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15장 12-21절. 야고보의 결론. 요약설교 (새벽예배용)
초대교회에 있어서 가장 심각한 논쟁은 구원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얻어지는 것이냐, 아니면 예수님도 필요하지만 동시에 모세의 율법을 지킴으로 완성되는 것이냐 하는 논쟁이었습니다.
그래서 전적으로 예수님만 믿는 사람들과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유대교식으로 믿는 바리새인들이 심각한 반론을 폈습니다.
이런 논쟁을 거친 후 사도 베드로가 일어나서 참된 신앙이란 율법의 행위를 첨가함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 오는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12절. 온 무리가 가만히 있어 바나바와 바울이 하나님께서 자기들로 말미암아 이방인 중에서 행하신 표적과 기사에 관하여 말하는 것을 듣더니
1. 베드로의 말을 듣고 바리새파 율법주의 교인들이 잠잠했습니다.
왜냐하면, 베드로는 유대인 중심의 사도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안디옥 교회의 지도자인 바나바와 바울의 말을 반박하던 율법주의 교인들이 베드로의 말을 듣고 잠잠했습니다.
그 다음에 바울과 바나바가 일어나서 하나님께서 자기들을 통해서 이루신 복음 전도와 기적들을 간증합니다.
13절. 말을 마치매 야고보가 대답하여 이르되 형제들아 내 말을 들으라.
1. 야고보는 사도 야고보가 아니고 (사도 야고보는 사도행전 12장 1절에서 헤롯 아그립바 왕에게 죽었음),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입니다.
이 야고보는 처음에는 믿지 않았으나, 사도행전 1장에 120명이 모여 기도할 때 같이 있었고, 성령 받고 후에 베드로와 함께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요 장로가 되었습니다.
특히 이 야고보는 불신 유대인들도 그 경건성을 인정해서 <의인 야고보>라고 불렀습니다.
이 야고보는 늘 성전에 가서 기도했는데, 어찌나 열심히 기도했던지, 기도하는 장소가 푹 패였고, 무릎은 낙타 무릎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요즘도 <낙타 무릎>이란 말을 합니다.
갈라디아서 2장 9절에 보면 야고보를 교회에서 ‘기둥과 같은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2. '형제들아 내말을 들으라'는 말은 개인의 사사로운 말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많은 논쟁과 토론과 그리고 변증의 과정을 거쳐서 이제 야고보는 총회장으로서, 재판장으로서 판결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14절. 하나님이 처음으로 이방인 중에서 자기 이름을 위할 백성을 취하시려고 그들을 돌보신 것을 시므온이 말하였으니
1. 시므온이란 시몬 베드로를 가리킵니다.
야고보는 철저한 유대인이었기 때문에 베드로를 유대 명칭인 시므온이라고 불렀습니다.
이처럼 유대인들에게 존경받는 야고보가 이방인 성도들에게 할례받거나 율법 지키게 하지 말자고 말할 때, 모든 율법주의 유대인 신자들도 받아들였습니다.
15절. 선지자들의 말씀이 이와 일치하도다. 기록된 바
이방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성령 받은 일은 사람이 만든 사건이나 인간이 조작한 사건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구약의 예언과 약속대로 성취하신 일이라는 뜻입니다.
구약에 아모스 선지자를 통해서 예언한 말씀(암 9:11-12)이 바울의 이방인 전도 사건이나 베드로가 경험한 사건과 놀랍게도 일치한다는 것입니다.
16절. 이 후에 내가 돌아와서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다시 지으며 또 그 허물어진 것을 다시 지어 일으키리니
17절. 이는 그 남은 사람들과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모든 이방인들로 주를 찾게 하려 함이라 하셨으니
18절. 즉 예로부터 이것을 알게 하시는 주의 말씀이라 함과 같으니라.
1. 아모스 선지자가 다윗의 장막을 하나님이 다시 일으켜 세우신다고 한 말은 바벨론에 포로됨으로 무너졌던 다윗 왕국을 다시 회복시키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다시 일으켜 세운다고 했습니까?
<이는 남은 유대인들과 하나님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을 모든 이방인들이 주님을 찾게 하기 위함이라>고 했습니다.
즉 이전에 다윗 왕국은 이방인들을 죽이고 점령함으로써 이루어졌습니다.
다시 말해서 블레셋을 쳐서 점령하고, 아람을 쳐서 점령하고, 아람 소바까지 쳐서 점령했습니다.
그러나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와 회복된 다윗 왕국은 이방인들을 주께로 돌아오게 한다는 것입니다.
즉 다윗의 자손으로 오실 메시아가 메시아 왕국을 이룰 때는 남은 유대인들만이 아니라, 많은 이방인들이 주께로 돌아온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구약 성경에 이미 다윗의 왕국 즉 메시아 왕국에서 이방인들이 주께로 돌아와 주님을 섬길 것을 예언해놓으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야고보는 주께로 돌아온 이방인을 더 이상 괴롭게 말고,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똑같이 하나님의 자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19절. 그러므로 내 의견에는 이방인 중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들을 괴롭게 하지 말고
결론적 결정은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서 구원받고 성령 받은 이방인들에게 유대인의 전통을 강요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할례를 강요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베드로식으로 다시 표현하면 그것은 네 조상이나 너도 능히 메지 못했던 그 멍에를 다시 이방인의 목에 매려고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20절. 다만 우상의 더러운 것과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하라고 편지하는 것이 옳으니
1. 여기서 야고보는 구원의 조건은 아니지만 구원받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생활 방식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술 담배라는 말로 쉽게 설명해보겠습니다.
술 담배를 끊어야만 구원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술 담배 도박을 하더라도 예수님만 믿으면 구원을 받습니다.
왜냐하면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어지는 것이지 내가 윤리적으로 선한 일을 하므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구원과 술과 담배는 전혀 상관이 없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확실히 예수를 믿고 구원받은 사람은 술과 담배를 끊는 생활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전에 우상 숭배하고, 악한 생활을 하던 사람이 예수 믿고 나서는 그런 우상숭배를 하지 않고, 악한 생활을 하지 않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상 숭배하고 악한 생활이 변하여 하나님만 섬기고 선한 생활 하는 변화된 모습을 보면, 그 사람이 과연 예수 믿고 구원받은 사람인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2. 그러면 유대인과 이방인이 공동으로 지켜야 할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무엇일까요?
야고보는 그리스챤의 삶을 네 가지로 말합니다.
(1) 첫째로, 우상 숭배에 사용되었던 제물이나 음식이나 그런 물건을 멀리하라는 것입니다.
과거에 하나님 없이 우상을 섬기고 살던 그 문화를 이제는 멀리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도 제사 지내는 것이 일반 불신 사회의 당연한 문화로 형성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제사를 지내지 않으면 문중에서 사람 취급을 않고, 상종을 하지 않습니다.
이런 불신자들의 제사 문화와 기독교의 문화는 양립할 수 없습니다.
(2) 둘째로, 음행에서 빠져나오라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우상숭배에 필수적으로 붙어있는 것이 음행입니다.
과거에 우상 신전에서 제사할 때는 신전 창녀들이 있어서, 반드시 음행을 했기 때문입니다.
바알과 아세라 우상숭배 때 다산을 위한 공적인 음행이 있었고, 민수기 25장의 모압 사람들이나 미디안 사람들이 섬기는 우상숭배도 음행이 있었으며, 고린도 사람들이 숭배한 아프로디테 우상 제사 때도 공적인 음행 행사가 있었습니다.
이처럼 제사의 한 방법이었기 때문에 음행이라는 것은 마귀가 쓰는 가장 강력한 무기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구약에서는 하나님을 섬기는 남자가 이방 종교를 믿는 여자들을 데려오게 되면 그 이방 종교를 따라가고 말았습니다.
아합이 바알 숭배하는 이세벨을 데려오니까, 북쪽 이스라엘은 모두 바알 우상 숭배에 빠졌습니다.
남쪽 유다도 여호사밧 왕이 바알 숭배자 이세벨의 딸 아달랴를 며느리로 데려오니까 온 나라가 바알 숭배에 빠졌습니다.
그래서 우상 숭배를 피해라, 음행을 피해라고 했습니다.
우리나라도 불신 사회에서는 퇴근 후에 회식하고 술 먹고 카바레에 가서 춤추고 음행하는 풍속이 널리 유행하는 관습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 문화와 불신 세계의 문화가 공존할 수 없는 부분이 있습니다.
(3) 셋째와 넷째로, 목 메어 죽은 것과 피를 먹는 것은 다 구약에서 금한 것들이었습니다.
이것은 짐승을 잡을 때 피를 흘려서 잡아야 하는데, 피를 흘리지 않고 잡은 것을 먹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피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생명체의 생명이므로, 피를 음식으로 먹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목메어 죽인 것과 피 음식을 먹는 것도 우상 숭배와 관련이 있습니다.
우상 숭배하면서 양이나 소나 염소나 돼지를 막 잡아서 먹고 불 피우고 춤추며 뛰노는데, 언제 배를 따서 피를 빼고 삶아 먹을 수 없으니까, 그냥 목매달아서 짐승을 잡고 피째 구워 먹은 것을 가리킵니다.
우상 숭배하지 않을 때는 짐승의 배를 따서 피를 빼고 고기를 삶아 먹는데, 축제 때 우상 숭배할 때는 그럴 시간적 여유가 없으니까 짐승을 목매달아서 잡고 피채 구워 먹었습니다.
요즘에도 피 음식인 선지국은 신앙적으로 거리낌이 있어서 안 먹는 성도들이 많습니다.
어떤 목사님들도 피 음식 먹는 것은 하나님이 모든 음식을 깨끗하다고 하셨으니(막 7:19, 행 10:15, 딛 1:15) 피 음식도 깨끗한 음식이라고 먹습니다.
그러나 어떤 목사님들은 피 음식을 먹어서는 안 된다고 하고, 또 피속에는 나쁜 균들이 있으므로 건강상 좋지 않다고 합니다.
실제로 개나 닭 같은 짐승들도 피 음식을 먹지 않습니다.
그러나 피 음식을 먹어라, 먹지 말라고 할 것이 아니라 양심상 자유에 맡겨야 할 문제입니다(고전 10:25-29).
우리나라에서는 우상숭배 때 축제(카니발)를 하면서 모닥불을 피우고 술 먹고 고기 구워 먹고 춤을 추고 음행하면서, 짐승을 목매달아 죽이고 피채 음식을 먹는 이런 행사를 하지는 않습니다.
단지 우상 제사하는 풍습과 술 먹고 음행하는 문화는 만연해 있습니다.
21절. 이는 예로부터 각 성에서 모세를 전하는 자가 있어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그 글을 읽음이라 하더라.
우리나라는 우상 숭배와 연관된 목매 죽인 것과 피 음식보다는 술과 담배 문제가 교회 문화와 불신자 문화 사이의 큰 문화적 차이점인 것 같습니다.
이제 예수 믿은 성도들은 과거의 우상 숭배 습관을 버리고 하나님의 가족으로서 교회의 문화 속에서 살아가라는 말씀입니다.
비록 이런 문화가 구원의 조건이 아니지만, 이미 성령으로 하나님 은혜로 구원받은 성도들은 이런 교회 문화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 믿고 구원받은 은혜에 감사해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올바른 삶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이웃 성도에게 거치는 시험거리가 되지 않고, 성도로서 거룩한 삶을 사시고,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복 주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축원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