까? 니가 그렇게 생각했냐? 만약에 내가 그런 생각이었다면 내 돈을 치료하는 자에게 맡겼다가 돌아와서 내 원금과 이자를 받게 하였을 것이다. 내가 너한테 맡긴 건 그런 이유가 아닌 것을 왜 모르니? 그걸 왜 땅에 묻어놓고 그냥 놔뒀니? 책망하는 것이죠.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과 두 달란트 받은 사람의 공통점은 바로 같다는 것입니다. 지체하지 않았습니다. 사랑하는 동역자 여러분 순종하는 사람은요.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은 이런 바로 가는 순발력이 있는 사람입니다. 물론 이 불순종한 사람도 나름대로 순종했습니다.
중요한 건 나름대로입니다. 미루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불순종입니다. 순종은 즉각적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중요한 건 이 사람들이 장사를 했다라고 표현하고 있죠. 받은 것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면서 장사를 하였습니다. 자기가 가진 것으로 무언가를 만들어내서 그것을 파는 것이 장사이죠.
어쩌면 이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것으로 계속해서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그것들을 팔아서 이윤을 남겨놨었다라고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게 바로 주인의 의도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들에게 주신 달란트는 하나님이 분명히 뜻하신 바가 있어서 주신 것입니다. 그것이 여러분들에게만 복으로 누려지는 것이 아니라 그것으로 말미암아 여러분들로 말미암아 또 다른 이들이 그 복을 누리기를 원하신다는 것이죠.
여러분 받은 은혜가 있으십니까? 받은 재능이 있으십니까? 여러분들만의 경험과 기술이 있으십니까? 그렇다면 그것을 가만히 간직하고만 있지 마시고 그것들을 통해서 확장해 나가는 우리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우리 고린도후서 9장 6절 말씀 읽겠습니다. 시작 아멘 중요한 법칙인데요. 많이 심은 자는 많이 거두고 적게 심은 자는 적게 거둔다. 당연한 말인데 우리의 삶으로 이 말씀을 적용해 보아야죠. 한 해를 되돌아보며 나는 많이 심는 자였는가 아니면 적게 심고 많이 거두기를 바라는 사람이었는가 점검하길 원합니다.
그리고 누가복음 6장 38절 말씀을 보면 먼저 주어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너희에게 줄 것이고 곧 후이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안겨주겠다고 말씀하시죠. 내가 주지도 않아놓고 나는 받을 궁리만 하면 안 된다는 겁니다. 내 것을 주면 내 것이 없어지고 부족해 보이지만 오히려 돌아오는 것이 많다고 하는 것이죠. 남는 장사라고 하는 겁니다. 여러분 여러분들이 받은 복음의 은혜를 마음껏 나눠주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그것이 여러분들의 삶이 될 때 더욱더 많은 이들이 여러분들을 통해서 복음으로 돌아오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누군가를 지속적으로 위로하고 섬긴다면 그분이 어려움 가운데 여러분들을 통해서 회복하고 살아나게 될 것입니다. 그 사람이 자기가 받은 은혜를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 또 다른 사람을 살릴 때 그게 바로 남는 장사가 되는 것입니다.
한 해를 지나오면서 무엇 때문에 힘드셨나요? 그 힘든 그 경험이 여러분들이 나눌 은혜일 수 있습니다. 나와 비슷한 또 힘듦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향해서 위로자가 되어 주시길 바랍니다.
여러분 혹시 용서할 사람이 있다면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 나도 용서받을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7장 12절 말씀처럼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아멘 이 말씀이 황금률이라고 하죠. 대부분은 상대가 하는 것에 따라서 반응합니다.
여러분 한 해 동안 우리의 삶을 뒤돌아보고 이제 새로운 한 해에는 내가 먼저 상대방의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는 그런 행동을 하는 우리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가장 먼저 보이신 일이 무엇입니까? 먼저 사랑해 주셨습니다. 먼저 우리에게 다가오셨습니다. 복음으로 우리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자기의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고 우리를 위해 내어주셨습니다. 그 사랑을 받은 우리는 능동적인 삶을 적극적인 삶을 살아야 합니다.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받은 사람처럼 주인에 대한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고 주인이 나에게 이것을 맡겨줬으니 내가 이것을 가지고 충실히 감당하리라. 그러할 때에 그 가운데 2배 3배 놀라운 결실을 맺게 되는 은혜의 역사가 일어나게 될 줄 믿습니다.
여러분 분명히 이제 10분도 남지 않은 올 한 해가 이렇게 있듯이 우리에게 끝이 분명히 다가올 것입니다. 이곳은 이미 정해져 있습니다. 우리의 인생은 결코 영원하지 않습니다. 이 땅에서의 우리의 인생은 시간은 빠르게 지나갑니다.
여러분들의 삶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입니다. 여러분들에게 주신 것을 가능한 한 최대한 사용하셔서 많은 것을 남길 수 있는 우리가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가진 것이 없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닙니다. 자세히 보십시오. 여러분들이 가진 것 작은 것 하나라도 주면 더 풍성해 채워주실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28절에 보십시오. 한 달란트를 빼앗아 10달란트 가진 사람에게 줘라. 이게 하나님의 원리입니다. 갈수록 더 확장되고 풍성해지는 거예요. 또 무릇 있는 자는 바다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안에 있는 것까지 빼앗기게 되는 것이 하나님 나라의 원리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우리 안에 복음이 있다면 우리는 지금 이 세상 가운데 여러 가지 재난과 환란 속에서 고통스러워하는 그 사람들에게 전해줄 무언가가 우리 안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가진 것을 나누어 줄 때 살리는 사람들이 일어나게 될 줄 믿습니다. 또한 오랫동안 투병하는 사람도요. 그 투병의 과정 속에 은혜를 나눌 수 있습니다. 제가 아까 송구영신 예배를 들어오기 전에 우리 이윤주 집사님하고 통화를 잠시 했어요.
올 한 해는 정말 우리 집사님의 삶에 가장 힘든 한 해였지 않습니까? 그래서 고생하셨다고 한마디 이렇게 말씀드렸는데 오히려 감사하더라고요. 우리 집사님이 너무 감사한 한 해였다고 우리 성도님들과 목사님의 기도가 자기에게 많은 힘이 되었다고. 비록 지금 현재의 상황은 넉넉지가 않아요. 아직도 계속 치료 과정은 앞에 놓여져 있고 입안이 헐어서 먹는 것도 제대로 지금 못 드셔서 죽을 요즘 드시고 계시다고 하고, 손발이 퉁퉁 부어가지고 지금 다리가 코끼리처럼 커져 있다고 막 이렇게 말씀하시더라고요.
근데 그 힘든 여정 속에서도 그 입술의 고백을 들어보면 투병하는 과정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고 있음을 저는 분명히 확신합니다. 여러분 그 은혜를 나눌 때 그와 비슷한 투병 환자들은 그 은혜 가운데 힘을 얻게 될 수 있는 거예요.
여러분들이 받은 고통도 누군가에게는 위로가 될 수 있는 고통의 과정일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마지막에 이 구절은 같이 읽고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21절입니다. 시작
아멘 두 달란트 받은 사람과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이 동일한 이 칭찬을 받았죠 토시 한 글자 틀리지 않은 똑같은 칭찬을 받았더라고요. 여러분 우리 모두가 하나님 앞에 나아갔을 때 이 칭찬을 받을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내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음에 내가 많은 것을 너에게 맡겨줄 것이다. 내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이제 한 해를 마감하는 시간이 점점 다가오고 있습니다. 우리 잠시 내가 지나온 삶을 되돌아보는 시간이 되길 원합니다.
이제 한 해가 시작될 것입니다. 그냥 시작되는 것이 아닙니다. 한 해가 그냥 거듭되는 것이 아니라 이 한 해 안에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선물입니다. 이제 새해를 맞이하면서 내가 새해에는 무엇을 시작할지, 이제 내 안에 있는 두려움들을 이겨내고 내가 무엇을 하여 어떤 것으로 남기는 인생이 될지 기대하며 새해를 맞는 우리가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바로 가서 장사하였던 두 달란트,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들처럼 이제 2025년이 시작됨과 동시에 우리 모두가 받은 것을 바로 가서 사용하여 정말 많은 결실을 맺는 내년 이 송구영신 예배 때는 풍성한 열매와 결실을 하나님 앞에 올려드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 Messenger’s Note:
“In his heart, a man plans his course, but the LORD determines his steps.” (Proverbs 16:9)
“Nevertheless, not my will but yours, be done.” (Luke 22:42)
“And when the angel stretched out his hand toward Jerusalem to destroy it, the LORD relented from the calamity and said to the angel who was working destruction among the people, ”It is enough; now stay your hand.“ And the angel of the LORD was by the threshing floor of Araunah the Jebusite.
And David built there an altar to the LORD and offered burnt offerings and peace offerings. So the LORD responded to the plea for the land, and the plague was averted from Israel.” (2 Samuel 24:1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