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
심완 박전상환
1.
내 육신(肉身)
부끄러움(恥心)
가려 줄 한벌 가사(袈裟衣)
기력(氣力)을
보충(輔充)해 줄
옷과 밥(衣食)은
구(求乞)하여도
머물(住所) 곳 찾고 찾아서
방황(彷徨)하지
말아라
3.
머물 곳(居處)
찾는 순간(瞬間)
탐진치(貪塵痴)가
생겨나고(生起)
삼독(三毒心)에
물이 들면(染汚)
견성성불(見性成佛)
멀어지네(遙遠)
자성(自性)의
밝은 거울(明鏡)도
부서지고
깨진다(破鏡也)
3.
무엇이
열반(涅槃)이요
어떤 것이 해탈(解脫)인가
부처(佛)가
부처(不處) 찾아
머무르지(安住)
않는 그 것(無住處)
참되고 참 된 수행(修行)은
머물 곳(傍所)이
없다네.
ㅡ 마음그릇 心椀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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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
마음그릇 心椀 박 찬
누군가를 돕는 행위는
분명 공덕(供德)이 되고
나 자신 스스로가
복덕(福德)을 짓는 일이다.
하지만 그러한
《복덕(福德) 공덕(供德)》을
의식(意識)하고 행(行)할 때와
아무런 조건 없이
복덕(福德) 공덕(供德)이란
생각조차 없이
본능(本能)에 따라
실천하는 행동(行動)의 차이는
분명하고 큰 것이다.
《금강경(金剛經)》에는
“
보살은
복덕(福德)을 짓지만
그 복덕에 탐착하지 않으므로 복덕을 받지 않는다.
”
즉, 무복덕(無福德)을
언급하는 말씀이 나온다.
이 것은
중국의 선종(禪宗)
초조(初祖)
달마(菩提達磨 dharma) 대선사(大禪師)와
수나라 양무제(武皇帝)의
"
성제제일의(聖諦第一義)
확연무성(廓然無聖)
"
과 상당부분 닮은 말이다.
수나라 양무제(武皇帝)가
전국에 절(寺刹)을 크게 짓고
스님(僧尼)들을 공양하고
널리 불교(佛敎)를 홍포한 후
달마(菩提達磨) 대사를 찾아가
자신의 공덕이 얼마나 되는지를
물었다.
"
어떠한 것이
성제제일의(聖諦第一義,
가장 성스러운 것)
입니까 ?
"
라고 질문했을때
달마대사는 단호하게
"
확연무성(廓然無聖,
어떠한 성스로움도
공덕(功德 福德)도 없다.)
"
라고 답(答)한다.
네 차례나
출가(出家)를 결심했던
양무제(武皇帝)의
부처님(如來佛 世尊)
진리의 법(眞如佛法)에 쏟은
노력과 복덕 공덕(福供德)에 대해
달마(菩提達磨) 대사가
그리도 단호하고 매정(罵情)하게
평가절하(平價絶下)한 이유는
바로《진정한 보시와 공덕》의
참의미를 짚어주는 대목이다.
《진정한 보시와 공덕》
그 것이 곧《무주상보시》이다
무주상보시(無主相布施)는
상(相)에
머무르지 않는
보시(布施)이며
보시(布施)란
남(他)에게 내 것을 베풀어 준다.
는 뜻이요
일체의
모든《상(모양)》에
머무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내가 내 것을
누구에게 주었다는 생각조차도
버리는 것을 의미한다.
내가 착한 일을 행하였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순간(瞬間)
나에게는
이미 헛된 자만심(自慢心)과
자긍심(自矜心)이 생겨나서
진정한 선행(善行)을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대승적(大乘的) 보시(布施)는
보살의 실천행(實踐行)을 통해
가장 잘 나타나는데
보살(菩薩)은
상구보리(上求菩提)
하화중생(下化衆生)
위(上)로는
진리(眞理)를 구하고
아래(下)로는
중생(衆生)을 구제(救濟)하는
사람이다.
무주상보시(無主相布施)를
조금 더 쉽게 자세히 설명하면
한마디로
《집착 없이 베푸는 보시》를
의미한다.
보시(布施)는
불교(佛敎)의
육바라밀(六波羅蜜)의 하나로서
나(我) 아닌
모든 남(他人 他者)에게
나누고 베풀어주는 일을
말한다.
이러한
무주상보시(無主相布施)는
『금강경(金剛經)』에 의해서
천명된 것으로서
원래의 뜻은
《법(法)에 머무르지 않는 보시》
로 표현되었다.
《내가》《무엇을》
《누구에게 베풀었다.》라는
자만심이 일체없이
온전하고 완전한
자비심(大慈大悲心)으로
나누고 베풀어주는 것을
뜻한다.
"
내가 남을 위하여
무엇인가 베풀었다.
"
라는
생각이 있는 보시(布施)는
이미 탐진치(貪嗔痴)
삼독심(三毒心)에 물이 들어
있다 없다를 시비분별하며
분별심에 물들어 있음으로
부처님
석가모니(佛 世尊)께서
말씀하신
"
물들지 말지어다.
불염오(不染汚)
"
를 벗어나
스스로 베풀었다는
자만심(自慢心)에 물들었음으로
진정한 보시(布施)라고 볼 수 없다.
내가 베풀었다는 의식은
집착(執着心)만을 남기게 되고
궁극적으로는
깨달음의 상태에 까지
이끌 수 있는 보시(布施)가
될 수 없는 것이므로
허공(虛空)처럼
맑은 마음으로 보시(布施)하는
무주상보시(無主相布施)를
강조하게 된 것이다.
우리 나라에서는
고려 중기의
보조국사(普照國師)
지눌(知訥1158~1210)
스님께서
『금강경』을 중요시한 뒤부터
이러한
무주상보시(無主相布施)가
일반화되었다.
그리고
조선 중기의
서산(西山) 대사
청허휴정(淸虛 休靜,
1520 ~1604) 스님께서는
"
나와 남이
둘이 아닌 한 몸이라고
보는 데서부터
무주상보시(無主相布施)가
이루어져야 한다.
"
하였고,
또한
이러한《무주상보시》를
하기 위해서는
"
공수래 공수거
(空手來 空手去)
빈 손으로 왔다가
빈 손으로 가는 것이
우리네
인생의 살림살이라는 것을
바로 보고, 듣고, 깨우쳐,
알아야 한다.
"
라고 전제하였다.
그리고
가난(艱難)한 이에게는
자기 분수대로 나누어주고
진리(眞理)의 말로써
마음이 빈곤(貧困)한 자에게는
삶에 대한 용기(勇氣)와
올바른 길(正道)을 제시해주며
모든 중생(衆生)들이
마음의 평안(平安)을 누릴 수
있게끔 하는 것이
참되고 참 된 보시(布施)
무주상보시(無主相布施)라고 보았다.
이 것이
무주상보시(無主相布施)에
담긴 높고 깊은 원래의 뜻과
의미(意味)이다.
- 終 -
여시아문(如是我聞)
나는 이와같이 보고 듣고 배웠다
강원도 정선 동강 변
별빛총총한
초가삼간두옥
묵우당(墨友堂 글벗터)에서
우바새(優婆塞)
마음그릇 心椀 박 찬
(박전 상환)
두손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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