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99세의 아브람과 89세의 사래에게 새 이름을 지어 주시며 여러 민족의 조상이 될 것을약속하십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할례를 시행합니다.
1-8, 15-16절 언약을 새롭게 하시고 정체성을 변화시켜 주십니다. 하나님은 아혼아홉 살의 아브람에게 나타나 스스로를 전능한 하나님이라 밝히시고 언약을 다시 확인하셨습니다. 아브람(존귀한 아버지)에서 아브라함(많은 사람의 아버지)으로, 사래(나의 여주인)에서 사라(보편적 의미의 귀부인)로 바뀐 이름은 그들의 존재가 하나님의 약속으로 새로워졌음을 드러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약속을 주시며 이름을 불러 주실 때 우리는 이전과 다른 존재가 됩니다. 우리는 언약으로 존재가 규정되고 인생이 해석되는 사람입니다.
9-14절 언약의 표징을 통해 순종을 요구하십니다. 할례는 몸의 일부를 베어 냄으로 옛 본성과 세상과의 연합을 끊고 새로운 신분으로 구별됨을 드러내는 표징이었습니다. 몸에 새기는 고통은 하나님께 속한 존재로 살겠다는 결단을 상징했습니다. 할례는 외적인 표시이면서 동시에 마음의 순종을 요구하는 내적인 행위였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주어지는 표징은 성령의 인치심입니다. 성령의 함께하심은 삶의 선택과 순종으로 드러나야 합니다. 우리의 믿음이 진실하려면, 때로는 자신의 뜻을 베어 내는 결단을 통과해야 합니다.
17-22절 인간의 불신을 언약의 성취로 바꾸십니다. 아브라함의 웃음은 불가능한 현실 앞에서 표현된 인간의 회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들의 이름을 이삭(그가 웃는다)으로 지으셔서 불신의 웃음을 예고된 기쁨으로 바꾸십니다. 인간의 회의가 하나님의 성취를 드러내는 배경이 된 것입니다. 우리의 안쓰러운 의심과 불신의 웃음도, 하나님은 경탄과 감사의 웃음으로 바꾸실 것입니다.
23-27절 약속을 믿은 아브라함은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1절)는 말씀에 순종하여 곧바로 할례를 행했습니다. 보이지 않는 미래보다 말씀을 더 현실로 받아들인 것, 그것이 아브라함의 믿음이었습니다. 우리도 눈 앞의 막막함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더 신뢰하며, 오늘 깨달은 진리를 지체하지 말고 삶으로 순종합시다. (매일성경, 2026.01/02, p.78-79, 새 이름, 새 믿음, 창세기 17:1-27에서 인용).
① 하나님은 99세의 아브람과 89세의 사래에게 새 이름을 지어 주시며 여러 민족의 조상이 될 것을약속하십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할례를 시행합니다. 언약을 새롭게 하시고 정체성을 변화시켜 주십니다. 하나님은 아혼아홉 살의 아브람에게 나타나 스스로를 전능한 하나님이라 밝히시고 언약을 다시 확인하셨습니다. 아브람(존귀한 아버지)에서 아브라함(많은 사람의 아버지)으로, 사래(나의 여주인)에서 사라(보편적 의미의 귀부인)로 바뀐 이름은 그들의 존재가 하나님의 약속으로 새로워졌음을 드러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약속을 주시며 이름을 불러 주실 때 우리는 이전과 다른 존재가 됩니다. 우리는 언약으로 존재가 규정되고 인생이 해석되는 사람입니다.
② 언약의 표징을 통해 순종을 요구하십니다. 할례는 몸의 일부를 베어 냄으로 옛 본성과 세상과의 연합을 끊고 새로운 신분으로 구별됨을 드러내는 표징이었습니다. 몸에 새기는 고통은 하나님께 속한 존재로 살겠다는 결단을 상징했습니다. 할례는 외적인 표시이면서 동시에 마음의 순종을 요구하는 내적인 행위였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주어지는 표징은 성령의 인치심입니다. 성령의 함께하심은 삶의 선택과 순종으로 드러나야 합니다. 우리의 믿음이 진실하려면, 때로는 자신의 뜻을 베어 내는 결단을 통과해야 합니다.
③ 인간의 불신을 언약의 성취로 바꾸십니다. 아브라함의 웃음은 불가능한 현실 앞에서 표현된 인간의 회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들의 이름을 이삭(그가 웃는다)으로 지으셔서 불신의 웃음을 예고된 기쁨으로 바꾸십니다. 인간의 회의가 하나님의 성취를 드러내는 배경이 된 것입니다. 우리의 안쓰러운 의심과 불신의 웃음도, 하나님은 경탄과 감사의 웃음으로 바꾸실 것입니다.
④ 약속을 믿은 아브라함은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1절)는 말씀에 순종하여 곧바로 할례를 행했습니다. 보이지 않는 미래보다 말씀을 더 현실로 받아들인 것, 그것이 아브라함의 믿음이었습니다. 우리도 눈 앞의 막막함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더 신뢰하며, 오늘 깨달은 진리를 지체하지 말고 삶으로 순종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