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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지난 2월 21일 공지에서 사정과 이유들을 설명하면서 양해와 협력을 구했듯이 지난 주간의 추이 및 여러 현실적 상황들을 감안했는데 여러 업무들이 많이 누적되어 있고, 특히 삼위일체 센터와 관련해서 서적 사역, 종교(기독교) 단체 등록 사전 작업, 추후의 사단법인화 등을 위한 단기, 중장기적인 준비들이 많고, 삼위일체 하나님 등의 주제로 대외적인 세미나도 있는데다가 전체적으로 실무 진행을 해야 하기에 3월 한 달 동안은 여러 모양들로 만나고 알아보며 처리해야 할 사안들이 많아 '21세기 두란노서원' 등을 중심으로 하는 페이스북과 홈페이지와 유튜브 상의 게시 및 공유가 어려울 듯 하고, 4월부터는 주 6일(월~토/주일에는 주일 2부 예배 공유)이 아닌 주 4일(화~금/주일에는 주일 2부 예배 공유)로 다시 시작해서 추이와 상황들 등에 따라 점차 줄여 나가거나 늘려 나갈 수 있을 듯 합니다..
어쨌든 참 죄송스럽고 양해를 구하며, 혹 다양한 이유들로 이와 유사한 내용들이 필요한 분들은 페이스북('양범주' 검색), 홈페이지(Daum검색에서 '행복카페교회' 들어가서 '리바이벌 센터' 게시판), 유튜브('양범주목사의 두란노서원' 검색) 등에 대략 3년 정도 분량(예를 들면 1년 전의 동일한 해당일을 참조하면 내용이나 흐름은 다르더라도 접근 용이)이 잘 보관되어 있고, 그 누구든, 그 어디서든, 그 어느 부분이든 편하게 이용하실 수 있게 되어 있으니 활용 및 참조해 주시길 원하고 부탁드리며, 다시 한 번 양해를 구합니다
“아브람이 구십구 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사이에 두어 너를 크게 번성하게 하리라 하시니"라고 증거되어 있는 아래의 본문 말씀에서 잘 확인할 수 있는 것이듯이..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소위 믿음의 조상이라 할 수 있는 아브라함에게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고 명령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러한 완전함에 있어 하나님 아버지와 아브라함 사이에 언약이 위치하는 것을 볼 수 있으며, 그러한 언약은 아래의 본문에 뒤이어 지는 창세기 17장 9~10절에서 “하나님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그런즉 너는 내 언약을 지키고 네 후손도 대대로 지키라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라고 증거되어 있는 말씀에서 알 수 있는 것이듯이..
단적으로 말하면 할례인 것이고, 무엇보다 그러한 완전함과 언약으로 인해 크게 번성케 하실 것임을 아래의 본문에서와 같이 약속하시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단순하게 정리하면 완전함과 언약과 번성이 서로 직결되어 있는 것인데 조금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문제는 아브라함이든 누구든, 그 어떠한 인생이라도 스스로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완전할 수 없다는 것이고..
실제로 그 자신의 모든 힘과 의, 세상적인 능력과 방법들을 총동원한다고 하더라도 악한 세력들이 가득한 험악한 세상에서 연약한 육신의 몸을 입고 사는 한 결코 그 자체로 의인은 있을 수 없는 것이며, 진정 그 누구라도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완전할 수 없다는 사실과 현실인 것입니다..
다만 그렇게 완전함에 있어 유일한 방법일 수 있는 것은 오직 한 가지의 통로인 것으로 사실상 그 어떤 인간적, 세상적인 힘이나 방법들이 아닌 실질적인 하늘의 힘과 은혜로만 가능할 수 있는 것인데..
직접적, 현실적, 경험적인 측면에 있어서 우리 인생들이 실제로 누리고 강렬하게 경험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하늘의 힘과 은혜는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하나되심에 있어 그 위치와 역할과 권한에 따라 성령님으로 인한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과 실제와 누림 외에는 달리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게다가 그와 같은 성령님으로 인한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과 은혜와 실제와 누림들은 그 어떠한 경우에라도, 실상 단 하나, 단 한 번, 단 한 순간에 있어서도 결코 그러한 성령님 단독이실 수는 없는 것으로..
그 전에 그 위치와 역할과 권한 상 공중의 새 한 마리라도 친히 기르시고 그의 허락이 없이는 아무도 떨어뜨릴 수 있게 하시는 모든 주권과 통치와 섭리의 하나님 아버지께서 상상도 못할 사랑과 은혜와 능력으로 창세 전부터 뜻하시고 계획하시며 약속하시고 예정하시며 준비하시고 진행하시면서 그의 시간에 따라 하나하나 나타내시고 누리게 하시며 성취해 나가심으로 인해 가능할 수 있는 것이고, 애초부터 시작될 수 있었던 것임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그러한 성령님과 하나님 아버지 선에서도 전부일 수 없는 것으로 특히 그러한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사랑과 은혜와 긍휼의 하나님이실 뿐 아니라 공의와 형평과 질서의 하나님 또한 아니실 수 없는 분인 것이기에..
그 하나님 아버지로 인한 창세 전부터의 모든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에 있어서, 또한 그에 있어서의 그 위치와 역할과 권한에 따른 성령님으로 인한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과 실제와 누림들에 있어서도 어떤 식으로든 반드시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 목숨값 구원과 직결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사실들이 가능할 수 있음은 그 예수님께서는 온 세상과 전 인류, 모든 시간과 공간보다 더 크시고 온 우주보다도 더 크시며 영원보다도 더 작으실 수 없는 성자 하나님이시자 구원자이시며 중보자이시고, 무엇보다 아담과 하와 때부터 죄악과 진노와 사탄과 음부와 사망과 심판들의 영적 노예 상태에 빠진 우리 인생들과 하나님 아버지 사이에 있어 길과 통로와 접점 등과 같은 위치와 역할과 권한의 구주로서 십자가에서 그 목숨값으로 우리 인생들에 있어 이 세상에서 뿐 아니라 세상 끝 날과 신령한 몸으로의 부활, 영원한 나라, 영원한 생명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대속과 대신, 나음과 화평 등을 위한 값과 대가들을 대신 다 치르심과 함께 시대와 나라들을 넘어 모든 구원을 다 이루신 분인 것이기 때문이며..
더군다나 직접적, 실질적인 면에 있어서의 성령님으로 인한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과 실제와 누림들에 있어서도 그러한 성령님께서 그 위치와 역할과 권한에 따라 처음부터 하나님 아버지의 영이시자 구주 예수님의 이름에 약속되신 분이며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모든 뜻과 약속과 말씀들을 다 실행하시고, 무엇보다 그 한가운데 계신 구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그 목숨값으로 다 이루신 구원의 일들을 시간과 공간들을 초월해서 믿음과 함께 말씀대로 모두 실제가 되게 하시는 분인 것임을 통찰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 인생들이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완전할 수 있는 것은, 사실 본질적인 측면에 있어서 그러한 하나님 아버지께서 말씀으로 존재, 창조, 통치하시는 분인 것이기에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완전하다는 것은 말씀의 신앙, 말씀대로의 믿음임이 아닐 수 없는 것인데 어쨌든 그렇게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완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인간적, 세상적인 힘과 방법들이 아닌 그 위치와 역할과 권한에 따라 직접적, 실질적으로는 성령님으로 인한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과 은혜로 가능한 것이고, 그를 위해서는 순간순간 어떤 식으로든 오직 한 분 구주 예수님의 이름을 의지하고 그 이름으로 기도하면서 바로 그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으로 인한 하늘의 힘과 은혜와 실제를 덧입어야 하는 것이며, 그 전에 모든 주권과 통치와 섭리의 하나님 아버지로 인한 창세 전부터의 뜻과 약속과 인도를 간과해서는 안 되는 것이고..
그러므로 근원적으로는 우리 인생들이 이 세상에서, 또한 세상 끝 날과 부활과 영생에 이르기까지 경험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의 중심, 근본, 실체이신 분인 것일 뿐 아니라 삼위일체라는 그 존재와 개념 상 구약과 신약 시대, 오늘날 우리들, 모든 인류 역사들, 심지어는 천지창조와 창세 전, 세상 끝 날과 영원에 이르기까지 잠시라도 분리, 별개, 변개이실 수 없는 반면 언제나 함께 이시고 그 위치와 역할과 권한에 따라 완벽하게 조화되시며 완전히 하나되시어 한 뜻을 이루시는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역사로만 하나님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완전함이 가능한 것입니다..
게다가 그 전에 아무나가 아닌 택하심을 입은 자들만, 곧 그 위치와 역할과 권한에 따라 모든 주권과 통치와 섭리의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 전부터의 뜻과 약속과 인도 안에서 어떤 식으로든 오직 한 분 구주 예수님을 믿음으로 인해 값없이 구원에 참예케 되고, 마치 목욕하듯 통째로 하나님의 것이 되며, 직접적, 현실적으로는 처음부터 하나님 아버지의 영이시자 구주 예수님의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의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과 실제로 인해 정말 천국과 부활과 영생의 백성으로 거듭나게 되고 본질적으로는 말씀이신 하나님의 것, 말씀의 나라인 하나님 나라의 백성, 곧 말씀의 백성으로 뒤바뀌게 된 자들만이 가능할 수 있는 것이고..
사실상 원론적으로는 그렇게 믿음으로 구원에 참예케 된 자들이 삶의 자리와 사역의 현장들에서 날마다 순간마다 처음에 믿음으로 구원에 참예케 된 사랑, 이치와 마찬가지로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 전부터의 뜻과 약속과 섭리 안에서 어떤 식으로든 오직 한 분 구주 예수님을 의지하고 그 이름으로 기도하면서 바로 그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으로 인한 식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과 은혜와 실제를 덧입어야 죄악들, 악한 세력들과 싸우고 혹 범하게 된 죄악들에서는 자복하고 돌이키면서 다른 그 무엇보다 말씀을 정말 하나님의 말씀으로 최우선으로 사모하고 가까이함과 함께 성화도, 의로운 몸부림들도, 아래 본문에서와 같은 완전함 가능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에 있어서의 결코 작을 수 없는 실정과 문제는 구주 예수님께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세상에 오신 이후인 오늘날의 우리들은 구주 예수님에 대해 여러 가지 면에서 명료할 수 있는 것이나 구주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 전의 구약의 믿음의 선배들과 권속들은 시간적, 상황적으로 명료하거나 자연스러울 수 없는, 어떤 면에서는 시간적, 현실적으로는 아예 그 길이 막힌 것과 같아 보이는 실상이라는 것인데..
그에 있어서는 사실 오직 한 가지 외에는 다른 여지 자체가 없어 보이는 것으로 그것은 다름 아닌 아브라함을 위시한 구약의 모든 믿음의 선배들과 권속들에 있어서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아담과 하와 때부터 미리 구주 예수님에 대해 보이시고 안내하시며 연결될 수 있게 하신 다양한 예표와 모형과 그림자들, 약속과 계시와 상징들 등을 통해 말 그대로 오실 메시야를 믿고 의지함으로 인해 정말 오늘날의 우리들이 구주 예수님을 믿음으로, 또한 순간순간 십자가를 붙잡으며 그 이름으로 기도함과 같이 동일한 이치와 원리로 값없이 구원에 참예케 될 수 있었던 것일 뿐 아니라 죄악들과 싸우고 범한 죄악들에서는 자복하고 돌이키면서 살아 있는 말씀의 신앙도 가능할 수 있었던 것임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실상 그와 같은 구주 예수님에 대한 예표와 모형과 그림자들, 약속과 계시와 상징들에 있어서의 절대적인 요건은 참으로 아담과 하와 때부터 죄악으로 인해 말씀이신 하나님 아버지와의 관계가 깨어졌고 단절케 되며, 본질적으로는 말씀을 잃어버린 것이고, 영적으로는 죄악과 진노와 사탄과 음부와 사망과 심판들의 노예된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렇듯 구주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 전의 구약의 시대에서도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갈 수 있게 하고, 기도의 응답이나 경배의 열납이 가능하게 하며, 또한 그 전에 믿음으로 값없이 구원에 참예할 수 있게 하고, 특히 아래 본문에 뒤이은 창세기 17장 7절에서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및 네 대대 후손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라고 증거되어 있는 말씀에서의 할례와 같이 그 대상의 하나님, 바꾸어 말하면 하나님의 소유가 될 수 있게 하는 것 등이라 할 수 있는 것인데..
그와 같이 하나님 아버지께서 아담과 하와 때부터 미리 구주 예수님에 대해 보이시고 연결될 수 있게 하신 대표적인 예표와 모형과 그림자들, 약속과 계시와 상징들은 아래 본문에서의 언약으로 증거된 할례를 위시해서 창세기 3장의 여자의 후손에 대한 계시, 여러 모양의 피 제사와 희생 제물들, 특히 유월절 어린 양과 모세를 통한 장대 위의 놋뱀, 모세의 지팡이, 깨어진 반석, 회막, 지성소, 제사장, 사사, 선지자, 성전, 멜기세덱, 제사장과 선지자 역할을 했던 믿음의 선조들 등이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강조하면 그 어느 누구도, 특히 하나님의 백성들이야 말로 인간적인 힘이나 세상적인 능력들이 아닌 하늘의 힘과 은혜에 최우선을 두면서 살아야 하는 것인데..
오직 그와 같은 하늘의 힘과 은혜로만 아래 본문에서와 같이 모든 형평과 상황과 여건과 현실들을 다 아시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완전함이 가능할 수 있는 것이고, 사실은 성경 한 구절을 정말 하나님의 말씀으로 제대로 읽음에 있어서도, 설교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제대로 듣기 위해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어렵게 푼 글들을 이해함에 있어서도, 더 나아가 삶의 자리 순간순간들에서 유혹 한 번, 혈기 한 번을 이김에 있어서도 전적으로 하늘의 힘과 은혜에 최우선을 두면서 의지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나 현실은 적지 않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자신의 힘과 의로 말씀을 가까이 하거나 말씀과 직결된 설교들이나 글들을 판단하거나 하나님의 일들을 하려고 하는 것을 보곤 하는 것으로 따지고 보면 그 하나하나가 말씀의 신앙과 반대가 되게 하는 것이기에 그 자체가 가장 심각한 위험이나 위기일 수 있는 것이며, 특히 오늘날 세상적인 일들에서 뿐 아니라 믿음의 세계에서도, 예배에서도, 부흥회에서도 자극이나 흥미나 웃김을 찾고 접근이나 섭외의 우선으로 두는 뒤틀려진 현실인데 그 자체가 잘못일 수는 없는 것이나 기도와 함께 믿음으로 몸부림치면서 좁은 길과 같은 말씀의 세계로 치열해 져야 함에 있어서는 치명적인 독이 될 수도 있는 것이므로 오늘날의 하나님의 백성들이야 말로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를 붙잡으며 성령님으로 인한 하늘의 힘과 은혜를 갈망하면서 가장 먼저 어떤 식으로든 말씀의 신앙, 말씀의 열정을 위해 그 무엇보다 인내와 끈기들이 생각보다는 많이 필요해 보이고, 정욕과 세속들 뿐 아니라 재미와 자극들도 어떤 면에서는 순간순간 경계하면서 오직 하나님의 방법들로 힘을 내고 또 힘을 내어 최우선적으로, 절대적으로 말씀 및 말씀과 직결된 것들에 뛰어 들고 또 뛰어 들며, 반복하고 또 반복하지 않으면 안 되어 보이며, 그 중에서도 특히 제가 하나님의 과분한 은혜와 은사들 가운데 나누고 있는 삼위일체 관련 글들은 현 세대 이 시점에서 뿐 아니라 모든 교회사에 있어서도 하나님의 세계에서 얼마나 중요하고 절대적인 것인지 누구나 다 알면서도 어느 정도로까지 다루지 못했고 부담스러워 했던 것인지 어렵지 않게 발견하고 파악할 수 있는 것이듯이 역사적 희소성이나 그 자체의 심오함이나 복음의 세계에서의 무게감이나 입체적인 납득의 어려움 등을 고려할 때 기도하면서 하늘의 힘과 은혜들을 구하고 또 구함과 함께 접근과 이해 등의 부분들이 힘들수록 포기와 핑계보다는 반복해서 시도하고 계속해서 부딪혀 보길 권하고 쉽고, 실제로 수백, 수천 번을 그렇게 해도 손해일 수 없는 사안과 주제, 연계와 영역이라고 강조하고 싶습니다
"아브람이 구십구 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사이에 두어 너를 크게 번성하게 하리라 하시니"
(창세기17:1~2)
*양범주목사의 '21세기 두란노서원'/2025년 2월 28일(금)1부/사진 조연진사모, 이미지 박원영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