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31주간 월요일
< 네 친구를 부르지 말고, 가난한 이들과 장애인들을 초대하여라. >
복음: 루카 14,12-14
주고받는 사람의 구별이 사라진 세상
천주교 신자들이 종교인ㆍ비종교인을 통털어 기부와 자원봉사 활동에
가장 적극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아름다운재단(이사장 예종석)이 17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개최한
제12회 국제 기부문화 심포지엄에서 강철희(연세대 사회복지대학원) 교수는
'누가 이웃을 돌보는가?' 발표를 통해
"천주교 신자들의 기부 참여율은 68%(2011년)로,
개신교(61%)ㆍ불교(60%) 신자보다 높다"고 밝혔다.
강 교수에 따르면, 1인당 기부금액 또한 천주교 신자는 37만 1100원으로,
개신교(21만 3400원)와 불교(10만 6000원)에 비해 월등히 많았다.
또 천주교 신자의 자원봉사 참여율은 49%로, 기독교(34%)ㆍ불교(27%) 신자보다 높았다.
자원봉사 시간 역시 천주교 신자들은 36.5시간으로,
타 종교 신자들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 평화신문 1188호에서
천주교 단체가 조사한 것이 아니라 더 객관적인 것 같고 그래서 더 기분 좋은 소식 같습니다.
이런 것을 볼 때는 앞으로도 우리나라의 가톨릭은 미래가 밝다고 생각이 됩니다.
인천에서 노숙자와 빈민들에게 8년째 ‘민들레 국수집’이란 것을 시작해
지금도 400명가량 식사를 무료로 제공하고 계신 서영남 베드로 선생의
평화방송 강의를 보았습니다.
본래 그 분은 순교복자수도회에서 참 행복하게 살아가시다가
47세에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살고 싶어서 수도회를 나와 국수집을 차리게 된 것입니다.
지금은 민들레 꿈 공부방도, 또 노숙자를 위한 집도 운영하고
주기적으로 교도소를 방문하고 계십니다.
그 분이 공원이나 역 근처에서 노숙자들에게 무료급식을 한다고 하면서
줄을 길게 늘어서게 하고 약간은 무료급식을 받는 사람들을 무시하는 모습을 보면서
인간적으로 따듯한 식사를 제공해야겠다는 생각이 드셨다고 합니다.
그러나 돈이 300만원밖에 없어서 많은 반찬을 준비할 필요가 없는 국수집을 하기로 했고
3개월 동안 한식 요리학원도 다녔습니다.
정말 정성어린 밥상을 만들어주고 싶으셨기 때문입니다.
처음엔 6인 테이블 하나로 시작한 것이 지금은 하루에도 150킬로 정도의 쌀로
밥을 지어야 할 때가 있을 정도로 손님이 많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뷔페식으로 되어 있어서 자기가 먹고 싶은 만큼 먹고
하루에도 두세 번 먹어도 자기 집처럼 편안한 공간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분이 원주에서 사셨던 생명운동가 무위당 장일순(요한)선생의 말을 소개했는데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어떤 사람이 장일순 선생을 찾아와서 식당을 내는데 어떻게 해야 될지를 물었습니다.
장일순 선생은 이렇게 대답하셨다고 합니다.
“식당을 잘 운영하려면 자네 집에 찾아오는 사람을 하느님처럼 대접해 드리면 돼.
다른 것은 걱정할 필요 없어.
대접 받으신 하느님들께서 가만히 계시겠어?”
정말 오늘 복음말씀과 잘 맞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손님들을 초대할 때 보답을 받을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보답해 줄 수 없는 사람들을 초대하라고 하십니다.
하느님은 정의로우셔서 이미 보답을 받은 사람에게는 아무 것도 해 줄 필요가 없지만,
보답을 받지 못했다면 당신이 직접 상을 내려주시기 때문입니다.
손님은 밥만 먹은 것이 아니라 하느님으로 들어 올림까지 받았습니다.
그것은 돈으로는 환산이 안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하느님께서 따로 갚아주시는 것입니다.
장사가 안 될 수가 없을 것입니다.
또한 서영남 베드로 선생의 자선에 대한 정의는 이러했습니다.
“‘오른 손이 한 일을 왼 손이 모르게 하라.’ 하신 예수님의 말씀은
주는 자와 받는 자의 구별이 없어야 한다는 말씀 같습니다.
만약 엄마가 아이에게 밥을 먹이려고 쫓아다니고 있다면
아이는 밥을 먹어줌으로써 엄마를 만족시킵니다.
엄마는 아이가 밥을 먹어주는 것만 보아도 기분이 좋고
아이를 먹이고 나서야 자기가 밥을 먹습니다.
여기에는 주는 자와 받는 자의 구별이 없는 것입니다.”
너무 훌륭한 말 같습니다.
마지막 날에 구원받는 사람들이 “우리가 언제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주었습니까?”
라고 물을 것입니다.
그것은 본인들이 주는 입장이 된 적이 없기 때문인 것입니다.
엄마가 엄마의 역할을 한 것이지 아이에게 자선을 한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엄마는 아이에게 자선을 했다는 것을 기억하지 않습니다.
그냥 엄마의 역할을 한 것입니다.
우리는 가난한 사람들 덕분에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만약 세상에 부자들만 있다면 우리는 우리의 선행 덕분으로 상을 받을 것이
아무것도 없을 것입니다.
그들이 이 세상에서 다 갚아주어 주님께서 갚아줄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또는 가장 보잘 것 없는 형제들에게 해 준 것이 곧 그리스도께 해 준 것이 되는데,
보잘 것 없는 형제들이 없다면 어떻게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에게 보답을 해 줄 수 없는 사람들이 곧 우리 구원을 도와주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러니 서로 주고받는 것이고 자선을 하는 사람도 자선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많은 신자들이 저에게 먹을 것을 가져다줍니다.
그것을 저 혼자 먹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저는 받아줍니다.
그렇지만 주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그렇게라도 받아주는 저에게 감사를 합니다.
감사해야 할 사람은 오히려 저인데 말입니다.
서로에게 감사해야 합니다.
하느님도 인간에게 감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당신의 성체를 받아 모셔 주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 분을 모시지 않는다면 그 분은 더 이상 구원자 그리스도의 이름을 가지실 수가 없고
당신 수난의 의미가 없어지기 때문에 매우 큰 고통을 당하십니다.
예수님도 받아주는 인간이 있으니 구세주가 되시는 것이고
그래서 인간에게 주시기 위해 엄마처럼 쫓아다니시는 것입니다.
마더 데레사로 걸인을 그리스도로 보면서부터 인생이 바뀌었습니다.
우리도 우리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그리스도처럼 보게 될 때,
그래서 ‘감사한 마음으로 주게 될 때’ 참으로 보답을 받게 될 것입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서로에게 감사해야 합니다"
아멘!! 감사합니다.
감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