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가을 나들이 / 양선례
여고 친구들과 일 년이면 서너 번 만난다. 사적 인원을 제한하는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는 그조차 어려웠다. 보성 소휴당(주말 주택)을 너무나 좋아하는 친구만 몇 번 다녀갔을 뿐이다. 이번 만남도 넉 달 만이다. 장성호 수변공원 둘레길을 걷자고 제안했다. 이 모임은 고등학교 졸업을 앞둔 2월에 만들어졌다. 장난처럼 시작한 게 40년 가까이 되었다. 서울에서 케이티엑스(KTX)를 타고 광산역으로 오는 미아는 광주 사는 영이가 마중가기로 했다. 순천 사는 친구 둘은 나와 같이 간다.
목사인 숙이는 공주에서 온다. 부천의 큰 교회 부목사를 하다가 교인들끼리의 싸움에 휘말려 모든 것을 뒤로 하고 공주로 내려왔다. 서른 가구가 채 안되는, 그래서 교회도 없는 작은 마을에 터를 잡았다. 몇 년 지나지 않아 평균 연령 80세인 그곳의 부녀회장이 되어 세상에서 제일 바쁜 목사가 되었다. 마을 노인들 아프면 자식들에게 보고하랴, 모시고 병원 가랴, 마을회관 둘러보랴, 읍에서 하는 이런저런 행사에 참여하랴, 예배 준비하랴, 24시간이 모자라게 뛰어다닌다. 그뿐이랴. 두 분의 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는데, 작년에 친정어머니가 돌아가셨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시어머니가 기저귀를 찬다. 두 어른 뒤치다꺼리하느라고 1박 2일 친구들 모임을 온전히 즐기다 간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서둘러 운전해 와서 몇 시간 머물다 돌아가기 바빴다. 숙박비가 들지 않고, 먹거리 풍부하고, 익숙한 보성과, 숙이에게 조금 더 가까운 장성을 놓고 저울질하다가 장성이 최종 목적지로 정해졌다. 보성이 아닌 타 지역에서의 1박은 정말 오랜만이다.
장성호 수변길은 두 갈래다. 왼쪽으로 가면 다리가 두 개나 있어서 지루하지 않고 멋스럽다. ‘옐로우 장성’이 군의 슬로건이다 보니 다리는 온통 노란색이다. 입구에서 3,000원의 입장료를 내면 장성사랑 상품권으로 주는데 그것을 출렁다리 옆의 편의점과 카페, 분식점에서 고스란히 쓸 수 있다. 아마추어 음악인들의 공연도 매주 이어지기에 차를 마시면서 바다처럼 넓은 장성호의 낭만을 느낄 수 있다.
오른쪽 길은 울창한 숲을 끼고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그늘이라 여름에도 걷기에 좋다. 두 길은 지금은 따로따로지만 머잖아 중간에 다리를 놓을 예정이다. 또 호수를 한 바퀴 도는 34km의 ‘장성호 수변 100리길’을 만들 계획이라 한다. 그때가 되면 아마도 또 하나의 명품 둘레길이 되지 않을까.
우리는 오른쪽 길을 걸었다. 커다란 떡갈나무 잎사귀의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듣기 좋았다. 아쉬운 건 가뭄이 심해서 수량이 많지 않았다. 광주는 제한 급수를 할지도 모른다는 말이 돈단다. 지난 힌남노 태풍 이후 비다운 비가 오지 않아 걱정이라는 방송을 들었지만 직접 눈으로 보니 더 심각했다. 만조에 비해 수위가 2미터 이상 낮아진 듯 보였다. 예상대로 내 친구들은 좋아한다. 늘 한두 명은 빠졌는데 간만에 여섯 명의 완전체가 다 모여서 더 그랬다. 준비해 간 대추차와 소금빵을 나눠 먹으며 풍경 좋은 곳에서 쉬었다. 다시 소녀가 된 듯 쌓인 낙엽을 뿌리며 뛰는 설정 사진도 찍었다. ‘하나, 둘, 셋’ 구령을 외칠 때마다 포즈를 달리하라고 주문했다. 삼각대를 준비해 가기 잘했다. 가장 젊은 오늘을 맘껏 즐겼다.
돌아오는 길은 멀었다. 시간은 오후 한 시가 지나있었다. 비닐봉지에 담긴 멜론을 손가락으로 집어 먹었다. 친구 한 명은 국물까지 마셨다. 한두 조각 먹으니 오히려 더 허기졌다. 맛집이라고 소문난 식당을 검색해서 갔는데 허탕이다. 열두 시까지만 손님을 받는단다. 멀리 식당 간판이 보이기에 무조건 그곳으로 향했다. 밑반찬의 종류도 다양하고 깔끔했으며 맛도 있었다. 본 음식이 나오기도 전에 몇 접시를 갖다 먹었다. 구워서 나오는 돼지갈비 맛도 일품이다. 꿩 대신 닭에 모두 만족한 한 끼였다.
찻집에 갔다. 오래전에는 모텔이었던 곳을 개조해서 꾸민 카페의 2층은 미술관이었다. 일렬로 나란히 앉아 창밖을 바라볼 수 있는 3층에 자리 잡았다. 황룡강이 한눈에 들어왔다. 풍경 맛집인 데도 자꾸만 졸음이 쏟아졌다. 아침부터 서둘러 온 데다 만3천 보가 넘게 걸은 탓이다. 꾸벅꾸벅 졸았다. 우리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아무런 흉이 되지 않는 편한 친구 여럿이 든든하게 지켜서 앉은 채 꿀잠을 잤다.
20여 분을 달려서 숙박지로 갔다. 2주 전에 에어비엔비로 겨우 구한 방은 소휴당의 안방 크기밖에 되지 않아서 실망스러웠다. 두 명이 누우면 꽉 차는 다락방이라도 있어서 다행이다. 이번에 낸 수필집 한 권씩을 돌렸다. 가까이 사는 친구 한 명만 출판 기념회에 온 탓이다. 소설가가 아닌 이상 결국은 내가 보고 듣고 느낀 이야기로 책을 엮다 보니 이 친구들 이야기도 책에 여러 편 실렸다. 두 편을 골라 돌아가면서 소리 내어 읽었다. 글로 읽으니 색다른 맛이 난단다. 어떻게 이렇게 세세히 기억해서 쓸 수 있는지 놀라워한다. 잊고 있던 기억도 쓰다 보면 떠오른다고 대답한다. 친구 한 명이 글쓰기에 관심을 보여 전도(?)도 했다.
바로 앞에 있는 카페도 문을 닫았다. 뭘 사 먹으려면 다시 그만큼을 달려 읍내까지 가야 한단다. 주인한테 라면 세 개를 얻어서 끓이고, 낮에 수변길 마켓에서 산 감과 집에서 챙긴 와인을 반주 삼아 저녁을 먹었다. 늦은 점심으로 밥 생각이 없다는 친구까지 합세하여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해치웠다. 밖에서는 고기 굽는 냄새가 솔솔 풍겼다. 거하게 먹으려던 저녁은 물 건너갔지만 수다라는 양념이 더해져 그조차 맛있었다. 제각각 편한 자세로 누워서 음악을 들었다. 나중에는 따라 불렀다. 찻집에서 헤어진 숙이가 잘 도착했다는 메시지를 보내왔다. 단 여섯 시간을 머물려고 네 시간을 운전한 숙이가 대단하다. 그래도 너무 늦기 전에 도착해서 다행이다. 다락에 한 명, 아래층에 넷이 누우니 방이 가득 찬다. 공기가 좋아선지 낯선 방에서도 다들 잘 잤다.
소휴당에서는 거의 외식하지 않는다. 저녁도, 아침도 요리해서 먹는다. 텃밭에서 딴 채소에 수산물 위판장에서 산 제철 해산물이면 한 상을 뚝딱 차릴 수 있다. 이번 장성 여행에서는 다 사 먹기로 했다. 그런데 가게가 있어야 사 먹지. 부대 시설이 전혀 없는 산속이라는 걸 도착해서야 알았다. 먹고 남은 과일과 빵 약간으로 아침을 때웠다. 냉장고에 넣어 둔 멜론 한 통과 샤인 머스캣 두 송이는 깜박했다는 걸 집에 와서야 알았다. 먹을 게 별로 없었던 그 아침에라도 기억했어야 했는데 글 쓰는 지금 생각해도 아쉽기만 하다.
해가 갈수록 친구가 좋다. 다들 나와 같은 마음인지 먼 길 마다하지 않고 기꺼이 달려온다. 대체로 여자들의 모임은 남자들보다 끈끈함이 약하다. 결혼과 육아의 터널을 지나는 동안 친구는 후 순위로 밀리기가 쉽다. 50대가 되자 비로소 자유로워졌다. 하루쯤 집을 비워도 눈치 보지 않는다. 학창 시절을 공유했기에 화젯거리도 끊이지 않는다. 이 친구들과 건강하게, 오래오래 함께 익어가고 싶다.
좋은 친구들과, 늦가을 나들이 한번 잘했다.
첫댓글 나이들수록 친구의 소중함을 느낍니다. 고등학교 친구랑 40년 동안 우정을 대단합니다. 그리고 부러워요.
편한 친구들이 귀하고 소중합니다.
잘 가꿔 가야지요.
오랜 친구들과 보낸 늦가을, 아름답고 따뜻하네요.
고맙습니다.
그리 말씀해 주셔서요.
친구의 우정이 아름답습니다. 건강하게 오래오래 익어가는 우정이 되길 저도 응원합니다.
네. 응원 고맙습니다.
시골에, 고향 옆에 사는 기쁨 중 하나지요.
내가 걷기 좋아하는 장성호 수변길에 오셨군요. 댐 아래 돼지 갈비 잘하는 집도 있어요. 친구들과 늦가을 나들이 멋있습니다.
그곳일까요?
초야 숯불갈비였답니다.
뜻밖에 횡재했어요.
선생님 책 '어느 구름에 비 들었을까' 교보문고 떳습니다. 보내준다던 책을 아기다리고기다리 했지만 오지않아 구매해 놓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촘촘한 선생님의 글을 읽으려니 설레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