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m.blog.naver.com/jaesung_lee7/222928024457?fbclid=PAAaa-3vOcRpUykhG3jLAOszZ9Y1qJ_SBdufdJielPP14SBCp_bqGr6bkSy8M
신나는 마음으로 세계인들의 축제를 준비해야 하는데 우리는 신경 쓸 것이 너무 많다. 월드컵 시즌이 다가오며 나는
‘SNS와 포털사이트에서 멀어져야겠다’라는 생각부터 들었다. 그러고 싶지 않은데, 그렇게 된다. 지난날의 좋지 않
은 경험이 쌓여 어느새 본능이 됐다. 나뿐만 아니라 많은 선수가 그렇다. 어떤 선수들은 대표팀 소집 기간에 개인 S
NS를 비공개로 전환하거나, 댓글 창을 닫는다. 발탁됐는데 축하보다 비난을 받는 선수도 있고, 경기장에서 나온 실
수로 역적이 되는 선수도 있다. 눈을 감고, 귀를 막고, 모든 걸 차단할 수는 없으니 자기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최대한
자신을 방어하는 거다. 결과가 어찌 됐든 힘든 상황 속에서도 자기 몫을 다하기 위해 뛰어 박수받아야 마땅한 선수
들이고, 발탁된 것만으로도 축하받아야 할 선수들인데 참 아쉬운 현실이다. 우리의 ‘방어 기질’은 그런 시간을 통해
체득됐다.
지난 베이징 올림픽에서 곽윤기 선수가 쇼트트랙 선수들을 유튜브로 찍어 올리는 걸 보며 정말 놀랐다. 월드컵에서
우리 선수들이 유튜브 영상을 찍어 올린다고 상상해봤는데, 상상해보려고 노력했는데,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내가
‘네이버’에서 진행하는 라이브 방송을 카타르에서 할 수 있을까? 잠깐 고민도 했지만 역시 안 되겠다는 결론을 내렸
다. 한편으로 아쉬웠다. 우리 선수들이 훈련지에서 어떤 시간을 보내고, 숙소에서 어떤 대화를 나누고, 쉴 때는 무엇
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 지 팬들과 직접 공유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중략)
덧붙여 꼭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파울루 벤투 감독님이 부임하신 후 우리는 지난 4년 동안 카타르 월드컵을 묵묵
히, 흔들림 없이 준비했다. 키워드는 4년 동안 똑같다. 빌드업 통한 축구. 이번 월드컵에서는 우리가 그동안 4년 동안
연습한 축구를 얼마만큼 보여줄 수 있는지에 더 집중해주셨으면 좋겠다. 당연히 이기고 싶다. 화려한 개인기로 상대
를 제치고 골을 넣고, 멀리서 뻥 차서 전방까지 공을 보내고… 이런 번뜩이는 장면을 팬분들이 원하실 수 있겠지만 그
보다는 우리가 최종 예선에서 보여준 모습을 세계 무대에서도 얼마나 선보일 수 있는지 봐주시길 바란다. 수비지역
에서부터 미드진을 거쳐 풀어나가는 축구. 그걸 못하면 질책받아 마땅하다. 무려 4년 동안 준비했는데 우리가 준비
한 걸 보여주지 못하면 그건 우리조차 스스로 비판해야 할 일이다. 꼭 이겨야 하는 경기, 꼭 잡아야 하는 상대, 최소
비겨야 하는 경기… 이렇게 관전 포인트를 잡기보다는 우리 한국 대표팀이 누굴 만나든,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겁내지 않고, 빌드업 축구를 잘 선보일 수 있는지에 중점을 뒀으면 좋겠다.
나도 궁금하다. 우루과이를 만났을 때 후방에서부터 풀어나가는 빌드업을 잘 해낼 수 있을까? 최근 아이슬란드전에
서, 물론 우루과이에 비교할 수는 없지만, 우리가 위험 지역에서도 차분히 풀어나가려 하는 모습, 공격까지 이끌어나
가기 위해 노력하는 긍정적인 모습을 봤다. 이런 것들을 성공할 때마다 자신감이 솟는다. 그래서 기대가 된다. 지레
겁먹고 뻥 차버리지 않고 우리 편을 보고 차분하게 연결해내는 것. 그런 게 중요하다.
(중략)
축구. 좋아서 시작했다. 월드컵이라는 꿈을 갖고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훈련을 하고, 경기를 뛰었다. 그리고 비로소
월드컵이라는 세계인의 축제에 도달했다. 언제 또 이런 무대에 설 수 있겠나. 언제 또 이렇게 많은 관심을 받아 보겠
나. 감사한 마음을 갖고 최선을 다할 때 다하고, 쉴 때 쉬며 이 축제를 즐기고 싶다. 솔직히 말해 2018 러시아 월드컵
에서는 전혀 즐기지 못했다. 압박감 속에서, 너무 큰 책임감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매일 긴장하고 불안에 떨며
지냈다. 이번에는 그러고 싶지 않다. 월드컵이라는 목표를 이룬 우리에게 박수를 쳐주고 자랑스러워하며 축제의 장
으로 향했으면 좋겠다.
우리는 축제의 주인공이다. 영화에서도, 드라마에서도, 연극에서도 주인공은 누구보다 큰 관심을 받고, 응원도 받고,
질타도 받는다. 그런 걸 모두 받아들이고 즐길 수 있어야 진짜 주인공이다. 우리 한국 대표팀도 그런 주인공이 되었
으면 좋겠다. 우리 한 번, 즐겁게 해보자.
첫댓글 말 잘하네.. 마음껏 즐기고 왔으면 좋겠지만, 개 지랄지랄들 하겠지... 아쉽다..
요즘도 칼럼 올리나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