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로수길 / 권영상
울며 가는데
매미가 그 길을 같이 가 준다.
세상에, 그랬구나!
내 마음을 달래며
매미가 맴, 같이 울어준다.
괜찮아, 큰소리로 울어도 돼!
내 울음을 숨겨주려고
매미가 나보다 더 크게 울어준다.
맴맴, 찌이이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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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소사 대웅전 현판 / 김은오
부안 내소사에서
대웅보전 현판을 보고
마음이 간질간질 했어
조선시대 장난꾸러기 글씨장이를
보았기 때문이지
대웅보전 대(大)자가
서둘러 어딘가 가고 있는 졸라맨 같았거든
동국진체라는 우리만의 글자체를 완성한
원교 이광사라는 분이 쓴거래
조선의 4대 명필 중 한 사람으로 꼽히는 분이래
현판을 쓴 글씨장이,
자랑스럽게 걸어놓으신 스님들
마음이 몽글몽글했을 거야
두고두고 이 글씨를 보는 사람 마음이
근질거릴 거라는 걸 믿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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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의 성격 / 김현숙
다리가 네 개나 있어도 걷지 않는다
뚜벅뚜벅 밖으로 나갈 엄두도 안 낸다
가만 놔두면 꼼짝도 하지 않는다
보기에는 안 그런 것 같은데
완전 소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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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났다! / 이상교
상가 옥상 물탱크 위에서
까마귀
아악아악아악 신호 보낸다
개울 둑 벚나무 우듬지에서
까마귀
아악아악아악 신호 보낸다
아악아악아아악 -
아악아악아아악 -
두 소리 점점 좁혀져
간다
드디어 만났다
조용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