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적 의미는 '결합하다'는 뜻이다. 모든 이방 종교의 좋은 요소들을 연구하고 종합하여 혼합하자는 이론이다. 즉 모든 종교를 상대적이고, 포용적이며, 실용적 측면에서 구별없이 수용하는 자세를 일컫는다. 15세기에는 사라센 제국의 침공에 대비해 동서교회의 연합을 끌어내는 데 사용되는 등 긍정적으로 쓰였으나, 현대에는 신앙이나 신조에 상관없이 기독교 각 교파, 심지어 이교도와 기독교의 연합을 나타내는 부정적 용례로 사용된다.
세계교회협의회(WCC)의 에큐메니칼 운동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데, 그 이면에는 종교다원주의 사상이 짙게 깔려 있다. ① 기독교 내의 각 교파를 합동시키려는 노력. 그 대표적인 경우로 서방교회와 동방교회의 재 합동 추진 노력이나 종교개혁 이후 교회의 일치를 유지하려는 시도를 말한다. 이런 측면에서 '종교혼합주의'는 긍정적인 의미를 지닌다. ② 기독교와 비기독교 사상을 조화시키려는 시도를 일컫는다. 특히, 고대 헬라시대 말기의 통속윤리학자인 플루타르코스(Plutarchos, A.D.46-120년)는 공동의 원수 앞에서 서로 싸우는 형제들을 화해시키는 데 이 같은 용어를 사용했다.
혼합주의[syncretism]
'혼합주의'(混合主義)란, 서로 다른 원리 위에 서 있는 사상을 무비판적으로 혼합하거나 서로 대립되는 것들을 조화시키고 하나로 연합시키는 것을 뜻한다. 일종의 '절충주의'이다. 역사적으로는 헬레니즘 시대 또는 로마제국 말기에 발생한 여러 종교상의 관념이나 의식의 혼합을 말하는데, 플라톤주의자들이나 알렉산드리아 학파가 유명하다.
기독교 역사상 혼합주의적 시도가 종종 있어 왔는데, 로마 가톨릭과 그리스 정교(正敎), 루터 파와 그 밖의 프로테스탄트 제교파, 중국에서의 예수회의 전례(典禮) 논쟁, 선교사들의 토착화 노력 등도 모두 이 혼합주의의 일종이다. 사실 종교적 측면에서 '혼합주의'란 어떤 한 종교가 다른 종교와 서로 혼합하여 하나를 이루는 과정을 말하는데, 그러한 과정을 통해 양 종교의 근본적인 본질의 변화를 가져오게 된다. 그런 점에서 하나님은 이런 혼합주의적 경향성에 대해 엄히 경고하셨고 유일 신앙과 절대 거룩(구별)을 요구하셨다(출20:3-5 ; 레11:45 ; 수24:14-27).
오늘날에도 순결한 기독교 진리와 신앙체계를 훼손하려는 혼합주의적 경향성이 도처에 나타나고 있다. 인본주의, 실용주의로 포장한 철학과 문화, 샤머니즘과 혼합한 기복주의, 불교의 고행주의와 로마 가톨릭의 수도원주의와 혼합한 명상운동, 감정과 직관주의와 타협한 신비주의, 이성과 합리주의와 혼합한 자유주의, 종교들끼리의 연합을 시도하는 종교다원주의 등이 있다.
이런 혼합주의에 직면하여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적 표준으로 삼아야 하며, 성경이 말한바 오직 예수 그리스도 외에 구원의 다른 길이 없음을 굳게 붙잡아야 한다(행4:12 ; 14:6 ; 요일5:19-21). 이 같은 복음의 본질을 훼손하는 그 어떤 문화나 철학, 종교와의 혼합은 일절 삼가야 한다.
출처 ; 교회용어사전
사마리아의 종교 혼합주의 형성 과정(왕하17:24-41) [ 성경묵상 ] 1-1. 본문은 북이스라엘 사람들이 포로로 끌려간 후 앗수르 제국의 민족 혼합 정책에 의하여 ...
사사기 17,18장에 나타나 있는 종교적 혼합주의
종교적 혼합주의(Religious Syncretism)이다. 놀랍게도 본문에서 우상 숭배에 젖어든 인물들 모두가 여호와 종교의 틀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 준다. 미가의 어머니는 신상을 만드는 비용을 여호와께 드리는 헌금으로 여겼다(17:3). 미가는 신상을 숭배하면서도 오히려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복을 주실 것으로 여겼다(17:13). 그리고 단 지파의 정탐꾼들 역시 앞길을 하나님께 물어보기를 원하며, 신상을 섬기는 레위 제사장은 그들에게 여호와의 이름으로 복을 빌어준다(18:5,6). 십계명의 제1계명과 2계명을 정면으로 어기고 있으면서도, 그들은 여호와를 섬기고 있다고 착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와 같은 사사 시대의 종교적 혼란상은 바로 오늘의 시대를 반영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함부로 안수를 남발하여 무자격 성직자를 양산함으로써 야기된 종교적 혼탁상이 이 시대에 얼마나 심각한가? 하나님이 맡기신 사명의 장소를 찾아 헌신하기보다, 단지 얼마나 좋은 대우와 보수를 제공하느냐를 기준으로 이리저리 옮겨다니는 삯꾼 목자들이 얼마나 많은가? 또한 하나님을 바로 섬기는 삶의 중요성은 외면한 채, 기독교 신앙을 마치 복주머니 정도로만 여기는 풍토 또한 얼마나 심각한가? 무엇보다 각종 유무형의 우상을 섬기면서도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조차 깨닫지 못하는 영적 무지의 정도가 또한 얼마나 심각한가? 종교적 혼합주의란 이처럼 기독교 신앙을 완전히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 기독교 신앙의 테두리 내에서 머물러 있으면서도 이교의 문화와 삶의 행태를 동시에 받아들이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