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용역노동자들의 선언 (외 2편)
송경동
우리는 당신들의 집과 건물이 깨끗하기를 바랍니다
그만큼 우리를 대하는 당신들의 인성도 깨끗하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당신들의 삶과 생활이 더 윤택하고 빛나길 바랍니다
그만큼 우리가 받아야 할 대우도 환하고 기름지길 바랍니다
우리는 노예나 종이 아닙니다 당신과 나의 권리는 서로 존중되어야 합니다
이 세상의 모든 불의를 바르게 정돈하고 잘못된 구조와 모순을 뜯어고치는 일은 우리 모두의 일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쓸겠습니다 당신은 닦으십시오
부디 우리가 치워야 할 쓰레기가 당신들이 아니길 바랍니다
연루와 주동
그간 많은 사건에 연루되었다 더 연루될 곳을 찾아 바삐 쫓아다녔다
연루되는 것만으로는 성이 안 차 주동이 돼보려고 기를 쓰기도 했다
그런 나는 아직도 반성하지 않고 어디엔가 더 깊이깊이 연루되고 싶다 더 옅게 엷게 연루되고 싶다
아름다운 당신 마음 자락에도 한번쯤은 안간힘으로 매달려 연루되어보고 싶고 이젠 선선한 바람이나 해 질 녘 노을에도 가만히 연루되어보고 싶다
거기 어디에 주동이 따로 있고 중심과 주변이 따로 있겠는가
꿈꾸는 소리 하고 자빠졌네
한진중공업 희망버스 하면서는 한진 노동자들이 조남호 회장과 교섭할 때 자신들 정리해고 철회뿐만 아니라 정규직에 앞서 우선 해고된 천오백여명의 비정규직과 조남호에 의해 필리핀 수빅조선소에 고용되어 있다는 비정규 노동자 이만여명의 권리를 교섭 의제로 삼아주었으면 했다 처지가 같은 노동자들끼리 함께 살기를 모색하는 것 그게 온당한 노동자들의 운동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꿈같은 소리 하지 말라 했다
정부의 노동3권 개악에 대항해 ‘을들의 국민투표’ 운동을 할 때는 정부를 참칭해 대통령 선거 전국 투표소 수만큼 일만 사천개소의 노동자 시민 투표소를 조직해보자 했다 황당했는지 별반 얘기들이 없었다 벗들과 함께 삼천개소 넘게 만들어본 듯하다 그해 1차 민중총궐기 때 경찰 물대포에 맞아 백남기 농민이 뇌사상태에 빠지며 공안정국이 서지 않았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고 나는 아직도 반성하지 않고 있다
박근혜 퇴진 광화문 캠핑촌을 할 때 꿈은 2011년 세계 자본의 중심인 뉴욕 월가에서 1퍼센트의 금융자본주의에 맞선 99퍼센트의 저항운동을 외쳤던 주코티 공원 텐트촌을 상상하며 광화문 광장에서부터 청와대 앞 도로까지 분노한 사람들의 텐트로 덮어버리자는 것이었다 꿈같은 소리 하지 말라 했다 이 겨울에 누가 여름용 텐트를 짊어지고 나오냐 명백한 불법 농성을 박근혜가 가만두겠냐 하지만 나처럼 꿈꾸기와 전복을 좋아하는 소수의 벗들이 있어 배낭을 메고 나갈 수 있었다 야심찼던 ‘퇴진 단지’ 택지 분양에 실패하고 이순신 동상 아래에 세운 모델하우스 텐트촌에 만족해야 했지만 광장상설무대, 촛불기원탑, 광장극장 ‘블랙텐트’ 궁핍현대미술광장, 광장신문, 광장토론회, 마을회관 마을진료소, 새마음애국퉤근혜자율청소봉사단 등을 둔 작은 코뮌은 만들어본 듯하다
그때마다 그러잖아도 바쁘고 일 많은데 꿈꾸는 소리 좀 그만하라는 질책과 비웃음을 듣곤 했지만 뭐 사는 게 별거 있는가 이제 와 무슨 권력이나 부나 명성 얻을 것도 없고 뒤늦게 철든 이들 따라 무슨 욕심 차리는 것도 추해 나는 계속 꿈꾸는 소리나 하다 저 거리에서 자빠지겠네
—시집 『꿈꾸는 소리 하고 자빠졌네』 2022년 4월 -------------------- 송경동 / 1967년 전남 벌교 출생. 2001년 《내일을 여는 작가》와 《실천문학》을 통해 작품 활동 시작. 시집 『꿀잠』 『사소한 물음들에 답함』 『나는 한국인이 아니다』 『꿈꾸는 소리 하고 자빠졌네』, 산문집 『꿈꾸는 자 잡혀간다』 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