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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0년대 여관, 식당 그리고 각종 유원지의 대표 광고주는 맥주, 소주 등 주류회사와
콜라 및 사이다 등 음료회사가 주종이었습니다.
언제부터 그러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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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 도봉산 입구 입니다.
제3회 크로스 컨트리 대회 스폰스사가 크라운 맥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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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경 수안보 온천의 백운장 여관 광고주는 오비맥주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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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포항 관광호텔 의 광고주는 코카콜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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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9년경 도봉산 망월사 입구 상가입니다.
스페시(?)콜라, 서울 코라(콜라)가 광고를 하고있습니다.
이외에도 유원지 식당이거나 길거리 식당에도 맥주, 소주 그리고 음료수 광고가 1순위였습니다.
저런 곳에 저런 광고가 당연하다라고 말씀하시면, 쩝 할말이 없겠습니다만...
이런 곳에서 이런 류의 회사가 광고를 하는 건 언제부터 비롯되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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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송도를 담은 사진엽서입니다.
해운대보다 송도가 더 먼저 개발되었고, 해수욕이 얼마나 붐이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박태원의 1938년작 '천변풍경'은 서울의 소시민의 삶을 담고 있는데요.
한여름날, 주말에 월미도나 인천 송도 해수욕장에나 다녀올까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좌우측으로 플랭카드가 걸려 있는데요.
무슨 글자가 적혀 있는데, 궁금하네요. 확대해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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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단에는 ㅁㅁㅁ정종(正宗), 그러니까 사케 광고인 듯 하고요.
상단에는 기린 삐루(キリンビール) 입니다. 그러니까 기린 맥주이군요.
그때는 크라운이나 오비맥주가 없던 시절^^, 식민지 조선인들은 무슨 맥주를 마셨을까요
기린맥주와 요즘 최고로 치는 삿포르 맥주 등을 마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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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넘게 찢어진 이 플랭카드의 글자 'ール'를 염두에 두면 이 광고 역시 맥주일 가능성인 높습니다.
필체가 다른 걸 보면 분명히 삿포르 맥주였을 겁니다.
1933년 삿포로 맥주와 기린맥주가 영등포에 맥주 공장을 세우며, 맥주는 결정적으로 대중화됩니다
특히나 일제 때는 부산시민 3명 중에 1명이 일본인이었고,
일본인들은 맥주를 좋아 하는지라 송도해수욕장에서 맥주 광고는 첨예했을 겁니다.
이런 광고경쟁 속에서 조선인들도 맥주맛에 빨려 들어갔습니다.
1930년대 중반 한여름 조선일보 기사 중에는 '시중에 맥주가 동나'라는 기사도 있더군요.
참고로 춘원 이광수의 금강산 기행문에 의하면,
금강산 곳곳에 있던 찾집에는 계곡의 물을 받은 통에 '사이다와 맥주'등이 있다고 적혀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콜라는 없다는 거죠^^
콜라는 해방 후 이땅에 들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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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오늘의 의문의 답은 이렇습니다.
유흥 시설이나 유원지에서 음료. 주류 광고는,
동네바깥의 술을 동네안으로 갖고 들어오지 않았던 조선시대때까지는 올라갈 수는 없는 법이고
일제 때로 연원한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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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말을 다하고 나니, 하나나마나한 이야기.
알아도 몰라도 그만인, '거의 모든 것에 관한 거의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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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여관호텔 계곡입구
음료수주류 매출이
상당하니까 간판달아주고 간판 구석에 상품선전하는거 아닐까요아닐까용
네..물론 그렇죠...~~~
그게 그런데 일제 때도 그러했다는 거를 한번 눈여겨 보았습니다...~
도봉산 크로스컨츄리대회가 짠합니다
가로형배낭에 워커신고국제화세계화 시절도 아니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