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불교는 한국역사의 전통과 그 전래에 따라 고구려불교, 신라불교, 백제불교의 찬란한민족문화의 역사와 정신문화의 그 맥을 말한다.
고려시대의 총체적 불교의 모습은 성숙된 불교로 발달하였고 중국불교 형태를 따라 종파불교의 모습으로 변천하기 시작하여 종지(宗旨),종풍(宗風)이 선종(禪宗)과 교종(敎宗)의 흐름으로 양분되었다. 고려말에는 선교양종과 구산선문이 흡수 통합되어 한국불교는 통불교(統佛敎)의 양상으로 발전하였다. 이조시대의 불교는 배불숭유 정책으로 불교는 배척되고 유교가 국민생활의 정신문화로 자리잡게되고 산중불교로 전락하였다.
근대불교는 물질문명과 근대적불교와의 만남이 적응되지 못하고 승단의 문란한 변화에 따라정화운동이 일어나 종단분규에 휩싸이게 되었다. 또한 현대 사회의 불교는 그 역할을 다하지못하였고 무질서의 늪에 빠진 모습이었으며 동족상쟁의 뼈아픈 시절을 겪고, 황폐화된 국토와 혼란의 나락에서 국민대중은 방황하고 있었다.
종교적 양심과 대승적 이념으로 지은보은(知恩報恩)의 사명을 실천 구행하고자 대승불교 정신의 극치인 법화경의 보살실천사상을 종지로 하여 일승불교 현정회(一乘佛敎 顯正會)를 창립하였다. 뜻있는 문도대중이 여러 고승 대덕 스님들과 태허(太虛) 개산조 큰스님을 종주로 하여 불교재산관리법 하에 정부에 불입종(佛入宗)이란 종명으로 1965년 등록하여 창종하였다.
1979년 6월 24일 태허 개산조 큰스님께서 세연을 다하시고 200여명의 수법제자를 두시고 열반에 드시었다. 수법제자 중에 경조(鏡照)스님께서 2세 종정에 추대되었고, 3세 종정 종현스님, 4세 종정 운호 대천 스님, 5세 종정 운공 혜웅 스님께서 추대되었다. 그리고, 1988년 정부로부터 불교재산관련법 폐지로 본종단을 개편하여 재단법인 대한불교 관음종(觀音宗)으로 법인승인을 받았다. 따라서 대한불교 관음종은 한국불교 현대사에 우뚝한 종단으로 국내외의 선도적 역할을 하며 국가사회 발전에 큰 역할을 다하고자 한다.
서울시 종로구 숭인동 178-3번지 낙산 동쪽에 있는 사찰로써 대한불교 관음종 총본산이다. 1930년 5월에 태허 홍선대종사님이 창건하였고, 그 뒤 두차례의 증축을 거쳐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창건 이래 현재까지 〈법화경〉을 중심으로 수행과 대중불교운동을 지향한 법화신앙의 중심사찰로서, 현위치에 절을 세우면 서울이 편안하고 시민생활에 안정을 가져온다는 풍수지리설에 의해 터를 잡았다고 한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광명전과 천수관음이 봉안된 관음전, 석굴암, 산신당, 선방이 있다. 또한 석굴암에 모셔진 불상은 누발에 백호공이 남았고 호상에 두귀가 길고 통견으로 두 어깨에 가사장엄이 있으며 장대가 일직선으로 복부에 새겨지고 유두의 솟은 모양이나 복부에 오지를 펴고 있는 기법이 9세기에서 10세기초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만력 2년 10월(1574년 10월 조선조 선조)에 조성된 청동부처님을 소장하고 있는 전통사찰이다.
서울의 중심지역에 위치한 낙산 묘각사는 서울시민의 안심입명의 귀의처로서 교통이 가장 편리한 사찰로 청정법신의 구원불을 봉안하고 보살의 어머니격인 관음보살을 모시고 있다. 또 석굴암의 불상은 모두 북향을 하였는데 일반적인 불상배치법과는 달리 북쪽을 향한 것은 이북동포의 안녕과 남북통일을 염원하는 뜻에서 취한 것이라 한다.
대한불교관음종 1965년 12월 서울 숭인동(崇仁洞)의 묘각사(妙覺寺)에서 법화종(法華宗)의 이홍선(李泓宣)이 분립하여 고려 대각국사(大覺國寺) 의천(義天)을 종조(宗祖)로 창시한 불교 종단.
한국 불교 26개 종단의 하나이다. 이듬해 발효된 불교재산관리법에 의거, ‘대한불교불입종 포교원(布敎院)’으로 불교단체 등록을 한 후, 70년 경내에 석굴암(石窟庵)과 대불(大佛)의 입상을 세웠고, 1972년 ‘대한불교불입종’으로 고쳤다가, 다시 1988년에 ‘대한불교관음종’으로 종단 명칭을 변경하였다.
이 종파는 석가불을 본존(本尊)으로 삼고, 석가의 교설 중 핵심교리인 법화(法華)사상을 정혜쌍수(定慧雙修)로써 체득함을 생활신조로 하고 있다.
근본경전은 《법화경(法華經)》이나, 기타 경전의 연구도 규제하지 않으며, 또 수행방법으로는 법화종에서 “남무묘법연화경(南無妙法蓮花經)”으로 염송(念誦)하던 것을 범어로 고쳐 “나모살달마푼다리카수드라”로 염송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