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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민중사
민중문화운동의 발전(2)
60 년대 민족운동의 이념에 있어서는
60년대 민중운동의 이념에 있어서는 외세에 대항하여 민족적 기본권을 수호하는 주제는 ‘민족’이었으며 독재에 항거하여 민주적 기본권을 회복하려는 주제는‘국민’이었다. 그러나 70년대에 접어들면서부터 민족과 민주의 실질적 주체로서의 민중이 민족운동의 중심개념으로 자리잡아 가기 시작하였다. 학생운동으로부터 수용된 민중지향성은 1975 년의 긴급조치 9호 발동 이후에 각계로 확산되었다.
이와 같이 민중운동의 재기에 발맞추어 사상운동으로 시작된 민중론은 유신체제의 폭압아래서도 민주화 운동이 장정(長征)을 수행하여 갈 수 있게 만든 이념적 자양분이었다. 이 시기에 민중운동 전반의 암울한 상황 속에서 운동의 민중지향성을 보존하고 그것을 새로운 전진의 발판으로 공고히 하는 역할을 자임하고 나선 것이 바로 문화운동이었다.
전통문화에 대한 관심은 이미 60 년대 중반부터 고조되기 시작하였다. 특히 1971년 서울대 민속가면극연구회가 창립된 이후 전통적 민중 문화양식인 탈춤을 되살리려고 하는 움직임이 대학가에 급속히 파급되어 갔다. 민중운동이 성장하고 민중의식이 발전함에 따라 탈춤운동은 그 성격에 있어서 민속극의 원형적 전수로부터 그 창조적 계승으로, 더 나아가 민중성의 획득과 심화로 발전하였고, 그 형태에 있어서도 원형의 재현으로부터 창작탈춤과 마당극으로 변모하였다.
탈춤운동은 민중문화전개에서 선구적 역할을 수행하였다. 이와 아울러 서구문화에 찌든 대중가요에 대항하여 민중의 현실을 민족적 정서로 표현하려고 하는 노래운동이 창작가요와 구전가요를 중심으로 활발히 전개되었다. 70 년대에는 또한 미술과 영화의 분야에서도 민중지향성을 구현하기 위한 움직임이 싹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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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대 초반에 민족문화운동의 선구는 전통문화에 대한 관심과 탈춤운동
서울대학교향토개척단 ‘鄕土意識 招魂굿’에서 ‘원귀마당쇠’
이 문화운동은 1963년 여름 방학에 서울 대학교 본부 교정에서 열린 ‘향토의식 초혼 굿’에서 시작되었다. ‘서울대가면극연구회’,와 ‘우리문화 연구회’로 기억하는데 활동이 활발했고 사범대학 임석재, 이두현 교수가 가면극 연구를 했다. 특히 문리대 불문과에서 국문과로 전입한 조동일은 우리 민중문화에 큰 관심을 갖고 일찍이 경북 자기고향 근방의 전해오는 민요수집을 하여 와서 내가 주선하여 의정부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다방을 빌려 감상회를 가졌는데 그때 애쓴 것이 목재상 아들 아나운서 지망생이었던 중대 국문과 이상호로 기억한다.
내용 중 기억나는 것은 ‘시집살이 노래’로 “×방망이를 잘라 팔아도 다만 닷 돈 못돼서 손님대접을 못하네..”하는 가난에 찌들린 농민 생활상을 표현한 노래였다.
‘향토의식 초혼굿’은 우리 민중의 민족혼을 불러오는 주제로 서울대학교향토개척단 주최로 가졌는데 강연회, 가면극 ‘원귀마당쇠’, ‘사대주의 살풀이’, 농악을 울리고 막걸리를 드럼통에 담고 호수를 연결하여 끌고 다니며 아무나 빨아먹게 하여 흥을 돋우었다. 농악은 당시 대학에서 유일하게 창설되었던 동국대학교 농대의 것을 교섭하여 합류하였다. 당시 동국대 농대학생회장 심재익이 힘썼다. 4·19 때 경무대 공격에 앞장섰던 동지들이다.
강연회는 ‘미국잉여 농산물 등’이 주제로 올랐고 사대주의 살풀이는 서대석의 巫歌가 내용이 신문에 소개될 정도로 북을 치면서 경을 읽는데 ‘바다 건너온 양놈 잡귀신들을 몰아내는 내용으로 기억한다’. 서대석은 후에 이대 교수가 됐었다. 상여를 꾸미고 허수아비를 만들어 세우고 몸통에다 양담배 곽, 커피상징물들을 붙이거나 주렁주렁 달아 메고 ‘어화 땔랑.. ’하고 다니다가 결국 화형식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여기서는 상여 선소리 메김이 제각각이었다.
단연 기획과 구성에 제작에 일등 공신은 임동규였다. 후에 ‘남조선민족해방전선=남민전’건으로 십년에 가까운 옥고를 치뤘다. 지금은 광주 세브란스 요양원에서 투병중이다.
‘가면극 원귀 마당쇠’는 중랑교 뚝방집에서 각본을 조동일이 작성했는데 서민들 사회에서 쓰는 말과 사투리 등을 내가 좀 거들었다. 내용은 마당쇠와 변학도의 무덤에서 마당쇠와 변학도 그리고 계묘년 보리흉년에 굶어죽은 원귀들이 등장하며 마당쇠의 규탄과 서민적, 해학적 말투로 대화가 이어지고 특히 관중석과의 대화를 극중에 시도했다. 그 원고는 나중에 소개할 기회가 있으면 올리겠다. 원고를 분실했다가 ‘團史’를 만들려 자료 수집을 하는 중에 발견되어 보존하고 있다.
가면 제작은 조동일이 주관했다. 문리대 박물관에서 ‘하회탈’을 빌려서 참고로 하고 물에 담갔던 신문지를 풀에 짓이겨 탈을 창작하고 말려 칠을 했다. 원형보존과 창작은 원고서부터 탈 제작. 연출에 이르기 까지 원칙이 지켜졌다.
준비교육은 처음에 지금 창덕궁 앞에 있던 당시 국립국악원에서 동규는 단가를, 나는 무용을 또 다른 형님은 해금을 배웠지만 고색창연한 큰 기와 건물에 큰 연못과 수양버들이 휘늘어진 넓은 정원이 인상적이었고 창덕궁 정문인 돈화문 옆에 있었던 인간문화재 김천흥 고전무용연구소에서 탈춤의 기초를 선생님이 직접 알기 쉽게 무료로 가르쳐 주셨다.
계속하여 우리들은 종로2가 어디에인가 있던 무용연구소 같은 데 봉산탈춤의 명인 이문동 사시는 김진옥 선생님을 모셔다 배웠고, 남산 중턱 드라마 센터에서는 통영오광대 장재봉 선생에게서 탈춤을 배웠다. 정작 내 고향인 양주산대는 아직 성인들로 구성된 패가 없어 내가 덕정중학교 동창회장으로 있을 때 동창회 주최로 덕정 장터에서 조동일 등이 오고 어린이 산대놀이를 시연한 적이 있을 정도여서 배울 기회가 없었다. 시연자 김성태 할아버님이 돌아가시고 김성대씨가 전수했으나 미미했고 의정부 사셨던 보존회장 공재웅 선생의 노력과 여러분들의 노력으로 원형복원 된 것은 후의 일이다. 의정부에서 내가 학생시절 덕정중학교동창회 주최로 탈 전시회를 한 적은 있다. 그러나 이 일은 내가 졸업 후의 일이다.
자 재학생 중 누구를 마당쇠와 변학도를 내 세울 것인가?
미대 ‘장기대회에서 일등 한 학생을 시험해보니 어깨놀림이 ‘신식?’이어서 노동과 흥이 어울어진 힘이 없었다. 주변에서 ‘네가 해라!’ 졸업생인 내가 ‘홍사한’이란 이름으로, 사대 국어과 졸업생 이영윤(세실 극장, 그 밑 세실식당을 경영했던)으로 낙착을 보았다.
그 후 나는 대구 (대구 KBS=KG홀)에서 경북대, 경북고 학생을 훈련시켜 연출이 되어 이 작품을 올려 대구매일에서 좋은 평을 받았다. 이것이 마당극으로 또 사물놀이의 탄생과 관련, 이영윤의 영향력이 크다고 생각되는데 그의 소식을 모르겠다. 얼마 전 이국땅에서 변사로 발견되어 타계한 이해경이 원귀로 나와 초란이 춤을 추던 모습을 떠올리며 가슴이 저며오고 있다.그도 동규와 함께 남민전에 연루되어 같이 긴 옥고를 치렀는데..여기서 그치기로 하고 나중에 ‘원귀 마당쇠’ 각본을 소개하겠다. 내용이 다소 박정희 군사쿠데타 3년차라는 시기의 상황제한을 받았지만 당시로서는 민중의식의 변화를 촉구하는 내용이었다. 내가 여덟 개의 방학기간에 지방 활동에 무리가 있었는지 폐결핵 重等症의 판정을 받고 휴학을 하는 등의 이유라 하지만 총무로 개척단을 맡았던 임동규가 사실상 실질적 회장으로 일을 기획하고 지휘하였음을 알린다. 이 책에서는 탈춤 운동이 1971이라 했으나 그 시작은 1963년이다. ‘우리문화연구회’는 1960년대 초반일 것이다. 아마 대학가로 확산된 기간일 것이다.
◎ 鄕土意識 招魂굿(1963年 제 1회)
(新撰 광대 놀이)
「寃鬼 마당쇠」
서울대학교 鄕土開拓團
등장인물
마당쇠
변학도
원귀 꺽달이
쩔뚝이
팔뚝이
관중석
시대
무대는 현대
극 내용은 이조 말기
장소
무대는 서울대학교
극 내용은 전라도 빈곤군 무지면 절량리
무대: 추석날 밤의 묘지. 무덤 3, 4개가 여기 저기 보인다.
각 무덤 앞에는 약간의 제물이 차려져 있다. 초라하고 작은 무덤A 앞에 놓인 제물은 초라하고, 크고 잘 가꾸어진 무덤B앞에 놓인 제물 역시 잘 차려져 있다. 무덤 뒤에는 몇 그루의 소나무가 서 있고, 그 사이로 커다란 달이 보인다.
막이 열리면 한동안 음산한 분위기가 계속 되더니, 갑자기 센 바람 소리와 함께 무덤A의 뚜껑이 활짝 열리더니, 원귀 마당쇠가 뛰어 나온다.
마당쇠: (뛰어나와서 사방으로 쾅쾅거리며 돌아다닌다. 고개를 끄덕 거리며 여기저기 훑어본다.)
관중석: 이크 저게 뭐냐? 귀신 나왔다 귀신!
마당쇠: (사방을 둘러보다가 다시 펄쩍 뛰며)뭐? 나보다가 귀신이라고? (무대 앞으로 나가면서)그래 나는 귀신이다 귀신이여! 귀신이라면 어쩔 것이여. 그러나 겁낼 건 없어. 사람 해치러 나온 악귀는 아니라니께. 얼빠진 총각 호리러 나온 요귀는 또 아니여 어진 백성 잡아먹을려고 나온 마귀도 아니여. 사귀도 아니고 미명귀도 아니랑께.
몽달귀신도 아니고 엇귀신도 아니어. 그런 건 다 아니란 말이여!
관중석: 그럼 무슨 귀신이냐?
마당쇠: 무슨 귀신이냐고? 난 원귀여, 원귀! 원한이 있어 무덤에서 나왔단 말이여. (무시무시한 분위기를 풍기면서)죽어서도 잊을 수 없는 원한이 있어서 나왔당께. 그냥 흙이 될 수는 없어서 나왔어. 가슴에 쌓이고 쌓인 원한은 죽어서도 살아지지 않는 것이여! 나는 할 말이 있어서 나온 원귀여. 원귀여!(뒤로 슬슬 물러나면서) 내가 죽어뿌렀다고 안심들 했째. 닷세 아무 말도 없을 것으로 안심했지? 그 녀석 말썽 없이 잘죽어버렸다고 기뻐했지? 그랗게 뜻대로 되나? 안될 말이여. 안되지. 뼈마디 마다 원한이 사무친 내가 죽은들 쉽게 썩어버릴 줄 아나? 다시 나오고 마는 것이여. 죽어도 도저히 죽을 수 없당께.
관중석: 너는 도대체 누구길래 원귀가 되었냐?
마당쇠: 누구냐고? 누군가 알아보고 나서 무덤으로 몰아넣을 것이여? 잡아서 곤장을 칠 것이여? 그러나 인자는 그렇게 쉽게 안 될 것이여. 겁이 난다면 이렇게 나올 놈이 아니여. 누구냐고? 무엇이라고 대답해야 헐까?
관중석: 성명 삼자를 대아 보아라.
마당쇠: 성명 삼자가 어디 따루 있어? 촌놈의 성은 김가 아니면 이가니께 무식한 선조가 그 둘 중에 하나로 정했을 것이고 이름은 우리 엄니가 마당서 나을 낳았다고 마당쇠라 했는 가비여!
관중석: 어디서 살았나?
마당쇠: 동네 이름이 어디 따루 있간디? 숭년이 하두 자주 드니께 숭년두들이라고 불렀는 가비여. 그만치만 알면 될 것이여.
관중석: 언제 살았나?
마당쇠: 언제라고? 무엇이라고 대답해야 된단 말이여.(화를 버럭 내며) 날적부터 죽을적 까지 살았지.
관중석: 특별히 기억나는 일이라도 없나?
마당쇠: 왜 없갔어? 날리 이야기를 해 볼까? 담관 오리를 잡아 죽인다고 마실장정들이 머리박에다 수건을 동이고 몽둥이를 들고 뛰어나갔어. 세셍이 발칵 뒤집어 지고 천재 개벽한다는 소리까지도 들렸어.
관중석: 그 해가 무슨 해냐?
마당쇠: 무식한 놈이 육갑을 짚을 줄 알아야지.(갑자기 생각나서 펄쩍 뛰며) 옳지! 옳지!
갑오년이라고 하더라!
관중석: 동학란 말이구나
마당쇠: 뭐라구?
관중석: 현대 사람들은 그 난리를 1894년 동학농민혁명이라고 부르고, 제마다 연구를 한답시고 법석이지.
마당쇠: 별 꼴을 다 보겠다.
관중석: 그건 그렇고 딴 기억은 없나?
마당쇠: 꼭 한 가지 더 있지. 숭년 말이다. 숭년. 숭년이야 거의 해마다 들었지만 난리가 끝나고 칠년 후에 든 숭년은 지금까지 듣도 보도 못한 큰 숭년이었어. 그해가? 그렇지 계묘년이었어. 난리 때 뽀돗이 살아남은 사람들이 다 죽어 가는데, 나같은 병신이 어떻게 살기를 바라겠어.
관중석: 너가 그 때 죽었단 말인가? 앉아서 굶어 죽었나?
마당쇠: 열흘이나 굶은 몸으로 살려 달라고 관가를 달려가다가 발길에 채여 죽었어. 발길에 채여 죽었단 말이여. (발길에 차인 듯이 넘어진다.)
관중석: 기구한 한 평생이었구나 원귀가 될 만도 해.
마당쇠: 보통 원귀가 아니여. 원귀 중에서도 대장이라니께. 그래서 팔도 강산 원귀들이 할 말을 다 해주려고 나온거야.
관중석: 옛날 원귀들은 원이나 감사 꿈에 현몽을 해서 해원을 하던데..
마당쇠: (소리를 버럭 질러 말을 막으며) 무어라고? 원님 꿈에 현몽을 해? 차라리 개 새끼 꿈에 현몽을 하지. 그 따위 얼빠진 소리가 어디서 나온 당께? 내가 누구한테 원한이 맺혔고 누구 때문에 죽었는데? 현몽은 고사하고 가서 그 놈의 원이란 자를 콱 찔러 죽여 버릴려고 어제 저녁에도 나가지 않았나.
관중석: 그래서?
마당쇠: 그래서가 뭐야! 원 이놈의 세상.
어떻게 되었는지 관가가 있던 자리에는 빈터만 남아있고 골목골목 못 보던 집들만 꽉 둘러 있지 않겠나. 그런 판에 그 놈의 원이란 자를 찾을 수 있어야지. 도대체 어떻게 된 거여?
내가 죽은 놈이라고 내 눈에는 아무것도 안 보이나?
관중석: 너의 눈에 안 보이는 게 아니야. 시대가 얼마나 변했는데 그 자리에 관가가 아직 남아 있기를 바라느냐? 원님이 아직 남아 있을 리가 있나? 다른 방법으로 원한을 풀어야지.
마당쇠: 그러면 그 놈의 원이란 작자를 어디서 만나나?
관중석: 같이 찾아보도록 하자.
마당쇠: (두리번거리며 살핀다) 그 녀석이, 그놈이 어디 있나? (관중석 가까이 가서 한참 두리번거리다가) 그런데 여기 왠 사람들이 이렇게 많이들 모여 있나? 또 무슨 난리가 났나?
관중석: 난리가 난 게 아니고 서울대학교에서 굿을 한다고 해서 구경꾼들이 모인거야.
마당쇠: (모르겠다는 듯이 고개를 저으며) 서울 대학교라니? 뭘 하는 곳이여?
관중석: 뭘 하긴 뭘 해. 글 배우는 곳이지.
마당쇠: 화! 그럼 서당이로구나 이것 잘 못 왔는데..
관중석: 서당이긴 서당인데 옛날 서당과는 다르지 공자왈 맹자왈은 배우지 않고 다른 걸 배워.
마당쇠: 다른 공부가 어디 있당께?
관중석: 옛날일이나 지금일이나 옳고 그른 것을 다 밝혀 배우는 거야.
마당쇠: 그래? 옳지 되았어. 그럼 내 이야기도 들어주고 옳고 그른걸 밝혀 주겠구먼. (좋아서 날뛴다) 인자사 내 이야기를 들어 줄 사람을 만났구만. 뒷산에다 대고 허트리던 소리들을 다 털어 놓아도 좋단 말이여?
관중석: 무슨 말이라도 해야 돼.
마당쇠: 그런데 굿은 왜 함시로 이러지?
관중석: 너 같은 원귀들 살아 나와서 할 말을 다 하라고 굿을 하는 거야.
마당쇠: 오라~! 그래 내가 굿 하는 소리를 듣고 깨어났구나. 그래 뭐가 이상하드라니까.
관중석: 그럼 이야기를 시작해.
마당쇠: 말을 할라니께 먼 말을 먼저 해야 될지 모르겠다니까. (가슴을 주먹으로 치면서)
가슴이 갑갑하고, 숨이 콱콱막히고, 눈물이 찔끔찔끔 나오고, 방구가 뿡뿡 나오기만 한다니께. (주먹을 쥐어 보이며) 이 만한 불덩이가 모가지로도 치밀고 가슴으로도 치밀고 허리로도 치밀고 해 사람 환장하것당께. 내 본래 욕쟁이는 아닌데 개좆같이 욕만 나온당께.(무덤 앞에 주저 앉는다.) 아고데. 숨차. 원 이놈의 거 무얼 할랴고만 하면 이렇게 숨이 차니...하기야 워낙 먹은 것이 있어야지. 굶어 죽은 놈이 무슨 힘이 있나.(한참 그대로 앉아 있다가 무덤앞에 차려 놓은 제물을 보았다.)옳지 그걸 잊고 있었구나. 손자놈이 이 귀한 음식을 차려 놓고 갔는데.(하나씩 집어 들면서) 보리밥 한 그릇, 술 한잔, 오징어 한 마리, 감 한 개, 밤 두알..쯔쯔쯔...(한숨을 내어 쉬면서 눈물어린 목소리로) 후유..손자녀석도 똥구녁이 찢어지게 가난하구나. 그럼시도 할애비 제사라고 이렇게 까지 차리다니 저들은 굶으면서도...쯔쯔.....어서 먹어야지.(밥을 급히 퍼 먹는다)이렇게 차리느라고 얼마나 애를 썼을가...(밥그릇을 든 채로 일어나면서) 여보소 내 손자를 보았나?
관중석: 낮에 성묘를 왔을 때 보았지
마당쇠: 어떤 꼴을 하고 왔던가?
관중석: 말도 말어..눈으로 볼 수가 없더군.
마당쇠: 쯔쯔...그럴테지..무슨 옷을 입고 왔던가?
관중석: 무명 잠방이를 입고 왔더군.
마당쇠: 옛날이나 지금아니 꼭 같은 신세 로구나..그놈의 팔자 기구하기도 하지. 허기야 그 심한 숭년에도 아들 녀석이 살아남았고 또 손자까지도 두었으니 신기한 노릇이지. (밥을 몇 숫가락 퍼 먹다가) 어거....저희들은 굶으면서도 할애비 제사라고 밥을 떠 놓았는디, 그런 밥을 내가 어떻게 먹을 수 있단 말이여. 목구멍으로 넘어가야지..(밥 그릇을 내려놓는다) 살아서도 죽어서도 팔자야..(일어서면서 무덤 B앞에 놓인 잘 차려 진 제물을 보았다.) 이것 보아라. 여기에는 진수성찬이 차려져 있구나. 이녀석은 복도 많구나.
관중석: 택시를 타고 온 배불둑이가 그걸 차려 놓고 갔다.
마당쇠: 뭐라고? 태백산?
관중석: 태백산이 아니고 택시라고 했다. 택시는 저절로 굴러가는 탈 것인데. 우리 같은 가난방이는 못타는 거여.
마당쇠: (무덤 B를 걷어차면서) 이자식은 뭣이간디 그런 부자 자손을 두어서 잘 얻어먹는 것이여.(무덤을 살피다가) 무덤 앞에 비석이 서 있는 걸 보니 예사 무덤이 아니구나. 까막눈이 진서를 알아볼 수는 없어도 이게 양반이라는 도적놈 무덤인 줄은 똑똑히 알지. (앞으로 나오면서) 세상이 이렇다니까.. 양반이란 녀석들 말이여. 특히 우리 고을을 다스리던 변학도 같은 자식들 말이여. 욕심 많고 우악스럽고 더럽고 치사스럽고 냄새나고 아니꼬운 도적놈들 말이여. 양반이란 도대체 뭣이여? 일년내내 피땀 흘려 농사지어놓으면 일년 내내 끄트름만 하고 앉았다가 다 빼앗아 가는 도적놈이 아니고 무엇이여. 양반이란 도대체 무슨 말이여.
(어깨춤을 추면서 큰 소리로 창을 한다.)
개잘량이란 량자에
개다리 소반이란 반자 붙어
양반인가 양반인가
허리 꺾어 절반인가
신주 모신 선반인가
이 빠진 쟁반인가
먹다버린 조반인가.
돼지 다리에 각반인가
얌채 법에 위반인가.
(무덤 B를 툭툭찬다.)
변학도: (무덤 B의 뚜껑을 활짝 열고 튀어나와서) 네이놈! (벼락같이 호령을 한다) 네 이놈! 천하에 이렇게 무엄한 놈이 어디에 있느냐! 이 놈을 그저! 이 죽일 놈아! 네 모가지가 열 개라도 너는 살지 못할 것이다!
이놈을 그저! (화를 참지 못하고 씩씩거린다.) 이 개, 돼지 보다 못한 놈아! 눈이 있거든 내가 누군지 똑똑히 보아라!
마당쇠: (변학도를 보고 좋아서 어쩔 줄 모른다) 허허! 이런 일도 있어!
변학도: (씩씩거리며) 이 놈아! 내가 너의 고을 부사 변학도란 말이다. 이 무엄한 놈아! 네가 아무리 상놈이라고 하더라도 나를 못 알아보다니!
마당쇠: 못 알아볼 리가 있어. 너를 지금까지 찾아 다녔는데! (좋아서)바로 여기 있었구나. 몇 천년 몇 만년 살 것 같더니. 너도 결국 죽고 말았구먼..헤헤.. 나와 꼭 같은 신세가 되었단 말이여. 헤헤.
변학도: (더욱 화가나서) 무엇이 어째고 어째!
마당쇠: 하여간 잘 만난거여!
변학도: 잘 만났다고? 여봐라 게 누가 없느냐! 이 박살 할 놈을 당장 끌어 내리지 못하겠느냐! 저 소리가 쑥 들어가게 아가리를 찢어 놓지 못하겠느냐!
마당쇠: (어깨춤을 추면서) 허허~ 이 양반 좀 보게 영 돌아버렸당께.
변학도: (더 큰소리로) 여봐라! 게 누가 없느냐!
마당쇠: 여봐라 저리봐라 하고 돼지 목 따는 소리를 지르면 저 달이 대령하겠나, 저 나무가 대령하겠나!
변학도: 여봐라! 통인아!
마당쇠: 헤헤..이 양반 보게..여기는 동헌이 아니고 무덤이여! 무덤!
변학도: (아직도 진정하지 못하고) 무어라고? 무덤이라고?(비로소 알았다는 듯이) 응..그렇지.. 깜빡 잊어버렸구나.
마당쇠: 하여간 잘 만난거여.
변학도: 네 이놈! 내가 비록 무덤에 묻혔어도..에헴! 근본을 논지하면..에헴..일찍이 문하시중의 자손으로....
마당쇠: 문하시중이라고? 네 할애비가 문하시중이었다면 우리 할아버지는 문상시대 였어.
변학도: 이 무식한 놈아! 문상시대란 무슨 개수작이냐! 문하시중으로 말하지면 지금의 영의정과 같은....
마당쇠: 아니, 우리 할아버지가 대문을 고칠 때, 대문위에 올라가서 고쳤으니 문상(門上)이 아니여. 그리고 말을 몰고 대문 가운데서 큰소리로 부를 때 까지 기다렸으니 시대(侍大)가 아니여..문하시중이 문제가 아니여.
변학도: 뭐라구! 난 이래도 사대부란 말이다! 공자께서 가라사대 사대부란....
마당쇠: 귀신한테도 사대부가 있고 오대부가 있나? 네가 사대부라면 난 팔대부는 된다는 것이여.
변학도: 이 죽일 놈아! (화를 더 내며)그건 그렇다 하고 너 지금까지 무어라고 떠들었지 누워서 듣노라니까 별별 개수작을 다 하더구나. 나를 찾아서 어떻게 하겠다고?
마당쇠: 하여간 잘 만난거여
변학도: 게 아무도 없느냐?
마당쇠: 이 양반 죽은 것만 해도 서러운데 정신까지 돌았구려.
변학도: 이녀석을 그저 (마당쇠에게 달려들어 멱살을 잡는다)
마당쇠: (도리어 변학도의 멱살을 잡고 앞뒤로 흔든다) 힘이 모자라서 절절기면서 산 줄 아나. 굶어 죽은 놈이지만 너 하나 메어칠 힘은 있다니께!
변학도: (숨이 막히면서) 이놈이! 이놈이!
마당쇠: 그렇게 땅땅 얼러대면 쌀을 갖다 바치겠나? 돈을 갖다 바치겠나?
변학도: (숨넘어가는 소리로) 이 죽일 놈아!
마당쇠: (역시 멱살을 잡고 흔들면서) 너도 죽은 놈이고 나도 죽은 놈인데, 무얼 그러느냐? 죽은 놈에겐 체면 덜된 수작 하지 말고 아니꼽게 굴지마라. 그런 수작 집어 치운다면 놓아 준다.
변학도: (마당쇠가 놓으니까 그 자리에 덜컥 주저앉는다. 한참 후에 분을 참지 못하겠다는 듯이 다시 입을 연다.) 야. 이놈아 자고로 이르기를 관장은 어버이와 같다고 했는데, 내가 비록 죽은 몸이라 해도 이게 무슨 짓이냐! (일어선다.)
마당쇠: 관장이 어버이라고? 세상에 자식 등쳐먹는 어버이를 어디서 보았느냐 말이여! 우리 농부가 너희들 양반을 먹여 살렸지 너희들 양반이 우리들을 먹여 살렸단 말이냐?
변학도: 이놈이 사서삼경을 못 읽어서 저런 무식한 소리를 하는구나.
마당쇠: 뭐라구? 사서삼경이라구? 난 이래뵈도 팔서육경을 읽었어.
변학도: 팔서 육경이 도대체 뭐냐!
마당쇠: 히히. 양반이라면서 육경도 몰라. 나 같은 상놈도 아는데..에헴..육경을 논지하면, 일찍이 공부자께서 가라사대 육경이란 자고로 에헴..(하나씩 손을 꼽는다) 첫째. 봉사안경, 둘째 머슴쇄경, 세째 처녀 월경, 넷째 야경꾼만 잡는 순경, 병신들 춤추는 광경, 에헴..그리고 나서 에헴...(청중들을 가리키며)이 밥통들 초혼굿 구경! 내가 아는 육경을 니가 몰라.
변학도: 너 이놈 진서는 못 읽었을게다. 우리 사대부들은 진서를 보고 풍월을 읊는데.
마당쇠: 무어라고..?
반학도: 상놈이 풍월을 알겠나마는 내 한수 읊을 테니 너 모르겠지만 들어 보아라.
에헴.(엄숙하게.)
금준미주난 천인혈이요
옥반가효난 만성고라
촉루락시에 민루락하고
가성고처에 원성고라 에헴...
마당쇠: 이게 무슨 소리여
변학도: 그러면 그렇지..네가 그 뜻을 알겠느냐? 으흠.. 이건 바로 저 송나라 시인 이타박이가 한고조 홍문면 잔치 때 한 수 읊은 거여.
관중석: 그놈 되게 유식하네.
변학도: 음..그 뜻을 색이자면, 진서의 뜻을 상놈이 알까마는 으흠..말하자면..
금 술잔의 좋은 술은 천하에 제일이요
옥소반 좋은 안주는 만고에 으뜸이라.
촛불이 떨어질 때 오동잎 지고
노래소리 높은 곳에 오기러기 날더라.
에헴..이게 풍연가 아니여
관중석: 엉터리다.
관중석: 놈 되게 무식하네..
마당쇠: 히히 웃기지 말어.. 진서를 안다는게 결국 그것 뿐이여? 그 소리는 나도 알어. 모르는 사람이 없단 말이여. 그게 배곯아 죽겠다는 소린데..뭐..?오동잎이 지고 외기러기가 날아?
관중석: 마당쇠 잘 한다.
마당쇠: 너가 글을 안다고 하는 건 다 거짓말이고 너가 아는건 백성들 등쳐먹는 수단 밖에 더 있어? 이런 바보 천치가 백성들 등처 먹는데는 여우같고 늑대 같다니께.. 이 도적놈아!
무덤C: 도적놈아
무덤D: 도적놈아
무덤E: 도적놈아.
변학도: 이크 이게 무슨 소리냐?
마당쇠: 천지신명이 노해서 도적놈을 벌 줄려는 거다.
변학도: 뭐 천지신명이 (부들부들 떤다) 제발..
마당쇠: 내 이제 천지신명 앞에서 너가 도적놈인 연유를 낱낱이 아뢸 것이여. 할 말 있거든 너도 하란 말이여.
변학도: 이걸 어떻게 해야 좋단 말이여.
마당쇠: 우리같은 농부는 일년 내내 피땀흘려 농사지어도 굶는데, 너같은 놈들은 일년 내내 끄트름이나 하고 발구락의 때나 문지르고 앉았어도 잘 쳐먹으니. 우선 그게 도적질이 아니여!
변학도: 아니 그게 무슨 소리냐?
마당쇠: 죽도록 농사지어 놓으면 반도 넘게 뺴앗아가지 않았는가베. 숭년에도 빼앗아가고 농사를 못지어도 빼앗아가고, 묶은 밭에서도 빼앗아가고, 돌자락 밭에서도 빼앗아 가고 하지 않았는가베. 그게 도적질이 아니란 말이여.
변학도: 왜 자꾸 들추어내는 거냐!
마당쇠: 봄에 쌀을 빌려주고 가을에 받아간다고 해 놓고 또 얼마나 빼앗아 갔나! 안 꾸어주고도 가져가고, 쌀에다가 모래를 섞어서 주고는 받아갈 때는 몇 갑절 빼앗아 가고 하지 않았어. 그게 바로 도적질이 아니고 세상에 무엇이 도적질이란 말이여!
변학도: 그렇다고 하더라도 새삼스럽게 그럴 건 없잖아.
마당쇠: 군역대신 군포를 받아간다 해놓고, 또 얼마나 해 먹었나. 늙은이 것도 빼앗아가고, 죽은 백골한테서도 빼앗아가고, 삼척동자에게서도 빼앗아가고, 심지어는 뱃속에 든 애의 것도 빼앗아 갔으니... 그게 도적질이 아니여!
변학도: 아니 무슨 소리를 자꾸 하는거야.
마당쇠: 성을 쌓는다 대궐을 고친다하고 무명이고 돈이고 있는 대로 다 털어 가 놓고, 부역을 나오라 뭘하라 하고, 다 끌어가지 않았느냐 몇 새끼씩 데려가서는 밥 한술 안주고서 곤장만 치며 말․소 처럼 죽어라고 부려먹지 않았느냐! 그게 도적질이 아니여!
변학도: 아니, 아니.. 내 말 좀 들어 보아라.
마당쇠: 너 이놈 우리 고을에 처음 왔을 때 무어라고 했지? 백성들을 잘 살게 하기 위해서 못을 판다고.. 말이야 좋지..그러나 그게 바로 도적질이 아니고 무어여.. 못을 만들테니 돈을 내라. 못 뚝을 쌓으니 나와 부역을 해라. 그리고선 물을 댈라면 물세를 내라.
이리 뜯어가고 저리 뜯어가고 하지 않았어. 그 못이 생기고 나서 우리 농부들은 더 못살게 되었고 너놈은 수 만냥을 모았으니..그게 도적질이 아니여!
변학도: 아니 그게 아니여.. 사실은 그런게 아니라니까..여보게 그게 아니고..
무덤C: 도적놈 잡아라.
무덤D: 도적놈을 때려라.
무덤E: 도적놈을 죽여라.
변학도: 아이코..천지신명께 비옵니다. 사실은 그게 아니고...
마당쇠: (엉덩이 춤을 추면서 창을 한다. 창의 내용에 따라서 변학도의 여기저기를 두들긴다.)
이놈의 뱃때기는 한강수 인가
쌀 삼만석 먹고도 배탈이 안나.
이놈의 허리통은 백두산인가
무명 삼만통 두르고도 모자란단다.
이놈의 아가리는 작두날 인가
열전 삼만냥 먹고도 이가 안 상해.
이놈의 팔뚝은 지옥 차산가
수만 백성 죽이고도 살만 찐다.
(계속해서 한참 동안 춤을 춘다)
(다시 창을 한다)
나온다 나온다 원귀가 나온다.
밥 못먹어 굶어 죽은 원귀가 나온다
(이때 무덤C에서 원귀 꺽달이가 나온다. 춤을 추면서 차츰 변학도에게 가까이 간다.)
나온다 나온다 원귀가 나온다.
계묘년 흉년에 당가루 핥아 먹다가
몽당 비짜루 맞아죽은 원귀가 나온다
수재비 아흔 아홉그릇 먹다가
배터져 죽은 원귀가 나온다.
(이때 무덤D에서 원귀 쩔뚝이가 나온다. 춤을 추면서 차츰 변학도에게로 가까이 간다.)
나온다 나온다 원귀가 나온다.
갑오년 난리에 죽은 원귀가 나온다.
부러진 팔다리 내 놓으라고 원귀가 나온다.
없어진 목숨 내 놓으라고 원귀가 나온다.
(이때 무덤E에서 원귀 팔뚝이가 나온다. 춤을 추면서 차츰 변학도에게로 가까이 간다. 마당쇠 역시 춤을 추면서 변학도에게로 가까이 간다.)
꺽달이: 내 곡식 내 놓아라.
쩔뚝이: 내 다리 내 놓아라.
팔뚝이: 내 목숨 내 놓아라.
마당쇠: 내 목숨 내 놓아라.
변학도: (덜컥 주저앉더니 와들와들 떤다.) 어커커..이거 큰일 났구나. 여봐라 게 누구 없느냐? 여보시오 구례현감 날 버리고 혼자 가시오. 아니 이거 어커커..일났구나 일났어. 여보시오 운봉현감 날 버리고 혼자 가시오. 통인아~방자야..이거 날살려라..날 살려..(쩔쩔맨다)
(꺽달이 쩔뚝이 팔뚝이는 춤을 추다가 하나씩 무덤속으로 들어간다)
(마당쇠는 계속 춤을 춘다)
변학도: (마당쇠에게) 제발 살려주십시오. 봉고파직은 하시더라도 모...모..목숨만 살려주십시오. 저의 죄는 죽어 마땅합니다만 그게 어디 저의 죄지 제 모가지 죄입니까..
마당쇠: 이 친구가 영 돌았다니께.. 변학도라고 하니께 춘향전의 어사 출도 장면으로 착각을 한 모양이로구나 어사 정도가 문제가 아니여...
변학도: (같은 어투로 계속한다)무얼 바칠까요, 쌀, 돈, 비단, 그리고 계집 무엇이든지 다 바칠터이니 헤헤..그저..
마당쇠: (변학도의 목덜미를 잡아 일으키면서) 어사 무서운 줄만 알고 원귀 무서운 줄은 모르는 구나. 어사는 그런 걸 갖다 바치면 되지만 우리는 안 될 것이여. 어사란 건 도대체 뭔가.
같은 도적놈이여..어사 때문에 죽은 원귀가 얼마나 되는데..
변학도: (일어나면서) 그럼 살려주시는 겁니까? 몇 냥이나 바치면 될 갑쇼?
마당쇠: 이놈아. 너의 목숨을 바쳐라.(어사의 목소리를 흉내내면서) 우리는 염라대왕이 보낸 어사다.
면학도: 한번만 살려주십시오. 죽은 놈이 어떻게 목숨을 바칩니까..
마당쇠: 이녀석 이제 정신이 돌아오는 가베..
변학도: (주위를 한번 둘러보고 나서 땀을 씻고 나서) 여보게 마당쇠 아닌가?
마당쇠: 내 단단히 일러두겠어. 이제부터는 양반이고 나발이고 다 집어 치우고 다만 귀신으로서의 본연의 자세에 돌아와서 너의 죄를 솔직히 자백하고 용서를 빌어라.
변학도: 다 자백 할 수밖에 없지..이왕 이렇게 된 바에..나도 아무에게도 털어놓지 못했던 내 속이나 뒤집어야지.
미당쇠: 그럼 우선 왜 그렇게 도적질을 많이 했는지 말해보랑께..
변학도: 사실은 나대로 곡절이 있었는 거야...나도 원 한 자리 할려고 있는 것 없는 것 다 긁어모아서 돈 만 냥을 만들었잖나..
마당쇠: 그래서?
변학도: 그래서 그 돈을 싸가지고 세도 높은 김정승을 찾아가서 온갖 정성을 드리기 삼년..가까스로 원 한자리를 한 거야..그러니 우선 그 만량이라는 밑천을 뽑아야 하지 않겠나..그리고 어디 밑천만 뽑아서야 되나.. 끊임없이 또 갖다 바쳐야하고 또 다시 벼슬을 살 밑천을 장만 해야지..
마당쇠: 혼자 먹은 것이 아니라 다른 높은 양반네들과 나누워 먹었다는 수작이로구나..
변학도: 좋은 건 다 훑어 올리라고 나를 원을 시킨 건데 하는 수 있나.. 뭐 내가 잘 했다는 건 아니고..다만 도적놈 부하로서의 고민이 있었다는 거야.
도적놈들끼리의 다툼은 또 얼마나 많다고. 하여튼..벼슬 산다는 것도 더럽고 치사스럽고 괴로워..
마당쇠: 그런 개수작이 어디 있단 말이여. 벼슬살기가 그렇게 괴롭거든 우리 집에 와서 머슴이나 살았으면 좋았을 걸 그랬구나.
변학도: 내가 잘했다는 건 아니야.
마당쇠: 그럼 정상을 참작해 달라는 소리여?
변학도: 그것도 아니여. 처분대로 해줘..
마당쇠: 그럼 내가 묻겠다. 너가 훔친 쌀은 모두 얼마나 되나?
변학도: 그걸 어떻게 다 기억하겠나.. 하지만 일 년에 삼만 석은 모았으니까..가만있자..벼슬살이를 이십년 했으니까..육십 만석은 훔침 셈이여..
마당쇠: 너 때문에 굶어 죽은 백성이 얼마나 되는지 생각이라도 해 보았느냐? 이 죽일 놈아!
변학도: 어떻게 빌어야 하겠나..
마당쇠: 빌어서 될 문제가 아니야..그 다음 너가 긁어모은 돈은 얼마나 되나?
변학도: 적어도 이십만 냥은 될 꺼야..
마당쇠: 너가 죽인 사람은? 직접 죽인 사람만
변학도: 적어도 삼천 명은 될거야..
마당쇠: 네가 겁탈한 여자는?
변학도: 그것도 삼천 명은 되지..
마당쇠: 나는 옆전 한잎 못 훔치고도 곤장을 백대나 맞았는데..너는 그만한 죄를 짖고 어이 무사하기를 바라겠느냐.
변학도: 아니..아니..그 죄를 다 다스리겠다는 거야?
마당쇠: 입 닥쳐 그리고 묻는 말에 우선 대답해라..전국에 너 같은 양반이 얼마나 되나?
변학도: 벼슬한 양반이 적어도 삼천 명은 될 거고 벼슬안한 양반은 수도 헤아릴 수 없지..
마당쇠: 벼슬한 양반은 다 너같이 도적질을 했지?
변학도: 그야 말할 필요가 없지..내가 특별히 도적질을 많이 한 게 아니야..
마당쇠: 그럼 전국 양반이 다 도적질 한 걸 합하면 모두 얼마나 되는가? 또 몇 백 년 동안 도적질한 걸 다 합하면 얼마나 되는 것이여?
변학도: 어휴..그걸 어떻게 다 셈한단 말이야..숫자가 모자란다.
마당쇠: 농민은 그 만큼 피해를 입었단 말이여. 그러니 너희들은 그 만한 벌을 받아야 할 것이 아니여..
변학도: 그만한 벌을 받아?! (깜짝 놀라 어쩔줄 모른다) 모..모..목아지가 백만 개가 있어도 모자르겠는데..아니 그게 참말이여?
마당쇠: 나도 어려운 수는 모르니 그저 곤장 백만 대만 맞도록 하렸다.
변학도: 곤장 백만대라?! 백만대?! 배..배.백만대!(뒤로 넘어져 버린다..비틀거린다.)
무덤C: 내가 때린다.
무덤D: 내가 때린다.
무덤E: 내가 때린다.
마당쇠: 백만대 맞고 나면 죽은 몸둥이도 없을 터이니 최후의 소원이 있거든 말하렸다.
변학도: (가까스로 일어나면서) 꼭 한 가지 소원이 있다.
마당쇠: 무어냐?
변학도: (자기 무덤을 가르키며) 오늘이 바로 추석이라 손자놈이 저렇게 제물을 차려 놓았으니 저걸 좀 먹도록 해 주었으면 좋겠는데..
마당쇠: 좋다! 그만한 소원을 못 들어 주겠느냐.
변학도: (제물을 먹기 시작한다) 한잔 같이 들었으면..
마당쇠: 나는 내걸 먹겠다. ( 자기 무덤 앞으로 간다)
변학도: 내것이 더 좋으니 이걸 먹지..
마당쇠: (벌떡 일어서면서) 그렇구나..너의 무덤 앞에는 온갖 산해진미가 다 차려져 있구나. 보아하니 너의 손자도 도적놈인 모양이로구나.
너의 손자가 무얼 해 먹고 사는지 몰라도 도적질을 안 하고 서야 이런 제물을 차릴 수가 있겄어?
변학도: 아마 그런 모양이야.
마당쇠: 너 죽을 때 아들에게 돈을 얼마나 물려주었나?
변학도: 이것저것 다 보태면 한 이십만 량은 물려준 셈이지..
마당쇠: 아들이 손자에게 물려준 건 얼마나 되는가?
변학도: 모르긴 하지만..아들 녀석도 똑똑한 편이었으니까..재물을 줄이지야 않았겠지...
마당쇠: 그렇다니까! (다시 화를 낸다) 죽은 너가 아무리 잘 못 했다고 해도 소용이 없는 것이여... 살아있는 너의 손자가 도적질을 하고 있다면 그게 문제란 말이여!
변학도: 그럼 어떻게 해야 되나...그럼 내가 손자를 찾아가서 마음 고쳐먹으라고 꾸짖을가..
마당쇠: 좋다. 나는 내 손자를 찾아가서 용기를 내라고 격려할 것이여.
변학도: 지금 갈까?
마당쇠: 갈려면 꿈에 나타나야 할 건데 꿈에 나타나기에는 아직 좀 일러..자정은 넘어야 울리지..
변학도: 우선 술이나 마시자.
마당쇠: 좋다.
변학도: 둘의 술을 섞어 먹자. 아니야..술을 섞어 먹으면 짬봉이 되어서 몸에 해로울 텐데..
마당쇠: 그건 산 사람의 경우고..죽은 우리가 어디 몸이 있나.
변학도: 그렇지 참..
(둘은 술을 마시며 달을 쳐다 본다.)
마당쇠: 달이 밝구나.
변학도: 정말 밝구나.
마당쇠: 물소리도 좋구나.
변학도: 바람소리도..
마당쇠: 산 사람들 이런 묘한 기분을 모를 것이여.
변학도: 올해 농사가 풍년이었으면 좋겠구나.
마당쇠: 이제 너도 농사걱정을 하게 되었구나..여하튼 반가운 일이야.
변학도: 세상소식을 좀 알아보자.
마당쇠: 어떻게 알아볼가.(관중석을 향해서)
여보게 젊은이..
관중석: 무슨 일이지?
마당쇠: 올해 농사가 어떻든가?
관중석: 되긴 잘 된 편이여..
변학도: 그거 다행한 일이로구나
관중석: 그러나 그렇게 좋아할 것 못 되..
마당쇠: 왜? 내 손자는 무어라고 하던가?
관중석: 기뻐하면서 한숨 쉬더라.
변학도: 왜?
관중석: 농사가 잘 되었으니 기뻐하고 빚이 너무 많으니까 한숨 쉬지..
마당쇠: 그녀석..생각하던 대로구나..무슨 빚인가?
관중석: 장리, 고리채, 농협의 융자금 그 외 사소한 빚이 한두 가지가 아니라더군..그리고 옛날 사람들은 설명해도 잘 모르겠지만 쌀값보다 다른 물가가 너무 높아서 농사를 자어도 품값이 안 나온다고 한 숨 쉬더군.
마당쇠: 고생이 여전한 모양이구나. 옛날에 잘 못 되었던 일들이 아직 그대로 다 있나.
관중석: 잊혀진 것도 있고 아직 그대로 있는 것도 있어.
마당쇠: 그대로 남은 잘못은 어떻게 할 건가.
관중석: 고치도록 싸워야지..
마당쇠: 누가?
관중석: 농민들이 그리고 여기 모인 우리들이...싸울 수 있는 역사적 계기가 나타나기 시작 했어..
마당쇠: (절을 넙죽히 하면서) 잘 부탁한다. 꼭 싸워서 우리 손자가 잘 살 수 있도록 해다오.
변학도: 나도 동감이야.
무덤C: 잘 싸워라.
무덤D: 이겨라.
무덤E: 믿는다.
마당쇠: (변학도에게) 너의 손자를 찾아가서 단단히 꾸짖어야 한다. 마음 고쳐먹지 않으면 가만히 두지 않겠다고 다짐해라. 분명히 말을 전하면 곤장 백만 대 중 반은 감해준다.
변학도: 나머지 반은?
마당쇠: 너의 손자가 마음을 고치면..감해준다.
변학도: 허허..내가 살고 죽는 것은 손자에게 달렸구나.
마당쇠: 자 들어가서 한 잠 자고 자정이 넘거든 현몽하러 가자..
변학도: 그러도록 하자
(둘다 각각 자기 무덤으로 들어간다.)
첫댓글 전국민들께서 이 동영상을 보실 수 있는 방법을.국민들이 아무리 투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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