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혜인
성평등가족부 장관 후보자를 둘러싼 논란이 예상보다 거세다.
야당의 공세는 통상적인 청문회 풍경이라 치부할 수 있지만,
이번 인사 파문의 본질은 결이 다르다.
여성계와 진보진영,
시민단체에서까지 비판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여권 내부조차 의원직 사퇴를
요구하는 이례적 상황까지 전개되고 있다.
가장 뜨거운
뇌관은 이른바
‘양손의
떡’
논란이다.
현재 용혜인 의원은 장관직에 오르더라도 기본소득당의 원내 정당 지위를
유지하겠다는 명목으로 비례대표 국회의원직을 내려놓지 않겠다는 뜻을 고수하고 있다.
법적으로 불가능한 일은 아닐지라도,
비례대표 출신 장관이 의원직을 사퇴해 온 정치적 관행과는 명백히 배치된다.
과거 국회의원과 장관의 겸직 사례가 전무한 것은 아니나,
지금의 반감은 단순히 겸직 자체를 향한 흠집 내기가 아니다.
21대에
이어 22대
국회까지 연이어 비례대표로 입성한 데다
36세의
나이로 장관 후보자 반열에 오른 그다.
여기에 의원직까지 움켜쥐겠다는 행보는 대중에게
‘정치적
기회를 과도하게 독점한다’는
깊은 상대적 박탈감을 안긴다.
공정성에 대한 대중의 감각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무시할 수 없는 중대한
정치적 자산이다.
이 즈음에서
정부에게 근본적인 질문을 해본다.
성평등가족부 장관에게 요구되는 덕목은 젊음이나 정치적 수사가 아니다.
성평등과 가족·청소년
정책을 조율하고 첨예한 사회적 갈등을 설득하며 거대 부처를 이끌어갈 단단한 행정 역량과 사회적 신뢰다.
이정도 광범위한 반발과 역풍을 충분히 예견할 수 있었음에도,
정부는 과연 무엇을 보고 그를 선택했는가.
청년 정치인이라는 상징성인가,
이재명 정부와의 정책적 연대인가,
그것도 아니면 진보정당과의 정치적 지형 계산인가.
든든한 우군이
되어야 할 진보·여성계마저
등을 돌린 상황에서,
정부는 이제 국민 앞에 답을 내놓아야 한다.
인사는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지만,
그 선택에 따른 정치적 파장과 책임까지 권한 뒤에 숨을 수는 없다.
연이은 비례대표 승계와 원내 의석 구조를 고려할 때,
후보자의 장관 지명 시 발생할 의원직 거취 문제는 인선 단계에서 충분히
시뮬레이션할 수 있는 사안이었다.
이 모든 리스크를 알고도 지명했다면 역풍 역시 인사권자가 감당해야 할
몫이다.
좋은 인사는
지명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지명 이전의 치밀한 숙고에서 시작된다.
후보자의 이력,
얽혀 있는 이해관계,
쏟아질 논란의 파장을 인사권자와 후보자가 함께 들여다보고 대응책을
조율했어야 마땅하다.
즉 병아리가 알을 깨려 할 때 어미 닭이 밖에서 쪼아주는
‘줄탁동시’의
지혜가 인사 과정 전체에 실종된 셈이다.
청문회 문턱을
넘는 것은 후보자의 시험대이지만,
그 자리에 오르기까지의 설득과 책임은 온전히 인사권자와 후보자가 함께
짊어져야 할 과제다.
인사의 마침표는 대통령이 찍지만,
그 성패를 최종적으로 심판하는 것은 결국 국민의 신뢰다.
인사권자의 방치 속에서 후보자에 대한
‘파묘’가
유례없이 잔인한 방식으로 펼쳐지고 있다.
첫댓글 시사만평 잘 보고감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