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랩탑과 스마트폰의 중간? 너의 정체는?"
KT가 독일에서 개최된 가전전시회 IFA 2012에서 재미있는 상품을 선보였다. 그런데 살펴볼수록 뭔가 이상하다. 통신사에 출시한 제품인데 통신 기능은 일절 들어가지 않았다. 그 흔한 블루투스도 지원하지 않는다. 생긴 건 영락없는 노트북(혹은 넷북)인데 CPU는 커녕 운영체제도 없다. 대체 무엇에 쓰는 물건인지?
11인치 디스플레이와 키보드를 갖춘 ‘스파이더 랩탑’은 스마트폰의 사용성을 확장하기 위한 제품이다. 사실 이 제품 자체로는 아무 기능도 하지 못하는 ‘깡통’이나 다름 없다. 그러나 스마트폰과 결합하면 그럴싸한 랩탑으로 재탄생한다. 쉽게 말해 스마트폰을 위한 입출력 장치인 셈이다.
겉모습이나 크기는 한 때 유행했던 넷북과 매우 비슷하다. 깔끔하고 슬림한 디자인이 눈에 띈다. 앞서 설명했듯 CPU, 운영체제, RAM 등이 생략됐기 때문에 얇고 가볍다. 무게는 950g이다. 일반 노트북에 비해 휴대하기 부담스러운 무게는 아니지만, 입출력 기능만 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파격적으로 가볍다고 평가되지 않는다.
스파이더 랩탑과 갤럭시S3를 연결하니 각각의 디스플레이에 똑 같은 화면에 표시된다. 기본 화면은 세로 기준의 스마트폰 UI와는 달리 가로형 UI로 변경된다. 갤럭시탭이나 갤럭시노트10.1 등 안드로이드 태블릿과 흡사한 화면이다.
조작은 양쪽 기기에서 모두 가능하다. 스마트폰에서 메뉴를 터치하거나 스파이더 랩탑에서 마우스를 조작해 메뉴를 선택할 수 있다. 뮤직비디오를 플레이해보니 영상이 랩탑의 11인치 화면을 통해 매끄럽게 송출된다. 스마트폰으로 감상하는 것보다는 화면이나 소리가 확실히 시원스러운 느낌이다. 화면 밝기나 볼륨은 키보드를 통해 간편하게 조절할 수 있다.
키보드 입력도 사용해보았다. 일반 노트북을 사용하는 것과 동일한 사용감이다. 딜레이 없이 쾌적한 속도로 자판의 글씨가 입력된다. 메일을 보내거나 문서작업을 할 때, 스마트폰의 비좁은 터치패드를 사용하는 것 보다 훨씬 빠른 작업이 가능하다. 하다못해 카카오톡을 하는 것도 키보드를 사용하는 것이 더 편했다.
스파이더 랩탑의 역할은 보여주고 입력해주는 것일 뿐, 실제 작업은 모두 스마트폰에서 구동되는 것이다. 때문에 배터리에 대한 문제를 빼놓을 수가 없다 KT 측은 이 제품의 사용 시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매우 공을 들였다. 일단 제품 자체에 8000mAh의 대용량 배터리를 탑재했다. 또, 두 제품을 결합 상태로 작업 시 스마트폰을 계속 충전해준다. 때문에, 랩탑에 전원이 연결된 상태로 사용하면 배터리에 대한 고민은 해결되는 셈이다. 랩탑의 전원을 켜지 않더라도 충전은 가능하기 때문에 비상시에 외장 배터리 대용으로 사용할 수도 있다.
이렇듯 하나의 MHL케이블로 스마트폰과 랩탑의 입출력 기능을 완벽하게 호환할 수 있는 제품이다. 보여주고, 쓰는 것이 기능의 전부이지만 스마트폰에서 불편했던 점들을 개선해준다. 최근 출시된 스마트폰들이 쿼드코어 CPU에 놀라운 클럭수를 자랑하는 것에 비해 기껏해야 5인치 이하인 디스플레이는 사용환경의 한계로 작용해왔기 때문이다. 휴대폰 자체가 작기 때문에 배터리 용량이 한정된 점도 그렇다.
스파이더 랩탑 개발에 참여한 차재욱 KT 기술개발실 매니저는 “이 제품은 학생들이나 외근이 많은 직종을 위해 고안됐다”고 밝혔다. “일반 노트북은 너무 무겁고 비용이 부담스럽기 때문에 스마트폰으로 문서작업과 멀티미디어 감상을 용이하게 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들었다”는 것.
최근엔 폴라리스 등 문서 편집 앱이 다양하다. 모바일 환경에서도 얼마든지 엑셀이나 워드 문서를 편집하고 작성할 수 있다. 비용 절감과 휴대성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스파이더 랩탑은 제법 괜찮은 아이디어다. HDMI 포트와 연결하면 일반 PC와도 호환이 가능하기 때문에 외부 모니터로 활용할 수도 있다.
키보드에는 안드로이드의 기본 UX를 반영해 Back, Home, Recent, Menu 키를 제공한다. 음악, 인터넷 브라우저, 이메일, 주소록, 문자 등 자주 사용하는 기능의 키가 있다는 점도 일반 랩탑 키보드와는 차별화된 요소다.
재미있는 제품인 것은 확실하지만 다소 아쉬운 점도 눈에 띈다. 기자들이 모여 함께 사용해보니 공통된 의견이 “생각만큼 가볍지는 않다”는 것이었다. 최근 출시된 울트라북을 보면 충분히 가벼운 제품이 많다. 비슷한 인치의 넷북과 비교해봐도 950g 전후의 제품은 많다. 스파이더 랩탑의 경우는 단순 입출력 장치일 뿐 기기 자체가 할 수 있는 기능은 없기 때문에 오히려 더 무겁다고 여겨진다.
이와 관련 차 매니저는 “사용성 확장을 위해 어느 정도의 디스플레이 크기는 담보돼야 했다”며 “11인치 이상으로 제작하다 보니 950g 이하는 어려웠다”고 설명했다.
가격에 대해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이 제품은 29만 7000원으로 출시됐다. 일반 노트북과 비교한다면 매우 저렴한 가격이지만, 이 역시 저가형 넷북과 비교했을 때 싸다고 여겨지지는 않는다. 물론, 일반 PC와는 달리 여러 스마트폰과 호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성격이 전혀 다른 제품인 것은 사실이다. KT 측은 “지금 출시된 제품은 고급형이며, 향후 더 저렴한 보급형 제품도 출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현재로서는 호환되는 제품이 갤럭시S3 뿐이지만, 향후 더 많은 스마트폰을 지원할 예정이다. 현재 국내 제조사들과 협의 중에 있다. 아쉽게도 아이폰은 지원하지 않을 확률이 높다. KT 관계자는 "제조사와의 협업을 통해 소프트웨어 개발 및 업그레이드를 지원 해야 하는데 애플은 이런 작업에 협조가 어려운 편이다"라고 설명했다.
한편, KT는 이번 IFA2012 전시를 계기로 다양한 글로벌 통신사업자와 스파이더 랩탑 서비스협력을 추진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