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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탑산사에서 주장한
관련문헌 및 기록원 인증건
탑산사 측에서는 부처님 진신사리가 최초 도래했다는 주장을 다음 문헌들에서 확인했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필자는 이 문헌들에 대해
작성연대, 배경 등에 대해 설명하고 최초라는 사실을 인정해 준 기록원에 대해서도 회사명을 거론하지 않고 언급하고자 한다.
가. 석보상절
석보상절은 세종 28년에 소현왕후가 죽자 그의 명복을 빌기위해 세종의 명의로 수양대군이 김수온 등의 도움을 받아 석가의 가족과 그의 일대기를 기록하고 이를 한글로 번역한 책이다. 간행 연월일은 확실하지 않지만 세종 29년(1447년)에서 세종 31년(1449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석보상절이 발견된 것은 현재 마지막 권이 24권이므로 30권에 가까운 방대한 것이지만 더 이상은 발견되지 않고 있다.
이 곳에서는 탑산사에 대한 기록이 아니라 천관산이라고만 표기되어 있다.
나. 동문선과 기록원 인증
동문선은 1478년 성종 9년에
편찬된 우리나라 역대 시문선집이다. 가급적 문제를 망라하여 많은 작품을 수록하려 했으나 화려하고 숭엄한 글들이 대부분이며 철저하게 상류층, 지배층 중심의 시문을 포괄적으로 망라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또한, 삼국유사를 지은 일연스님이나 보우 등 선승들의 신시는 거의 한편도 실려있지 않다는 것이다.
동문선이 완성되어 유포되자 성현은 "이것은 정선한 것이 아니라 유취한 것"이라고 비판했고 이수광은 "동문선의 채선의 범위는 넓으나 주선자의 좋아하고 싫어함에 따라 취사되었다"며 공평성이 부족함을 비판했다.
탑산사 측은 동문선의 천관산기에 탑의 동쪽에 절을 지었다고 한 기록에서 아육왕 탑과 탑산사의 관계를 연계하여 창건시기를 기원전으로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으로서 불교와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최초 도래한 곳이라고 주장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천관산기를 지은 사람도 당시 탑산사 스님의 초청을 받아 탑산사에 대한 글을 부탁했다는 기록이 있다는데 이런 사실은 당시 학자들의 비판처럼 공정성에 의문이 가는 부분이다.
아울러 이와같은 기록만으로 학술적 조사도 없이 탑산사나 장흥군의 주장을 받아들이기에는 무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이제는 기록원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장흥군에서 의뢰했던 기록원은 2007년 까지만 해도 개인이 운영하는 대행업체였다.
그러다가 금년 초에(2008년) 사단법인으로 등록한 대행업체인데 역사와 관련된 기록을 인증한 사안에 대해서 잡음이 있는 회사다.
구례군에서는 본 기록원에서
경남 하동군을 최초로 차나무를
재배한 "시배지"로 인증한데 대해 "충분히 현지조사도 없이 하동군이 제시한 자료만을 바탕으로 인증서를 발급해 관련학자와 구례군의 자료나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하동군을 차 시배지로 인증하기 위해 짜깁기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이의를 제기하자 해당 기록원장은 "이번에 전달된 인증서는 확정이 아니라 추정에 따른 것으로 앞으로 새로운 자료가 발견되면 인증서 내용을 바꿀 수 있다"는 애매한 해명을 함으로서 또 다른 문제가 되고있고, 하동군 화개면에 있는 일명 "천년 차나무" 수령과 관련하여 한국차문화 연구회에서도 강력히 반발하여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 (출처. 경남도민일보. 남도Tv. cnb뉴스)
(다음 회에는 두 사찰의 창건 및 관련설화와 탑산사 복원계획 재고 및 마무리 편이 게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