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감생심의 도전에 감동하여
나흘 전인 지난 월요일(2021년 2월 22일) 오전의 일이었다. 요즘도 매주 대여섯 차례 오르내리는 등산길의 정상을 7~8백 미터 앞에 둔 지점에서 거의 반신불수인 누군가가 힘겹게 걷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천천히 다가가 살피니 왼발을 질질 끌면서 오른 쪽 발로 조금씩 내딛으며 걷는 속도가 느려 이제 겨우 걸음마를 배우는 아이 걸음마를 빼닮았다. 적어도 몇 분 동안 일정한 거리를 두고 느릿느릿 뒤따르다가 속도를 내 추월했다. 그 순간 “수고 많으십니다”라는 인사를 건네며 고개를 들어보니 몇 해 전에 한두 차례 이 등산길에서 마주쳤던 낯설지 않은 이였다.
과문한 탓에 뇌졸중에 대한 지식이 거의 맹탕이다. 병원을 드나들며 주워들은 풍월에 꿰맞출 때 뇌졸중은 뇌혈관이 막히거나 터지는 두 가지로 나뉘지 싶다. 먼저 뇌혈관이 막히는 경우가 뇌경색으로 허혈성(虛血性) 뇌졸중이라 하고, 둘째로 뇌혈관이 터지는 경우가 뇌출혈로서 출혈성(出血性) 뇌졸중으로 규정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한편 이를 한방에서는 중풍(中風)이라고 호칭하는 것 같다. 그런데 뇌에 혈액을 공급하는 혈관이 막히거나 터지면서 뇌에 손상을 입혀 치명적인 신체장애는 물론이고 최악의 경우 사망에까지 이르는 고약한 병으로 특히 노년층을 공포에 떨게 하고 있다.
내 자신이 두 차례(2016년과 2018년) 뇌졸중이 가볍게 지나가는 아찔한 경험을 한 뒤로 같은 증상으로 거동이 불편한 이들을 만나면 결코 남 같지 않아 절절히 공감한다. 그렇다고 그런 이들을 부여잡고 호들갑을 떨지 않는다. 왜냐하면 과공(過恭)과 과찬(過讚)이 비례(非禮) 이듯이 과유불급이라는 이유에서 동병상련을 공감할 뿐이다. 따지고 보면 뇌졸중으로 고생을 많이 하는 경우에 비해 나는 천우신조였던지 가볍게 지나갔기에 정상 생활이 가능하다. 그러나 자칫 조금만 증상이 악화됐어도 나 역시 다른 이들과 다를 바 없었으리라.
몇 해 전 따스한 봄날 이른 새벽에 손전등을 밝히고 등산했다가 어슴푸레한 숲길을 휘적휘적 내려오다 등산로 초입 지점의 된비알 오르막길을 힘겹게 올라오는 그이와 맞닥뜨리는 순간 엄청 놀랐다. 가파른 비탈의 데크(deck) 계단을 쓰러질 듯 위태위태하게 오르는 안쓰러운 모습에 마음이 놓이지 않아 걸음을 멈추고 뒷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봤다. 오른 손에 지팡이를 짚고 계단 하나를 오르는데 몇 분이 소요되는 것 같고 심하게 몸이 휘청대다 쓰러질까 싶어 불안하기 짝이 없었다. 그리고 어찌나 느린지 그 자리에 붙박이로 서있는 것인지 걷는 것인지 분간이 어려웠다. 또 한 번은 정상에서 가까운 산꼭대기 능선 길을 걷는 모습을 지켜봤는데 왼쪽이 마비되어 오른발로 걷고 왼발은 억지로 끌려가는 모양새였다. 두 차례 그가 등산하는 걸 미루어 짐작할 때 심한 장애에도 불구하고 이따금 작정하고 등산을 나서지 싶었다. 정상적인 내가 오가는데 대략 3시간쯤 걸리는 길인 까닭에 그이는 아마도 왕복에 족히 6~7시간 소요될 성 싶었다.
같은 등산로를 매주 평균 5회 정도 오르내리기 시작한 지 18년째에 접어 들었기 때문에 적어도 4천 번 이상 오갔던 길이다. 그동안 뇌졸중 증상을 보이는 이들이 오르던 경우는 단 두 명을 봤다. 그 중에 비교적 증상이 경미했던 60대 하나는 언젠가 하산 중에 낙상 사고로 119 구조대의 들것에 실려 내려오던 모습을 보인 뒤에는 자취를 감췄다. 그런데 나흘 전 정상 부근에서 다시 재회했던 이는 중증인데도 아직까지 포기하지 않고 등산에 도전하며 건강을 지켜내려는 눈물겨운 의지가 무척 존경스러웠다. 만일 내가 그 정도의 중증 장애를 가졌다면 심리적인 패배자로 전락하여 두문불출한 채 끙끙 앓으며 애먼 가족들을 들볶았을 개연성이 다분하다. 그이의 세속적인 나이는 분명 나보다 아래로 여겨진다. 하지만 정신적 세계에선 내 스승이며 본보기를 넘어선 경지에 이르렀기에 흉내 내거나 따를 수 없다.
그이가 등산로에서 걷는 모습을 뒤에서 훔쳐볼라치면 걷는 것인지 서 있는 것인지 분간이 어렵다. 그런 모습이 안타까워 구태여 저렇게까지 힘겹게 애를 써야 할까라는 괴이한 생각을 지울 수 없다. 하기야 ‘참새*가 어이 봉황의 뜻을 알리요’마는 생각이 짧고 얕은 내가 보기엔 무리라고 여겨져 내뱉는 독백이다. 나흘 전 한없이 굼뜨게 발걸음을 내딛던 그를 뒤따를 수 없어 간단히 수인사를 건네고 앞서 걸어 정상에 도착해 한식경쯤 운동을 마치고 내려오던 중이었다. 그런데 그이는 처음 만났던 위치에서 불과 4~5백 미터 걸어 아직도 정상에 닿으려면 3~4백 미터 남아있었다. 그렇게 몰입하여 정상을 향하는 진지한 모습에 가슴이 찡해서 조붓한 길가로 비켜 걸으며 “수고 하세요”라는 한 마디 건네고 몇 발짝 걷다가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뒤돌아서서 우두커니 그의 뒷모습을 지켜보다가 ‘참으로 대단하다’라는 생각에 고개가 저절로 끄덕여졌다. 모진 병마가 그에게 장애자라는 멍에를 씌웠을지라도 결코 쓰러지지 않는 강인한 불굴의 정신과 도전 의지는 의당 본받아야 할 본보기가 분명하다. 여태까지 스스로의 삶을 지혜롭게 꾸려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신체적 장애에도 불굴의 도전 정신으로 똘똘 뭉친 그이를 넘겨다보면서 내가 인지했거나 깨우친 앎이라 여겼던 선 떡 부스러기 같은 허접한 지식 나부랭이들은 관견(管見)*처럼 아주 편협하고 부질없다는 생각이 무겁게 짓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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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새(雀) : 물명고(物名攷 : 정약용이 지은 것으로 알려진 어휘집)에 의하면 참새의 한자어 표기 표준은 ‘작(雀)’이었다. 그 외에 와작(瓦雀), 빈작(賓雀), 가빈(嘉賓)이라고도 표기했다. 한편, 늙어서 무늬가 있는 참새를 마작(麻雀), 어려서 주둥이의 부리가 황색인 참새를 황작(黃雀)이라고도 호칭했단다.
* 관견(管見) : 직역하면 ‘가는 붓 대롱으로 하늘을 본다’는 의미이다. 장자(莊子)의 추수편(秋水扁)에 나오는 말로서 ’가는 붓 대롱으로 보는 하늘은 좁기만 하다‘ 뜻을 함축하고 있다.
경남문학, 2021년 이름(통권135호), 2021년 6월 5일
(2021년 2월 26일 금요일)
첫댓글 그분의 도전을 응원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교수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