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4일(첫 토요일 성모 신심) 성모님 존재 이유
존경하는 한 수녀님 이야기다. 그분은 오래전 해외여행도 어렵던 시절, 유럽인들이 한국이라는 나라가 어디 있는지도 모르던 때에 수녀로서 유학 생활을 했다. 신학은 본래 매우 사변적이고 추상적이다. 공부하는 내용이 보이고 만져지거나 증명될 수 있는 것들이 아니고 게다가 믿음이 없으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학문이다. 그러니 그 젊은 시절에 자신이 배우는 모든 게, 그분의 말인데, 다 궤변이고 거짓말처럼 느껴졌다. 그렇다고 공부를 중단하고 돌아갈 수도 없어 괴로워했다. 그러던 어느 날 도서관으로 들어가는 데 그 입구에서 머리가 하얀 노인 신부가 돋보기를 들고 두꺼운 사전을 뒤적거리는 모습을 보았다. 그 순간 그는 뭔가에 머리를 맞은 거 같았다. 수십 년 동안 아직도 저렇게 공부하고 연구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제 겨우 한두 해 공부하고 그런 생각을 하고 불평한 자신이 죄스러웠다.
그 이후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성적과 평판을 듣고 귀국했다. 그런데 공항에서 그동안 공부한 책과 노트를 다 잃어버렸다. 지금처럼 공항 체계가 좋은 때가 아니었다. 그때 그 수녀님은 다시 한번 새로운 깨달음을 얻었다. 이제부터는 오직 예수님 한 분만 바라보며 살아가라는 말씀이었다고 했다. 지혜서는 그가 들은 말씀을 이렇게 적었다. “나에게 오너라, 나를 원하는 이들아. 와서 내 열매를 배불리 먹어라. 나를 기억함은 꿀보다 달고 나를 차지함은 꿀송이보다 달다. 나를 먹는 이들은 더욱 배고프고 나를 마시는 이들은 더욱 목마르리라.”(지혜 24,19-21) 복잡한 신학도 단순한 신심도 모두 결국 예수님과 친해지기 위함이다.
그분은 성모 신심이 아주 돈독했다. 특히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사랑이 남달랐다. 그분은 자신이 성모님에게 너무나 많은 은혜를 입었고, 이분을 널리 알려서 다른 사람들도 자신처럼 그분을 통해서 하느님의 은총을 전해 받기를 원했다. 우리는 성모님을 통해 예수님께 가고 예수님은 그런 우리를 하느님께로 인도하신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 하늘 문이 열렸는데 뭘 그렇게 복잡하게 하느냐고 비웃을 사람들이 있을 거다. 그들 말이 맞다. 이제 우리는 하느님과 직접 소통할 수 있다. 그래도 나는 성모님을 통해서 예수님을 만나는 게 좋고 또 편하다. 죄인을 위해 외아들을 내어주시기까지 무한한 사랑과 자비를 베푸시는 하느님을 믿는다. 하지만 내가 이해하고 느끼고 상상할 수 있는 최고의 사랑은 부모님의 사랑뿐이다. 그중에서 나를 위한 엄마의 헌신이다. 그보다 더 큰 사랑이 어떤 것인지 잘 알지 못한다. 여성과 엄마는 다른 존재다. 하느님은 엄마 같은 분이고, 그보다 훨씬 더 큰 분이라고 믿는다. 이렇게 믿어야 하느님은 내게 아주 가까운 분이 된다.
나는 종교를 믿는 게 아니다. 내가 믿고 따르는 건 진리이고 그 진리가 바로 예수님이다. 그분은 과거이고 또 현재이고 미래다. 그분을 죽기까지 헌신적으로 따랐던 수많은 사람들 무리에 속하기를 바라고 또 바란다. 그들 중 성모님을 능가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말씀하신 그대로 제게 이루어지기를 바란다고’ 응답하는 순간부터 성모님 삶에는 예수님 이외에 다른 것은 있을 수 없었을 거다. 이것이 내가 예수님과 친해지기 위해 성모님께 도움을 구하는 이유다. 성모님의 존재 이유가 바로 이것, 내가 예수님과 친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성모님은 예수님이 아니지만 예수님 없는 성모님은 있을 수 없다.
예수님, 주님의 어머니를 저희 어머니가 되게 하셨습니다. 주님의 그런 마음을 헤아리려고 할 때 주님은 제게 더 가까운 분이 됩니다. 주님도 엄마를 존경하고 좋아하셨습니다. 사람이 아니면 이것을 알 수 없습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이제와 죽을 때까지도 저를 도와주시고 이끌어 주소서. 아멘.
첫댓글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