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승역에서
어미를 잃고 새끼는 불안하다
사람이든 짐승이든 그것은
돌아갈 근원을 잃어버리는 일
친구 어머니의 부음을 듣고
문상 다녀오는 밤
골목은 어제보다 더 캄캄하고, 길은
미끄럽고 위태롭다
어둑한 구석에서
붉게 짓무른
꽃무릇처럼 울었지
조금 늦거나 빠르거나
누군가는 떠나고
언제나 혼자 남겨지는 곳
각자 살아온 무게만큼
돌아올 수 없는 여행을
오늘도 떠나고 있다
역류성 식도염처럼
고관절이 주저앉은 당신
참혹하다
몸은 몸이 아니고
털 빠진 어미 두루미
슬픔이 목젖을 때리고 솟구치더니
무릎을 꺾고 바닥에 울음을
쏟아낸다
한평생 이름을 잃고 누군가의 아내
자식들의 엄마, 할머니로만 살았다
새벽부터 밤까지
궂은일 마다 않고 바닥만 보며
꽃다운 청춘 보내 버린
일상에서 튕겨 나와 간신히 숨만
남아 있다
토해 낼 것이 아직 남은 것인지
지독한 통증은 비명마저 삼켰다
나팔꽃
밤새도록 닫힌 문
두드리고 있다
풀잎에 고인 물 한 모금 나눠 달라고
손등이 터져 피멍 들도록
목이 쉬도록
귀 막고 눈 감은 잠을 깨운다
시집<<봄의 귀를 갖고 있다>>
최춘희
경남 마산 출생
1990년 <<현대시>>등단
시집<<종이꽃>> <<늑대의 발톱>> <<시간 여행자>>
<<초록이 아프다고 말했다>> 외
제2회 <<현대시>> 시인상 수상
카페 게시글
오늘의 좋은 시
최춘희의 시집 <<봄의 귀를 갖고 있다>> / 권혁재
권혁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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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43
23.04.25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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