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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시즌 프리뷰 LG편이 예정보다 늦어진 점에 용서를 구한다. 마지막 불꽃을 태운 2002년 이후 지난해까지 LG 트윈스의 문제점을 논하자면, 아마 논문 수십 편을 써도 부족할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야구라>도 여러 편의 글을 통해 줄기차게 다룬 바 있다. 이 글에서 같은 얘기를 또 해봐야 읽는 팬들도 기분이 과히 좋지 않을 테고, 글쓰는 이로서도 마음이 편치 않다. 고로 모 화백의 말을 빌려,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문제가 다양하고 복잡하면 해결책도 단순하지 않은 법. 하지만 때로는 누군가가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만으로 문제의 상당 부분이 해결되기도 한다(특히 이름이 ‘박’자로 끝난다면 더 그렇다). 지난 시즌 뒤 LG는 김재박 감독과의 재계약을 포기하고 두산 2군 감독 출신의 박종훈과 5년 계약을 체결했다. 감독 목숨이 ‘추노’의 노비 목숨만도 못했던 LG로서는 전례 없는 파격 대우다.
야구계에서는 박 감독의 능력에 대해 호의적인 평이 많다. 일례로 두산 프런트 출신의 한 야구인은 “두산 화수분 야구는 감독 개인이 아니라 오랜 기간에 걸쳐 만들어진 시스템의 산물”이라며 박 감독의 능력을 ‘신화화’하는 것을 경계하면서도, “박 감독의 지도력이 뛰어난 만큼 기대해 봐도 좋을 것”이라며 높이 평가했다.
실제 박종훈 감독의 카리스마는 정평이 나 있다. 두산 2군 감독 시절 김명제가 성의 없는 투구를 하자 ‘18실점 완투’를 하도록 내버려둔 뒤 구리에서 잠실까지 걸어오게 한 에피소드는 유명하다. LG에 와서도 한 베테랑 투수가 훈련에 불성실한 모습을 보이자 두말없이 전지훈련 명단에서 제외했다. 이유는 절대 말해주지 않는다. ‘감독님이 나한테 도대체 왜 그러시는지’는 선수가 스스로 알아내야 한다.
이러니 선수들도 바짝 긴장하고 훈련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더 이상 “경기 끝나면 거울 보면서 머리 만지기에 바쁜” LG 선수들의 모습은 보기 어렵다. 느슨하던 LG의 훈련 분위기에 전에 없이 긴장감이 느껴진다는 관계자들의 증언은 분명 고무적이다. 기술적인 부분에 앞서 정신력과 근성, 성실성을 유독 강조하는 박 감독의 스타일도 LG 선수단에 좋은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평이다.
뿐만 아니라 박 감독 부임 뒤 LG 선수단에 ‘대화’가 복원되고 서로간의 ‘신뢰’가 생겨났다는 것이 중요한 부분이다. “신뢰가 없다보니 선수에게 조언을 하려고 해도 ‘다른 의도가 있는 게 아닌가’ 의심해서인지 받아들이려 하지 않더라.” LG 코칭스태프 출신 한 인사의 회상이다. 감독이 성적 부진 책임을 면하려고 선수를 희생양으로 삼는 팀이었으니 어련하겠는가.
이제는 그렇지 않다. 감독이 선수들 간에 야구 이야기를 많이 하도록 장려하는데다, 본인도 선수들과의 대화를 주저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화와 소통이 복구되자, 불신의 벽이 허물어지고 오해와 편견도 사라졌다. 올 시즌 LG를 주목해야 하는 진짜 이유는, 표면적인 전력 보강보다는 바로 이런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에서의 변화 때문일지도 모른다.
LG는 지난 스토브리그를 가장 바쁘게 보낸 팀 중 하나다. 박종훈 감독 취임 기념으로 ‘무전기 두 대를 주고 아이폰을 받는’ 트레이드를 성사시키는가 하면, 잠시 일본에 건너갔던 적토마도 다시 데려왔다. 그 결과 LG는 순식간에 올스타급 외야수만 5명을 보유하게 됐다. 아마 LG로선 외야에 다섯 명 전부 세워놓고 “두 명은 ‘외야의 천사들’”이라 우기고 싶을 게다. 잠실을 홈으로 쓰는 LG에게 이들 국가대표 외야진은 큰 이점이 될 수 있다.
문제는 넘치는 외야와 1루의 포지션 교통정리. 1루 수비만 따지면 이진영이나 이택근이 가장 낫지만, 그러기엔 둘의 외야 수비력이 아깝다. 반면 외야 수비가 가장 떨어지는 박용택을 1루로 돌리자니, 1루수 경험이 많지 않다는 게 걸린다(좌타자가 많은 요즘 야구에서는 1루 수비가 오히려 3루보다 더 중요하다). 졸지에 실직한 안치용, 박병호, 최동수의 활용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아마 두산이라면 트레이드를 하겠지만, 지난해 ‘김상현 참사’를 경험한 LG로서는 쉬운 일이 아니다.
또 하나의 문제는 ‘안타 제조기’는 많은데 지난해 페타지니처럼 상대 투수가 요실금이 날 정도로 위압감을 주는 확실한 4번 타자감은 없다는 것. 이에 따라 새로 영입한 이택근의 역할이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시즌 LG의 좌타자들은 .312/.389/.461(타율/출루율/장타율)로 제몫을 해준 반면, 우타자들의 성적은 저조(.254/.338/.385)했다. 좌편향된 라인업 가운데서 이택근이 중심을 잡아줘야 한다(지난 3년간 좌투수 상대 .337/.452/.473 기록).
한편 지난해 43개 도루를 기록한 이택근이 가세하면서, LG의 기동력은 대번에 리그 최정상급 수준으로 올라서게 됐다(2009년 히어로즈 팀 도루 192개-LG 141개). 태평하던 이대형이 ‘중견수 자리를 뺏길지도 모른다’는 위기의식을 갖고 타격폼 변신에 성공한 것도 부수적인 효과 중 하나다. 실제로 시범경기에서 이대형은 전보다 훨씬 향상된 타구 비거리와 플라이볼 비율을 선보였다.
몇 가지 해결과제가 있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LG의 공격력이 지난 시즌보다 더욱 막강해진 것은 분명하다. 특히 경험 많은 타자들이 대거 합류하면서 찬스에서 적시타가 터지지 않거나, 필요할 때 진루타가 나오지 않는 고질적인 문제는 상당부분 개선될 것이다. 문제는 역시, 올해도, 어김없이. ‘투수력’이다.
지난해 LG의 실패는 타력만 잔뜩 보강하고 투수진은 그냥 방치한 데서 비롯했다. 특히 투수진 문제를 박명환, 이동현 등 부상 선수들에게 ‘올인’한 것은 허경영을 세 번 외치고 암이 낫길 기대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교훈을 얻은 것일까. 이번 시즌을 앞두고 LG는 외국인 선수 2명을 모두 투수로 뽑았다. 페타지니를 포기했다는 점에서, 이는 굉장히 과감한 결단이다.
시범경기를 통해 나타난 결과는 꽤 좋은 편이다. 곤잘레스는 최소 옥스프링 수준의 활약을 기대해볼 만하고, 오카모토 역시 최근 5년간의 LG 마무리 중 가장 든든한 모습을 보여줄 것이다. 마무리가 안정되면서 다른 불펜 투수들도 작년보다는 훨씬 안정을 찾을 것으로 보인다(2009 LG 불펜 방어율 4.95로 8개 구단 중 최하위). 또한 경기 후반 어이없는 역전패를 당하면서 팀 전체가 의욕을 잃는 상황도 줄어들 것이다.
LG 마운드의 가장 큰 장점은 봉중근이라는 ‘시작은 미미하나 끝은 창대한’ 에이스가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그 뒤로 이어지는 투수들의 면면은 여전히 의문부호가 붙는다(게다가 최근엔 봉중근의 컨디션도 좋지 않다). 투수력의 많은 부분을 불확실한 부상 복귀 선수나 신인급에게 의지해야 한다는 점에서, LG 마운드는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과제다.
이런 점에서 박종훈 감독 특유의 투수진 분업 시스템은 장기적으로 볼 때 좋은 해결책이 될 수 있다. 과거 이광환 감독의 ‘스타 시스템’을 떠올리게 하는 이 방식은, 보유 투수진을 유형별, 역할별로 분류해서 효율과 경쟁의 극대화를 꾀한다. 김재박 감독 시절 투수진 운영이 주먹구구식이었다면, 이제는 투수들도 위기의식과 분명한 목표를 갖고 노력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어떤 면에서 박종훈 감독의 ‘두산식 시스템’이 가장 먼저 효과를 내는 분야는 타선보다는 투수력이 될 가능성도 있다.
박종훈 감독과 LG에게 첫 4월 한 달간 성적은 매우 중요하다. 이 기간 좋은 성적을 낸다면 선수들도 자신감이 붙고, 감독에게도 힘이 생겨서 자신이 추구하는 야구를 마음껏 펼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첫 달 성적이 부진할 경우, 과연 LG가 두산처럼 참고 기다려 줄지는 미지수다. 아직 초보 감독인 만큼 박종훈 감독에게는 팀 운영의 ‘전권’이 없는 상태. 과거 LG 감독들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초반부터 전권을 갖고 자기 야구를 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어야 한다.
사실 LG에게 올 시즌 4강에 드느냐 마느냐는 그다지 중요한 부분이 아니다. 그보다는 박종훈식 야구가 얼마나 뿌리를 내릴 수 있을지, 그가 추구하는 ‘리빌딩’이 어느 정도 성과를 낼지, 무엇보다 팬들이 납득하고 희망을 볼 수 있는 야구를 하느냐가 관건이다. 이런 변화가 성공적으로 팀에 안착한다면, 성적은 자연스레 따라오게 되어 있다. 박종훈 감독에게 ‘5년’이란 시간을 준 이유가 무엇인지, 구단이 항상 잊지 않길 바란다.
# 최고의 시나리오 - 개막전을 2연승으로 상큼하게 시작, 4월까지 6할대 승률을 기록한다. 봉중근의 기도가 등판 때마다 응답된다. 심수창이 얼굴값을 한다. 곤잘레스를 검색하면 '개콘'의 송준근보다 먼저 나온다. 박명환이 150이닝을 던진다. 이대형이 5홈런을 친다. 이병규가 10년전 성적을 낸다. 윤진서가 ‘이택근 여친’으로 불린다. 조인성이 포수 골든글러브를 수상한다. 잠실에서 언제나처럼 한국시리즈가 열리고, 이번에는 주인공이 두산이 아닌 LG다. 시즌 뒤 그룹 회장실에서 축하 전화가 걸려온다.
# 최악의 시나리오 - 개막전을 2연패로 암울하게 시작, 그 후 4월까지 4할대 승률을 기록한다. 봉중근이 ‘신은 죽었다’고 선언한다. 심수창이 얼굴값을 한다. 곤잘레스가 경기 중 멕시코 야구교실 간접광고로 쫓겨난다. 홈페이지 게시판에 ‘페타지니 복귀 릴레이’가 벌어진다. 박명환이 '두산 스파이' 혐의로 국정원 조사를 받는다. 이대형이 타율보다 낮은 출루율을 기록한다. 이병규가 주니치 시절 성적을 낸다. 이택근이 ‘윤진서 남친’으로 불린다. 일병 조인성 사서함에 잘못 배달된 욕설 편지가 쏟아진다. 두산과 넥센이 ‘서울 라이벌’을 선언한다. 10월의 잠실에서는 언제나처럼 한국시리즈가 열리고, 언제나처럼 주인공은 두산이다. 시즌 뒤 그룹 회장실에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온다.
# 주목할 만한 선수 - 박종훈 감독 부임 뒤 가장 달라진 점 한 가지는, 이름값보다는 철저하게 실력 위주로 선수를 기용한다는 것. 수년간 권용관 독주 체제였던 유격수 자리에도 변화의 조짐이 보인다. 박 감독이 2년차 유격수 오지환의 공수 기량에 높은 만족감을 표시하고 있기 때문. 기존의 권용관이 넓은 수비범위에 비해 공격력이 떨어지는 편이었던 반면, 오지환은 수비는 물론 타격에서도 정교함과 펀치력을 겸비했다는 평가다. 시즌 초반 좋은 성적을 내며 자신감을 얻는다면, LG의 새 주전 유격수로 자리잡을 수 있을 것이다.
하위타선의 또다른 키플레이어는 포수 조인성이다. 조인성은 지난 몇 년간 ‘LG 몰락의 주범’으로 지목되며 가장 마음고생이 심했던 선수다. 특히 전임 감독이 그를 책임회피를 위한 희생양으로 이용하면서 상황이 더욱 악화됐다. 고질적인 부상에다 심리적 부담까지 짊어진 채로 좋은 성적을 내기란 어려운 일이었을 터. 하지만 올해는 박종훈 감독의 전폭적인 신임을 받는 만큼, 예전의 모습을 되찾을 것으로 기대해 봐도 좋다. 조인성이 하위타선에서 중심을 잡아주면, LG 타선에는 쉬어갈 곳이 없게 된다.
투수진에서는 고려대 출신 신인 신정락의 역할을 기대해볼 만하다. 사이드암인데도 140km/h 중반의 강속구를 뿌리는데다 대학 시절 큰 경기를 많이 치러본 덕에 경기 운영 능력도 수준급. 고려대 양승호 감독은 “지나친 기대는 금물”이라고 전제하면서도, “1군에서 어떤 역할이든 반드시 도움이 될 선수”라고 신정락을 평가했다. 롱릴리프나 우타자 전문 구원투수로 요긴할 것이라는 게 양 감독의 평이다. 올해는 투수진 운용이 마구잡이식에서 벗어난 만큼, 작년 최동환의 전철을 밟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이 글은 야구 전문 팀블로그 <야구라>의 기획으로, '손윤의 쁠레이뽈'과 공동으로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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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심수창이 얼굴값을 한다 ㄷㄷ
이대형이 5홈런을 친다.ㄷ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