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순사건으로 공고화된 ‘빨갱이’
민간인 학살을 연구하게 되면 ‘빨갱이’ 단어를 자주 마주치게 된다. 과연 빨갱이란 단어는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여러 논문에서 빨갱이에 대한 기원에 대해 쓰고 있지만 여기에서는 김득중의 『빨갱이의 탄생』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이승만 정부는 여순사건(정부 수립의 초기 단계에 여수에서 주둔하고 있던 국군 14연대 일부 군인들이 ‘제주4·3사건’ 진압 명령을 거부하고 일으킨 사건으로, 1948년 10월 19일부터1955년 4월 1일까지 여수·순천 지역을 비롯하여 전라남도, 전라북도, 경상남도 일부 지역에서 발생한 무력 충돌과 진압 과정에서 다수의 민간인이 희생당한 사건)을 소련-북한-남한의 공산주의자들의 합작품으로 파악했다. 여순사건에서 지역 공산주의자들은 인민위원회를 구성하여 인민 행정을 펼치는 등의 활동을 전개했지만, 지역민들의 봉기 참여에서 나타나듯 여순사건의 확대에는 이승만 정부의 실정과 분단 정권 수립에 대한 비판, 경찰의 탄압, 경제적 어려움 등이 다양한 이유로 작용하고 있었다(602). 그리고 여순사건에서 피해자들은 다양한 세력들에 의해 희생되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공산주의자들만의 무자비한 살상 행위로만 서술되었다. 이는 여순사건을 ‘여순반란’으로 명명하면서 공산주의자들이 양민을 마구 학살하는 사건으로 공산주의자들을 비인간적 존재, 악마로 규정하며 사건의 주체를 비도덕적 존재로 간주하고 사건 주체의 정당성을 빼앗으려는 의도를 볼 수 있다(603). 여순사건을 계기로 ‘공산주의자=빨갱이=살인마=악마’라고 규정되었다. 공산주의자는 이제 같은 민족이 아니며, 같은 하늘에 살 수 없는 ‘비국민’으로 간주하였다.”
이제 공산주의자를 지칭할 때는 ‘빨갱이’가 되었다. ‘빨갱이’란 용어는 도덕적으로 파탄난 비인간적 존재, 짐승만도 못한 존재, 국민과 민족을 배신한 존재로 지칭하는 용어가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공산주의자는 어떤 비난을 받더라도 감수해야만 하는 존재, 죽임을 당하더라도 마땅한 존재, 누구라도 죽일 수 있는 존재, 죽임을 당하지만 항변하지 못하는 존재가 되었다(604). 반공주의가 추구했던 극단적 타자화의 결과로 ‘빨갱이’ 이미지가 창출되었다면, 대한민국 ‘국민’의 정체성은 부정적인 타자인 ‘빨갱이’에 적대적으로 맞서고 공격하는 주체로 형성되었다. ‘국민’이라는 정체성은 타자를 배제하고 억압하는 동시에 내부의 동질성을 추구하는 과정이었다. ‘국민’이라는 정체성 속에는 개인과 집단을 국가에 봉사하는 일부로 위치 지우고, 사회 속의 개인을 국가의 부속물로 동원하려는 의도가 내재해 있다. 대한민국 국민은 ‘반공’이 기본적인 자격 요건이었다(605).
하지만 ‘반공’이라는 잣대로 현실에 존재하는 개별적 차이를 인정하지 않고 타자의 존재 자체를 무참히 파괴해 버리는 폭력을 통해 국민 형성의 길을 찾아갔다는데 문제가 존재한다. 반공 국민의 형성과 반공주의의 문제는 국가를 위한 숭고한 ‘희생’이라는 문제로 이어진다. 국가를 ‘위해’ 기꺼이 죽은 자만이 아니라, 죽음을 ‘당한’ 자까지도 희생자의 반열에 올려놓으려는 시도는 또 한 번의 폭력이자 국가에 매몰된 시각일 뿐이다. 이에 대한 예로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보고서는 한국전쟁 전후에 발생한 민간인 학살 사건은 국가기관에 의해 저질러진 집단학살로 판단하고 있으면서도 민간인학살 피해자를 시종일관 ‘희생자’로 지칭하고 있다. 과연 국가 폭력으로 학살당한 사람이 과연 무엇을 위해 ‘희생’했다는 말인가?(6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