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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인진지(眞人眞知)
참되게 깨달은 사람만이 참되게 안다는 뜻으로, 도가 지극한 경지에 이른 사람이라야 참된 앎이 있다는 말이다.
眞 : 참 진(目/5)
人 : 사람 인(人/0)
眞 : 참 진(目/5)
知 : 알지(矢/3)
출전 : 장자(莊子) 대종사(大宗師) 第六
대종사(大宗師)는 크게 존중할 스승이란 뜻인데, 그 스승은 도(道)를 터득한 지인(至人)을 가리킨다. 도(道)의 알맹이는 자연이고 운명이다. 이 편은 장자(莊子)의 운명(運命) 순종(順從)의 사상을 가장 잘 나타내고 있는데 그런 의미에서 제물론(齊物論)과 더불어 내편(內篇)에 있어서의 쌍벽(雙璧)이다.
이 성어는 장자(莊子) 대종사(大宗師) 앞부분에 나오는 말로 그 내용의 일부는 다음과 같다.
하늘이 하는 일을 알고 사람이 하는 일을 하는 이는 지극히 뛰어난 사람이다.
知天之所為, 知人之所為者, 至矣.
하늘이 하는 일을 아는 사람은 순수한 자연을 따라 사는 사람이요, 사람이 하는 일을 아는 사람은 자기의 지혜로 알아낸 것으로써 그 지혜로 알아 내지 못한 바를 키운다.
知天之所為者, 天而生也; 知人之所為者, 以其知之所知以養其知之所不知.
그 타고난 천수를 다하며 도중에 꺽이지 않으니, 이만하면 지혜로 훌륭하다 할 것이다.
終其天年而不中道夭者, 是知之盛也.
그러나 여기 하나의 걱정이 있다.
雖然, 有患.
무릇 앎이란 그 무엇을 기다려서야 비로서 미래를 미루어 아는 것인데, 기다리는 그 무엇이 아직 확정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夫知有所待而後當, 其所待者特未定也.
어찌 내가 말한바 하늘이 곧 사람이 아니며, 사람이 곧 하늘이 아님을 알겠는가?
庸詎知吾所謂天之非人乎, 所謂人之非天乎?
대개 진인(真人; 도가 지극한 경지에 이른 사람)이 있은 다음이라야 참된 앎이 있는 것이다. 그러면 어떤 사람을 진인이라고 하는가?
且有真人而後有真知. 何謂真人?
옛날의 진인은 역경을 거스르지 않으며, 성공을 뽐내지 않으며, 또 구태여 일을 꾀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古之真人, 不逆寡, 不雄成, 不謨士.
그는 잘못되어도 뉘우치지 않으며, 잘 되어도 얻은체를 하지 않는다.
若然者, 過而弗悔, 當而不自得也.
또 그는 높은데 올라가도 떨지 않고, 물에 들어가도 젖지 않으며, 불에 들어가도 뜨거워하지 않는다.
若然者, 登高不慄, 入水不濡, 入火不熱.
이것은 그 앎이 도의 가장 높은 경지에까지 이른 증거이다.
是知之能登假於道者也若此.
▣ 진인진지(眞人眞知)
참되게 깨달은 사람만이 참되게 안다.
전국시대 사상가 장자(莊子)가 지은 '장자(莊子)'라는 책에 "지식은 기다린 뒤에 합당해진다. 그러나 그 기다리는 것은 정해져 있지 않다. 참되게 깨달은 사람이 있은 뒤에 참되게 알 수 있다"라는 구절이 있다.
사람마다 각자 갖가지 지식을 갖고 있다. 만고불변의 진리나 단순히 눈앞에 보이는 물질적인 것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알고 있고, 정확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 그러나 자기가 안다고 이야기하는 것 가운데서, 말하는 그 당시는 검증이 안 되고, 시간이 지난 뒤에라야 검증이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예를 들면 자기 옆에 있는 사람의 생각만 해도 자기 위주로 추측해서 알 뿐이지, 정확한 것은 세월이 지나봐야 알 수 있다. 자신의 앞날에 대한 것도 지금 당장 정확하게 알 수가 없기에, 지금 알 수 있는 자료를 가지고 추측해서 결정하는 것이다.
자기가 지금 어떤 사업에 투자를 해야 할 것인지 말 것인지? 자기 자녀가 어느 대학 어느 전공에 가는 것이 좋을지 지금 당장 알 수가 없다. 사람이 많이 아는 것 같아 보여도 모르는 것이 너무나 많다. 당장 내일 일어날 일을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지금까지 나온 모든 정보와 자료를 수집해서 미래에 대해서 정확한 판단을 하려는 것이다.
자기보다 앞선 사람이나 나은 사람이 있으면 도움을 구한다. 지식이 풍부하고 자료를 많이 가지고 있고, 경험이 많고 판단력이 정확하면 예측하는 것을 바르게 알 수 있다. 지금 당장 하는 일의 결과를 예측하기 힘든 것 가운데 하나가 정치다. 정확한 결과를 알 수 없기 때문에 똑같은 일을 두고도 정반대의 평가가 나온다.
2019년 6월 30일 미국 대통령 트럼프가 판문점에서 북한의 김정은을 만났다. 문재인 대통령을 지지하는 측에서는 '역사적인 일이다', '한반도의 평화를 정착시키는 일이다', '한국의 위상을 국제사회에 부각시킨 일이다'라고 매우 긍정적인 평가가 나왔다. 안 좋게 이야기하는 쪽에서는 '트럼프의 선거운동용이다', '트럼프가 김정은에게 잡혔다', '실무회담 없는 깜짝쇼는 아무 소용 없는 짓이다'라고 깎아내리려고 했다.
일반 국민들은 누구 말이 옳은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더구나 요즈음은 각종 1인방송이 정말 많이 생겨, 갖가지 다양한 목소리로 다양한 주장들을 하고 있다. 전직 언론인, 정치인, 교수, 기업인, 연예인 등등이 방송을 만들어 쉬지 않고 주장을 하고 있고, 또 한 번 만들어진 영상은 영구히 다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방송에서 주장을 하는 사람들의 말이 다 옳은 것은 아니다. 각자 자기의 관점에서 본 것일 뿐이다. 또 애초부터 공정하지 않은 입장에서 특정 집단이나 특정 계층을 편들기 위해서 만들어지는 방송도 많다.
일반사람들은 이것저것 듣느라고 많은 시간을 거기에 투자하다 보니, 자기 시간을 거의 다 빼앗겨 버려 자기 일에 적잖게 방해가 된다. 자기 할 일 제쳐놓고 방송을 듣는 것은 문제다. 자기 나름대로 기준을 가지고 자기 판단을 하는 것이 낫다.
▣ 참다운 사람(眞人)이 있은 후에야 참다운 앎(眞知)이 있다
且有眞人而後有眞知. 何謂眞人?
古之眞人, 不逆寡, 不雄成, 不謨士.
若然者, 過而弗悔, 當而不自得也.
若然者, 登高不慄, 入水不濡, 入火不熱.
是知之能登假於道者也若此.
참다운 사람(眞人)이 있은 후에야 참다운 앎(眞知)이 있다. 누구를 진인(眞人)이라고 하는가? 옛날의 진인(眞人)은 사소한 것이라고 거역하지 않았고, 이루었다고 뽐내지 않았으며, 일을 일부러 꾀하지 않았다. 그와 같은 사람은 잘못했다고 후회하지 않았으며, 잘했다고 자신이 이룬 것이라고 여기지 않았다. 그와 같은 사람은 높이 올라가도 두려워하지 않았고, 물속에 들어가도 젖지 않았으며, 불에 들어가도 뜨거워하지 않았다. 이것은 그의 앎이 도(道)에 가까웠기에 그와 같이 그와 같이 할 수 있는 것이다.
古之眞人, 其寢不夢, 其覺無憂.
其食不甘, 其息深深.
眞人之息以踵, 衆人之息以喉.
屈服者, 其嗌言若哇, 其耆欲深者, 其天機淺.
옛날의 진인(眞人)은 잠을 잘 때는 꿈을 꾸지 않았고, 깨어있을 때에는 아무 걱정이 없었다. 먹을 때는 만난 것을 찾지 않았고, 그 호흡은 깊고도 깊었다. 진인(眞人)이 호흡을 하면 발뒤꿈치까지 숨이 내려가나, 보통사람이 호흡을 하면 목구멍에서 그치고 만다. 누구에게 굴복하는 자는 목이 매어 말하는 것이 마치 토하는 것 같고, 욕심이 많은 자는 그 생명의 기틀이 얕다.
古之眞人, 不知說生, 不知惡死.
其出不訢, 其入不距, 翛然而往, 翛然而來而已矣.
不忘其所始, 不求其所終.
受而喜之, 忘而復之.
是之謂不以心損道, 不以人助天.
是之謂眞人.
옛날의 진인(眞人)은 삶이 즐거운 것인지도 모르고, 죽음을 싫어하는 것도 몰랐다. 세상에 태어남을 기뻐하지도 않았고, 죽음을 거역하지도 않았으며, 홀연히 세상에 왔다가 홀연히 세상을 떠날 뿐이었다. 삶이 시작된 바를 잊지 않았지만, 삶이 끝나기를 바라지도 않았다. 삶을 받아 그것을 즐겼고, 모든 것을 잊고 원래대로 돌아갔다. 이를 일러 마음으로써 도(道)를 버리지 않고, 사람으로써 하늘을 돕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이러한 사람을 진인(眞人)이라고 한다.
● 참다운 사람(眞人)이 있은 후에야 참다운 앎(眞知)이 있다.
예수는 진인(眞人)이고, 예수의 앎은 진지(眞知)이다. 그리고 예수가 하는 말은 진지(眞知)에서 나오는 진리(眞理)에 가장 가까운 말이다. 예수의 말을 보통 사람들은 그 정확한 의미를 이해할 수 없다. 예수의 말을 이해하기 위하여는 예수와 같이 진지(眞知)를 가진 진인(眞人)이 되어야 한다.
이 세상에서 예수의 말과 같이 쉬운 말이 없다. 그러나 사람들을 그 말의 뜻을 이해하지 못한다. 예수는 그 어떤 마음(觀念)도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이다. 아무런 마음(觀念)도 없이 나오는 말이기에 그 말보다 더 쉬운 말은 없다.
그러나 사람들이 예수의 말을 이해하기 어려운 것으로 여기는 것은 예수의 아무런 마음(觀念)없는 말을 사람들은 자신의 마음(觀念)으로 이해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참다운 앎(眞知)과 참다운 말(眞言)은 예수와 같이 참다운 사람(眞人)이 되어야 만들어지는 것이다.
● 옛날의 진인(眞人)은 사소한 것이라고 거역하지 않았고, 이루었다고 뽐내지 않았으며, 일을 일부러 꾀하지 않았다. 그와 같은 사람은 잘못했다고 후회하지 않았으며, 잘했다고 자신이 이룬 것이라고 여기지 않았다. 그와 같은 사람은 높이 올라가도 두려워하지 않았고, 물속에 들어가도 젖지 않았으며, 불에 들어가도 뜨거워하지 않았다. 이것은 그의 앎이 도(道)에 가까웠기에 그와 같이 그와 같이 할 수 있는 것이다.
진인(眞人)에게는 거역하는 마음도 없고 뽐내는 마음도 없다. 사소한 것이라 여기는 것도 큰 것이라 여기는 것도 없다. 그저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이라면 즐겁게 그리고 신나게 그 상황과 놀 뿐이다. 그 상황을 이겨내려는 마음도, 잘 하려는 마음도 없는 그저 무아지경(無我之境)의 상태이다.
그런 진인(眞人)이 무엇을 일부러 꾀하려고 하겠는가? 그런 사람에게는 잘하는 것도 없고 잘못하는 것도 없으며, 후회할 일도 없고 이룬 것도 없다. 그저 자신에게 닥친 상황과 무아지경(無我之境)으로 신나게 놀 뿐이다. 진인(眞人)은 그렇게 사는 삶만이 참 삶(眞生)이고 천국(天國)의 살이라고 여기기 때문에 그렇게 살지 못하는, 지옥(地獄)의 삶을 살고 있는 우리 같은 사람들을 안타까이 여길 뿐이다.
진인(眞人)이 일부러 높은 곳으로 올라갈 이유는 없지만 높은 곳으로 올라가야 할 상황이라면 아무런 주저 없이 높은 곳으로 올라간다. 그는 아무리 높은 곳으로 올라가도 이미 두려움이라는 마음(觀念)이 사라졌기에 두려움을 느끼지 못한다.
진인(眞人)이 일부러 물 속이나 불 속으로 들어갈 일은 없지만, 그가 물 속이나 불 속으로 들어가야 할 상황이라면 아무런 주저 없이 물 속으나 불 속으로 들어갈 것이다. 그가 물 속이나 불 속으로 들어가면 젖지 않거나 뜨거워하지 않을 리는 없지만 그는 이미 죽음을 벗어나 있는 사람이기에 물 속이나 불 속으로 들어가는데 대한 두려움은 조금도 없다.
진인(眞人)이 그런 능력을 가질 수 있는 까닭은 그의 앎이 도(道)에 가까웠기에 그와 같이 그와 같이 할 수 있는 것이다. 그의 앎이 도(道)에 가까웠다는 말은 그는 이미 모든 마음(觀念)을 버렸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우리 자신의 모든 마음(觀念, 自我, ego)를 버리면 그때 우리의 참나(眞我)가 발현된다.
모든 마음을 버린 참나(眞我)를 예수는 성령(聖靈; 하나님)이라 말했고, 붓다는 불성(佛性; 부처님)이라 불렀으며, 많은 깨달은 자들은 그 참나(眞我)를 신(神)이라 말했다. 하나님(聖靈)이고, 부처님(佛性)이며, 신(神)인 참나(眞我)는 바로 우리 자신이다. 우리가 우리의 모든 마음을 버렸을 때의 우리가 바로 하나님(聖靈)이고, 부처님(佛性)이며, 신(神)인 것이다.
그러한 참나(眞我)를 찾은 사람을 진인(眞人)이라 하고, 진인(眞人)의 앎을 참다운 앎(眞知)이라고 한다. 그러한 참나(眞我, 眞人)는 우리 모두 갖고 있다. 다만 우리 자신이 만든 마음(觀念)이 그 참나(眞我, 眞人)을 가리고 있을 뿐이다.
● 옛날의 진인(眞人)은 잠을 잘 때는 꿈을 꾸지 않았고, 깨어있을 때에는 아무 걱정이 없었다. 먹을 때는 만난 것을 찾지 않았고, 그 호흡은 깊고도 깊었다. 眞人이 호흡을 하면 발뒤꿈치까지 숨이 내려가나, 보통사람이 호흡을 하면 목구멍에서 그치고 만다. 누구에게 굴복하는 자는 목이 매어 말하는 것이 마치 토하는 것 같고, 욕심이 많은 자는 그 생명의 기틀이 얕다.
우리가 잠을 잘 때 꿈을 꾸는 이유는 우리가 우리 자신의 삶에서 겪고 있는 괴리감(乖離感) 때문이다. 우리에게 조금의 괴리감도 없다면 꿈은 꾸어지지 않고, 우리의 무의식도 사라진다. 인간의 다섯 번째 신체인 영체에 도달하면 '나(I)'라고 하는 자아(自我)는 사라지고, 'am'이라는 존재만이 남는다. '나(I)'라고 하는 자아(自我)는 사라지고, 'am'이라는 존재의 상태에서는 모든 괴리감과 무의식(無意識)이 사라지고 또렷한 의식만이 남는다.
그때 우리는 잠을 잘 때 꾸는 꿈도 사라지고, 그 어떤 괴리감도 없기에 깨어있을 때에는 아무런 걱정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런 영체(靈體)에 도달하기 위하여는 라즈니쉬 오쇼의 명상법이나 다양한 요가를 통하여 가능하지만, 더 쉬운 방법은 그저 우리 자신이 갖고 있는 모든 마음(觀念)을 버리면 바로 인간의 다섯 번째 신체인 영체(靈體)에 도달하게 된다.
그런 진인(眞人)은 생명을 영위하기 위하여 먹지 않을 수는 없기에 먹기는 하지만 맛있는 것과 맛없는 것을 가리지 않는다. 모든 마음(觀念)을 버려 이미 아무런 욕심이 없는데 먹는 것에 대하여 무슨 욕심을 부리겠는가? 그리고 진인은 깊고도 깊었다.
진인(眞人)이 호흡을 하면 발뒤꿈치까지 숨이 내려가나, 보통사람이 호흡을 하면 목구멍에서 그치고 만다. 인간에게 호흡은 너무나도 중요한 것이다. 인간은 다리가 잘리고 머리의 일부가 잘려 나가도 살 수 있지만 호흡이 없으면 그 순간 죽고 만다. 인간에게 호흡은 신체와 영혼을 이어주는 유일한 끈이다.
그 뿐만 아니라 깊은 호흡만으로 인간의 다섯 번째 신체인 영체(靈體)에 도달할 수 있다. 우리의 마음에 분노 또는 성욕과 같은 강한 욕망이 일어날 때 깊은 호흡만으로 그런 분노와 욕망을 가라 앉힐 수 있다. 그만큼 깊은 호흡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것이다.
모든 인간은 몸 속 깊은 곳에 쿤다(kunda)라는 생명 에너지 샘이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생명 에너지의 존재를 모르고 산다. 대부분의 인간은 물질적 신체, 감성체 그리고 지성체의 존재만을 알고 있다. 그러나 지성체를 넘어서면 멘탈체라는 인간의 네 번째 신체가 깨어난다.
그러한 네 번째 신체인 멘탈체가 깨어나는 방법은 깊은 호흡을 계속함으로도 가능하다. 그만큼 인간에게 호흡은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다. 진인(眞人)의 호흡은 얼마나 깊은지 한번 숨을 드려 마시면 그 숨이 발뒤꿈치까지 내려갈 정도이다. 그러나 보통 사람의 숨은 그 들숨과 날숨이 목구멍에서 깔딱거리고 만다.
누구에게 굴복하는 자는 그 마음이 얼마나 억울하겠는가? 그렇게 억울한 감정에서 나오는 말은 목이 매어 마치 토하는 소리와 같을 수 밖에 없고, 욕심이 많은 자는 그 욕심으로 인하여 많은 것을 잃어버릴 수밖에 없다.
우리에게 마음(觀念)이 없다면 매 순간 무한한 환희만이 있을 터인데 그 욕심으로 인하여 몸과 마음만 상하게 할 뿐이다. 그러니 생명의 기틀은 얕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생명은 기틀은 호흡이고, 삶의 기틀이 깊은 것은 바로 마음(觀念)이 없음이다.
● 옛날의 진인(眞人)은 삶이 즐거운 것인지도 모르고, 죽음을 싫어하는 것도 몰랐다. 세상에 태어남을 기뻐하지도 않았고, 죽음을 거역하지도 않았으며, 홀연히 세상에 왔다가 홀연히 세상을 떠날 뿐이었다. 삶이 시작된 바를 잊지 않았지만, 삶이 끝나기를 바라지도 않았다. 삶을 받아 그것을 즐겼고, 모든 것을 잊고 원래대로 돌아갔다. 이를 일러 마음으로써 도(道)를 버리지 않고, 사람으로써 하늘을 돕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이러한 사람을 진인(眞人)이라고 한다.
인간의 모든 문제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러나 진인(眞人)은 이미 태어남과 죽음을 초월한 사람이고, 그에게는 오로지 지금 이 순간밖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죽음을 생각하면 마침(終)이 있지만, 우리에게 죽음이 사라지면 마침(終)은 사라지고 오로지 지금 이 순간만이 남는다.
과거와 미래가 사라진 지금 이 순간만의 삶, 예수는 그것을 영원한 삶(永生)이라고 말했다. 인간은 누구나 나이가 들어 죽음을 맞이하지만 진인(眞人)에게 죽음은 그저 또 하나의 지금 이 순간일 뿐이다. 그는 그러한 죽음을 두려워하지도 거부하지도 않는다. 그가 살아있을 때 매 순간을 그저 즐기면서 살았듯이 죽음 또한 그저 즐기면서 받아들일 뿐이다.
사람은 누구나 부모의 섹스를 통하여 육신의 몸을 얻게 된다. 그러나 그것은 그저 육신의 탄생일 뿐이다. 부모로 인하여 태어난 육신의 몸은 부모의 교육, 그리고 수많은 사회적인 규범에 의하여 마음(觀念)을 갖게 된다. 그리고 육신의 몸인 몸나(身我)와 마음(觀念)으로 형성된 자아(自我)를 제나, 즉 자기 자신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진짜 나인 참나(眞我, 靈我)는 마음(觀念)으로 형성된 자아(自我)가 사라졌을 때 비로소 남는 나가 바로 진짜 나인 참나(眞我, 靈我)이다.
예수는 말했다. "너희가 죽으면 너희는 다시 태어나 영생(永生)을 얻으리라." 이 말은 자기 자신이라고 믿었던 마음을 모두 버리면(죽이면), 우리의 참나(眞我, 靈我)가 다시 태어나 영생인 천국의 삶을 살게 된다는 말이다.
그것을 아는 것이 바로 '깨달음'이고, 우리가 '깨달음'을 얻으면 우리의 모든 문제는 사라져 버리고 만다. 그런 '깨달음'을 안 사람이 바로 진인(眞人)인 것이다. 그런 진인(眞人)에게는 누구를 만나든, 무엇을 하든 삶의 매 순간이 기쁨이고 환희일 뿐이다. 그에게는 죽음마저도 기쁨이고 환희일 뿐이다.
우리는 왜 진인(眞人)의 삶을 말하고 있는가? 그것이 유일한 참된 삶이기 때문이다. 참된 삶을 살고 싶은가, 아니면 거짓된 삶을 살고 싶은가? 천국의 삶을 살고 싶은가, 아니면 지옥의 삶을 살고 싶은가? 그 선택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것은 바로 우리 자신이 쌓아온 마음(觀念)을 버리면 된다.
사람은 누구나 '깨달음'의 경지에 이른다. 문제는 그러한 '깨달음'의 경지에 이를 때가 바로 죽음에 임박해서 라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죽는다면 그는 삶을 살면서 한번도 참 삶, 즉 천국의 삶을 살지 못하고 죽을 뿐이다.
▣ 참사람(眞人)만이 참지식(眞知)을 가질 수 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무학 대사와 태조 이성계에 관한 일화입니다. 어느 날 둘이 만나 대화가 무르익어 갈 무렵 태조가 입을 열었습니다. "오늘은 군신(君臣)의 예를 떠나서 모처럼 농담이나 합시다." "좋습니다, 전하!" "그럼 내가 먼저 하겠소. 대사께서는 그간 산중에서만 지낸 탓인지 얼굴이 흡사 산돼지 같구려."
그러자 무학 대사가 말을 받았습니다. "하하하, 전하의 얼굴은 흡사 자비하신 부처님을 꼭 닮았습니다." "내가 농담을 청했는데 농담이 아닌 아첨을 하다니요?" "전하, 부처님의 눈에는 부처님만 보이고, 돼지의 눈에는 돼지만 보이는 법이지요."
예수님께서 벙어리 마귀를 쫓아내시자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을 비난합니다. 마귀 우두머리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는 것이지요. 그들은 자신들의 마음속에 담겨진 대로 보며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병든 사람을 고쳐 주시는 예수님의 거룩한 사랑을 알아볼 눈이 멀었던 것입니다.
장자(莊子)의 예리한 통찰 중의 하나는 '참사람(眞人)만이 참지식(眞知)을 가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순수한 사람에게는 모든 것이 깨끗하게 보입니다. 그러나 순수하지 못한 사람에게는 가장 깨끗한 것까지도 더럽게 보입니다.
우리 눈에 다른 사람의 단점이 자꾸 보이는 것은 내 안에 사랑이 없고 마음이 메말랐다는 증거입니다. 그리고 남을 무시하는 마음이 든다는 것은 내 마음속에 그만큼 교만이 가득하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다른 사람들이 사랑스럽게 보인다는 것은 내 안에도 사랑이 가득하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존경스럽고 귀하게 보인다는 것은 내가 그러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내 마음에 비추어진 상대방의 모습이 바로 내 모습입니다. 상대방은 나를 비추어 주는 거울입니다. 지금 우리 눈에는 무엇이 보입니까?
▣ 장자(莊子) – 진인(眞人)이란?
도(道)를 체득한 진인(眞人)이 있어야 비로소 참된 지(知)가 성립한다. 어떤 사람을 진인(眞人)이라 하는가?
옛적의 진인(眞人)은 상대방이 약하다고 학대하지도 않았고, 자신이 강하다고 뽐내지도 않았으며, 뛰어난 선비를 뽑아 그들을 부리려 하지도 않았다. 그와 같은 사람은 잘못이 있더라도 그것을 마음에 새겨 두지 않고, 일이 잘되어 가도 크게 기뻐하거나 하지 않는다.
아무리 높고 위험한 곳에 오르더라도 두려워하지 않으며, 큰 물에 들어가더라도 빠지지 않고, 큰 불 속에 들어가더라도 타지 않으며, 어떤 일에도 마음이 움직이는 법이 없다. 결국 그 지혜가 도(道)에 이르면, 이처럼 어떤 경우에도 그 행동이 일정하다. 장자(莊子), 대종사(大宗師) 편에 나오는 말이다.
살아 있음을 기뻐하지 않고 죽음이 닥쳐와도 거절하지 않으며, 어떤 일이든 닥치면 기꺼이 받아들인다. 마음과 꾀로 도(道)를 손상시키지 않으며, 인위적인 행위로 천연(天然)을 해치지 않는 자가 바로 진인(眞人)이다.
지(知)가 지니는 한계는 그 지(知)가 고정되어 있지 않다는 점에 있다. 이 말은 형상화될 수 없는 것을 형상화한다는 의미이다. 지(知)는 결코 대상화 될 수는 없다. 하지만 대상화가 전제 조건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지(知)의 주체인 '나'와 지(知)의 내용인 '대상'이 없다면 성립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제 장자는 진인(眞人)을 등장시켜 그를 중심으로 참된 지(知)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한다. 장자(莊子)는 흥미롭게도 지혜(智慧)가 아니라 사람이 먼저라고 말한다. 먼저 진인(眞人)이 되고 나서 그 다음에 진지(眞知)가 가능하다는 말한다. "진인(眞人)이 있은 연후에 진지(眞知)가 있다."
우리는 보통 객관적인 지(知)야말로 참된 지(知)이며, 주관적인 것은 개인의 견해라고 여긴다. 참된 지(知)는 진리이며 독립적으로 존재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장자는 이런 생각을 뒤집는다. 그런 식으로 이해하는 한 우리의 지(知)는 제한적이고 부분적이며 편파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고정되어 독립적 실체로 보이는 것 같지만 그것은 바라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는 것이 그 이유이다. 우뚝 서 있는 바위를 보더라도 보는 각도, 시간, 보는 이의 마음에 따라 여러 가지 형상으로 비친다. 장자는 이런 점을 지적하고 있다. "옛 진인(眞人)은 적은 것을 거역하지 않고 성공을 뛰어나다 하지 않고 병사를 꾀하지 않았다."
진인(眞人)이란 거울 같은 마음으로 모든 것을 차별 없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이다. 진인(眞人)은 '나'를 의식하지 않으며 자기주장 또한 내세우지 않는다. 상대를 바로잡으려 들지 않는다.
대나무 숲을 이루는 각각의 대나무가 하나의 뿌리로 엉켜 있는 것처럼 서로 별개가 아님을 아는 사람이다. 그래서 하나의 뿌리가 상하면 '나'라는 대나무의 뿌리도 상한다는 것을 안다. 그러므로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거역하지 않고, 내세우지 않고 꾸미지도 않는다.
거울은 자기가 멋진 것을 비추었다고 스스로 자랑하지도 않고, 반대로 잘못 비추었다고 뉘우치지도 않으며, 잘 비추었다고 흡족하게 여기지도 않는다. 이런 마음이 진인(眞人)이다. 또한 그런 자는 거울이 높은 곳을 비추었다고 하여 두려워하지 않고, 물을 비추었다고 하여 젖지 않으며, 불을 비추었다고 뜨거워하지 않는다.
물을 만나면 물이 되고, 불을 만나면 불이 된다. 이미 물이 되고 불이 되었는데 어디에 젖고, 무엇을 뜨거워하겠는가. 단절된 세상에서는 두려움이 나타나지만 자연의 흐름 안에서는 그것을 따라갈 뿐이다.
진인(眞人)의 마음은 이처럼 지혜(智慧)가 도(道)에 이른 사람이다. 그러니까 진인(眞人)이 있은 후에야 진지(眞知)가 있다는 말은, 존재의 연속성을 회복한 허심(虛心)에 이르고 나서야 참된 지(知)를 얻을 수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 참된 지(知)란 거울 같은 허심(虛心)에 비칠 때야 비로소 드러나는 대상의 온전한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공자(孔子)도 이와 유사한 말을 한 적이 있는데 이는 장자(莊子)와 공자(孔子)가 비록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나 주장은 달라도 궁극적인 시각에서는 공통된 면이 있었던 것이다.
▶️ 眞(참 진)은 ❶회의문자로 真(진)의 본자(本字)이다. 사방팔방(八) 어느 곳에서 보더라도(目) 올바른 것으로 참을 뜻한다. ❷회의문자로 眞자는 '참'이나 '진실'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眞자는 目(눈 목)자가 부수로 지정되어 있지만, 눈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眞자는 본래 鼎(솥 정)자와 匕(비수 비)자가 결합한 글자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鼎자는 제사를 지낼 때 사용하던 큰 솥을 뜻하고 匕자는 '수저'를 표현한 것이다. 신에게 바치는 음식은 참되면서도 정성이 담겨야 할 것이다. 그래서 眞자는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음식을 바친다는 의미에서 '참되다'나 '진실되다'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眞(진)은 (1)참 거짓이나 허식이 아님 (2)진실(眞實)의 도리(道理). 진리(眞理) (3)일시적이 아님 변하지 아니함. 상주 불변(常住不變) (4)섞임이 없음. 순수(純粹)함 (5)자연(自然). 천연(天然) (6)해서(楷書). 진서(眞書) (7)일부 명사(名詞) 앞에 쓰이어 참된 거짓이 아닌의 뜻을 나타내는 말 (8)중국의 국호(國號)로 춘추시대(春秋時代)의 12열국(列國)의 하나 (9)삼국(三國)의 위(魏)를 이러서 그 권신(權臣) 사마염(司馬炎)이 세운 왕조(王朝) (10)후진(後晉) (11)진괘(晉卦) (12)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참 ②진리(眞理) ③진실(眞實) ④본성(本性) ⑤본질(本質) ⑥참으로 ⑦정말로 ⑧진실(眞實)하다 ⑨사실이다 ⑩참되다 ⑪명료(明瞭)하다 ⑫또렷하다 ⑬뚜렷하다 ⑭똑똑하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참 심(諶),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거짓 가(仮), 거짓 가(假), 거짓 위(僞)이다. 용례로는 말이나 태도가 참답고 착실함을 진지(眞摯), 거짓이 아닌 사실을 진실(眞實), 진실하여 애틋한 마음을 진정(眞情), 잘 알려지지 않거나 잘못 알려지거나 감추어진 사물의 참된 내용이나 사실을 진상(眞相), 정말과 거짓말 또는 진짜와 가짜를 진위(眞僞), 참된 마음을 진심(眞心), 참된 도리를 진리(眞理), 거짓이 없이 참으로를 진정(眞正), 진짜 물건을 진품(眞品), 진실하고 솔직함으로 참되어 꾸밈이 없음을 진솔(眞率), 실지 그대로의 경계를 진경(眞境), 인위적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성질을 진성(眞性), 진실하여 잘못이 없음을 진제(眞諦), 진짜와 가짜 또는 참과 거짓을 진가(眞假), 참된 값어치를 진가(眞價), 참뜻으로 참된 의사나 진실한 의의를 진의(眞意), 주로 얼굴을 그린 화상 또는 사진을 진영(眞影), 진정에서 우러나온 거짓이 없는 참된 이야기를 진담(眞談), 실물의 모양을 있는 그대로 그려 냄을 사진(寫眞), 마음이 꾸밈이 없고 참됨을 순진(純眞), 임금의 화상이나 사진을 어진(御眞), 공리를 관찰하는 지혜로써 진제의 이치를 꿰뚫어 보는 일을 견진(見眞), 사물의 진상을 알게 됨을 득진(得眞), 하늘의 뜻을 받아 어지러운 세상을 평정하고 통일한다는 어진 임금을 일컫는 말을 진명지주(眞命之主), 농담이나 실없이 한일이 나중에 진실로 한 것처럼 됨을 이르는 말을 가롱성진(假弄成眞) 또는 농가성진(弄假成眞), 마음과 몸이 아주 깨끗하여 조금도 더러운 때가 없음을 일컫는 말을 순진무구(純眞無垢), 형태나 사념 따위 현상을 초월한 참된 모습을 이르는 말을 무상진여(無相眞如), 너무도 깊고 그윽하여 그 진면목을 알 수 없음을 이르는 말을 여산진면목(廬山眞面目), 도를 닦는 마음이 뛰어나서 차별이 없는 자리에 있는 진인을 일컫는 말을 무위진인(無位眞人), 사람의 도리를 지키면 뜻이 가득 차고 군자의 도를 지키면 뜻이 편안함을 일컫는 말을 수진지만(守眞志滿), 자성은 바뀌거나 없어지지 않는 절대적인 진리라는 뜻을 이르는 말을 자성진여(自性眞如), 꿈인지 생시인지 모를 지경임을 일컫는 말을 여진여몽(如眞如夢), 천진함이 넘친다는 뜻으로 조금도 꾸밈없이 아주 순진하고 참됨을 일컫는 말을 천진난만(天眞爛漫), 가짜가 진짜를 어지럽히고 거짓이 진실을 뒤흔든다는 것을 이르는 말을 이가난진(以假亂眞) 등에 쓰인다.
▶️ 人(사람 인)은 ❶상형문자로 亻(인)은 동자(同字)이다. 사람이 허리를 굽히고 서 있는 것을 옆에서 본 모양을 본뜬 글자. 옛날에는 사람을 나타내는 글자를 여러 가지 모양으로 썼으나 뜻의 구별은 없었다. ❷상형문자로 人자는 '사람'이나 '인간'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人자는 한자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글자이기도 하다. 상용한자에서 人자가 부수로 쓰인 글자만 해도 88자가 있을 정도로 고대 중국인들은 人자를 응용해 다양한 글자를 만들어냈다. 이전에는 人자가 두 사람이 등을 서로 맞대고 있는 모습을 그린 것이라고 해석을 했었지만, 갑골문에 나온 人자를 보면 팔을 지긋이 내리고 있는 사람을 그린 것이었다. 소전에서는 팔이 좀 더 늘어진 모습으로 바뀌게 되어 지금의 人자가 되었다. 이처럼 人자는 사람을 그린 것이기 때문에 부수로 쓰일 때는 주로 사람의 행동이나 신체의 모습, 성품과 관련된 의미를 전달하게 된다. 그래서 人(인)은 (1)사람 (2)어떤 명사(名詞) 아래 쓰이어, 그러한 사람을 나타내는 말 등의 뜻으로 ①사람, 인간(人間) ②다른 사람, 타인(他人), 남 ③딴 사람 ④그 사람 ⑤남자(男子) ⑥어른, 성인(成人) ⑦백성(百姓) ⑧인격(人格) ⑨낯, 체면(體面), 명예(名譽) ⑩사람의 품성(稟性), 사람됨 ⑪몸, 건강(健康), 의식(意識) ⑫아랫사람, 부하(部下), 동류(同類)의 사람 ⑬어떤 특정한 일에 종사(從事)하는 사람 ⑭일손, 인재(人才)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어진 사람 인(儿),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짐승 수(兽), 짐승 수(獣), 짐승 수(獸), 짐승 축(畜)이다. 용례로는 뛰어난 사람이나 인재를 인물(人物), 안부를 묻거나 공경의 뜻을 표하는 일을 인사(人事), 사람으로서의 권리를 인권(人權), 한 나라 또는 일정 지역에 사는 사람의 총수를 인구(人口), 세상 사람의 좋은 평판을 인기(人氣), 사람을 다른 동물과 구별하여 이르는 말을 인류(人類), 사람의 힘이나 사람의 능력을 인력(人力), 이 세상에서의 인간 생활을 인생(人生), 학식과 능력이 뛰어난 사람을 인재(人材), 사람의 수효를 인원(人員), 사람으로서의 됨됨이나 사람의 품격을 인격(人格), 사람에 관한 것을 인적(人的), 사람을 가리어 뽑음을 인선(人選), 사람의 힘이나 능력으로 이루어지는 일을 인위(人爲), 사람의 몸을 인체(人體), 사람의 얼굴의 생김새를 인상(人相), 한 사람 한 사람이나 각자를 개인(個人), 나이가 많은 사람을 노인(老人), 남의 아내의 높임말을 부인(夫人), 결혼한 여자를 부인(婦人), 죽은 사람을 고인(故人), 한집안 사람을 가인(家人), 장사하는 사람을 상인(商人), 다른 사람을 타인(他人), 널리 세상 사람의 이야깃거리가 됨을 일컫는 말을 인구회자(人口膾炙), 인간 생활에 있어서 겪는 중대한 일을 이르는 말을 인륜대사(人倫大事), 사람은 죽고 집은 결딴남 아주 망해 버림을 이르는 말을 인망가폐(人亡家廢), 사람의 목숨은 하늘에 있다는 뜻으로 사람이 살고 죽는 것이나 오래 살고 못 살고 하는 것이 다 하늘에 달려 있어 사람으로서는 어찌할 수 없음을 이르는 말을 인명재천(人命在天), 사람의 산과 사람의 바다라는 뜻으로 사람이 헤아릴 수 없이 많이 모인 모양을 이르는 말을 인산인해(人山人海), 사람마다 마음이 다 다른 것은 얼굴 모양이 저마다 다른 것과 같음을 이르는 말을 인심여면(人心如面), 여러 사람 중에 뛰어나게 잘난 사람을 두고 이르는 말을 인중사자(人中獅子), 여러 사람 중에 가장 못난 사람을 이르는 말을 인중지말(人中之末), 사람의 죽음을 몹시 슬퍼함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인금지탄(人琴之歎),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뜻으로 사람의 삶이 헛되지 아니하면 그 이름이 길이 남음을 이르는 말을 인사유명(人死留名), 사람은 곤궁하면 근본으로 돌아간다는 뜻으로 사람은 궁해지면 부모를 생각하게 됨을 이르는 말을 인궁반본(人窮反本), 사람이면서 사람이 아니라는 뜻으로 사람의 도리를 벗어난 사람을 일컫는 말을 인비인(人非人), 인생이 덧없음을 이르는 말을 인생무상(人生無常), 사람의 근본은 부지런함에 있음을 이르는 말을 인생재근(人生在勤), 인생은 아침 이슬과 같이 짧고 덧없다는 말을 인생조로(人生朝露), 남의 신상에 관한 일을 들어 비난함을 이르는 말을 인신공격(人身攻擊), 아주 못된 사람의 씨알머리라는 뜻으로 태도나 행실이 사람답지 아니하고 막된 사람을 욕하는 말을 인종지말(人種之末), 남이 굶주리면 자기가 굶주리게 한 것과 같이 생각한다는 뜻으로 다른 사람의 고통을 자기의 고통으로 여겨 그들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최선을 다함을 이르는 말을 인기기기(人飢己飢), 인마의 왕래가 빈번하여 잇닿았다는 뜻으로 번화한 도시를 이르는 말을 인마낙역(人馬絡繹), 얼굴은 사람의 모습을 하였으나 마음은 짐승과 같다는 뜻으로 남의 은혜를 모름 또는 마음이 몹시 흉악함을 이르는 말을 인면수심(人面獸心), 사람은 목석이 아니라는 뜻으로 사람은 모두 희로애락의 감정을 가지고 있으며 목석과 같이 무정하지 않음을 이르는 말을 인비목석(人非木石), 정신을 잃고 의식을 모름이란 뜻으로 사람으로서의 예절을 차릴 줄 모름을 이르는 말을 인사불성(人事不省) 등에 쓰인다.
▶️ 知(알 지)는 ❶회의문자로 口(구; 말)와 矢(시; 화살)의 합자(合字)이다. 화살이 활에서 나가듯이 입에서 나오는 말을 말한다. 많이 알고 있으면 화살(矢)처럼 말(口)이 빨리 나간다는 뜻을 합(合)하여 알다를 뜻한다. 또 화살이 꿰뚫듯이 마음속에 확실히 결정한 일이나, 말은 마음의 움직임을 나타내는 것이므로 알다, 알리다, 지식 등을 말한다. ❷회의문자로 知자는 '알다'나 '나타내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知자는 矢(화살 시)자와 口(입 구)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知자는 소전에서야 등장한 글자로 금문에서는 智(지혜 지)자가 '알다'나 '지혜'라는 뜻으로 쓰였었다. 그러나 후에 슬기로운 것과 아는 것을 구분하기 위해 智자는 '지혜'라는 뜻으로 쓰이게 되었고 知자는 '알다'라는 뜻으로 분리되었다. 智자는 아는 것이 많아 화살이 날아가는 속도만큼 말을 빠르게 한다는 뜻이다. 그러니 知자도 그러한 의미로 풀이될 수 있다. 그래서 知(지)는 (1)사물을 인식하고 판단하는 정신의 작용하는 힘. 깨닫는 힘 (2)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알다 ②알리다, 알게 하다 ③나타내다, 드러내다 ④맡다, 주재하다 ⑤주관하다 ⑥대접하다 ⑦사귀다 ⑧병이 낫다 ⑨사귐 ⑩친한 친구 ⑪나를 알아주는 사람 ⑫짝, 배우자(配偶者) ⑬대접(待接), 대우(待遇) ⑭슬기, 지혜(智慧) ⑮지식(知識), 앎 ⑯지사(知事) ⑰어조사(語助辭)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알 인(認), 살펴 알 량/양(諒), 알 식(識),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다닐 행(行)이다. 용례로는 알고 있는 내용이나 사물을 지식(知識), 사물의 도리나 선악 따위를 잘 분별하는 마음의 작용을 지혜(知慧), 지적 활동의 능력을 지능(知能), 지혜로운 성품을 지성(知性), 지식이 있는 것 또는 지식에 관한 것을 지적(知的), 알아서 깨달음 또는 그 능력을 지각(知覺), 지식과 도덕을 지덕(知德), 아는 사람 또는 사람의 됨됨이를 알아봄을 지인(知人), 새로운 것을 앎을 지신(知新), 은혜를 앎을 지은(知恩), 지식이 많고 사물의 이치에 밝은 사람을 지자(知者), 제 분수를 알아 마음에 불만함이 없음 곧 무엇이 넉넉하고 족한 줄을 앎을 지족(知足), 자기 분에 지나치지 않도록 그칠 줄을 앎을 지지(知止), 거문고 소리를 듣고 안다는 뜻으로 자기의 속마음까지 알아주는 친구를 지음(知音), 여러 사람이 어떤 사실을 널리 아는 것을 주지(周知), 어떤 일을 느끼어 아는 것을 감지(感知), 비슷한 또래로서 서로 친하게 사귀는 사람을 붕지(朋知), 기별하여 알림을 통지(通知), 인정하여 앎을 인지(認知), 아는 것이 없음을 무지(無知), 고하여 알림을 고지(告知), 더듬어 살펴 알아냄을 탐지(探知), 세상 사람들이 다 알거나 알게 함을 공지(公知), 서로 잘 알고 친근하게 지내는 사람을 친지(親知), 나이 50세를 말함으로 50세에 드디어 천명을 알게 된다는 나이를 달리 이르는 말을 지천명(知天命), 천명을 알 나이라는 뜻으로 나이 오십을 이르는 말을 지명지년(知命之年), 자기를 가장 잘 알아주는 친한 친구 또는 서로 뜻이 통하는 친한 벗을 일컫는 말을 지기지우(知己之友), 적을 알고 나를 알아야 한다는 뜻으로 적의 형편과 나의 형편을 자세히 알아야 한다는 의미의 말을 지피지기(知彼知己), 참 지식은 반드시 실행이 따라야 한다는 말을 지행합일(知行合一), 누구나 허물이 있는 것이니 허물을 알면 즉시 고쳐야 한다는 말을 지과필개(知過必改), 이름이 세상에 널리 알려진 사람을 일컫는 말을 지명인사(知名人士), 지식과 행동이 한결같이 서로 맞음 또는 지식과 행동이 일치함을 일컫는 말을 지행일치(知行一致),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는 뜻으로 믿는 사람에게서 배신당함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지부작족(知斧斫足), 알면서 모르는 체함을 일컫는 말을 지이부지(知而不知), 형세가 불리한 것을 알면 물러서야 함을 이르는 말을 지난이퇴(知難而退), 모든 일에 분수를 알고 만족하게 생각하면 모욕을 받지 않음을 일컫는 말을 지족불욕(知足不辱), 은혜를 알고 그 은혜에 보답함을 이르는 말을 지은보은(知恩報恩), 지자는 도리를 깊이 알고 있으므로 어떠한 경우에도 미혹되지 아니함을 이르는 말을 지자불혹(知者不惑), 사리에 밝은 사람은 지식을 마음속에 깊이 간직하고 함부로 지껄이지 아니함을 이르는 말을 지자불언(知者不言), 밝은 지식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이를 드러내지 않고 대우大愚의 덕을 지키는 일을 일컫는 말을 지백수흑(知白守黑), 대우를 잘 받아서 후의에 감격하는 느낌을 이르는 말을 지우지감(知遇之感), 족한 줄을 알아 자기의 분수에 만족함을 일컫는 말을 지족안분(知足安分), 족한 것을 알고 현재에 만족하는 사람은 부자라는 뜻을 이르는 말을 지족지부(知足知富) 또는 지족자부(知足者富), 간악한 꾀가 많아 선을 악이라 하고 악을 선이라 꾸며 대어 상대방을 곧이 듣게 함을 이르는 말을 지족식비(知足飾非)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