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문화유산 (360) / 스페인
오비에도와 아스투리아스 왕국 기념물군
(Monuments of Oviedo and the Kingdom of the Asturias; 1985)
아스투리아스 자치 지방[Autonomous Community of Asturias], 아스투리아스 주[Province of Asturias]에 위치한 9세기 이베리아 반도[Iberian peninsula]의 작은 왕국 아스투리아스(Asturias)에는 기독교의 불길이 꺼지지 않고 살아 있었다. 이곳에서 이베리아 반도의 종교 건축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한 프레-로마네스크(pre-Romanesque) 건축 양식이 탄생했다. 고대 수도였던 오비에도(Oviedo) 시내와 인근의 산타 마리아 델 나란코(Santa Maria del Naranco) 성당, 산 미겔 데 리요(San Miguel de Lillo) 성당, 산타 크리스티나 데 레나(Santa Cristina de Lena) 성당, 카마라 산타(Camara Santa)와 산 훌리안 데 로스 프라도스(San Julian de los Prados) 성당 등이 프레-로마네스크 건축 양식의 최고 걸작이다. 이와 더불어 라 폰칼라다(La Foncalada)로 알려진 우물은 당대의 놀라운 수리공학(水理工學) 구조물로 알려져 있다.
오비에도 주변의 왕궁과 성당들은 코르도바(Cordoba) 지역에서 이슬람 세력이 융성하던 시기에도 살아남은 작은 기독교 왕국 아스투리아의 문명을 보여 준다. 프레-로마네스크 양식의 아스투리아스 건축은 초기 기독교 예술의 변형도 아니고 카롤링거(Carolingian) 왕조 시대 예술의 특징도 없어서 아주 독특한 예술적 성취라고 할 수 있다. 바실리카 양식의 배치를 보이면서도 전체가 둥그런 모양의 천장인 데다 각주(角柱)가 아닌 원주(圓柱)를 사용한 이 성당들은 서고트 족[Visigoth]을 연상시키는 풍부한 장식과 아랍적 요소, 그리고 소아시아[Asia Minor] 지방의 거대한 신전을 연상시키는 형태이다. 아스투리아스 기념물군은 이베리아 반도에서 중세 건축의 발전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쳐 왔다. 아랍이 스페인을 정복한 직후에 펠라요(Pelayo)가 세운 작은 기독교 왕국 아스투리아스가 산악 지대에 재건된 것은 그 정치적 의미를 가릴 만큼 역사적・문화적으로 중요하다. 서고트 왕국에서 갈라져 나온 이 공국의 생존은 오랫동안 위태로웠지만 일종의 승리라고도 할 수 있다. 따라서 가톨릭 국왕들이 그라나다(Granada)를 탈환함으로써 이슬람과 800년 동안 지속해 온 전쟁을 끝낸 코바돈가(Covadonga) 전쟁(718)이 첫 번째 승리였다는 말에는 편견이 담긴 셈이다. 아랍의 공격으로 빈번하게 위협을 받긴 했지만[오비에도는 789년에 함락당하고 794년에 재약탈을 당했음], 아스투리아스 왕국은 9세기에 기독교의 최후 거점이었다. 나아가 이곳에서는 특별한 종류의 건축 양식이 시작되어 라미레 1세(Ramire I)의 통치기(842~850)에 최고 정점에 다다랐다. 라미레 1세는 유산에 대한 원천적 사료인 <알벨다(Albelda), 세바스티안(Sebastian), 실로스(Silos) 연대기>에서 위대한 건축가로 묘사된 인물이다. 나란코 산의 비탈에 있는 왕국의 수도 오비에도 바로 앞의 산타 마리아 델 나란코와 산 미겔 데 리요는 둘 다 라미레 1세가 통치하던 시기에 만들어졌다. 세 번째 건축물은 좀 더 최근의 것으로 라미레 1세 통치기의 공간적・구조적・장식적인 혁신이 적용되었다. 이 건축물은 산타 크리스티나 데 레나인데 오비에도 남쪽 37㎞ 지점의 레온(Leon)으로 향하는 길 위에 있다. 산타 마리아 델 나란코는 원래 2층으로 된 왕궁이었다. 1930~1934년에 실시된 발굴 작업 결과, 아래층에 있는 방 하나는 목욕탕이었음이 밝혀졌다. 905년과 1065년에 성당으로 바뀐 직사각형의 라미레 왕궁은 북쪽 끝에 외부 계단이, 남쪽 끝에 발코니가 있다. 이 발코니는 로지아(loggia)를 통해 동쪽과 서쪽이 개방되어 있는데 로지아는 만(灣) 위에 있어 전망대 역할을 하며 삼면이 모두 트여 있다. 건축 당시에 예배당이 하나 있었던 산 미겔 데 리요는 나란코 궁과 매우 흡사하게 생긴 거대한 건물이었으나 건축 당시의 것으로는 경탄할 정도로 균형이 잘 잡힌 2개의 베이(bay; 기둥 사이의 구획)만 지금 남아 있다. 앞에 소개된 탁월하게 창조적인 두 건물의 축소형인 산타 크리스티나 데 레나는 빼어난 아스투리아스 건축의 마지막 시기(850~866경)를 구현한 것이다. 추정이 맞는다면 이 건물은 오르도뇨 1세(Ordono I)의 왕지에 있던 예배당이었을 것이다. |
첫댓글 기독교와 이스람교의 전쟁이 800년동안 지속되었었다니 ~ 현재에도 지속되는 중동전쟁을 보면 끝이없는 종교전쟁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