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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 1: 2 어느 때까지리이까?
합 1: 2 어느 때까지리이까 - 여호와여 내가 부르짖어도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니 어느 때까지리이까? 내가 강포로 말미암아 외쳐도 주께서 구원하지 아니하시나이다. ( 여호와여 내가 부르짖어도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니 어느 때까지리이까 내가 강포를 인하여 외쳐도 주께서 구원치 아니하시나이다. )
하박국 선지자가 하나님의 침묵을 원망하면서 부르짖은 까닭은 1절에 "선지자 하박국이 묵시로 받은 경고라"라는 말씀을 잠시 망각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경고장은 그 자체가 하나님이 우리에게 관심이 있어서 그 관심의 표현으로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박국의 생각처럼 하나님이 침묵하시는 것은 아니다.
'하박국'은 하나님의 침묵이 아니라 분명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이 경고장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셔서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려는 끊임없는 사랑을, 하나님의 강한 의지를 보여주신다.
이것은 하나님의 지극한 관심이었지만 하박국은 이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1] 여호와여 내가 부르짖어도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니 어느 때까지리이까?
(1) 내가 부르짖어도
하박국 선지자가 온 힘을 다해 여호와께 부르짖었고 큰 소리로 외쳤다. 부르짖은 기도는 눈가림으로 기도한 것이 아니라 마음속에 하나님을 생각한 깊은 신앙을 보여준다.
심중의 소원을 간절하게 기도한 것을 외쳤고 부르짖었다고 했다. 이렇게 최선으로 부르짖는 것은 그가 기도한다는 증거이고 그것은 그가 영적으로 깨어있다는 증거였다.
물론 기도도 종교적인 습관으로 중언부언한다든지 자기 욕심을 위해 기도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 기도는 진정한 기도라고 할 수 없다.
본문에 나오는 하박국 선지자의 기도는 진솔한 진심이 담긴 기도였다. 그냥 심심풀이로 한 기도가 아니었다. 이 부르짖고 외친다는 말은 하나님을 부여잡고 간절히 기도하는 것을 표현하는 단어다. 그리고 오랜 시간 동안 기도했다.
(2) 듣지 아니하시니
조국의 추악함과 더러움이 관영함을 보고 민족을 위해서 하늘을 향해 통곡하며 기도했다. 자기 민족의 그릇됨을 바로잡으려는 하박국의 마음이 이 기도 속에 서려 있다.
하박국은 의식이 있는 선지자로서 이것을 방관할 수만은 없었다. 하나님을 믿는 백성들이 타락하고 악한 것이 관영하고 악한 습성이 되어 사람들을 지배하고 율법이 해이해져 있는 모습을 더는 참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분노에 떨면서 그들이 죄악된 길에서 돌아오도록 하나님께 강하게 기도했다. '하나님 내가 외칩니다. 내가 부르짖습니다. 이 기도를 어느 때까지 해야 합니까?'
시대의 아픔에 괴로워하며 기도하는 선지자라면 그는 진정 훌륭한 선지자입니다.
참고 : 성경에서 하나님께 거절된 기도의 실례를 살펴보자.
①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를 소원한 모세의 기도
* 신 3: 23-27 - 23 그 때에 내가 여호와께 간구하기를 24 주 여호와여 주께서 주의 크심과 주의 권능을 주의 종에게 나타내시기를 시작하셨사오니 천지간에 어떤 신이 능히 주께서 행하신 일 곧 주의 큰 능력으로 행하신 일 같이 행할 수 있으리이까? 25 구하옵나니 나를 건너가게 하사 요단 저쪽에 있는 아름다운 땅, 아름다운 산과 레바논을 보게 하옵소서. 하되 26 여호와께서 너희 때문에 내게 진노하사 내 말을 듣지 아니하시고 내게 이르시기를 그만해도 족하니 이 일로 다시 내게 말하지 말라. 27 너는 비스가 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눈을 들어 동서남북을 바라고 네 눈으로 그 땅을 바라보라. 너는 이 요단을 건너지 못할 것임이니라.
② 블레셋 군을 보고 두려워 떨던 사울 왕의 기도
* 삼상 28: 5-6 - 5 사울이 블레셋 사람들의 군대를 보고 두려워서 그의 마음이 크게 떨린지라. 6 사울이 여호와께 묻자오되 여호와께서 꿈으로도, 우림으로도, 선지자로도 그에게 대답하지 아니하시므로
③ 성전 건축을 소원했던 다윗의 기도
* 삼하 7:12-13 - 12 네 수한이 차서 네 조상들과 함께 누울 때에 내가 네 몸에서 날 네 씨를 네 뒤에 세워 그의 나라를 견고하게 하리라. 13 그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의 나라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리라.
④ 자녀의 치유를 구하는 다윗의 기도
* 삼하 12: 14, 16-18 - 14 이 일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원수가 크게 비방할 거리를 얻게 하였으니 당신이 낳은 아이가 반드시 죽으리이다 하고 16 다윗이 그 아이를 위하여 하나님께 간구하되 다윗이 금식하고 안에 들어가서 밤새도록 땅에 엎드렸으니 17 그 집의 늙은 자들이 그 곁에 서서 다윗을 땅에서 일으키려 하되 왕이 듣지 아니하고 그들과 더불어 먹지도 아니하더라. 18 이레 만에 그 아이가 죽으니라. 그러나 다윗의 신하들이 아이가 죽은 것을 왕에게 아뢰기를 두려워하니 이는 그들이 말하기를 아이가 살았을 때에 우리가 그에게 말하여도 왕이 그 말을 듣지 아니하셨나니 어떻게 그 아이가 죽은 것을 그에게 아뢸 수 있으랴 왕이 상심하시리로다 함이라.
⑤ 낙심하여 죽기를 간구한 엘리야의 기도
* 왕상 19: 4-8 - 4 자기 자신은 광야로 들어가 하룻길쯤 가서 한 로뎀 나무 아래에 앉아서 자기가 죽기를 원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 나는 내 조상들보다 낫지 못하니이다. 하고 5 로뎀 나무 아래에 누워 자더니 천사가 그를 어루만지며 그에게 이르되, 일어나서 먹으라. 하는지라. 6 본즉 머리맡에 숯불에 구운 떡과 한 병 물이 있더라. 이에 먹고 마시고 다시 누웠더니 7 여호와의 천사가 또 다시 와서 어루만지며 이르되, 일어나 먹으라. 네가 갈 길을 다 가지 못할까 하노라. 하는지라. 8 이에 일어나 먹고 마시고 그 음식물의 힘을 의지하여 사십 주 사십 야를 가서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니라.
⑥ 분노하여 죽기를 간구한 요나의 기도
* 욘 4: 1-4, 9-11 - 1 요나가 매우 싫어하고 성내며 2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내가 고국에 있을 때에 이러하겠다고 말씀하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므로 내가 빨리 다시스로 도망하였사오니 주께서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신 줄을 내가 알았음이니이다. 3 여호와여 원하건대 이제 내 생명을 거두어 가소서.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음이니이다. 하니 4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가 성내는 것이 옳으냐? 하시니라. 9 하나님이 요나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 박넝쿨로 말미암아 성내는 것이 어찌 옳으냐? 하시니 그가 대답하되, 내가 성내어 죽기까지 할지라도 옳으니이다 하니라. 10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가 수고도 아니하였고 재배도 아니하였고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말라 버린 이 박넝쿨을 아꼈거든 11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가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
⑦ 육체의 가시 제거를 세 번이나 간구한 바울의 기도
* 고후 12: 7-10 - 7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8 이것이 내게서 떠나가게 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9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10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3) 어느 때까지리이까?
'어느 때까지리이까'라는 물음은 애가의 전형적인 형식이다
* 시 6: 3 - 나의 영혼도 매우 떨리나이다.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 시 13: 1-2 - 1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나를 영원히 잊으시나이까? 주의 얼굴을 나에게서 어느 때까지 숨기시겠나이까? 2 나의 영혼이 번민하고 종일토록 마음에 근심하기를 어느 때까지 하오며 내 원수가 나를 치며 자랑하기를 어느 때까지 하리이까?
* 시 80: 4 -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의 백성의 기도에 대하여 어느 때까지 노하시리이까?
* 시 89: 46 - 여호와여 언제까지니이까? 스스로 영원히 숨기시리이까? 주의 노가 언제까지 불붙듯 하시겠나이까?
* 렘 12: 4 - 언제까지 이 땅이 슬퍼하며 온 지방의 채소가 마르리이까? 짐승과 새들도 멸절하게 되었사오니 이는 이 땅 주민이 악하여 스스로 말하기를 그가 우리의 나중 일을 보지 못하리라 함이니이다.
* 슥 1: 12 - 여호와의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만군의 여호와여 여호와께서 언제까지 예루살렘과 유다 성읍들을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시려 하나이까? 이를 노하신 지 칠십 년이 되었나이다. 하매
그것은 앞의 동사 '내가 부르짖어도'의 히브리어 '솨와예티'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구원을 간절히 요청하는 위기 상황을 나타낸다.
2] 내가 강포로 말미암아 외쳐도 주께서 구원하지 아니하시나이다.
(1) 강포로 말미암아
'강포'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하마스'는 자기 동료마저 해칠 정도로 도덕적으로 극심하게 파괴된 상태를 가리킨다.
* 창 6: 11 - 그 때에 온 땅이 하나님 앞에 부패하여 포악함이 땅에 가득한지라.
여기서는 통치 계급이 불의의 편에 서서 백성들을 무자비하게 압제한 당시의 암울한 현실, 즉 유다 왕 여호야김의 폭정을 가리킨다.
하박국은 백성의 고통을 아파하며, 끊임없이 하나님께 간구하였으나 하박국이 원하는 만큼 하나님의 응답이 없었던 것 같다.
(2) 외쳐도 주께서 구원하지 아니하시나이다.
이에 본 절에서 1장 전체에 걸쳐 응답받지 못하는 기도에 대한 긴장감이 고조되어 나타난다.
이러한 긴장은 2장에 이르러 하나님에 의해 부분적으로 옹호되고, 3장에 가서는 보다 충분하게 확증되고 하박국의 믿음이 입증된다(C. E. Armerding).
이처럼 하박국 선지자는 요나 선지자와는 완연하게 대조가 된다.
* 온 1: 1 - 여호와의 말씀이 아밋대의 아들 요나에게 임하니라.
여호와의 말씀이 임했다는 것은 하나님은 말씀하시는 분이시고 요나 선지자는 말씀을 들어야 하는 자임을 알게한다. 그래서 하나님은 말씀하시고 요나는 말씀을 들어야 한다.
말씀하신다는 것은 자신의 말만 듣기를 강요하시면서 요나가 하는 말을 전혀 듣지 않고, 그의 발언권을 허락하지 않는, 대화의 기본 상식을 무시한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은 완전하시고 인간은 불완전하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하나님의 위대하심이다.
그러므로 불완전한 인간은 말씀을 들어야 하는 자이기 때문에 하나님에게서 항상 들을 자세가 되어있어야 한다.
그러나 요나 선지자는 그 말씀을 듣지 않고 "그러나 요나가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려고 일어나 다시스로 도망하려 하여 욥바로 내려갔더니 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를 만난지라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여 그들과 함께 다시스로 가려고 배삯을 주고 배에 올랐더라"(욘 1: 3).
요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자신의 의지대로 불순종의 길을 갔다. 그것은 말씀을 들어야 하는 선지자의 위치를 망각하고 그 자리에서 벗어났다는 것이다.
여기 하박국 선지자는 요나 선지자처럼 자기의 위치를 상실하고 무감각한 인생으로, 불순종한 인간으로서 하나님의 그늘을 벗어나려고 하지 않았고 오히려 더욱더 예리한 시각으로 그 시대를 보고 자기의 위치를 바라보면서 정도의 길을 간 선지자였다.
그 시대가 안고 있는 현실적인 문제들을 예리하게 파악하는 일이 선지자가 할 일이기 때문이다.
"어찌하여 내게 죄악을 보게 하시며 패역을 눈으로 보게 하시나이까 겁탈과 강포가 내 앞에 있고 변론과 분쟁이 일어났나이다"(합 1: 3)
요나는 자신이 탄 배가 폭풍을 만나 좌초할 때에도 기도는 커녕 배 밑층에 내려가서 잠을 잔 무감각한 선지자였다.
하지만 하박국 선지자는 무감각한 사람이 아니라 그 시대를 바라보며 그 시대가 죄악에 빠져 있고 겁탈과 강포가 내 앞에 있고 변론과 분쟁이 일어난 그 당시의 사회가 안고 있는 여러 가지 현실적인 문제들을 정확하게 보고 있었다.
죄악을 보았고 패역을 보았고 겁탈과 강포와 변론과 분쟁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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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설교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설교 감사합니다.
💖오늘도 내가 건강함에 감사하고, 오늘 내가 숨 쉴 수 있음에 감사하고,
오늘 내가 누군가를 만남에 감사합시다.
모든 일을 감사하고, 감사하다 보면 감사 못할 일이 없으며,
감사가 넘치다 보면 우리의 삶도 저절로 행복해질 것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