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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중앙아 순방 계기 되짚어 본 정상외교 성적
미국엔 '55 대 1' 투자 역조, 반도체 '회수'당하기도
'대한민국 1호 영업사원'이 사라졌다. 올해 들어 첫 대통령 부부의 해외 순방에 즈음해 정부가 내놓는 설명에 윤석열 대통령의 특허 격인 '1호 영업사원'이 보이지 않는다. 대통령 부부는 10일 투르크메니스탄을 시작으로 5박 6일 동안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을 순방한다.
윤석열 대통령과 부인 김건희 씨가 10일 투르크메니스탄 아시가바트 공항에 도착해 전통의상을 입은 화동들로부터 꽃과 빵을 받고 있다. 2024.6.10. [공동취재] 연합뉴스
지난 7일 대통령실의 순방 관련 브리핑에서 아예 '세일즈 외교'라는 말도 보이지 않았다. 해외 순방이 없었던 6개월 동안 가장 큰 변화다. 김태효 국가안보실 제1 차장이 강조한 주안점은 생뚱맞았다. 이른바 '한-중앙아 K-실크로드 협력구상'이라는 아이디어를 앞세웠다. 중국이 건설 중인 일대일로(BRI)처럼 육상·해상의 물리적 연결통로와는 거리가 멀다. 김 차장은 "대한민국 최초의 중앙아 외교전략"이라고 강조했지만, 실제 내용이 채워지기 전에는 말 그대로 '구상'일 뿐이다.
올해 첫 순방 외교의 핵심이 자원 확보인지, 세일즈 외교인지, 둘 다인지 분명치 않다. 어떤 경우에도 실적을 올리면 국민으로선 나쁠 게 없을 터이다. 취임 2년 동안 대통령이 정상외교를 통해 영업활동을 했다는 게 정부 주장이지만, 딱히 손에 잡히는 성과가 없었다. 되레 불필요한 말로 없던 '외교 리스크'를 만들거나, 허황한 기대를 하게 했다. 세일즈 성과는커녕 정상외교 결과 대한민국의 기왕의 국부가 뭉텅 빠져나가는 경우도 있었다. 대통령 부부의 6개월 만의 해외 순방을 계기로 '1호 영업사원'의 씁쓸한 추억을 되살리는 까닭이다.
아랍에미리트(UAE)를 국빈 방문 중인 윤석열 대통령이 15일(현지시간) 현지에 파병중인 아크부대를 방문, 장병들을 격려하고 있다. 2023.1.16. 연합뉴스
무기·원전·건설 요란했던 '세일즈'…성과는 미지수
엑스포 참패 뒤 슬그머니 퇴장? '우크라 특수' 감감
대통령은 2023년 1월 아랍에미리트(UAE)를 방문, 되레 외교 갈등을 촉발했다. "UAE의 적은 이란"이라고 말해 이란 정부의 공식 항의를 받았고, 테헤란 민심은 들끓었다. 4월 미국 방문을 앞두고 로이터통신 인터뷰에서 느닷없이 우크라이나에 조건부 살상무기 지원 방침을 밝혀 한·러 관계에 평지풍파를 일으켰다. 같은 해 7월의 리투아니아 빌뉴스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정상회의 참석에 이은 폴란드, 우크라이나 방문은 '정상 리스크'의 정점이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 대통령에 '생즉생, 사즉사'를 강조하며, "군수 지원을 늘릴 테니 승전하라"는 덕담을 던졌다. 영업사원답게 '드니프로강의 기적'을 강조하며 우크라 재건 특수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국내 증시에선 일부 건설사 주가가 치솟았다. 바르샤바에서는 '우크라 재건 협력 기업 간담회'를 요란하게 개최했다. 같은 해 3월 세계은행·유럽연합(EU) 집행위·유엔이 공동발표 한 우크라 복구 비용은 4110억 달러(518조 원)이었지만, 대통령실은 1200조 원으로 추정했다. 유독 대한민국 대통령실에서만 요란했던 우크라 재건 특수는 감감무소식이다. 국내에서 집중 호우 탓에 수십 명이 사망한 기간에 연장한 키이우 방문이었다.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정상회의 참석차 리투아니아를 방문 중인 윤석열 대통령이 12일 빌뉴스 한 호텔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에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악수한 뒤 자리를 안내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통령 부인 김건희 씨가 빌뉴스 도심의 명품 가게를 둘러보는 장면이 현지 언론에 보도돼 물의를 빚었다.
'1호 영업사원'이 취임 뒤 세일즈 외교에 가장 공을 들였던 것은 사우디아라비아 네옴시티 건설사업과 부산 엑스포라는 두 마리 '금 토끼'였다. 사우디 왕실이 5000억 달러(약 677조 원)를 투입하는 네옴시티 건설에 지분을 넓히고, 43조 원의 생산유발효과와 18조 원의 부가가치 유발이 기대된 엑스포를 유치하겠다는 포부였다. 대통령은 엑스포 주최 도시 결정투표(11.28.)를 한 달을 앞두고 작년 10월 사우디를 방문해 '선의의 경쟁'을 다짐했다.
무기시장 점유율 줄고, 네옴시티 수주 실적 미공개
불필요한 외교 리스크, 이란·러시아 관계 악재 작용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고위당국자들이 수많은 해외 출장의 명분으로 내걸었던 게 부산 엑스포 유치 외교였다. 그러나 국제박람회기구(BIE) 투표 결과는 참담했다. 사우디 119표 대 대한민국 29표. 대통령이 11월 29일 대국민담화 자리에 선 이유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한국 기업들이 엑스포 헌납 대가로 네옴시티 사업의 '노른자위'를 차지했다는 말은 들리지 않는다. 아라비아 상인의 상술에 놀아난 꼴이다. '1호 영업사원'이라는 말이 사라진 건 이즈음이다.
우크라이나를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이 16일 키이우 성 소피아 성당 앞에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서로 팔을 마주잡고 있다. 2023.7.16. 대통령실 연합뉴스
하필 세일즈 주력상품이 무기와 원전이었다. 폴란드가 K2 전차와 K9 자주포 등 124억 달러 상당의 한국 무기 구매 계약을 체결한 건 2022년 말. 대통령의 세일즈와 무관했다. 대통령은 느닷없이 2023년 신년 업무보고에서 방산과 원전, 건설, 인프라를 수출 주력상품으로 강조했다. 생뚱맞은 수출 입국론이었다. 특히 무기 수출과 국방과학 기술 개발을 독려했다. 박진 외교부장관은 전 세계 공관을 수출 거점기지로 만들겠다고 보고했고, 이종섭 국방장관은 민간 방산업체의 에이전트를 자임했다. 그러나 국가적 총력을 기울인 방산 특수도 오래 가지 못했다.
스톡홀름 평화연구소(SIPRI) 집계에서 한국은 2018~2022년 무기시장 점유율이 직전 5년의 1.3%에서 2.4%(세계 9위)로 크게 늘었다. 그러나 1년 뒤 2019~2023년 5년 동안 2.0%(세계 10위)로 주저앉았다. 프랑스가 러시아를 제치고 2위(11%)로 올라선 게 가장 큰 변화였다.
작년 12월의 네덜란드 방문은 김건희 씨의 명품백 수수 탓에 초점이 흐려졌다. 여론의 지탄을 뒤로 하고 떠난 출장길이었다. 대한민국 검·경은 6개월이 지나도록 '증거'를 확보하지 않고 있다. 되레 명품백을 건넨 이를 수사하고 있다. 국민권익위원회는 대통령 부부가 출국한 10일 참여연대의 청탁금지법 위반 신고에 대해 "위반 사항 없음"으로 종결 처리했다.
사우디아라비아를 국빈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이 22일 수도 리야드의 야마마 궁전 정원에서 열린 공식 환영행사에서 모하메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총리)와 인사를 나누고 있다. 2023.10.22. 대통령실 누리집
명품백 수수로 빛바랜 네덜란드 국빈 방문
권익위, 출국일 맞춰 "위반사항 없음" 발표
반도체·에너지·바이오 산업을 주제로 내세웠던 지난 2월 독일 및 덴마크 국빈·공식 방문은 나흘을 앞두고 갑자기 취소, 연기됐다. 그 끝에 이뤄진 게 중앙아시아 3국 순방이다.
'1호 영업사원'이 무기와 원전 판매에 집중하는 동안 정작 한국 경제의 꽃인 반도체 산업은 공장을 미국으로 옮겼다. 최근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의 고백으로 드러난 '국부 유출'이었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4일 자 타임 인터뷰에서 2022년 5월 방한의 목적은 미국이 한국 반도체 산업을 회수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털어놓았다. 백악관이 2023년 4·26 정상회담 뒤 발표한 한국 기업의 미국 투자액은 952억 달러였지만, 미국 기업의 한국 투자액은 25억 달러. 삼성전자가 당시 25억 달러에서 이후 450억 달러(약 62조 원)로 늘린 텍사스 반도체 공장 투자 증액분을 더하면 두 차례 정상회담 뒤 대미 투자액은 1377억 달러. 무려 '55 대 1'의 역조였다. 수출을 늘리기는커녕 기왕의 주력 산업이었던 반도체 산업 일부를 미국에 내준 꼴이다. 다시 접하고 싶지 않은 '1호 사원'의 영업 실적이다.
명품 수수와 국정개입 의혹을 받고 있는 김건희씨가 남편 윤석열 대통령과 네덜란드 국빈 방문을 위해 11일(현지시간) 암스테르담 스히폴 공항에 도착, 전용기인 공군 1호기에서 내린 뒤 차량에 탑승한 모습. 연합뉴스
대통령은 지난 3일 동해 유전·가스전 긴급 브리핑을 계기로 '자원 사냥꾼'의 면모를 보이기 시작했다. 뒤이어 나선 에너지와 자원이 풍부한 중앙아 3개국 방문에 나선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2년여 동안의 경험으로 보아 실적은 뒤에 결산해 봐야 한다. 정부 고위당국자는 김건희 씨의 일정과 관련, "적재적소에서 친교 만찬과 공식 오·만찬 행사에 참석할 예정"이라면서 "부대 일정은 계속 검토해 나갈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전했다.
출처 : 정부 발표서 사라진 '1호 영업사원' 그 씁쓸한 기억 < 정치 < 기사본문 -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 (mindlenews.com)
사우디 '오일 달러'에 현혹된 건 대한민국 아니었나
[엑스포 징비록] 엑스포·네옴시티 두 마리 토끼 쫓기
국제사회 의심 산 투표 한 달 전의 리야드 국빈 방문
대통령·빈살만, 1년 새 두 차례 정상회담 '협력 다짐'
외교부·국토부 '코리아 원팀'이 각각 다른 목표 쫓아
정작 건설 수주 실적은 "소박"…'국민 감사' 벌여야
"(한국과 사우디)양국 정상이 (2030 엑스포 유치전에서) 선의의 경쟁을 하되 결과에 대해 서로 축하하고 이후 준비 과정에 충분히 협력하겠다는, 똑같은 마음을 갖고 있을 것이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 10월 22일, 리야드 언론브리핑)
"핵심 파트너국인 사우디가 원하던 엑스포 리야드 개최에 성공해서 정말 축하한다. 우리가 부산 엑스포 유치를 위해서 준비해 왔던 자료와 경험, 또 자산을 충분히 지원해서 사우디가 성공적인 엑스포를 개최하도록 도울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 11월 29일, 대국민담화 중)
사우디아라비아를 국빈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이 22일 수도 리야드의 야마마 궁전 정원에서 열린 공식 환영행사에서 모하메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총리)와 인사를 나누고 있다. 2023.10.22. 대통령실 누리집
대통령과 빈 살만은 왜 손을 맞잡았을까
막전 막후에 나온 말이건만 기묘하게 일치한다. 대통령은 2030 엑스포 개최 도시를 선정하는 국제박람회기구(BIE) 투표 한 달 전인 지난달 말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했다. 언론의 관심은 두 정상이 과연 엑스포와 관련해 어떤 이야기를 나눌 것인가에 쏠렸다. 위 문장은 리야드 언론브리핑에서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가 자기 생각인 양 말한 내용이고, 뒤 문장은 부산이 리야드에 '119표 대 29표'로 참패한 뒤 대통령이 대국민담화에서 한 말이다. 적어도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와 대통령이 '원팀'인 건 분명하다. 그러나 대한민국도 원팀이었을까. 국민적 충격을 던진 '파리의 굴욕'의 원인을 추적할 열쇠말은 바로 '원팀'이다.
대한민국과 사우디는 지난 1년 동안 두 번 정상회담을 했다. 엑스포 전선에 이상한 조짐은 작년 11월 17일 모하메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 겸 총리의 방한 당시부터 제기됐다. 대한민국은 한 팀이 아니라 두 팀이었다. 공교롭게 그의 방한 16일 전인 1일 박진 외교장관은 2030 부산 엑스포 유치 교섭 중간 점검 회의를 열어 "지역별·국가별 맞춤형 전략과 다양한 상황별 시나리오를 마련해 철저히 준비하자"고 다짐했다. 엑스포는 산업자원부 소관이지만, 해외 유치 활동 지원은 외교부가 맡았다.
같은 날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해외 건설·플랜트의 날 기념식에 참석해 네옴시티 사업 수주를 위해 "민·관 합동의 '원팀 코리아'를 구성, 전방위 지원을 하겠다"고 기염을 토했다. '박진의 외교부'는 이미 작년 6월 '민·관 코리아 원팀'을 구성했다. 두 개의 원팀이 동시에 가동되는 희한한 상황이 시작된 것이다. 원 장관은 아예 같은 달 4~9일 네옴시티 건설 사업 수주단을 이끌고 사우디 건설 현장을 방문했다.
외교부·산자부는 부산 엑스포 유치를 위해, 국토부는 네옴시티 건설 수주를 위해 각각 다른 방향의 토끼를 쫓았다. 반면에 사우디 측에서는 단 한 마리의 토끼를 노렸다. 리야드 엑스포와 네옴시티가 모두 빈 살만이 왕위 계승을 앞두고 추진하는 '비전 2030'의 양대 프로젝트에 포함되기 때문이다. 정부 내에서 두 개의 원팀이 뛰는 상황이 벌어졌으면 당연히 대통령이 거중조정을 해야 했다. 그러나 대통령의 역할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되레 사우디와 '원팀'을 만들었다. 빈 살만은 방한 길에 한·사우디 기업 간 21조 원(290억 달러)의 투자 양해각서(MOU)를 체결하는 방식으로 돈 보따리를 풀었다. MOU는 법적 구속력이 있는 계약서가 아니다. MOU를 10개 체결했더라도 단 한 개의 계약도 이뤄지지 않을 수 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오른쪽부터),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 박형준 부산시장, 한덕수 국무총리, 최태원 대한상의 회장, 장성민 대통령실 미래전략기획관을 비롯한 대표단이 28일 오후(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외곽 팔레 데 콩그레에서 열린 제173차 국제박람회기구(BIE) 총회에서 2030년 세계박람회 개최지 투표 결과 부산이 탈락하자 아쉬워하고 있다 2023.11.29. 연합뉴스
한국이 미·일·중·인도·영국·프랑스·독일과 함께 비전 2030의 중점협력 8개국의 일원인 건 맞다. 이미 2017년부터 한·사우디 비전 2030 위원회(장관급)를 운영해 왔다. 윤석열 정부는 작년 11월 정상회담 뒤 '전략파트너십 위원회'를 새삼 신설하고, 이를 회담의 핵심성과'라고 한껏 강조했다. 양국 지도자 차원에서 다양한 실질 협력을 총괄, 조정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원팀'인 셈이다. 정부가 겉으로는 두 마리 토끼를 쫓는 모양새를 보였지만, 내심 네옴시티 수주 극대화를 위해 사우디와 '이면 합의'를 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비롯된 지점이다. 정부는 물론 적극 부인했다. 최태원 대한상의 소장과 한덕수 국무총리가 유치위 공동위원장을 맡아 분주하게 해외 출장을 다녔다.
윤석열·빈 살만 원팀은 투표를 한 달 앞두고 리야드에서 정상회담을 갖고 거듭 팀워크를 과시했다. 대통령은 10월 21~24일 리야드 방문 결과로 8개 분야, 44개 항으로 된 한·사우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그중 4개 항을 할애해 '건설 및 인프라 분야 협력 강화'를 다짐했다. 사업 수주는 물론 인프라 투자 관련 금융 협력도 강화키로 했다. 대통령은 23일 리야드 한·사우디 건설 협력 50주년 기념식에 참석, "양국 건설 협력으로 새로운 도시건설 신화를 만들자"고 말했다. 네옴시티 건설 수주에 적극적으로 나선 것이다.
지난해 빈 살만의 방한이 국내에서 이면 합의 의혹을 일으켰다면, 대통령의 사우디 답방은 국제사회에 잘못된 신호를 주었을 가능성이 높다. BIE 투표 한 달 남기고 경쟁국을 방문하는 것 자체가 한국이 사우디의 손을 들어준다는 의사표시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팀이건, 두 팀이건, 민·관의 '적극적인' 유치 활동의 총합이 지난 28일 BIE 총회에서 거둔 '29표'이다.
2030 부산 엑스포 유치전의 참담한 실패 하루 뒤인 29일 부산 해운대구청사 외벽에 걸렸던 엑스포 응원 현수막이 철거되고 있다. 2023.11.29. 연합뉴스
국제박람회기구(BIE)가 소개한 과거 세계박람회 관객 기록. 2010년 상하이 엑스포에는 6개월 동안 7300만 만 명이, 1970년 오사카 박람회에는 6400만 명이 찾았다. 부산 엑스포가 성사된다면 5000만 명이 찾을 것으로 예상됐다. BIE 누리집
처음부터 스텝이 꼬였다면, 다른 '코리아 원팀'의 성과를 들춰볼 필요가 있다. 엑스포를 놓쳤더라도, 건설 사업이라도 듬뿍 수주했다면 적어도 한 마리 토끼는 챙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중심에 원희룡 장관이 있다. 국토부의 '장관동정'을 보면, 올들어 칼리드 왈팔레 사우디 투자부 장관과 1월 18일(다보스 포럼)과 10월 14일(서울 조찬간담회) 만나면서 인프라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5월 서울 한·사우디 모빌리티·혁신 로드쇼를 열어 사우디 교통물류부와 협력을 다짐했다. 지난 6월엔 사우디를 방문, 에너지부 및 도시농촌주택부 장관 등과 만나 '원팀 코리아' 지원활동을 펼쳤다.
원 장관은 역대 어느 장관보다 해외 영업을 많이 했다. 우크라이나와 아랍에미리트(UAE), 인도네시아, 르완다, 카타르, 싱가포르, 레바논 측과 접촉했다. 가히 건설 업계의 '1호 영업사원'이라 할 만하다. 물론 사우디가 가장 중요한 영업활동 무대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어찌 된 일일까. 오일달러 특수는 없었다.
29일 해외건설종합정보시스템에 따르면 국내 건설업계는 올 1~10월 총 256억 4603만 달러의 수주액을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 시기의 247억 4804만 달러보다 약간 늘었지만, 민·관 '코리아 원팀'이 상반기 목표했던 350억 달러의 70%에 머물렀다. 사우디 건설 수주액은 62억 5705만 달러로 작년 동기(30억 달러) 대비 2배 정도 늘었다. 이데일리가 전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지난해 빈 살만 왕세자 방한 이후 네옴시티 수주에 기대가 커졌지만, 실제 본 계약을 체결한 건설사는 많지 않았다."
사우디를 방문한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가운데)이 지난 11월 6일 사우디 리야드 크라운 플라자RDC 호텔에서 연 '한-사우디 혁신 로드쇼'를 마친 뒤 살레 알 자세르 사우디 교통물류부 장관과 함께 현지 언론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3. 11. 6. 연합뉴스
물론 연말 계약 물량이 몰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또 2030년까지 단계별로 쪼개어 발주하는 네옴시티 공사를 더 수주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대통령실이 적극 홍보했던 용산의 '1호 영업사원'과 국토부 '1호 영업사원'의 실적이 뚜렷하지 않다는 점이다. 61조 원의 경제효과와 50만 개의 일자리, 부산엑스포 유치 실패로 우리가 놓친 기회다. 잃은건 명확한 데 얻은 게 흐릿하다.
BIE 투표에서 사우디에 표를 던진 119개국이 아니라 바로 대한민국이 '오일달러'에 현혹됐던 건 아닐까. 아라비아 상인 정신으로 무장한 빈 살만에 당한 걸까. 대통령과 왕세자의 한·사우디 원팀의 역할은 무엇이었을까. 의문의 출발점이다. 대한민국은 1988년 서울 올림픽 이후 이런 국제적인 수모를 당했던 적이 없는 나라다. 좋은 게 좋은 건 시정잡배에게나 쓸 말이다. '국가급 영업사원들'의 실적을 놓고 엄정한 '국민 감사'를 시작할 시간이다.
사우디가 건설중인 네옴시티 건설 계획. 2022. 11. 10. 연합뉴스
출처 : 사우디 '오일 달러'에 현혹된 건 대한민국 아니었나 < 정치 < 기사본문 -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 (mindlenews.com)
파리의 굴욕, 대한민국은 왜 또 '거대한 실패'를 했나
[엑스포 징비록] 오일달러에 졌다고? 국민에 할 말인가
150국 정상에 부탁했다는 '1호 영업사원'의 영업 실패
두 차례 올림픽·월드컵이 쌓아올린 국가브랜드 타격
'한국전쟁 팔이' 퇴행적 홍보에 '새만금' 감점까지
BTS 문화자산·반기문 외교자산·대기업 자산까지 탕진
대한민국 29표 대 사우디 119표. 이 참담한 결과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졌지만 잘 싸웠다고? 누가 뭘 어떻게 싸웠기에 이런 국제적인 망신을 당했는가. 사우디아라비아의 오일머니 탓에 졌다고? 이게 정말 아름다운 추억을 간직한 대한민국 국민에게 할 말인가. 벌써 잊었는가.
독일 바덴바덴에서 열린 국제올림픽위원회( IOC) 총회에서 1988 서울 올림픽 유치에 성공한 뒤 정주영 추진위원장과 김택수 IOC 위원이 축배를 들고 있다. 1981. 9. 30. 연합뉴스
1981년 9월 30일 독일 바덴바덴. 1988 하계 올림픽 유치도시를 결정하는 자리였다. 애초 불가능한 게임이었다. 아무런 대책 없이 무작정 유치전에 뛰어든 대한민국이 참패할 것이라는 게 당시 국제사회 상식이었다. 상대는 4년 전부터 올림픽 유치에 뛰어든 일본 나고야. 대한민국은 미국, 대만과 함께 3표를 얻을 거라는 관측까지 나왔다. 뚜껑이 열리자, 세계가 놀랐다. 유효표 79표 중 52표를 동아시아 분단국이 거머쥐었기 때문이다. 그 분단국은 30년 뒤 하나가 되어 평창 동계올림픽까지 개최, 세계를 감동시켰다. 대한민국 국민의 유전자에 승리와 성공의 기억이 새겨진 날이었다.
서울올림픽 유치의 추억을 잊었는가
1996년 5월 31일 스위스 취리히 국제축구연맹(FIFA) 집행위원회. 당시에도 경쟁국은 일본이었다. 결과는 아름다웠다. 득표전에서 앞섰던 대한민국의 양보로 2002년 월드컵을 한국/일본 공동 개최로 결정했다. 적어도 대한민국은 이런 나라였다. 2030 부산 엑스포(EXPO)는 하계, 동계올림픽과 월드컵에 이어 세계 3대 빅이벤트를 주최한 국가의 완성이 걸린 중대사였다. 우리가 올림픽이나, 월드컵 유치에 덜 연연하게 된 것은 이미 성취한 목표이기 때문이다. 한 단계 올라간 국격의 시선으로 볼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부산 엑스포는 다시 한 단계 도약할 기회였다. 그런데 정부는 과연 최선을 다했을까.
88올림픽이 한국전쟁의 궁핍한 이미지로만 기억되던 대한민국의 화려한 비상을 세계인의 뇌리에 심었다면, 월드컵은 그 이미지를 확장했다. 외교적으로도 거대한 성과였다. 88올림픽에선 1980 모스크바, 1984 LA 올림픽 당시 자유 진영과 사회주의 진영이 각각 불참함으로써 양분됐던 세계를 하나로 묶었다. 노태우 정부의 야심찬 북방정책의 출발점이기도 했다. 월드컵은 어떤가. 앙숙이었던 한국과 일본이 화합하는 모습을 세계에 내보였다.
그러나 너무도 버거운 싸움이었기에 정부와 민간이 혼신의 노력을 다하면서도 진중했다. 적어도 이번처럼 호들갑을 떨지는 않았다는 말이다.
2030 부산 엑스포 유치전의 참담한 실패 하루 뒤인 29일 부산 해운대구청사 외벽에 걸렸던 엑스포 응원 현수막이 철거되고 있다. 2023.11.29. 연합뉴스
언제부터인가 글로벌 이벤트를 유치하면 타산을 앞세우며 주판알부터 튕기지만, 그보다 더 큰 유·무형의 선물을 안긴다. 88올림픽 유치 성공에는 글로벌 사우스(개도국들)의 마음을 움직인 게 주효했다. 대체 부산 엑스포 유치전에선 무엇을 움직였나 궁금할 따름이다. 대통령 이하 정부는 말부터 앞세웠다. 아니, 말만 앞세웠다. 언제부턴가 '윤비어천가'의 국가기록물 저장고가 된 대통령실 브리핑을 들여다보자.
대통령은 지난 23일 프랑스 파리 인터콘티넨털 호텔에서 열린 국제박람회기구(BIE) 대표 초청 만찬에서 테이블을 일일이 다니며 지지를 호소했다, 고 한다. 한명 한명과 개별적으로 사진을 찍고 감사를 표했다. 다음 날 점심에는 인근의 인터콘티넨털 르그랑 호텔에서 각국의 BIE 대표들을 초청, 밥을 샀다. 지난 9월 25일에는 유엔총회 참석차 방문한 뉴욕 체류 4박 6일 동안 47개국 정상을 만나 부산 엑스포 지지를 당부했다. 7박 8일 간 샌프란시스코-런던-파리 방문을 마치고 연 28일 국무회의의 긴 모두 발언에서는 "(지난 1년 반 동안) 저 자신도 150개 이상 국가 정상들과 일일이 양자 접촉하면서 지지를 호소했다"고 자화자찬했다. (나라 수는 29일 대국민담화에서 54개국이 줄었다. "96개국 정상과 한 150여 차례 만났다"고 정정했다. )
악수 한 번하고 밥 한 끼 사는 게 유치활동?
접근 방식부터 잘못됐다. 세계 박람회는 올림픽과 월드컵이 선사했던 '상징'에 더해 실리가 큰 이벤트다. 관련 연구기관들은 경제 유발 효과를 61조 원으로 전망했다. 정말 중요한 이벤트로 생각했다면, 철저하게 거래 방식으로 가야했다. 사우디의 오일머니 핑계를 대는 것은 구차하다. 지금이 1970년 대인가? 대한민국 경제력과 브랜드 파워는 사우디를 넘어선 지 오래다. 이러한 행사 유치를 도와달라는 건 대통령이 각국 정상과 악수 한 번 하고, BIE 대표들에게 밥 한 끼 산다고 될 일이 아니었다. 대통령 부부가 잦은 해외 출장을 다니면서 어떤 걸 주고받았는지, 아니 거래 자체를 하려고 했는지조차 의심된다. 무슨 '1호 영업사원'이 거래는 안 하고, 사진 찍는 데만 정성을 기울이나. 대내외 메시지는 더 문제였다.
대통령은 70여 년 전 전쟁과 분단, 빈곤으로 어려웠던 대한민국의 기억을 소환했다. 대한민국이 이미 35년 전 뛰어넘은 한국전쟁의 이미지를 뒤늦게 팔았다. 지난 1월 18일 스위스 다보스 포럼 '한국의 밤' 행사 모두 발언에서부터 지난 24일 파리 BIE 대표 초청 오찬사에까지 예외 없이 이어진 메시지다. "지금으로부터 70년 전 전쟁의 폐허에서 기적적인 성장과 발전을 이뤄낸 대한민국은…"이라는 과거지향적 사고가 과연 국제사회에 먹힐 것으로 생각했는지 묻고싶다. 국내에서 '반공 전체주의 세력'과의 싸움을 강조하던 퇴행적 사고의 연장이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는 밖에서도 샜다.
지난여름 세계 4만여 명의 청소년들을 질척한 간척지의 모기떼 속으로 내몬 새만금 잼버리의 '거대한 실패'는 세계를 놀라게 했다. 대한민국이 지난 세기부터 쌓아온 국가이미지를 온통 흔들었다. 미증유의 실패가 1년 새 잇달아 벌어졌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습관적으로 전 정부 탓을 하는 모습은 실망을 더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2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2030 부산 엑스포 유치 실패와 관련해 대국민담화를 하고 있다. 대통령은 "예측이 많이 빗나간 것 같다"라면서 대통령인 자신의 "부족의 소치"라고 말했다. 2023.11.29. 연합뉴스
'졌, 잘, 싸' 준비된 변명은 국민모독
'1호 영업사원'이 이상한 국가홍보를 해 온 유치 기간 대한민국은 단순히 출장비만 지불한 게 아니다. 문화자산, 외교 자산, 경제 외교 자산을 한꺼번에 탕진했다. 돈과 돈이 오가는 엑스포 유치 홍보에 동원한 BTS는 우습게 됐고, '세속의 교황'이라 불리는 유엔 사무총장을 지낸 반기문이라는 외교자산도 꼴이 말이 아니게 됐다. 최태원 상공회의소 의장을 필두로 SK와 삼성, 현대, LG 등 12개 대기업이 BIE 회원국을 분담해 세계를 누빈 재계 역시 각각의 브랜드 파워에 먹칠을 하게 됐다. 애당초 국가적 명운을 걸고 나섰어야 할 싸움이었다. 사우디아라비아에 참패하자마자 준비해 놓았다는 듯이 "졌, 잘, 싸"를 이구동성으로 외치는 모습은 가관이다. 징비록을 써야할 시간이다. 또 하나의 '거대한 실패'였다.
출처 : 파리의 굴욕, 대한민국은 왜 또 '거대한 실패'를 했나 < 정치 < 기사본문 -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 (mindl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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