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형네는 어렸을 때 우리 집 앞에 살다가 은평천사원 아래 야산 우묵한 중턱을 깍아서 양옥집을 지어 이사를 했다. 구산동을 넘어가는 비탈길 옆에 감나무가 여러 개 심겨져 있었는데 J형 할머니가 심어놓은 것이었다. 나는 어렸을 때 아침에 일찍 일어나 풀잎에 달린 이슬을 바지에 적시며 제 물에 떨어진 연시를 남 몰래 주워 먹었다. J이 형 할머니는 너른 밭에다 토마토를 심었다.
여름 날 엄니가 50원을 내 손에 쥐어주고 토마토를 사오라고 한 적이 있었다. 나는 소쿠리를 들고 J형네 집을 향해 가다 마음이 변했다. 토마토를 몰래 따면 50원은 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J형네 토마토 밭에 남 몰래 들어 가 설익은 거라도 마구 땄다. 엄니가 토마토를 보고는 익지도 않았다고 했을 때 나는 J형 할머니가 익지도 않았는 데도 따 주더라고 거짓말을 하였다.
엄니가 토마토 값으로 내게 준 50원은 친구들과 군것질을 했다. 그 당시에 야산 전부가 J형네 땅이었다. 저 끄트머리 천사원 정문 아래 구석이 진 곳에는 내 친구 성기네가 움막집을 지어놓고 대충 살았다. 할머니는 돌아가시고 J형 아버지는 누구 꼬임에 빠졌는지 자세히 모르겠지만 그 많은 재산을 일시에 날려 버렸던 것이다. 동네에서는 누가 말아 먹었느니 하며 뒤에서 수근거렸지만 그 사람의 잘못만을 탓할 수는 없었다.
내가 대학 다닐 때 J형네는 가산을 탕진하여 일산 백마라는 동네로 이사를 갔다. 하루는 J형 아버지가 내 아버지를 찾아와 이야기 하기를 '형님 저는 이제 망하였어요. 제 자식들에게 아비는 그저 죽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살라고 했어요'라는 말을 나는 엿 들었다. J형 아버지는 백마로 이사를 가서 땅을 빌려 온실을 만들어 국화를 키우고 있다고 했다. 얼마 후 J형 아버지는 한 많은 세상을 떠났다. 백마에서 꽃 농사를 짓던 J형은 신도시로 변모하는 백마에서 떠밀려 부천으로 갔다고 했다.
몇 년 전 김해 김씨 종친회가 결성되었다. 그 모임에서 J형을 만났는데 명환이 형 집에 페인트 칠을 한다고 하여 J형이 칠 일을 한다는 것을 나는 그제야 알게 되었던 것이다. 그 부자집 큰 아들이 일개 노동자로 전락해 페인트 공이 되다니 나는 어처구니가 없어 할 말을 잊었다. 종친회 모임은 두 달에 한 번 모이는데 한 달 회비는 2만 원이었다. 형문이 형이 총무를 맡아 회비를 걷는데 내 옆에 앉아 있던 J형이 웬지 불안해 하는 눈치였다. 전 달에 밀린 회비까지 내기는 부족한 돈이 지갑에 있었던 까닭이다.
돈이 쪼들려 한 달 회비만 내려하는 J형의 자존심을 건드린 건 바로 나였다. 2만 원만 내려는 걸 내가 나서서 형 지갑에 돈이 더 있는데 왜 2만 원만 내 밀린 회비까지 내야지 했던 것이다. 내 말을 들은 J이 형은 마지 못해 두어 달치 밀린 회비까지 내야 했다. 그 형은 그 옛날 잘 살았던 기억이 떠오르는 지 경조사 때마다 술을 한껏 마시고 비틀거리며 횡설수설하는 것이었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그 형은 술에 취해 엉엉 운 적이 한두 번이 아니라는 거였다.
노모를 모시고 가난하게 살아가는 그 형을 도와주지는 못 할 망정 그날 나는 그 형을 무안하게 만들어 종친회에도 나오지 못하게 가로 막았던 것이다. 나의 실언이 있은 후 그 다음 종친회 모임에서 J형의 모습을 찾아 볼 수가 없었다. 어느 봄날 날씨가 화창해 들녘에 놀러 나간 소년이 무심결에 돌맹이를 들어 풀밭을 향해 던졌던 것이다. 별안간 쿵하는 소리에 놀랜 개구리가 하는 말이 "너는 장난삼아 돌맹이를 던졌지만 나는 목숨을 잃을 뻔했다"라고 하지 않았는가 그날 나는 J형에게 크게 실수를 했던 것이다. 정말 미안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