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유의 지시를 받은 황욱은 유성이 있는 홍농군으로 향했다. 황욱 자신에게 있어서도 오랜만의 방문이었다. 황욱이 홍농에 도착했을 때, 유성은 이제 막 다섯번째 생일이 지난 딸 유은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옳지~ 잘하는구나."
홍농에 자리를 잡은 이후 유성에게 있어 생활의 유일한 낙은 바로 가족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었다. 거의 매일 그런 시간을 보내고 있었기 때문에, 유일한 낙이라는 표현은 어울리지 않을수도 있었다. 유성의 처소에 도착한 황욱은 그런 유성의 모습을 잠시 바라보다가 말을 걸었다.
"전하, 소생 황욱이옵니다."
"아니, 이게 누구십니까? 황 공이 아니십니까?"
"오랜만에 전하를 뵙습니다."
"나야말로 오랜만입니다. 이게 대체 얼마 만입니까?"
유성은 오랜만에 찾아온 황욱을 반갑게 맞아주었다. 하지만 그런 유성을 바라보는 황욱의 표정에는 미세하게나마 유성에 대한 연민이 자리잡고 있었다.
'당신께서는 어째서...'
유성은 자신의 서재로 황욱을 데려갔다. 조금 지나자 원영이 차를 내왔다.
"망극하옵니다."
"아닙니다. 오랜만에 찾아주셨는데 즐거운 시간 보내시지요."
원영이 나가자, 유성이 황욱에게 물었다. 황욱이 아무런 이유 없이 움직일 사람이 결코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는 유성이었다.
"이렇게 오랜만에, 어인 일로 이 사람을 찾아 오시었소?"
"강유 장군의 부탁을 받고, 전하를 설득하고자 찾아뵈었습니다."
"백약의 부탁? 그게 무엇이오?"
"실은 위의 부흥군이라 주장하는 세력이 하북에서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뭣이!? 그게 사실이오?"
유성은 반란이 일어났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 언핏 보면 이해가 안되는 일이었지만, 사정을 알고 나면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유성은 홍농에 자리를 잡은 이래, 가끔씩 자신을 찾아오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아예 낙양과의 소통의 문을 닫아놓고 생활했기 때문이었다. 사실 황욱의 유성에 대한 연민은 여기에서 기인하는 것이었다.
"예, 전하. 이미 하북의 8할이 반군의 손에 들어갔습니다."
"뭐라구요? 8할 씩이나?"
"그렇습니다, 전하."
"그렇게 될 동안 백약은? 등애 장군은? 대체 무엇을 했단 말이오?"
"여기 오기 전에 강유 장군에게 들었습니다만, 반군에 대단한 자들이 있는 모양입니다. 토벌군으로 나선 위연 장군이 아무것도 못해보고 패배했다고 합니다."
"아니 어떻게 이런 일이..."
유성의 놀라움은 엄청난 것이었다. 그만큼 황욱이 말하는 지금의 사태는 충분히 충격적인 것이었다.
"강유 장군께서는 어떻게든 저들을 막아보려 애쓰고 계십니다. 제갈첨 공자도 이미 병부에 합류하여 강유 장군을 돕고 있습니다. 등애 장군은 위연 장군의 구원을 위해 업성에 나가 있습니다."
"어떻게 이럴수가..."
"지금 그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반군에 대항할수 있는 구심점입니다. 그리고 그 역할을 해내실수 있는 분은, 전하 뿐이십니다."
예전의 유성이었다면 단번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황욱과 함께 낙양으로 갔을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 황욱의 눈앞에 있는 유성은 망설이고 있었다. 그리고 황욱은, 유성이 그러는 이유를 알고 있었다.
5년 전, 천하가 촉에 의해 통일되어 한실이 다시 재건된 이후, 유성은 그 누구보다 열심히 인의 세상을 지켜나가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양지가 존재하는 곳에는 언제나 음지 또한 존재하게 마련이었다. 유성이 열심히 노력했다는 것은 그가 많은 일을 했고, 그에 따라 그를 따르는 사람이 늘어간다는 것을 의미했다. 하지만 그는, 황제가 아니었다. 황제의 형이라고 하는, 조금 특수한 위치의 황족일 뿐이었다. 황제가 아닌 사람의 세력이 커진다는 것은 황제의 입장에서 볼 때 위험한 것이었다. 그로 인해 황제 유선은 형 유성을 조금씩 견제하기 시작했다. 황제를 따르는 세력들이 이에 동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알게 모르게, 유성의 세력을 조금씩 약화되기 시작했다. 마치 한고조 유방이 통일 이후 한신을 비롯한 공신들을 이런저런 이유를 붙여 하나둘씩 제거해나갔던 것처럼.
유성이 그런 낌새를 모를리 없었다. 언제부턴가 황제가 자신을 보는 시선이 심상치 않았다. 그건 알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래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자신은 그저 아버지의 유업을 받들어 이 세상을 지켜나갈수만 있다면, 그걸로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 세상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았다. 무엇이 옳은 길인가를 고민하던 유성은, 결국 모든 것을 내놓고 홍농으로 떠났다. 그리고 조정과의 모든 선을 끊었다. 자신이 사라지는 것이, 인의 세상을 지켜나가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유성은 지금 망설이고 있는 것이었다. 자신이 세상으로 다시 나가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가를 그는 고민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런 그의 고민을 알고 있는 황욱이 말했다.
"전하, 전하께서 무슨 이유로 망설이시는지 소생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자신의 존재로 인해 이 세상이 어지러워지는 것을 막고자 여기에 계시는 것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이 세상이 전하를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위기에 처한 인의 세상을 구해달라고 전하께 손을 내밀고 있습니다. 전하께서는, 이 손길을 외면하시면 안됩니다. 부디, 다시 일어서주십시오."
"하지만, 난..."
"전하, 소열제 폐하의 유업을 저버리실 생각이십니까!"
잠시 생각하던 유성은 어렵게 입을 열었다.
"며칠 내게 생각할 말미를 주시오. 생각이 정리되는대로, 기별을 넣겠소."
"전하..."
"지금 대답하지 못해 미안하오..."
돌아서는 유성의 모습이 황욱은 그저 안타까울 뿐이었다. 한편, 낙양의 강유는 황제 유선을 알현하고 있었다.
첫댓글 재미있네요 ㅋㅋ 4화 기대해볼게요 !
유선의 견제가 있었군요 ㄲ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