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언젠가 바람이 세차게 불고 기온이 급강하하면 꼭 가 볼 것을 정해 놓았다.
나의 일상에 불만이 많았다면 그 불만은 크고 작은 삶의 전장터에서의 상처를 의미할 터,
그곳은 패자의 씻김의식을 치룰 최적의 장소로 보였다.
잘 짜여진 일정표를 만들고 훌륭한 의식을 치룬 뒤 낡은 지갑과 우산들을 버린 뒤 새날들을 향해 유유히 걸어가는 모습을 연출하여 그곳이 바람속에서 흔들리는 한 사내의 마지막 장면이 되길 기원했다.
나는 친구 J와 함께 달구벌로 향했다.
그곳에는 30년간 향토문학을 사랑한 돌쇠선생이 계신 곳이다.
아침 8시40분에 수원을 출발한 열차는 12시 20분에 정확히 대구에 내려준다.
그래, 점심을 먹어야 한다.
두리번거리는 나에게 J는 대구에 왔으니 따로국밥을 먹어야 한다고 한사코 우긴다.
젠장, 그놈의 따로 국밥집을 어떻게 찾는단 말인가?
다리가 아프도록 두 시간을 헤매다가 겨우 근사한 따로국밥 집을 찾아냈다.
그사이 돌쇠님께 연락이 되어 셋이서 늦은 점심을 먹었다.
돌쇠선생, 점심을 먹었으니 시내 관광을 가자한다.
그리곤 데려간 곳이 서문시장.
삶의 욕망과 피곤함이 압축되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시장 풍경.
우린 호떡 한 개씩을 베어 먹으면서 또 두 시간을 시장통을 걸어 다녔다.
그리곤 누가 선생 아니랄까봐 작년에 개교 100주년 행사를 치룬 계성학교를 방문하여 이 곳 저 곳을 둘러보았다.
마침 학교 교직원 한분을 만나 자상한 안내를 받으며 학교의 연혁과 현황을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곤 달성공원을 한바퀴 둘러보고 돌쇠님과 헤어져 동촌 유원지로 향했다.
그곳에서 <누렁색깔을 좋아하는 밝고 건강한 사람들 모임>의 회장님이 대구주변에 사시는 회원님들과 함께 저녁밥을 사주신다는 연락을 받은 터다.
하루 종일 근무하시느라 힘드셨을 텐데 볼품없는 회원 둘을 위해 귀한 저녁시간을 내주신다니 고맙기 그지없다.
큰 사업가이시며 모임회장님이신 <통 크고 코크고 님> 수미산의 설화를 간직한 <전설산의 미인님> 힘차고 유장한 강처럼 변함이 없으신 <젊은 오빠 님> 이슬 맺힌 아침 풀잎처럼 푸르고 건강한 <풀의 향기 님> 한국 여인의 기품을 고이 간직하신 <영원한 젊은 처자 님>들이 와 주셨다.
분에 넘치는 영광이다.
누가 어디를 갔다고 이리 모여서 환대를 해 주시겠는가?
세월은 변했고 사람들은 고독하다.
고독을 왕관처럼 이고 앉아, 고독한 육신을 힘들게 부지하면서, 고독한 마음에 못 이겨, 세상을 향해 고독하다고, 고독하다고 고독하게 외친다.
허나 너 남 없이 고독한 세상은 저하나의 고독도 감당하기 어려워 울부짖는 소릴랑 아예 외면하고 나 홀로 산다.
그래 고독은 그런 것이다.
그래서 <군중 속의 고독>이라고 했던가?
그러나 마음과 마음을 조금이라도 터놓으면 이리 빛이 비취고 정이통하는 것을--
밥집을 나와 우린 밤이 이슥하도록 노랠 불렀고 겨울밤공기는 훈훈하기만 하였다.
나이를 뛰어 넘고, 직업을 불문하고, 남녀의 벽을 넘어, 지켜야 할 예의를 잃지 않고,
서로, 서로 존중의 마음을 잃지않는다면 세상은 따뜻하고 정은 남아서 이리 훈훈히 흘러갈텐데~~~.
2.
간밤에 한 숨도 못 잤다.
J는 푹 잤단다.
그나마 다행이다.
찜질방이 처음인 나, 도대체가 뜨거워서 잘 수가 없다.
바닥이 뜨거워 오분 간격으로 모로 눕다가, 바로 눕다가, 이리, 저리 몸을 뒤척거리다
날밤을 새고 말았다.
그래도 씩씩하게 아침 일찍 일어나 오늘 일정을 생각해 본다.
원래는 창원에 가서 점심을 오랜 문우인 L선생과 같이 한 후 저녁엔 창원에 사시는 누런 흙 빛깔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멤버인 그리움처럼 언제나 <문득, 문득 그리운 님>과 향약의 대동계처럼 <서로 돕는 님>이 마련해 주시는 식사자리에 참석키로 하였었다.
3일째 되는 날 일찍 거제도의 도창포에 가서 이 여행의 목적지 <바람 세게 부는 둔덕>에 올라 <버리고 담기> 의식을 치룰 심산이었다.
그런데 <전설의 미인 님>께서 차를 내어 주신단다.
그리고 도장포에 데려다 주시겠단다.
마침 돌쇠선생께서도 동행하시겠다고 나오셔서 우리 일행 셋은 염치 불구하고 <전설의 미인 님>이 운전하시는 승용차에 올라탔다.
아, 운전하시느라 수고하신 미인님께 지금도 죄송한 마음 가득하다.
그 먼 거리를 운행하시고 끝없이 떠들어 대는 늙은 주책 셋의 푸념도 다 들어 주시고 하루를 온전히 봉사해 주신 마음이 너무 황송하고 고맙다.
가는 길 상념에 젖어 내 나름대로 생각을 정리하고 싶었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돌쇠선생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느라 풍경 감상도 제대로 못하고 드디어 도창포에 도착, 내 나름의 의식을 소리없이 행하였다.
낡고 시든 마음 한 켠을 털어 내고 빈자리를 만들었다.
나는 앞으로 이 자리에 무얼 채울 수 있을 것인가?
밝고 건강한 것들로 채워갔으면 좋겠다.
낡은 습관들이사 왜 습관이라고 하겠는가?
진드기처럼 달라붙어 또 그 모습을 연출하고 있을테지만 그래도 조금씩 변해가리라.
시간이 무척 지난 어느 날 조금은 여유로워진 모습으로 어느해 겨울바다를 생각하리라.
비록 내가 계획한 의식 절차는 아니었고, 바다는 잔잔했으며, 그래서 바람도 예상보다
세지 않았고, 매서운 추위도 없어, 분위기는 더없이 썰렁했으나 그래도 의식은 치루었으니까~~~
앞으로의 남은 삶도 예상대로는 되지 않을 때가 더 많을 것이며, 분위기도 더 냉정해 질 수도 있으며, 내 자신에 절망하고 자책할 때가 있겠지만 의식이란 통과의례를 치루었으므로 나는 씩씩할 것이다.
저녁 늦은 시간에 L선생을 호텔 커피숍에서 만났다.
같이 동인지도 내고 온라인상에서 글도 주고 받았으나 첫 대면인지라 서로 몹시 쑥스럽다.
특히 여성과의 대화기술이 부족한 나는 어색해서 쩔쩔맨다.
그러나 생겨먹은 게 그런 걸 어쩌랴.
이젠 의식까지 치루었으니 그렇게 2% 부족한 내 바보스러움에 너무 애면 글면 하지 말자.
잠간 얼굴을 뵙고 돌쇠선생을 남겨 두 분이 서로 데이트를 하시라 하곤 <문득 문득 그리운 님>과 <서로 돕는 님>이 계신 저녁모임 장소로 급히 이동하였다.
정말 정갈하고 맛있는 저녁상을 받게 해 주신 두 분께 감사한 마음 가득하다.
<서로 돕는 님>의 조용조용한 그러나 해박한 지식에 기초한 여러 말씀이 깊은 인품을 느끼게 하였고 <문득, 문득 그리운 님>은 언제나 그리운 고향의 누이같은 모습으로 우리를 행복하게 하였다.
아, 우리는 이렇게 좋은 분들을 만나 호사를 누려도 되는 것인가?
내가 과연 그럴 자격이 있는 것인가?
창원에서 마산터미널까지 우릴 태워 주시고 다시 되돌아가신, 그리고 안부전화를 두 번이나 주신 <서로 돕는 님>께 깊은 감사를 다시 드리고 싶다.
12시에 마산을 출발한 심야 버스는 초상집에 갖다 온듯한 한 무리 초로의 남녀들로 인해 평화가 깨지고 제대로 잠도 못자고 올라오게 하였다.
이틀을 잠을 못 잔 셈이다.
아침 7시 막내를 학교에 태우다 주고 와 아침을 먹고 잠을 자려고 하다가 이 글을 쓴다.
정신이 몽롱하니 오히려 문장의 가식적 꾸밈이 덜 할 터, 가감없이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아서 억지로 자판을 두두리니 졸린 중에도 글은 꾸준히 써진다.
글을 쓰는 중에 회장님이신 <통 크고 코큰 님>께서 안부 전화를 주신다.
너무 너무 고맙다.
나도 이젠 조금이라도 마음이 넓은 그런 몸짓을 해야겠다.
요번 여행을 같이 해준 J에게 크나큰 우정을 느낀다.
나의 모자람을 말없이 바라봐 주고 밝게 웃으며 긍정적으로 사는 J는 옅에 있는 것만도 내겐 큰 복이다.
좋은 친구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한다.
3.
오늘 아침에 읽은 신문기사가 생각난다.
인천의 모 교회 목사님은 신학교 재학시절에 당시 그 학교의 유명교수님으로부터 가장 설교능력이 없고 목사나 선교사의 자질이 없는 신학생으로 지목 당하셨단다.
더구나 그는 간암 말기 판정을 받고 죽음의 문턱까지 갔었다.
허나 그 목사님은 이제 8만명이나 모이는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큰 교회의 당회장 목사님이시다.
우리 부부는 4~5년 전에 그 목사님을 수원의 <본 갈비 집>에 모시고 가 점심을 대접한 적이 있었다.
참으로 꿈같은 행운 이였다.
그 교회 성도로 있는 유명인사들이 일년 전부터 스케줄을 잡아도 식사 한 끼 같이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라는 목사님을 수원의 이름없는 성도인 내가 함께 하였으니 그도 축복이다.
갑자기 언젠가 글방에 올렸던 E,H,카의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이런 글귀가 생각난다.
“루비콘 강을 건넌 수천만 명의 사람 중 카이사르의 것만 선택되어 역사가 되었다”
그렇다.
내가 가본 그 <바람의 언덕>이 나에겐 역사가 되길 기원한다.
남들이 보았을 땐, 덜 떨어 진 로드 무비어 일런지도 모르지만 나에겐 의미있는 역사이기를 소원한다.
첫댓글바테리도 없고 창원은 처음이라 길찾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큰길가에 새 어른을 그냥.. 내리고 하구선 잘 도착하셨는지 전화도 못드리고 너무너무 죄송스럽습니다. 용서하소서... 수원 무사귀환하셨다니 반갑구요. 덕분에 휭... 바닷바람 쐬고 돌아와 행복했습니다. 건강하시구요. 다음엔 더 반갑겠지요?
세 노인네 마구 떠들어대는 영양가 없는 소리에다 하루종일 운전대 잡느라고 이중고를 치루신 수미산님, 가정사 챙기실 일도 많을텐데 고생하시며 일정조정하시느라 힘드셧지요? 그래도 밝게 웃으며 댓구해주시고 참 젊은분이시지만 인품이 깊은분으로 느낌이 새로웠습니다.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게 해주셔서 고마웠습니다
^^즐겁고..행복한 여행길이 되시였네요........행복한 웃음소리 여기까지 들리는듯 마음이 편안해지는군요...건강히 잘 다녀오셨다니........감사합니다.......내 공간을 비울수있는 여행길.....저도 이겨울이 가기전에...여행길에 한 번 오르고 싶은데.....맘따로 시간따로...말그대로 대구에서 드셨다는 따로국밥이네요...ㅎㅎ 시나브로님과 진한 우정.....늘 영원하시길 바라며..즐겁고 행복한 나날 되시길 바랄께요~~~^^
첫댓글 바테리도 없고 창원은 처음이라 길찾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큰길가에 새 어른을 그냥.. 내리고 하구선 잘 도착하셨는지 전화도 못드리고 너무너무 죄송스럽습니다. 용서하소서... 수원 무사귀환하셨다니 반갑구요. 덕분에 휭... 바닷바람 쐬고 돌아와 행복했습니다. 건강하시구요. 다음엔 더 반갑겠지요?
세 노인네 마구 떠들어대는 영양가 없는 소리에다 하루종일 운전대 잡느라고 이중고를 치루신 수미산님, 가정사 챙기실 일도 많을텐데 고생하시며 일정조정하시느라 힘드셧지요? 그래도 밝게 웃으며 댓구해주시고 참 젊은분이시지만 인품이 깊은분으로 느낌이 새로웠습니다.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게 해주셔서 고마웠습니다
즐거운 여행되셨네요^^ 만나서 즐거움에 더 반가웠습니다.^^
아이쿠 영원한 젊은처자님 너무, 너무 고마웠십니더. 늘 행복하셔요.
Thank you so much & So sory~~~~~~~~.
아이쿠 지가 할 말을~~. 너무 무례하였고 그리고 죄송한 마음과 한편으론 고마운 마음이 가득합니다. 언제 수원부근에서 보답할 기회를 주십시요. 문득님에게도 너무 너무 고맙다는 말씀을 전해주십시요.
머저리님 ,,,지가있자나유 ,,컴이 고장나는 바람에 한글이 안되서리,,,,암튼 낼부턴 춥나니께 건강조심 하셔유~!.
모처럼 좋은 기회를 놓쳤네요........ 미안합니다.
아이고 별 말씀을요. 저야 방학이 있어 시간을 냈지만 사업이 바쁘셨을텐데요. 담에 모임에서 반가이 뵙겠습니다. 건강하셔요.
^^즐겁고..행복한 여행길이 되시였네요........행복한 웃음소리 여기까지 들리는듯 마음이 편안해지는군요...건강히 잘 다녀오셨다니........감사합니다.......내 공간을 비울수있는 여행길.....저도 이겨울이 가기전에...여행길에 한 번 오르고 싶은데.....맘따로 시간따로...말그대로 대구에서 드셨다는 따로국밥이네요...ㅎㅎ 시나브로님과 진한 우정.....늘 영원하시길 바라며..즐겁고 행복한 나날 되시길 바랄께요~~~^^
늘 긍정적이고 아이사랑이 지극하신 현모양처 슬람미님. 좋은 겨울 보내시길 바랍니다.
뜻깊은 만남이셨네요 그리고 의미있는 바람의 언덕이 되시길 기원 합니다 늘 편안 하십시요~
네, 제가 저에게 일부러 의미를 부여해 보았습니다. 어찌보면 억지스럽지만서두요~~~ 솔뫼님, 좋은 겨울 나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