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 / 박선애
그때는 다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다닌 초등학교는 3학년 때까지는 남녀 합반이다가 4학년이 되면 1반은 남학생, 2반은 여학생 반으로 나뉘었다. 그러라고 시킨 기억은 없지만 4학년이 되면 지금까지는 스스럼 없이 놀던 남자애들과 모른 척하고 지냈다. 중학교에 가서는 한교실에서 지내면서도 내외하려니 불편했지만 그것이 당연한 줄 알았다. 남녀가 친한 것이 흉거리가 되었다. 그런 중에도 서로 편지를 주고받으며 교제하는 친구들이 있었는데 들통나면 교무실로 불려가 호되게 혼이 났다. 그러니 나처럼 소심하고 겁많은 사람은 남학생 분단을 쳐다보는 것조차도 조심했다.
발령을 받아 학교에 가니 그동안에 많이 바뀌어 있었다. 남녀 구별 없이 잘 어울렸다. 어려서부터 같이 지내 와서 이성이라는 것을 잊은 듯 거리낌이 없었다. 심지어는 보든지 말든지 교실에서 체육복을 갈아입기도 했다. 말뚝박기와 같이 몸으로 부대끼며 하는 놀이를 보면 내가 불편해져서 말릴 정도였다. 가끔씩 이성 교제하는 애들도 있었다. 숨기지도 않지만 특별히 두드러져 보이지도 않았다.
지역과 학교 규모와 분위기에 따라 차이는 있어도 이성 교제하는 아이들의 표현이 점점 대담해졌다. 10여 년 전 근무했던 학교에서는 우리 반 여학생을 옆 반 남학생이 좋아한다고 남자애들이 놀리는 소리를 들었다. 체육대회가 되자 자기 반 단체복을 맞추면서 등에 여학생 이름과 함께 사랑을 고백하는 글귀를 써넣은 것을 보고 놀랐다. 여학생은 착하고 공부도 열심히 하고 얼굴도 예뻐서 선생님들의 귀여움을 받았는데, 남학생은 장난을 좋아하고 철이 없었다. 어른의 눈에는 둘이 어울려 보이지 않았다. 여학생을 믿었지만 남학생에게 장난삼아 "우리 OO이 좋아하려면 공부도 열심히 하고 행동도 좀 차분하게 해야지, 그러기 전에는 넘보지 마라"고 했다. 내 믿음과 간섭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잠깐 사귀었다. OO이가 대학 합격 후에 인사하러 와서 그 남학생이 내가 한 말에 두고두고 서운해했다는 말을 전했다. 미안했지만 사과할 기회도 없었다. 어쨌든 서로 좋아하고 주변에서는 놀리고, 그러다 헤어지는 아이들의 순수한 사랑을 지켜 보는 것은 즐거웠다.
여중에서 근무하다 재작년에 지금의 학교로 와 보니 커풀이 여럿 있었다. 그중에서 2학년 이슬이와 찬이는 유난히 티를 냈다. 수업 중에 멀리 떨어져 있어도 서로 눈짓을 주고받으며 내 정신까지 흐트러뜨려서 지적을 하곤 했다. 그날은 이슬이가 시무룩해서 누가 봐도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농담 삼아 "찬이랑 싸웠냐, 마음이 안 맞으면 헤어지고 다른 사람 찾으면 되지 뭘 그렇게 우울해하냐"고 놀렸다. 그때 찬이 가까이 앉은 여학생이 “선생님, 찬이 눈에서 레이저 나와요.”라고 한다. 유난히 까만 찬이의 얼굴에서 눈만 반짝이며 나를 쏘아보고 있었다. 그런데 그 여학생이 덧붙인다. “선생님, 찬이가요, ‘저 선생 결혼이나 했는가 모르것다. 와꾸(틀, 얼굴)로 봐서 결혼도 못 했것다.’고 해요.”라고 이르며 웃음을 터뜨린다. 여자 친구와 갈라놓으려고 한다고 제딴에는 복수하겠다고 내가 기분 나빠할 말을 골랐을 텐데, 오히려 재미있었다. 두 사람은 그 후로도 한동안 사귀다가 헤어졌지만 졸업할 때까지 나는 찬이를 보면 내 얼굴이 그 정도는 아니지 않냐고 놀리며 친하게 지냈다.
작년에 1학년이던 지민이는 같은 반 준이와 사귀었는데, 애정 표현을 과감하게 했다. 손잡고 다니는 것까지는 봐줄 만한데 도서관에서도 틈만 나면 다른 사람 눈을 의식하지 않고 남학생 무릎에 앉아 있곤 했다. 애들은 뽀뽀도 했다고 놀리고 선생님께 일러도 신경 쓰지 않았다. 선생님이 여러 번 지도해도 말이 먹혀들지 않자 부모님들을 학교에 오시게 해서 상담하고 도움을 청했다. 우리들은 담임이 상견례도 시키냐고 웃었다. 남학생 집이 이사 가면서 전학하고 나서야 둘 사이는 끝났다.
올해 1학년은 입학하자 여학생 몇 명이 2학년 오빠들에게 관심이 많았다. 예나는 2학년 잘생긴 강이 오빠만 보면 심장이 터질 것 같다고 담임 선생님을 찾아와 징징댔다. 수미는 2학년 영주 오빠 보려고 한동안 점심시간마다 도서관에 왔다. 이걸 보고 내가 독서 동아리 애들에게 확실한 도서관 활성화 방안은 너희들이 영주처럼 모두 이성 친구를 만들면 되겠다고 말하며 함께 웃었다. 잠깐 이러다가 1학년들은 다른 데서 관심거리를 찾았는지 조용해졌다.
지금도 몇 쌍의 커풀이 있지만 대부분 표 내지 않는다. 3학년 준만이와 2학년 진아만 예외다. 우리 반 준만이는 쉬는 시간만 되면 2학년 교실로 와서 산다고 진아 담임 선생님이 불편해하신다. 가지 말라고 해도 소용이 없다. 어제는 진아가 여학생 화장실에 있고 준만이는 화장실 밖에서 팔을 뻗어 손을 잡고 있었다. 저렇게 좋을까 싶어 우습지만 짐짓 목소리를 높여 너희들 뭐하고 있냐고 야단을 쳤다. 가끔 도가 넘으면 참견과 성교육까지도 필요하지만 대부분은 보는 사람을 미소 짓게 하는 것이 아이들의 사랑이다.
사춘기 아이들이 이성에 관심을 보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나는 청소년의 이성 교제를 찬성한다. 오히려 한 사람을 오래 사귀지 말고 여러 명을 만나 보면서 이성을 이해하고 다름을 인정하는 마음을 배우라고 조언한다. 우리 때처럼 이성은 무조건 멀리하게 해서 환상을 품었다가 그와 다른 현실에 맞닥뜨려 당황하는 일이 없었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인간 관계를 맺는 것도 연습이다. 좋아하는 이성 친구를 보면 가슴 두근거리고, 떨며 고백하고, 때로는 거절 당하기도 하고, 사귀며 기쁨을 맛보기도 하고 또 이별로 아파 보기도 하면 좋겠다. 이 시기에 자연스럽게 찾아 오는 다양한 감정들을 많이 느끼고 경험하면서, 서로 이해하고 배려하는 아름다운 사랑을 배워 따뜻한 어른으로 자라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