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이 며칠 남지 않았지만, 선비의 세월은 한가하기만 하다.
아들과 며느리 손자가 있지만 거리두기로 지내기로 하였다.
며느리가 마음에 걸렸는지 작은 선물이라도 보낸다고 했다.
내일은 신문이 오지 않기에, 절반만 읽고 산에 올랐다.
잔설[殘雪]이 쌓인 좁다랗고 가파른 산길은 인적이 없었다.
이 고요한 산길의 사색은 사유의 틈이 넓어지는,
나름으로 소중한 시간과 공간이 되기도 하였다.
느릿느릿 산자락을 내려오는데, 젊은 경찰관 세 명을 만났다.
“그 동안 고마웠다. 내 몫까지 잘살아라.”
이 문자의 마지막 주파수가 천보산 자락이라는 것이다.
30대 청년이라고 하면서, 방향을 더듬고 있었다.
세상의 한 청년은 저승으로 건너가기 위하여, 홀로
산길을 올라갔으리라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하였다.
산기슭에 내려오니 119구급차가 대기하고 있었고,
경찰차도 두 대나 세워놓고 천보산을 둘러싸고 있었다.
이런 수색은 참으로 허망한 수고만 많고 결실은 드물다.
조난자를 구하는 일만큼이나 수색자를 찾는 일도 지난하다.
포천과 양주와 의정부에 걸쳐있는 산자락을 어찌 전부 살피랴.
오후에는 마을의 다정한 친구와 수담[手談]을 나누었다.
비록 급수는 많이 떨어지지만 실력이 백중세라,
한 게임 한 게임 무척 진지하였고 흥미진진하였다.
문을 전부 열고 있지만 이 친구는 추위를 유난히 타기에,
오면 처음 하는 일이 문을 닫는 것이다.
바둑을 즐기기 위하여 핸드폰은 잠시 잠을 재웠다.
커피도 두 번이나 타야만 했다.
일주일 전부터 이제는 믹스커피가 아닌 원두커피를 마신다.
입맛이 변하는지 느닷없이 믹스커피가 역하게 느껴졌다.
이 친구와 설날이라, 쌀 10kg은 선비가 내고
떡집 수공비는 친구네가 맡고 하여 가래떡을 하기로 하였다.
스코어는 3◈1로 이겼다. 승률은 선비가 약간 더 높은 편이다.
정오 무렵에 만나 오후 5시 30분까지 바둑을 둔 셈이다.
장터로 내려가 순대국이나 가볍게 한 그릇 먹기로 하였다.
차를 몰고 장터로 내려가는데 설날 분위기라 왁자지껄 하였다.
차량은 줄지어 이어지고 행인은 인산인해였다.
‘아! 그래도 설은 설이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젊음의 거리에는 십대 청소년들로 아예 가득하였다.
청소년들의 표정은 밝고 웃음소리도 툭툭 터지듯이 들렸다.
어느 책에선가 읽은 대목이 있다.
‘이 세상에서 마음 놓고 웃는 사람은 학생들 외는 드물어.’
허긴 어른들이 몸으로 마음 놓고 웃고 살기에는 어려우리라.
한 달에 한두 번 놓는 바둑이 선비에게도 도락이다.
이 친구가 터무니없이 진지하게 긴 장고를 하는 편이라
시간소요가 굉장히 많이 걸리기도 한다.
이제 다시 오막살이에는 고독한 침묵이 찾아왔다.
클래식 음악을 틀어놓고 일기장을 펼친다.
첫댓글 하루일과를 들여다보니 마치 뒤따라 다닌 기분입니다. ㅎ
오막살이에도 명절은 찾아오겟지요.
행복넘치는 명절 되세요~
ㅁ즐거운 하루를 보내셨군요.
멀리 바다 건너
트럼프보다 훨 행복해 보입니다.
설 기분이 하나도 안난다...
산길에서 조난당한 사건도 만나셨군요.
선비님의 마음도 무거웠겠네요
산책길 돌아오는 발걸음이
무거우셔겠어요ㅠ
어제는 가을무 꺼내서 깎두기 담고.
오늘은 설기분 낼려고 오일장 보러 갑니다~^^
글이 참 정갈하고 읽기가 참 좋습니다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