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오류동에 큰 영향을 끼친 인물 중에서 중암<重菴> 김평묵<金平默> 선생을 들 수 있겠습니다.
이분이 지도<智島> 유배 시절 서당에서 후학을 가르쳐서 지도, 임자의 유림들 학식을 높였으며,
오류동에서는 당시 장판 문중 관해정<觀海亭> 어르신이 그 아들 완석<頑石> 김지학<金志學>을 지도에 보내어 중암 문하생으로 학문을 연마할 기회를 주셨습니다. 어려운 시절, 아들에 대한 향학열이 높으셨다고 생각됩니다.
지도에서 중암 선생 문하에서 학문을 배우신 완석께서 오지 한촌 오류동을 학문을 사랑하는, 무안군내에 우뚝 서는 마을로 만드시는데 크게 이바지 하셨습니다.
중암 선생이 유배가 풀려 귀향하는 길에~
오류동으로 모셔서 오류정사, 오류동 마을 이름 등을 지어 주시기를 부탁하셨고~
학문을 익힌 완석은 마을의 悅齋 (時鎬, 깟대하나씨, 갑주 조부, 장잘 서당 훈장), 述齋 (孟鎬, 원철 조부, 서당 훈장) 등을 가르쳤습니다. 따라서 오류동에서 한문을 조금이라도 아시는 분은 사실상 위 두 분의 문하생 이었다고 추정됩니다.
형편이 이렇다 보니, 오직 농사일에만 전념하던 인근 마을 주민들은 오류동은 들판도 넓지만,
학문하는 사람들이 많은 동네라고 소문이 퍼져서~ 오류동에 산다고 하면
존경과 부러운 눈으로 바라 보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명실상부한 부촌에 더하여 학식이 많고, <孔子 曰/맹자 왈>을~ 옆구리에 끼고 사는 깨어있는 마을로 알려 졌습니다.
또한 선조의 영향으로 무안군 일대에서 제일가는 교육열이 강한 마을이 되었습니다.
이런 지난날의 오류동을 생각할 때~
지금의 오류동은 희망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실망 하지않고 가일층 분발하여 지난날의 영광을 다시 찾아야 하겠습니다.
이 마을이 발전하려면 첫째도 둘째도 봉사 정신이 필요합니다.
특히 有志 <유지> 여러분의 적극적이고 합리적인 솔선 수범과 지도가 절실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