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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아취(人棄我取)
남이 버리는 것을 나는 취한다는 뜻으로, 취미나 견해가 다른 사람들과 다름을 비유하는 말이다.
人 : 사람 인(人/0)
棄 : 버릴 기(木/8)
我 : 나 아(戈/3)
取 : 취할 취(又/6)
출전 : 사기(史記) 권129 화식열전(貨殖列傳)
남이 내다 팔면 나는 사들이고, 남이 사들이면 나는 내다 판다.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 화식열전(貨殖列傳)에서 전국시대(戰國時代)의 유명한 상인인 백규(白圭)의 경영이론이다.
중국 전국시대 때 백규(白圭)라는 상인이 있었다. 그는 농산물을 남이 팔 때 사고, 살 때 팔아 많은 돈을 벌었다. 그러나 매점매석을 한 것이 아니다. 그는 남이 하는 행동과 반대로 해서 거부가 되었지만 결코 편법을 쓰지 않았다. 수요를 예측하고 미래를 기약하는 지혜와 전략이 있었다.
백규는 농산물을 사들이고 팔면서도 박리다매를 택했다. 그의 거래 대상이 주로 서민이었기 때문에 항상 적정한 가격을 매겼다. 그의 상거래가 정도를 벗어나지 않으면서 다른 상인들과 비교되면 될수록 그의 부(富)는 불어났다.
이렇듯 많은 이익을 남기면서도 서민들과 상생하는 삶을 산 백규를 오늘날 중국인들은 재신(財神)으로 삼아 제사를 지내고 존경한다. 인기아취(人棄我取)는 특히 주식투자 덕목으로 많이 회자된다. 남이 팔 때 사고, 남이 살 때 팔라는 말은 증권가의 격언이다.
그러나 그것을 실천하기는 쉽지 않다. 남이 갖지 않은 담대함과 상상력이 받쳐줘야 가능한 일이다. 주식투자 외에도 백규의 인기아취(人棄我取)는 일반 생활과 정치에서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남이 하는 대로 따라만 가다보면 잘 해야 본전일 수밖에 없다. 과감하게 관습과 관례를 파괴하고 더러는 상식에 거스르는 자기만의 방식을 창출해 밀어붙일 필요가 있다. 그래야만 예상 밖 성과를 낼 수 있다.
발견과 발명도 결국은 인기아취(人棄我取)의 결과다. 정치도 마찬가지다. 드러난 재정과 물자만 보고 평범하기 그지 없는 정책을 남발하면 국가의 부를 만들어낼 수 없을 뿐더러 국가와 국가간 경쟁에서 뒤떨어질 수밖에 없다. 우리 정부가 새겨 들어야 할 덕목이다.
투자의 귀재이자 '오마하의 현인'으로 불리는 워런 버핏의 가장 중요한 투자 원칙은 '남들과 반대로 가는 것'이라고 한다. 역발상의 투자 원칙이야말로 워런 버핏을 금세기 최고의 투자가로 만든 비결이다.
인생도 어쩌면 남들과 반대로 갔을 때 더 많은 것을 얻을 수도 있다. 남들이 눈앞의 이익을 추구할 때 뚝심 있게 손해를 감수하며 사는 사람이 정말 크고 귀한 것을 얻는 가장 현명한 사람이 될 수도 있다. 똑똑한 사람이 넘쳐나는 세상, 어쩌면 거꾸로 가는 사람이 최후의 승리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지금 손해를 보는 것이 나중에 이익이 될 수 도 있습니다.
▣ 인기아취(人棄我取)
전국시대 초, 위(魏)나라 문후(文侯)는 이리(李悧)를 재상으로 임명하고 경제와 정치에 개혁을 추진하였다. 재상 이리는 토지의 생산력을 충분히 이용하는 농경 정책을 실시하여, 사회 생산을 촉진하는 한편, 정치적으로는 귀족들의 권력과 부(富)가 세습되는 제도를 없애고, 나라에 공이 있는 사람들에게 후한 상을 주도록 하였다.
이리는 또한 풍년과 흉년에 따른 양곡(糧穀)의 수요와 공급을 조절하여 곡식의 값을 유지하는 정책을 폈다. 당시 백규(白圭)라는 유명한 상인이 있었는데, 그는 시세(時勢)를 정확하게 판단하였다. 백규는 재상 이리의 개혁 정책을 보고, 그는 세상 사람들이 관심을 갖지 않고 버리는 것을 사들이고, 세상 사람들이 사들일 때에는 팔아 넘겼다(人棄我取, 人取我與).
풍년이 들어 곡식 값이 매우 싸면, 백규는 곡식을 대량으로 사들였고, 흉년이 되면 비단과 솜을 사들이고 곡식은 내다 팔았다. 백규는 장사를 하는 것도 전쟁을 하는 것처럼 지략(智略)을 써야만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쓸모 없는 것으로 여겨 남들이 다 버릴 때 나는 그것을 모아 두었다가 나중에 남들이 필요로 할 때 내다 팔면 큰돈을 버는 것은 자명한 이치이다. 알고 보면 돈 버는 이치가 참으로 간단한 데에 있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돈을 못 버는가? 쉽고 간단한 이치일수록 실천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남들이 다 버리고 있는 것을 혼자 나서서 주워 두기가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그거야말로 용기와 배짱과 느긋한 마음을 필요로 하는 일이다. 웬만해서는 그렇게 살지 못한다. 남이 하는 대로 따라서 살아야지 남과 다른 방향으로 갈라치면 왠지 불안해서 그 길을 가기가 결코 쉽지 않다.
그래서 사람들은 다 남들이 가는 길을 나도 가야겠다고 나서서 이른 바 피나는 경쟁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한 발걸음만 물러서서 세상을 바라보면 남들이 가지 않은 호젓하면서도 상쾌하며 무한히 자유로운 나만의 길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런 자유 속에서 잘만 하면 돈도 얼마든지 벌 수 있다.
7~80년대만 해도 국제 사회에서 창피한 음식 취급을 받던 김치가 세계적인 음식이 될 줄을 누가 알았겠는가? 그 당시, 놋쇠 그릇을 온통 스테인 그릇으로 바꾸었듯이 우리의 김치를 미국식 샐러드로 다 바꾸어 버렸다면 어쩔 뻔했는가?
▣ 인기아취(人棄我取)
남들이 버리면 나는 그것을 취하고, 남들이 취하면 나는 그것을 내놓는다(人棄我取 人取我與). 사기(史記)의 화식열전(貨殖列傳)에 나오는 말입니다. 취(取)는 귀 이(耳)에 또 우(又)를 짝지은 글자입니다. 옛날 전쟁에서 적을 죽이면 증거물로 적의 귀를 잘라 왔다는 데서 '가지다', '거두다'는 의미로 쓰이게 됐습니다.
쓸모없는 것으로 여겨 남들이 다 버릴 때 나는 그것을 모아 두었다가 나중에 남들이 필요로 할 때 내다 팔면 큰 돈을 버는 것은 자명한 이치입니다. 알고 보면 돈 버는 이치가 참으로 간단한 데에 있습니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돈에 끊임없이 연연해 하는가요? 쉽고 간단한 이치일수록 실천하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남들이 다 버리고 있는 것을 혼자 나서서 주워 두는 것은 남이 가지 않는 길을 혼자 개척해 가는 것과 똑같습니다. 용기와 배짱과 느긋한 마음을 필요로 하는 일입니다. 남이 하는 대로 따라서 사라야지 남과 다른 방향으로 갈라치면 왠지 불안해서 그 길을 가기가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다 남들이 가는 길을 나도 가야겠다고 나서서 이른바 '피나는 경쟁'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한 발걸음만 물러서서 세상을 바라보면 남들이 가지 않은 호젓하면서도 상쾌하며 무한히 자유로운 나만의 길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런 자유 속에서 잘만 하면 돈도 얼마든지 벌 수 있습니다.
세계적인 주식 투자의 귀재 워렌 버핏(Warren Buffett)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도 모든 사업의 원조로 통하는 사기의 백규와 비슷한 맥락의 메시지를 전한 바 있습니다. 하나의 간단한 원칙이 나의 주식 매입을 지시합니다. 즉, "다른 사람들이 욕심을 낼 때는 두려워하고, 타인들이 두려워할 때는 욕심을 내라"
여기서 핵심 포인트는 바로 상식 깨기입니다. 하나같이 장사가 잘 되는 공통점을 보입니다. 그렇습니다. 손님을 모으는 방법은 상식 깨기가 그 시작입니다. 매출을 올리는 방법은 '다른 업소가 하지 않는 방식에서 찾아내서 손님을 모으는 것'에서 전략이 세워지고 전술이 구체화 되어야만 합니다.
이순신 장군은 종전의 삼도수군통제사와는 다르게 상식을 깼을 뿐이고, 원균 장군은 상식을 준수하고 지켰을 뿐입니다. 그러나 결과는 사뭇 달랐습니다. 이제 선택의 몫은 당신이 하기 나름입니다. 역발상이 당신의 경쟁력입니다. 때문에 자신을 끝까지 지키는 것이 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입니다.
▣ 전국시대 재신(財神), 백규(白圭)
사람들이 버리면 나는 취하고, 사람들이 취하면 나는 준다
백규(白圭)는 전국(戰國)시대에 살았던 유명한 상인이다. 지금도 중국인들은 백규를 '천하 치생(治生)의 비조(鼻祖)'라면서 '인간 재신(財神)'으로 존숭하고 있다. 송(宋)나라 진종(眞宗)은 그를 상성(商聖)으로 추존하였다.
백규는 본래 전국시대 위(魏)나라 혜왕(惠王)의 신하였다. 위나라 수도인 대량(大梁)은 황하 가까이에 위치해 있어 항상 홍수의 피해를 받아야 했다. 백규는 뛰어난 치수 능력을 발휘하여 대량의 수환(水患)을 막아냈다. 그러나 위(魏)나라가 갈수록 부패해지자 백규는 위나라를 떠나 중산국과 제(齊)나라로 갔다.
두 나라 왕들이 모두 그를 자기 나라에 남게 해 치국에 도움을 받고자 했지만 백규는 이를 완곡하게 거절하였다. 그는 제나라를 떠난 뒤 진(秦)나라로 들어갔는데, 당시 진나라는 상앙(商鞅)의 변법을 시행하고 있었다. 백규는 상앙의 중농억상 정책에 대해 강력히 반대하는 입장이었으므로 진나라에서 받아 들여지지 않았다.
천하를 유력(遊歷)하면서 백규는 점점 정치에 대하여 혐오감이 강해졌고, 마침내 관직을 버리고 상업에 종사하기로 결심하였다.
● 남들이 보석에 매달릴 때 농부산품 무역
낙양(洛陽)은 일찍부터 상업이 발달했던 도시였다. 낙양 출신이던 백규는 본래부터 상업에 뛰어난 눈을 지니고 있었는데,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전국시대 최고의 대부호가 되었다. 당시 상인들 대부분은 보석 장사를 특히 좋아하였다. 대상(大商) 여불위의 부친도 일찍이 '보석 사업은 백배의 이익을 남긴다'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백규는 당시 가장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그 길을 택하지 않고 대신 다른 직업을 선택해 농부산품(農副産品)의 무역이라는 새로운 업종을 창조하였다. 백규는 재능과 지혜가 출중하고 안목이 비범하였다.
그는 당시 농업생산이 급속하게 발전하는 것을 목격하고 농부산품 무역이 장차 커다란 이윤을 창출하는 업종이 될 것이라는 점을 이미 예측하고 있었다. 농부산품 경영이 비록 이윤율은 비교적 낮지만 교역량이 커서 큰 이윤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백규는 농부산품과 수공업 원료 및 상품 사업을 선택했던 것이었다.
하지만 백규는 재산을 움켜쥘 시기에 이르면, 마치 맹수와 맹금(猛禽)이 먹이에게 달려드는 것처럼 민첩하였다. 그는 "나는 경영을 할 때는 이윤(伊尹)이나 강태공(姜太公)이 계책을 실행하는 것처럼 하고 손자(孫子)와 오기(吳起)가 작전하는 것처럼 하며 상앙이 법령을 집행하는 것처럼 한다"라고 말하였다.
백규는 자기만의 독특한 상술을 지니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경영원칙을 여덟 글자로 요약하였다. '사람들이 버리면 나는 취하고, 사람들이 취하면 나는 준다(人棄我取, 人取我予)'는 말이다.
● 시류에 편승않는 상업경영의 지혜
어느 날 많은 상인들이 모두 면화를 팔아넘겼다. 어떤 상인은 면화를 빨리 처분하려고 헐값으로 팔기도 하였다. 백규는 이 광경을 지켜보고 부하에게 면화를 모두 사들이도록 하였다. 사들인 면화가 너무 많아서 백규는 다른 상인의 창고를 빌려서 보관할 정도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면화를 모두 팔아넘긴 상인들은 이제 모피를 사들이느라 혈안이 되었다. 당시 누구로부터 나온 얘기인지는 정확하지 않았지만, 앞으로 모피가 크게 팔리게 될 것이고 겨울에 사람들이 아마도 시장에서 살 수도 없을 것이라는 소문이 크게 돌았었다.
그런데 백규의 창고에는 좋은 모피가 보관되어 있었다. 백규는 모피의 가격이 더 오를 것을 기다리지 않고 모피를 몽땅 팔아 큰돈을 벌었다. 그 뒤 면화가 큰 흉년이 들었다. 그러자 면화를 손에 넣지 못하게 된 상인들이 면화를 찾느라 야단법석이 되었다. 이때 백규는 사들였던 면화를 모두 팔아 다시 큰돈을 벌었다.
이러한 백규의 경영 원칙은 일종의 상업경영의 지혜였으며, 그것은 맹목적으로 시류에 편승하지 않는 것을 의미하였다.
● 박리다매로 백성의 삶을 도와
백규가 살던 당시에 곡물은 시장에서 가장 근본이 되는 상품이었고, 소비자의 대부분은 평민들이었다. 일상생활에서 평민들의 요구는 그다지 높지 않았고 단지 배만 곯지 않으면 그만이었다. 그러므로 평민들은 돈을 아끼기 위하여 값이 싸고 질이 약간 떨어지는 곡물을 샀다. 이러한 상황에서 상인의 입장에서 보자면, 비축해야 할 곡물은 하등급의 곡물이었다.
하지만 백규는 그러한 보통 상인들의 안목을 과감히 뛰어넘었다. 백규는 자신이 물건을 판매할 사람들이 대부분 평민이었기 때문에 그들의 생활을 가혹하게 만들지 않기 위하여 언제나 박리다매의 경영 방식을 운용하면서 가격을 높이지 않았다. 대신 상품 유통 속도와 판매 속도를 빨리 하는 방법으로 더욱 많은 이익을 얻었다.
반대로 당시 대부분의 상인들은 커다란 이익을 손에 넣기 위하여 매점매석을 일삼고 일시에 가격을 높였다. 그러나 백규는 식량이 부족할 때 절대로 곡물 가격을 올리지 않았다. 그는 박리다매가 장기적으로 부를 쌓는 방법이라는 상인 경영의 기본 원칙을 견지하면서 눈앞의 이익만 생각하는 상인은 결코 큰돈을 벌지 못할 것이라고 비판하였다.
● 농민, 수공업자 위한 인술 경영
백규는 곡물이 익어가는 계절이면 양곡을 사들이고 비단과 칠(漆)을 팔았으며 누에고치가 생산될 때면 비단과 솜을 사들이고 양곡을 내다팔았다. 백규는 수확의 계절이나 풍년이 되었을 때 농민들이 곡물을 대량으로 내다팔게 되면 곡물을 사들이고, 이때 비단과 칠기 등을 비교적 부유한 농민들에게 판매하였다. 반대로 경기가 좋지 않을 때는 양곡을 팔고 적체된 수공업 재료와 산품을 사들였다. 백규가 말하는 '준다, 여(予)'라는 것은 사람들에게 우대하여 넘긴다는 의미였다.
간사한 간상(奸商)들은 물건이 넘칠 때 일부러 더욱 압박을 함으로써 가격을 최저치로 끌어내린 뒤 비로소 사들였다. 하지만 백규는 오히려 다른 사람보다 높은 가격에 사들였다. 시장에 물건이 귀해졌을 때 간상들은 매점매석했지만, 백규는 오히려 다른 사람보다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여 사람들의 수요에 맞췄다.
백규의 이러한 경영방식은 자신의 경영 주도권을 보장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이윤도 풍부하게 얻는 결과를 만들었다. 나아가 객관적으로 상품의 수요공급과 가격을 조정함으로써 농민과 수공업자의 이익을 보장할 수 있었다. 이러한 방식을 가리켜 백규는 '인술(仁術)'이라고 불렀다.
● 욕망 절제하고 일꾼들과 동고동락
백규는 고난을 견딜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가 거부가 되었을 때도 그가 축적한 재부(財富)를 확대 재생산 분야에 투자하면서 자신은 "음식을 탐하지 않았고 욕망의 향수를 절제하며 기호(嗜好)를 억제하고 극히 소박한 옷만 입으면서 일꾼들과 동고동락하였다."
백규의 이러한 상업 사상은 후세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근대 중국의 유명한 민족자본가인 영종경(榮宗敬)은 백규의 '인기아취(人棄我取)'의 경영 원칙을 준수하였으며, 저명한 화교 기업가인 진가경(陳嘉庚)은 '인기아취, 인쟁아피(人棄我取, 人爭我避)'의 경영 방침을 세웠는데, 이는 백규 사상의 계승 발전이었다.
▣ 역발상의 부(富) 축적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 화식열전(貨殖列傳)은 성공한 부자, 사업가들의 이야기다. 중국인들이 대사업가의 상징으로 여기는 범려(范蠡), 상업의 원조로 치는 백규(白圭) 같은 인물이 여기에서 비롯된다. 도주지부(陶朱之富)는 범려와 같은 사람이 이룬 부(富)를 말하고, '남이 거들떠보지 않는 것을 나는 가져다 쓴다'는 뜻의 인기아취(人棄我取)는 백규의 유명한 사업 원칙으로 지금껏 회자된다.
범려는 초나라의 가난한 선비였다. 신분이 낮아 출세하기 어렵자, 월나라로 가서 20여년 동안 월왕(越王) 구천(句踐)을 보좌해 월나라를 강국으로 만든다. 권력이 정점에 이르자 그는 과감하게 벼슬을 내던지고 제2의 인생을 선택한다. 범려는 멀리 제나라로 가 이름을 주(朱)로 바꾸고, 장사 환경이 좋은 도(陶) 땅을 골라 무역으로 큰 부(富)를 일궜다.
사마천에 따르면 범려는 19년 동안 세번 큰돈을 벌어 두번을 가난한 친구들과 먼 친척들에게 나눠주었다. 사마천은 범려의 시혜(施惠)에 대해 '부란 덕을 베풀기 좋은 수단(富好行其德者)'이라고 정의했다. 당시 사람들은 이런 범려를 도주공(陶朱公)으로 높여 불렀고, 도주지부(陶朱之富)는 덕 있는 부(富)의 상징이 되었다.
부(富)가 의(義)일 수는 없지만, 부귀(富貴)가 빈천(貧賤)보다 좋은 것은 만고불변(萬古不變)이다. 대체로 '인심이란 자기보다 열배 부자면 몸을 낮추고, 백배 부자면 두려워하고, 만배 부자면 그 집 하인도 될 수 있는 것이 사물의 이치'이다. '생활할 수 있는 정도의 부(富)를 족하게 여기는 것이 선비의 현명함'이라면, 가난한 서민이 부유해지려고 애쓰는 것 또한 세상의 이치이다.
가난을 면하는 데 정해놓은 묘수가 어디 있겠는가마는, 사마천은 말한다. "비단에 수를 놓고 있어서는 안 된다. 당장 저잣거리로 나가라. 상업은 직업으로는 말단이지만, 가난한 자가 부를 얻는 데 이보다 빠른 길이 없다."
백규는 중국에서 사업가의 원조로 치는 사람이다. 그의 사업 방식은 '시세 변화를 면밀히 관찰해, 남이 버리면 나는 취하고(人棄我取), 남이 취하면 나는 내놓는다(人取我與)'는 역발상이다. 간단한 것 같으면서도 실로 간단치 않다.
범려나 백규 모두 '흙수저' 출신이었다. 편하고 안전한 곳에선 재화가 늘지 않는다. 사람들이 선망하는 자리만 쳐다보고 있어서는 '금수저'를 쥐기 어렵다.
▣ 역발상 투자의 원조 백규(白圭)의 경영원칙
세상이 버리면 나는 사들이고, 세상이 사들이면 나는 판다
물건값이 내려가면 더 내려갈 때까지 기다리고, 물건값이 비싸지면 더 올라갈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일반인의 심리다. 그러나 전국시대의 대표적 상인이자 경영자인 백규는 오히려 "물건값이 오를 때는 내가 가지고 있는 물건을 쓰레기 버리듯이 갖다 팔고 물건값이 내릴 때는 보석을 사들이듯 사들여라"고 하며 보통사람들과 반대로 행동했다. 그는 결국 물가를 안정시키고 상인이 갖춰야 할 상도(商道)를 발휘하면서 거부가 되었다.
사마천은 '화식열전'에서 백규의 경영비결을 '인기아취 인취아여(人棄我取 人取我予; 세상 사람들이 버리면 나는 사들이고, 세상 사람들이 사들이면 나는 판다)'의 여덟 글자로 요약했다.
상품이 수요를 넘어서서 아무도 구하지 않는 그 기회에 사들인 뒤 수중에 있는 상품의 공급이 수요를 따르지 못해 가격이 크게 오르는 그 기회에 판매한 것이다. 이는 백규의 상업경영의 지혜이자 그가 맹목적으로 시류에 편승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요즘 말하는 역발상 투자의 원조가 바로 백규였다.
● 시장 안정시켜가며 이익 취해
사마천도 "대체로 천하의 사업가들은 모두 백규를 그 원조로 보았다"고 했다. 송나라 진종은 그를 상성(商聖)으로 추종했다. 백규의 경영원칙은 후세에까지 큰 영향을 미쳐 현재의 중국인들은 그를 재물의 신으로 숭배하고 있을 정도다.
인기아취 인취아여(人棄我取 人取我予)란 언뜻 보면 매점매석을 통해 가격을 급등시켜 폭리를 취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당시의 평민들은 돈을 아끼려고 값싸고 질이 약간 떨어지는 곡물을 사는 형편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매점매석을 통해 이득을 취하려면 평민들이 주로 사는 값싼 곡물들을 일시에 사들였다가 나중에 큰 이문을 남기며 다시 팔아야 한다.
그러나 백규는 그리 하지 않았다. 일부 간상(奸商)들은 물건이 넘칠 때 일부러 더욱 압박을 가함으로써 가격을 최저치로 끌어내린 뒤 비로소 사들였지만 백규는 오히려 다른 사람보다 높은 가격에 사들였던 것이다. 시장에 물건이 귀해졌을 때 간상들은 매점매석했지만, 백규는 오히려 다른 사람보다 저렴한 가격에 판매해 사람들의 수요에 맞췄다. 시장을 혼란시키는 것이 아니라 상품의 수급과 가격을 조정해 시장을 안정시킨 후 자신의 이익을 취하는 것이 백규의 경영방식이었다.
사마천은 백규를 지혜롭고 용감하면서도 어질고 강인하다고 평가했다. 백규는 자신의 상업 활동을 정치, 군사, 치국에 비유했다. 마치 이윤(伊尹)이 상나라의 탕왕을 보좌하는 것 같고, 여상(呂尙)이 주나라 문왕과 무왕을 보좌하는 것 같으며, 손무와 오기(吳起)가 병법을 쓰는 것 같고, 상앙이 법으로 치국을 한 것과 유사하다고 했다. 백규는 오직 지혜, 용기, 인덕, 강인함이 경영의 성공비결이라고 하면서 이들 네 요소를 구비하지 못한 자는 내 경영비법을 배우려 해도 가르쳐 주지 않겠다고 했다.
백규는 경영인으로서 담대했고 과감하게 결단하는 사람이었다. 백규는 위(衛)나라에서 상업 활동을 하면서 늘 시세의 변화를 주목하고 시장의 변화에 따라 과감하게 결단을 내리곤 했다. 새로운 곡식이 시장에 나오거나 일부 곡물상들이 가격을 낮추려 수매를 하지 않을 때 백규는 최대한 곡물을 사들였다.
봄철 누에가 시장에 나오면 견사를 사들이고, 그 대신 곡식을 농민에게 공급했다. 한 번 결단을 내리면 신속하게 실천에 옮겼는데 그 기세가 '마치 맹수나 독수리가 먹이를 채가는 것같이 주저함이 없었다'고 사마천은 표현하고 있다.
또한 백규는 돈을 많이 벌었다고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며 우쭐댄 것이 아니라 검소한 생활로 자신을 절제하며 지낸 것으로 유명하다. 이에 대해 사마천은 "거친 음식을 달게 먹고 하고 싶은 것을 억눌렀으며 옷을 검소하게 입고 노복들과 고통과 즐거움을 함께 나눴다"고 한다.
● 덕은 재물을 보존하는 영원한 금고
부자가 덕을 행하는 일은 사람들로부터 존경받는 제일의 조건이다. 아울러 덕을 실천하며 자신의 생활에 있어 근검과 절약의 태도를 보인다면 그보다 더 훌륭한 모범은 없을 것이다. 범려와 백규는 바로 그 모범의 전형을 보여준 대기업가들이다.
요즘 일부 대기업들의 갑(甲)질 횡포가 물의를 일으키고 있다. 재물은 덕으로 보존하지 않으면 곧 사라지게 된다. 그래서 사마천은 "1년을 살려거든 곡식을 심고, 10년을 살려거든 나무를 심으며, 백년을 살려거든 덕을 베풀어라. 덕이란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다"라고 했다. 덕이 재물을 보존하는 영원한 금고라는 것을 우리나라의 기업가들이 꼭 유념했으면 한다.
화식열전의 마지막 부분에서 사마천은 "대체로 아껴 쓰고 부지런한 것은 생업을 다스리는 바른 길이다. 그렇지만 부자가 된 사람은 반드시 기이한 방법을 사용한다"라고 썼다. 여기서 우리는 '아껴 쓰고 부지런한 것'과 '기이한 방법'에 대해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다소 비약적일 수도 있겠지만, 전자는 '남들이 다니는 길' 후자는 '나만이 가는 길'이라고 해석해 볼 수 있다.
사마천이 '화식열전' 전체를 통해 알리고자 한 것은 부를 얻는 길은 남들과 다르게 행동하는 '특별함'에 있다는 것이다. 물론 그 특별함이 지탄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사마천도 '화식열전'에서 "도박은 나쁘지만 환발(桓發)은 그것으로 부자가 되었고, 행상은 남자에게는 천한 일이지만 옹낙성(擁樂成)은 그것으로 천금을 얻었고..."라는 예시로 부정적인 의미를 지적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들의 성공은 '한 가지 일에 전념한 결과'라고 평가하고 있다.
인기아취 인취아여(人棄我取 人取我予)는 비단 돈 버는 일에만 적용되는 게 아니다. 세상을 다르게 보는 안목으로 한 가지 일에 전념한다면 성공이란 손 안에 든 물건과 마찬가지다.
열심히 일하는데 나는 왜 성공하지 못하는가라는 생각이 든다면 그것은 바로 남들이 가는 길을 쫓아만 다닌 결과가 아닌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물론 성공이 인생의 모든 것을 설명해 주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나 성공의 의지가 없는 삶은 주인공이 없는 소설처럼 공허하기 이를 데 없다. 모험과 도전의 정신으로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가는 것이 성공의 첩경이다.
▶️ 人(사람 인)은 ❶상형문자로 亻(인)은 동자(同字)이다. 사람이 허리를 굽히고 서 있는 것을 옆에서 본 모양을 본뜬 글자. 옛날에는 사람을 나타내는 글자를 여러 가지 모양으로 썼으나 뜻의 구별은 없었다. ❷상형문자로 人자는 '사람'이나 '인간'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人자는 한자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글자이기도 하다. 상용한자에서 人자가 부수로 쓰인 글자만 해도 88자가 있을 정도로 고대 중국인들은 人자를 응용해 다양한 글자를 만들어냈다. 이전에는 人자가 두 사람이 등을 서로 맞대고 있는 모습을 그린 것이라고 해석을 했었지만, 갑골문에 나온 人자를 보면 팔을 지긋이 내리고 있는 사람을 그린 것이었다. 소전에서는 팔이 좀 더 늘어진 모습으로 바뀌게 되어 지금의 人자가 되었다. 이처럼 人자는 사람을 그린 것이기 때문에 부수로 쓰일 때는 주로 사람의 행동이나 신체의 모습, 성품과 관련된 의미를 전달하게 된다. 그래서 人(인)은 (1)사람 (2)어떤 명사(名詞) 아래 쓰이어, 그러한 사람을 나타내는 말 등의 뜻으로 ①사람, 인간(人間) ②다른 사람, 타인(他人), 남 ③딴 사람 ④그 사람 ⑤남자(男子) ⑥어른, 성인(成人) ⑦백성(百姓) ⑧인격(人格) ⑨낯, 체면(體面), 명예(名譽) ⑩사람의 품성(稟性), 사람됨 ⑪몸, 건강(健康), 의식(意識) ⑫아랫사람, 부하(部下), 동류(同類)의 사람 ⑬어떤 특정한 일에 종사(從事)하는 사람 ⑭일손, 인재(人才)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어진 사람 인(儿),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짐승 수(兽), 짐승 수(獣), 짐승 수(獸), 짐승 축(畜)이다. 용례로는 뛰어난 사람이나 인재를 인물(人物), 안부를 묻거나 공경의 뜻을 표하는 일을 인사(人事), 사람으로서의 권리를 인권(人權), 한 나라 또는 일정 지역에 사는 사람의 총수를 인구(人口), 세상 사람의 좋은 평판을 인기(人氣), 사람을 다른 동물과 구별하여 이르는 말을 인류(人類), 사람의 힘이나 사람의 능력을 인력(人力), 이 세상에서의 인간 생활을 인생(人生), 학식과 능력이 뛰어난 사람을 인재(人材), 사람의 수효를 인원(人員), 사람으로서의 됨됨이나 사람의 품격을 인격(人格), 사람에 관한 것을 인적(人的), 사람을 가리어 뽑음을 인선(人選), 사람의 힘이나 능력으로 이루어지는 일을 인위(人爲), 사람의 몸을 인체(人體), 사람의 얼굴의 생김새를 인상(人相), 한 사람 한 사람이나 각자를 개인(個人), 나이가 많은 사람을 노인(老人), 남의 아내의 높임말을 부인(夫人), 결혼한 여자를 부인(婦人), 죽은 사람을 고인(故人), 한집안 사람을 가인(家人), 장사하는 사람을 상인(商人), 다른 사람을 타인(他人), 널리 세상 사람의 이야깃거리가 됨을 일컫는 말을 인구회자(人口膾炙), 인간 생활에 있어서 겪는 중대한 일을 이르는 말을 인륜대사(人倫大事), 사람은 죽고 집은 결딴남 아주 망해 버림을 이르는 말을 인망가폐(人亡家廢), 사람의 목숨은 하늘에 있다는 뜻으로 사람이 살고 죽는 것이나 오래 살고 못 살고 하는 것이 다 하늘에 달려 있어 사람으로서는 어찌할 수 없음을 이르는 말을 인명재천(人命在天), 사람의 산과 사람의 바다라는 뜻으로 사람이 헤아릴 수 없이 많이 모인 모양을 이르는 말을 인산인해(人山人海), 사람마다 마음이 다 다른 것은 얼굴 모양이 저마다 다른 것과 같음을 이르는 말을 인심여면(人心如面), 여러 사람 중에 뛰어나게 잘난 사람을 두고 이르는 말을 인중사자(人中獅子), 여러 사람 중에 가장 못난 사람을 이르는 말을 인중지말(人中之末), 사람의 죽음을 몹시 슬퍼함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인금지탄(人琴之歎),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뜻으로 사람의 삶이 헛되지 아니하면 그 이름이 길이 남음을 이르는 말을 인사유명(人死留名), 사람은 곤궁하면 근본으로 돌아간다는 뜻으로 사람은 궁해지면 부모를 생각하게 됨을 이르는 말을 인궁반본(人窮反本), 사람이면서 사람이 아니라는 뜻으로 사람의 도리를 벗어난 사람을 일컫는 말을 인비인(人非人), 인생이 덧없음을 이르는 말을 인생무상(人生無常), 사람의 근본은 부지런함에 있음을 이르는 말을 인생재근(人生在勤), 인생은 아침 이슬과 같이 짧고 덧없다는 말을 인생조로(人生朝露), 남의 신상에 관한 일을 들어 비난함을 이르는 말을 인신공격(人身攻擊), 아주 못된 사람의 씨알머리라는 뜻으로 태도나 행실이 사람답지 아니하고 막된 사람을 욕하는 말을 인종지말(人種之末), 남이 굶주리면 자기가 굶주리게 한 것과 같이 생각한다는 뜻으로 다른 사람의 고통을 자기의 고통으로 여겨 그들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최선을 다함을 이르는 말을 인기기기(人飢己飢), 인마의 왕래가 빈번하여 잇닿았다는 뜻으로 번화한 도시를 이르는 말을 인마낙역(人馬絡繹), 얼굴은 사람의 모습을 하였으나 마음은 짐승과 같다는 뜻으로 남의 은혜를 모름 또는 마음이 몹시 흉악함을 이르는 말을 인면수심(人面獸心), 사람은 목석이 아니라는 뜻으로 사람은 모두 희로애락의 감정을 가지고 있으며 목석과 같이 무정하지 않음을 이르는 말을 인비목석(人非木石), 정신을 잃고 의식을 모름이란 뜻으로 사람으로서의 예절을 차릴 줄 모름을 이르는 말을 인사불성(人事不省) 등에 쓰인다.
▶️ 棄(버릴 기)는 ❶회의문자로 마늘 모(厶; 나, 사사롭다, 마늘 모양)部와 葉(기; 쓰레 받기)와 卄(공; 양손)의 합자(合字)이다. 청소 도구를 양 손으로 밀고 감을 나타낸다. 따라서 널리 버림의 뜻이다. ❷회의문자로 棄자는 '버리다'나 '그만두다', '돌보지 않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棄자는 木(나무 목)자와 弃(버릴 기)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棄자의 갑골문을 보면 죽은 아이를 바구니에 담에 버리는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이것은 '버리다'라는 뜻의 弃자이다. 해서에서는 바구니의 재질을 표현하기 위해 木자가 더해지면서 지금의 棄자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그래서 棄(기)는 ①버리다 ②그만두다 ③돌보지 않다 ④꺼리어 멀리하다 ⑤물리치다 ⑥잊다 따위의 뜻이 있다.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가질 취(取)이다. 용례로는 내버려 문제 삼지 않음이나 어떤 사물을 버림을 기각(棄却), 권리를 버리고 행사하지 않음을 기권(棄權), 버림받은 아이나 어린아이를 내버림을 기아(棄兒), 쓸데없어 버린 물건 또는 버려 두고 쓰지 못할 물건을 기물(棄物), 약속을 지키지 않음을 기약(棄約), 버려 둠을 기치(棄置), 나라를 버렸다는 기국(棄國), 활을 버렸다는 기궁(棄弓), 시체를 내다 버림을 기시(棄屍), 아내를 버림을 기처(棄妻), 세상을 버림이라는 뜻으로 윗사람의 죽음을 일컫는 기세(棄世), 은애를 버림의 뜻으로 속세에 대한 집착을 끊고 진여의 길에 드는 일을 기은(棄恩), 하던 일을 중도에 그만두어 버림을 포기(抛棄), 못 쓰게 된 것을 버림을 폐기(廢棄), 내버리고 돌아보지 않음을 유기(遺棄), 깨뜨리거나 찢어서 내어버림 또는 계약이나 약속한 일 따위를 취소함을 파기(破棄), 버리고 돌아보지 아니함을 방기(放棄), 내던져 버림을 투기(投棄), 잊어 버림을 망기(忘棄), 남에게 버림을 받음을 견기(見棄), 탐탁하지 않게 여겨서 버림을 등기(等棄), 자기의 권리를 포기하는 사람을 기권자(棄權者), 근본을 버리고 변변치 못한 말기를 따름을 이르는 말을 기본축말(棄本逐末), 자신을 스스로 해치고 버린다는 뜻으로 몸가짐이나 행동을 되는 대로 취한다는 말을 자포자기(自暴自棄), 남편을 배반하고 집에서 나와 버린다는 말을 배부기가(背夫棄家), 남이 버리는 것을 나는 취하여 씀을 일컫는 말을 인기아취(人棄我取), 권세를 떨칠 때의 사람을 붙좇다가 그 권세가 쇠하면 버리고 떠난다는 인정의 가볍고 얕음을 뜻하는 말을 부염기한(附炎棄寒) 등에 쓰인다.
▶️ 我(나 아)는 ❶회의문자로 手(수)와 창 과(戈; 창, 무기)部를 합(合)한 글자라고 생각하였으나 옛 모양은 톱니 모양의 날이 붙은 무기(武器)인 듯하다. 나중에 발음(發音)이 같으므로 나, 자기의 뜻으로 쓰게 되었다. ❷상형문자로 我자는 '나'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我자는 톱니 모양의 날이 달린 창을 그린 것이다. 이것은 서유기(西遊記)에서 저팔계가 가지고 다니던 삼지창과도 같다. 我자는 이렇게 삼지창을 그린 것이지만 일찍이 '나'를 뜻하는 1인칭 대명사로 쓰이고 있다. 갑골문이 만들어졌던 은상(殷商) 시기에도 我자를 '나'라는 뜻으로 사용한 것을 보면 본래의 의미는 일찌감치 쓰이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我자가 왜 '나'를 뜻하게 됐는지에 대한 명확한 해석은 없다. 다만 서로 같은 무기를 들고 싸웠다는 의미에서 '나'나 '우리'라는 뜻을 가지게 되었다는 추측만이 있을 뿐이다. 한자에는 余(나 여)나 吾(나 오), 朕(나 짐)자처럼 본래는 '나'와는 관계없던 글자들이 시기에 따라 자신을 뜻하는 글자로 쓰였었기 때문에 我자도 그러한 예 중 하나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我(아)는 ①나 ②우리 ③외고집(자기의 생각을 굽히지 아니하는 일) ④나의 ⑤아집을 부리다 ⑥굶주리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나 오(吾),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저 피(彼)이다. 용례로는 소아에 집착함을 아집(我執), 나의 뜻을 아의(我意), 우리 나라를 아국(我國), 우리 여러 사람이나 우리들을 아등(我等), 우리 나라를 아방(我邦), 자기 의견에만 집착하는 잘못된 견해를 아견(我見), 우리 편 군대나 운동 경기 등에서 우리 편을 아군(我軍), 자기를 자랑하고 남을 업신여기는 번뇌를 아만(我慢), 나에게 애착하는 번뇌를 아애(我愛), 자기의 이익을 아리(我利), 참 나가 있는 것으로 아는 잘못된 생각을 아상(我想), 자기 혼자만의 욕심을 아욕(我慾), 자기 자신에 대한 의식이나 관념을 자아(自我), 육체적인 나를 소아(小我), 남과 구별된 개인로서의 자아를 개아(個我), 저편과 우리편 또는 남과 자기를 피아(彼我), 스스로를 잊고 있음을 몰아(沒我), 어떤 사물에 마음을 빼앗겨 자기 자신을 잊음을 망아(忘我), 바깥 사물과 나를 물아(物我), 나 밖의 모든 것을 비아(非我), 자기의 존재를 인정하는 자아를 실아(實我), 자기의 이익만을 생각하여 행동함을 위아(爲我), 오직 내가 제일이라는 유아(唯我), 남이 자기를 따름을 응아(應我), 다른 사람과 자기를 인아(人我), 자기 논에만 물을 끌어 넣는다는 뜻으로 자기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고 행동함 또는 억지로 자기에게 이롭도록 꾀함을 이르는 말을 아전인수(我田引水), 내가 부를 노래를 사돈이 부른다는 속담의 한역으로 책망을 들을 사람이 도리어 큰소리를 침을 이르는 말을 아가사창(我歌査唱), 자신도 돌보지 못하는 형편이라는 뜻으로 후손이나 남을 걱정할 여력이 없음을 이르는 말을 아궁불열(我躬不閱), 내 마음은 저울과 같다는 뜻으로 마음의 공평함을 이르는 말을 아심여칭(我心如秤), 자기네 편의 무위가 드날림을 이르는 말을 아무유양(我武維揚), 이 세상에 나보다 존귀한 사람은 없다는 말 또는 자기만 잘 났다고 자부하는 독선적인 태도의 비유를 일컫는 말을 유아독존(唯我獨尊), 바깥 사물과 나 객관과 주관 또는 물질계와 정신계가 어울려 한 몸으로 이루어진 그것을 일컫는 말을 물아일체(物我一體), 어떤 생각이나 사물에 열중하여 자기자신을 잊어버리는 경지를 일컫는 말을 망아지경(忘我之境), 본디 내것이 아니라는 뜻으로 뜻밖으로 얻었던 물건은 잃어 버려도 서운할 것이 없다는 말을 본비아물(本非我物), 자기가 어떤 것에 끌려 취하다시피 함을 이르는 말을 자아도취(自我陶醉), 잘못이 남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에게 있다는 말을 곡재아의(曲在我矣), 옛일에 구애됨이 없이 모범이 될 만한 일을 자기부터 처음으로 만들어 냄을 이르는 말을 자아작고(自我作古), 어떤 사물에 열중하여 자기를 잊고 다른 사물을 돌아보지 않거나 한 가지에 열중하여 다른 것은 모두 잊어버림을 일컫는 말을 무아몽중(無我夢中), 자기 때문에 남에게 해가 미치게 됨을 탄식함을 일컫는 말을 유아지탄(由我之歎), 인신人身에는 항상 정하여져 있는 주제자 즉 아我가 없다는 말을 인아무상(人我無想), 자신의 존재를 완전히 잊고 흠뻑 취함을 이르는 말을 무아도취(無我陶醉), 자기를 중심으로 생각하는 사상을 일컫는 말을 자아주의(自我主義), 남 잡이가 제 잡이로 남을 해하려 하다가 도리어 자기가 해를 입는 다는 뜻의 속담을 착타착아(捉他捉我), 상대방인 저쪽은 그르고 나는 올바름을 일컫는 말을 피곡아직(彼曲我直), 자기의 생각이나 행위에 대하여 스스로 하는 비판을 일컫는 말을 자아비판(自我批判) 등에 쓰인다.
▶️ 取(가질 취)는 ❶회의문자로 又(우; 손)와 耳(이; 귀)를 뜻하는 글에서, 손으로 귀를 떼다, 떼다를 말한다. 옛날 전쟁에서 적을 잡으면 증거물로 그 왼쪽 귀를 잘라내어 가져 왔다는 데서 취하다를 뜻한다. ❷회의문자로 取자는 '얻다'나 '가지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取자는 耳(귀 이)자와 又(또 우)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갑골문에 나온 取자를 보면 손으로 귀를 잡은 모습이 그려져 있다. 取자는 먼 옛날 전쟁에서 유래한 글자이다. 옛날에는 전투를 치른 후에 내가 죽인 사람의 수만큼 포상을 받았다. 초기에는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적의 머리를 잘라 바쳤지만, 후에 부피를 줄이기 위해 적의 왼쪽 귀를 잘랐다. 여기서 '가지다'라는 뜻의 取자가 만들어졌다. 그러니까 取자는 손으로 귀를 잘라 '얻었다'라는 데서 유래한 글자인 것이다. 임진왜란 때 조선인 12만 명의 코와 귀를 잘라 가져 가 만든 귀 무덤이 아직도 일본 교토시에 남아있다. 그 무덤의 이름을 耳塚(이총)이라 한다. 그래서 取(취)는 (1)십이인연(十二因緣)의 한 가지. 애(愛)에 따라 일어나는 집착(執着) (2)번뇌(煩惱), 집착(執着) 등의 뜻으로 ①가지다, 손에 들다 ②취(取)하다 ③의지(依支)하다, 돕다 ④채용(採用)하다, 골라 뽑다 ⑤받다, 받아들이다 ⑥이기다 ⑦다스리다 ⑧멸망(滅亡)시키다 ⑨장가들다 ⑩어조사(語助辭) ⑪인연(因緣)의 하나 ⑫춘추(春秋)의 필법(筆法) 따위의 뜻이 있다.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버릴 배(偝), 버릴 기(弃), 버릴 반(拌), 던질 포(拋), 버릴 연(捐), 버릴 사(捨), 버릴 수(擻), 버릴 랄/날(攋), 버릴 기(棄)이다. 용례로는 있는 사실을 없애 버림을 취소(取消), 영양분을 빨아들임을 섭취(攝取), 꼭 누르거나 비틀어서 즙을 짜 냄을 착취(搾取), 사물을 다룸을 취급(取扱), 어떤 사물에서 작품이나 기사의 재료를 얻음을 취재(取材), 자기 소유로 함을 취득(取得), 연구나 조사를 위해 필요한 것을 그곳에서 취함을 채취(採取), 방송이나 진술 따위를 자세히 들음을 청취(聽取), 어름장을 놓아 억지로 빼앗음을 갈취(喝取), 싸워서 빼앗아 가짐을 쟁취(爭取), 어떤 내용의 소리를 녹음하여 채취하는 것을 녹취(錄取), 남의 것을 억지로 빼앗아 가짐을 탈취(奪取), 목숨을 버리고 의리를 좇음의 뜻으로 비록 목숨을 버릴지언정 옳은 일을 함을 일컫는 말을 사생취의(捨生取義), 주머니 속에 지닌 물건을 꺼낸다는 뜻으로 아주 쉬운 일 또는 손쉽게 얻을 수 있음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낭중취물(囊中取物), 장단을 가려서 격식에 맞춘다는 뜻으로 나쁜 것은 버리고 좋은 점은 취한다는 말을 사단취장(捨短取長), 취할 것은 취하고 버릴 것은 버려서 골라잡음을 이르는 말을 취사선택(取捨選擇), 작은 것을 버리고 큰 것을 차지함을 일컫는 말을 사소취대(捨小取大), 돈이 없이 남의 파는 음식을 먹음을 일컫는 말을 무전취식(無錢取食), 가까스로 밥이나 얻어 먹고 살아가는 꾀를 일컫는 말을 취식지계(取食之計), 사람을 속여 돈이나 물건을 빼앗음을 일컫는 말을 기인취물(欺人取物), 교묘한 수단으로 빼앗아 취한다는 뜻으로 남의 귀중한 물건을 가로채는 것을 이르는 말을 교취호탈(巧取豪奪)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