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재 너머 삼계로
오월이 중순에 접어든 토요일이다. 엊그제 주말 날씨를 검색해 봤더니 강수가 예보되었다. 비가 내리면 산행은 머뭇거려져도 산책은 나서볼까 싶어 행선지를 물색해두었다. 대산 들녘을 지나 유등으로 나가 한림 강둑을 따라 걸어보려고 했다. 그런데 주말이면 가끔 산행을 함께 나서는 벗이 전화가 와 우중이라도 산책을 나서보려고 해 행선지를 위임하니 무학산 임도를 걷자 했다.
이른 아침 반송시장으로 나가 김밥을 두 줄 마련했다. 벗과 접선하기로 한 합포구 마산의료원 앞으로 나가 진동으로 가는 버스로 갈아타 밤밭고개에서 내렸다. 그곳을 우리의 우중 트레킹 출발지로 삼았다. 빗줄기가 가늘게 내려 우산을 펼쳐 쓰고 율곡마을 앞으로 걸었다. 율곡마을 앞은 이삼십 년 전과는 많이 달라졌다. 5호 국도가 쌀재터널로 통과하고 마창대교 진입로가 생겨났다.
율곡마을에서 시골길 따라 걸으니 텃밭은 근교 농업이 발달해 각종 푸성귀들을 키웠다. 어시장 노점이나 댓거리 골목 시장으로 공급되는 채소들인 듯했다. 예곡마을로 가니 비닐하우스에서 국화를 키우는 곳도 있었다. 도로망 확충으로 농지가 잠식되기 전에는 그곳 일대는 대단지 국화 재배지였다. 절화용 국화를 촉성으로도 키우고 억제해서도 키워 전국 곳곳 장례식장으로 공급했다.
예곡마을에서 더 깊숙한 동네가 두릉마을었다. 마산 시내에서 들어온 마을버스가 한 대 지나갔다. 두릉마을 어귀 모내기를 위해 다려 놓은 무논에서는 개구리소리가 들려왔다. 전주 이 씨 문중 재실 ‘숭례재’가 나왔다. 진동 일대 더러 사는 전주 이 씨들은 효령대군 후손들이었다. 쌀재를 향해 오르니 ‘두릉 공림’으로 곡부 공 씨들이 터 잡아 살아 ‘추원재’가 덩그렇게 세워져 있었다.
숲길을 따라 올라가니 만날고개에서 오는 길과 합류했다. 쌀재는 광려산과 대산을 거쳐 온 낙남정맥이 대곡산과 무학산으로 이어진 잘록한 고개였다. 남쪽은 아까 지나온 두릉이고 북쪽은 감천이었다. 산마루 정자에서 비를 피하면서 가져간 김밥과 곡차를 들었다. 이후 나아갈 길은 무학산 꼭뒤로 난 길고 긴 임도를 걸을 생각이었다. 나는 겨울에 한 차례 걸어 봐 익숙한 지형이었다.
아카시나무들은 끝물 꽃송이를 달고 있었다. 초본에서 핀 풀꽃은 드물어도 찔레꽃이 향기를 뿜고 임도 가로수로 심어둔 이팝나무도 허연 꽃잎이 보였다. 마산 시내와 인접한 무학산 기슭에는 둘레길을 뚫어 높은 산에 오르기 힘든 고령층이 이용했다. 산세가 험한 무학산 서북쪽은 수 년 걸친 연차 사업으로 임도가 개설되는 중이다. 산림 개발과 산불 진화 차량 진입을 위해서였다.
안개가 자욱하게 끼어 주변 산세 조망은 어려웠다.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이 나오고 웅장한 바위더미에 폭포수가 쏟아지는 곳도 있었다. 감천으로 내려가는 갈림길을 지나니 시루봉으로 오르는 옛날 지게질을 복원해 놓았다. 산모롱이를 돌고 돌아 원계로 내려가는 갈림길을 만나 길바닥에 퍼질러 앉아 남겨둔 곡차를 마저 비웠다. 몇몇 젊은이들이 비옷을 입고 시루봉으로 올라갔다.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나 북쪽으로 난 임도를 따라 계속 걸었다. 그쪽은 작년 여름 동행한 벗과 지났던 구간으로 임도 공사 진행 중이었다. 날씨가 무더웠던 그날 둘은 중장비가 길을 뚫는 마지막 지점에서 개척 산행으로 두척으로 넘었더랬다. 새로 뚫은 길은 정비가 잘 되어 있었다. 앞으로 계속 나아가면 임도는 미 개통 구간이 예상되어 우리는 원계로 내려가는 길을 따라 걸었다.
가늘게 내리던 비는 그쳐 소강 상태였다. 원계마을에서 삼계 아파트단지 상가로 향해 돼지국밥집을 찾아 자리에 앉았다. 맑은 술과 함께 소진된 열량을 보충했다. 보슬비가 내리는 속에 인적 드문 임도를 대여섯 시간 걸었으니 밥상을 받을만한 했다. 반주로 맑은 술을 채운 잔을 비울 자격도 갖추었다. 식당을 나와 버스를 탔더니 삼계 종점으로 들어갔다가 마산으로 되돌아 나왔다. 21.05.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