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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서울 송파구 잠실에서 산다.
아파트 뒷창문에는 우리나라 최고로 높은 롯데몰 건물이 보인다. 123층(높이 555m) 건물이 넘어지면 내가 사는 아파트를 덥칠 것 같이 불안하기도 하고.
아파트에서 5 ~7분 걸어가면 석촌호수 서호에 갈 수 있다. 석촌호수는 서호와 동호로 나눠져 있지만 서로 연결되어 있어서 한 바퀴 2,563m이다. 석촌호수에는 쉼터가 여러 군데가 있고, 서호 쉼터가 가장 넓고 운동시설이 넉넉해서 노인들이 무척이나 많이 나와서 산책하며, 쉰다. 돌벤취 위에 걸터 앉아서 바둑, 장기를 두는 노인들이 제법 많다. 구경꾼 영감들은 더욱 많고. 모두 다 늙어서 아무 것도 할 일이 없는 노인들로 여겨진다.
나는 시간이 나면 운동삼아서 석촌호수에 나가고, 또 장기를 좋아해서 장기구경꾼이 된다. 바둑 구경도 하지만 바둑 한 판은 너무 지루해서 구경하는 것조차도 지루하다.
할머니들도 무척이나 많이 나와서 운동기구로 굳어진 삭신을 푼다.
쉼터에 나온 사람들은 거의 다 노인네들이고, 노인들이 돌보는 아이들도 제법 많다.
서울 송파구 석촌호수에는 왜 이렇게 노인네들이 많을까?
일거리가 없기 때문일 게다.
어제던가?
어떤 카페에서 글 하나를 보았다.
파지를 줍는 노인에 대한 내용이었다. 파지를 줍는 노인네가 안쓰러웠단다. 파지를 줍는 노인한테 뒷전에서 수근대고 손가락질을 하는 듯한 내용이 들어 있어서 나는 놀랐다. 파지를 힘들게 주워서 판 돈을 불우이웃 돕기 성금을 내는데, 그게 오히려 미움을 받는 듯한 내용으로 변질되었다. 집
이 세 채를 가진 부자영감이란다. 파지는 부자가 아닌 가난한 사람들이 줍도록 놔두어야지 부자노인까지 파지를 주워가면 안 된다. 부자 영감은 파지를 주워서 판 돈으로 성금을 낼 것이 아니라 다른 재산으로 내놔야 한다.
또다른 사례이다.
빌딩 여러 채를 가진 노인네는 할머니가 놀지 말라고 구박하기에 바깥에 나와 폐지를 줍는다는 내용이다.
이야기의 본질은 파지는 가난한 사람들이나 줍는 것이지 재산에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파지를 수집해서 팔면 안 된다는 논리였다.
일응 맞는 말인데도 나한테는 선뜻 동조하기에는 석연치 않았다.
송파구 석촌호수에 나와서 바둑, 장기를 두는 사람들은 대체로 옷을 허름하게 입었고, 나이도 듬직했다. 더러는 30대, 40대도 눈에 띄었다.
내가 보기에는 일을 해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연령들인데도 왜 벌건 대낮인데도 쉼터에 나와서 어리적거리며, 고작 바둑 장기나 두고, 윷놀이도 하고, 운동기구에 매달려서 시간을 보내는지. 노는 그 자체가 답답해 보였다.
어떤 카페에 오른 글.
성금을 낼 때에는 파지를 주워 판 돈으로 하지 말고, 본래의 재산을 덜어서 돈을 내라는 요지이다.
그런데 나는 다르게 보고 싶다.
노인네가 일하는 그 자체를 보다 가치있게 보고 싶기 때문이다..
쉼터에 나와서 할 일이 없으니까 바둑, 장기, 윷놀이를 하는 것보다는 파지/폐지를 주워서 리어커에 가득 실고는 힘들게 끌어서 파지를 파는 곳으로 운반하고, 팔아서 돈을 버는 노동이 훨씬 값지다고 보았다.
집이 여러 채이며, 작은 건물이 여러 동(棟) 가진 부자 노인이라도 나는 일하는 그 자체를 신성시하게 여기고 싶다.
파지를 가득 채운 리어커에는 200kg를 얹질 수 있다. 종이박스를 뜯어서 눌러서 납작하게 해서 차곡 차곡 쌓아올리려면 얼마나 손이 더럽고, 다칠까? 또 200kg 리어커를 끌려면 엄청나게 힘이 들 것이다. 노인네가 끌려면 얼마나 애를 썼을까?
파지 수거상에 끌고 가면 1kg 50원을 받는다. 200kg 파지 판매값은 10,000원. 서너 시간 노동한 댓가이다.
하루 몇 시간 일해서 버는 돈, 15,000원 벌이가 힘들다고 한다.
파지를 줍는 사람들이 무척이나 많아서 경쟁까지 한다.
이렇게 힘들게 파지를 모우고, 팔아서 생긴 돈을 자기가 쓰지 않고 불우이웃한테 성금을 내는 게 잘못일까?
성금을 전혀 내지 않고 자기 주머니에 들어갔다면, 부자인데도 파지를 주어서 팔아서 돈을 모았다면 욕심 많은 늙은이라고 손가락질을 해도 무방하지만 그게 아니고 불우이웃 성금을 낸 사실조차도 탓하는 듯한 내용이었다.
이에 동조하는 댓글도 제법 있었다.
나는 1949년 1월 생이다. 서해안 산골마을에서 태어났고, 1950년대 이후 60년대 70년대 초까지의 농촌을 기억한다. 정말로 가난했고, 못 살았던 시절이었다. 또 1960년부터 대전 중구 은행동에서 살았기에 1960년대의 대전 중심지를 많이 기억하고 있다.
60년 전, 50년 전의 농촌과 우리나라 6대 도시인 대전 중심가의 생활상이 눈에 훤하다.
대전 중심지는 대전역전통이 흐르는 은행동, 충남도청 거리이다. 이 당시의 대전에서는 장작과 솔가지를 땠다. 구루마(달구지)에 장작을 가득 실었고, 지게로 솔가지 짊은 지어서 파는 산꾼이 있었다.
당시에는 하수도 처리가 안 되어서 똥수깐/변소에서 나오는 오줌 똥은 소마통으로 퍼서 달구지에 실어갔다. 소마통 하나에 돈 얼마씩이었다.
이런 생활을 보고 컸던 나는 1960년대 말에 서울로 올라와서 대학교에 다녔다,
허름한 뒷골목의 하숙집...
그 당시의 가난과 부자가 어땠는지를 조금은 알 것 같다.
수십 년이 지난 2018년인 지금. 내가 보는 세상은 천지가 뒤바뀔 만큼이나 많이 변했다.
모두가 다 부자이며, 모두가 다 잘 사는 세상으로 보여진다.
그런데 말이다. 그런데 말인데...모두는 아니었다!
서울 송파구 석촌호수 서호에 있는 화장실 주변에는 노숙자가 머문 흔적들이 잔뜩 남아 있다.
일전 12월에 눈이 내렸다. 눈 내린 석촌호수에 운동삼아서 산보 나간 내 눈에는 노숙자가 눈에 띄었다. 나무벤취 위에 허름한 비닐천을 깔고 그 위에 모로 누워서 벌벌 떠는 80살이 훌쩍 넘어보이는 노인은 양말도 신지 않았다. 양말 대신에 신문지 종이를 찟어서 운동화 안에 넣었다.
왜 이렇게 추운 날 바깥에 나와서, 벤취에 누워서 벌벌 떠는지 그 이유를 차마 물을 수가 없었다.
그늘 진 숲 아래 벤취에 누워 있지 말고, 차라리 화장실 안에 들어가서 몸을 웅크렸더라면 덜 추울 텐데 하는 생각도 들었다. 아마도 화장실에 들어가지 말라는 경고를 받았을 성싶다.
그게 너무나 안타까운 내 눈에는 또 하나의 장면이 떠올랐다.
2016년 11월, 12월 초. 서울 종로구 광화문에는 촛불집회가 주말마다 있었다. 100만 명이 훌쩍 넘는 엄청한 시위대가 파도처럼 몰려들고 구호를 외쳤던 광화문 세종로 일대.
나는 지하철을 타고 내렸다. 지하 통로 으숙한 공간 빈터에는 으레껏 몸을 움추는 노숙자 걸인들이 덜덜 떨었다. 차가운 시멘트 바닥 위에 비닐천을 깔고는 그 위에 누워서 더럽고 불결하나마 두꺼운 옷가지를 덜고 자는 체하는 노숙인들이 몇몇 있었다. 이 노숙자 이불 위에 내던진 촛불시위 전단지들도 눈에 띄었다.
그 당시 나는 왜그리 속상하던지, 그 노숙자들이 왜그리 불쌍하면서도 미웁던지, 그 노숙자가 뒤집어 쓴 이불 위에 내던지 촛불시위 전단지와 태극기가 왜그리 어울리지 않았던지...
설마하니 그 노숙자보고 촛불시위에 참가하라는 뜻이었을까?
가난한 이웃한테 성금을 내는 게 당연시하는 세상이었으면 싶다.
어떻게 돈을 벌었는지를 따지지 말고, 자기 분수와 형편에 따라서 성금을 내는 세상이었으면 싶다. 강제가 아닌 자발적으로...
하나의 예다. 우리나라 제1위 부자는 삼성그룹 이 씨네. 이 회장 개인재산은 아마도 18조 원 이상일 게다. 1억 원이 180,000개이며, 그의 아들 재용 씨도 아마 80,000개나 되고, 이 회장의 부인, 두 딸도 아마 수 조 원씩 가졌다. 이들 가족의 돈을 합치면 아마도 1억 원짜리가 300,000개도 넘을 것 같다. 이들이 1억 원을 성금으로 낸다면 1/300,000이다.
성금 1억 원이면 엄청나게 큰 돈인데도 말이다.
우리나라 남한 인구 가운데 자산(부동산이 아님) 1억 원이 넘는 사람은 250,000명이다. 인구 200명 당 한 명은 돈이 1억 원을 가졌다.
이 통계를 보면 모두가 다 부자인 것처럼 착각을 한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정말로 가난한 이들도 숱하게 많은 세상이다.
눈을 제대로 뜬다면, 사회이면을 돌 줄 아는 눈이 있다면...
나한테는 리어커를 힘들게 끌어서 번 돈으로 성금을 낸 분의 성의를 더욱 값지게 여길 것이다.
하루 3 ~5시간 일해서 번 돈 10,000 ~15,000원이 훨씬 소중하고 가치있다고 본다.
내 기억이다. 1960년대 말, 1970년대 초.
조국근대화의 물결이 노도같이 도시와 시골에도 밀려왔다.
1960년대, 70년대 초의 농촌에서는 머슴(일꾼)들이 많았다. 논이 제법 있는 부잣집에서 머슴으로 들어가 주인집에서 먹고 자면서 일년내내 일한 품싹 새경은 쌀 12가마니. 정월 설을 쇠면 머슴을 바꿨다. 머슴이 와서 새경을 먼저 받아가면 쌀 8가마니였고, 농사 다 지은 뒤에는 쌀 12가마니였다.
쌀 12가마니가 일꾼이 1년 내내 번 돈이다. 2018년 농촌의 쌀값은 엄청나게 많이 올랐다. 지난해 2017년에는 80kg 한 가마니는 140,000원이었고 올해 2018년에는 180,000원으로 대폭올랐다.
올해 기준으로 과거 일꾼아저씨가 받았던 쌀값을 계산한다.
180,000원 x 쌀 12가마니 = 2,160,000원. 즉 216만 원이 일한 품값이다.
이것도 감지덕지해야 했던 1960년대, 70년대의 농촌 일꾼아저씨의 1년 품값이다.
일꾼 아저씨는 이 쌀을 가져가서 보리쌀로 바꿔서 가족을 먹여 살려야 했다.
쌀밥을 먹는 게 아니고, 보릿쌀, 잡곡으로 바꿔서 먹어야 했던 과거. 불과 50년 전의 저쪽 과거였다.
그 나머지로 생활비로 썼으니 얼마나 가난이 오래 지속되었을까?
서기 2018년인 지금... 임금 216만 원이 1년 번 돈이라면 생활이 가능할까?
들은 희망이 없는 농촌을 버리고 도시로 빠져나갔다.
도시에서는 공장들이 돌아가기 시작했고, 한 번 떠난 이들은 고향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그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간간히 소식은 바람처럼 들려왔다. 부자가 되었다고, 자식들이 잘 풀려서 공무원이 되고, 선생님이 되고, 대학교수가 되었다고...
어? 그렇고 보니 나도 그렇네?
내 아버지, 어머니는 학교 교문이 어디에 붙었는지도 모를 무학자, 노동자였기에.
세상은 정말로 많이 변했다.
나는 1975년 서울 중구에서 서울시 공무원으로 발령이 났다.
중구 충무로 동사무소에 배치되었고...
그 당시에는 청계천 일대가 재개발되어서 이주민들은 잠실아파트 지구로 이주권을 받았다. 잠실벌에 주공아파트 단지(1 ~5단지)가 생길 때였다. 아쉽게도 청계천 철거민들은 돈이 적어서 아파트 이주권을 팔고는 성남 빈민촌으로 갔다.
나한테도 이주권을 사라고 충동질하는 직원도 있었으나... 나는 불과 40일 만에 공무원 직을 때려치우고는 백수건달이 되었다. 말단공무원 생활이 답답했기에.
수십 년이 지난 뒤 내 고교 친구는 동장이 되어서 잠실에서 만났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이다.
청계천 일대의 철거민들 가운데 잠실아파트 분양권을 받은 사람도 있고, 이것을 팔고 경기도 성남으로 나간 사람도 있다.
수십 년이 지난 뒤 송파구 잠실에는 우리나라 최고로 높은 롯데몰(123층)이 들어서는 곳이 되었고, 경기도 성남시도 엄청나게 큰 부자동네로 변신했다.
나는 1978년 다시 서울로 되돌아왔다.
잠실아파트에 살면서 용산구에 있는 직장에 나가려면 통근버스는 강남구 삼성동을 지나가야 했다.
앞산을 깎아내리는 작업으로 흙먼지가 뿌이연했을 만큼 어수선한 개발지.
그곳이 지금은 테헤란로이다. 하늘을 가리는 고층건물이 즐비한 무역센터 등이 있는 별천지 지대로 변했다.
모두가 다 부자가 되었다.
2018년 지금이다.
서울 송파구 석촌호수 쉼터로 놀러나온 늙은이들.
내가 보기에는 이들은 직업이 없다. 왜 아침나절에도 나오고, 점심나절에도 나오고...
내가 보기에는 일할 나이인데 왜 놀이터에 와서 빈둥거리지? 무엇이라도 해야 할 나이인데?
하지만 이내 고개를 흔든다. 일할 게 있어야지 일을 하지, 일할 곳이 어디에 있기나 하나?
허리 꾸부정하고, 얼굴이 추욱 늘어진 늙은이를 채용해서 일 시키는 곳이 있다던? 그게 어디인데?
아하.. 일할 곳이 없으니까, 가진 기술과 능력이 없거나 부족하니까 건물 주차장 관리인, 아파트 경비원이 되겠지. 그곳조차도 취직할 수도 없는 무기력한 노인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고작 폐휴지를 주워서 파는 일이구나를 깨닫게 된다.
1960년대, 70년대에 시골인 농촌/어촌/산촌에서 도회지로 대도시로 올라온 사람들은 대체로 학력이 없거나 낮다. 특별한 기술도 없기에 그저 몸뚱이와 손재주로 일하면서 돈을 벌었고, 어쩌다가 운이 좋은 사람은 집을 여러 채 장만하고, 더 운이 틘 사람은 소형건물을 소유하는 알부자로 변신했다.
어쩌면 이들은 대부분 짠돌이출신이다. 자신의 노력으로 부를 차곡차곡 싼 사람들이다. 노동이 몸에 밴 노인들이기에 아직도 놀 수가 없어서 부실한 몸뚱이로 쓰레기장에 버려진 폐휴지를 수거해서 리어커에 실고, 폐지수집상에 끌고 가서 판다. 1kg 50 원씩 받으면서.
내가 보기에는 이들이 정말로 고맙다.
산더미처럼 쌓이는 쓰레기를 뒤져서 재활용할 수 있는 자원을 모우고, 그걸 팔아서 용돈 쓰고, 또 아껴서 손자손녀한테 용돈 주고, 또 남겨서 위 사례처럼 불우이웃한테도 나눠준다.
불우이웃을 돕는 사람은 우리나라 재계 1위인 삼성그릅, 2위인 현대그룹, 5위인 롯데그룹(송파구 롯데월드몰의 사주)을 비롯하여 재계순위 10,000번, 100,000번 쯤의 사장님 사모님들만이 하는 것은 아닐 게다. 100만 명쯤의 공무원, 100만 쯤의 준공무원, 300명의 국회의원, 3,000명의 지방의원, 정치인, 법조인, 20,000명의 변호사, 변리사, 회계사, 대형부동산 소유자 등 잘 먹고 잘 사는 사람들이 내는 성금은 얼마나 가치가 있을까?
진짜로 가치 있는 성금은 노인인데도 자기 깜냥껏 일해서 번 돈을 기꺼이 내놓은 분들이다.
위 사례처럼 배운 것도 없고, 별다른 능력이 없고, 늙어서 몸이 부실한테도 무거운 리어커를 끌어서 4 ~5시간 노동해서 번 돈 10,000 ~15,000원 가운데 전부 또는 일부를 떼어서 낸 지원금이 정말로 가치있다.
대한민국 사회의 이면을 과연 제대로 보여줄까?
정부가? 업체가? 언론매체가? 사회단체가?
글쎄다.
하나의 증거를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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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을 제대로 보았으면 싶다.
눈에 보이는 것보다는 눈에 보이지 않은 뒷면도 보았으면 싶다.
서해안 지방의 화력발전소 발전량 내역이다.
경기도 영흥 5,080MW
충남 당진 6,040MW, 에코 1,160MW로 연료 전환 중
충남 태안 6,100MW
충남 보령 6,000MW
충남 서천 400MW, 신서천 1,100MW 건설 중
한국동서발전 산하 당진화력발전소에는 1일 30,000톤의 석탄을 태워서 발전한다.
위 화력발전소들의 경우에도 엇비슷한 량의 석탄을 태운다고 본다.
석탄 태우면서 나오는 매연, 찌꺼기인 석탄재, 뜨거운 물은 어떻게 처리할까?
충남은 우리나라 화력발전의 52%을 생산하는데 석탄재, 석탄재 찌꺼기, 뜨거운 물은 과연 어떻게 처리할까?
보령지방 내 시골마을 뒷산에는 10분이면 올라간다.
바로 남녁에는 서천화력발전소가 내려다보이고, 바로 북녘에는 보령화력발전소가 보인다.
이 두 개의 화력발전소에서 나오는 매연과 석탄재는 어디로 흘러 갈까?
보령지방 바로 위가 태안군.
며칠 전, 태안화력발전소에는 24살 먹은 비정규직 청년(김용직)이 혼자서 석탄 운반기에서 떨어진 석탄을 줍다가 기계에 빨려들어가 머리통이 끼어 눌려서 죽었다.
그런데도 여러 시간 동안 관리소에는 사고 그 자체도 모르고...
이 사건 이외에도 태안화력발전소에는 해마다 엄청나게 많은 인명 피해가 있는데도 쉬쉬했다.
그럼 나머지 화력발전소의 경우는 또 어떠할까? 12개 쯤되는데...
설마 이들 기관이 양심껏 발표할까?
또 있다.
충남 서산 대산읍 일대에는 대산 석유화학단지가 있다.
현대오일뱅크, 롯데케미칼, 한화토탈, 엘지화학 등 국내 굴지의 대기업 화학공장도 몰려 있다.
충남 해안지방에는 하늘과 바다에는 엄청나게 많은 유해물질이...
심지어는 중국발 미세먼지와 화학분진이 해풍을 타고 직접 날아온다.
이래저래 충남 바닷가 지방에는 수질과 공기가...
2007년 12월 7일의 충남 태안군 기름유출 사고를 떠올린다.
삼성 -허베이스피리號가 유조선과 충돌. 기름이 엄청나게 쏟아져 태안군 만리포 해변가는 물론 바다 속을 새까맣게 물들이고, 태안군, 서산시, 홍성군, 당진군, 보령군, 서천군까지 널리 퍼져서 온 바다를 심하게 오염시켰다.
삼성그룹이 뒷처리를 제대로 했을까 싶다.
그 당시 자원봉사자들이 태안군 갯바다를 방문하면서 엄청난 사고에 놀라서 입을 쩍쩍 벌렸고, 갯벌에 새까맣게 가름덩어리가 뒤덮었던 만리포해수욕장, 어운돌, 파도리, 통개항 등에서 기름을 닦아냈다.
구토할 만큼 혐오스러운 기름냄새는 불과 11년 전의 사고였다.
2016년 환경부는 우리나라 미세먼지 원인은 '고등어 구이'때문이라고 발표했다.
도대체 얼마나 많이 생선인 고등어를 구워먹었기에 미세먼지 발생 요인이 되었을까?
얼마 뒤에 환경부는 정정보도를 했지만 나는 환경부 공무원의 이런 인식에는 기가 질린다.
거짓말 잘하는 자들을 뽑아서 배치한 국가/정부기관일까 싶기도 하고.
나는 분개한다.
'예... 매연 잘 마시고 있어요. 눈알이 따갑지만 그냥 참고 있어요.'
왜요?
진실을 모르니까요.'
왜 우리의 눈에는 보이는 것만 보일까?
잘난 것들로 거짓 포장하고 위장하고, 멋진 것들만 보여주기에.
모든 홍보시스템에 문제점은 없을까?
국가, 정부, 기관, 단체, 업체 등은 물론이고 개인도 속이고, 숨기고, 감추고, 변명하는 행위는 모두가 마찬가지 아니었을까?
위 2개 사진.
허락도 없이 임의로 퍼왔습니다.
지적소유권에 해당하며, 자칫하면 형사고소되어 처벌받을 수도 있습니다.
위 사회현실을 증명할 사진이기에 퍼왔습니다.
잘 활용하겠습니다.
용서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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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5060카페에는 경북 구미공단에서 25년쯤 일을 하다가 퇴직한 여성 회원이 있다.
나는 예전 직장생활을 할 때 업무차 우리나라 굴지의 생산업체인 삼성, 현대, 대우, 한국화학 등의 업체를 방문한 적이 있다.
창원, 구미, 거제도, 울산, 광주, 대전, 충남 태안 등지이다.
이들 대형 공장을 방문할 때면 이따금 노동자들이 데모/시위하는 현장을 보면 가슴이 답답했다.
무표정의 집단들이 두려웠다.
나는 공단의 최고 임원진에 둘러싸여서 대형 회의장에서 앉아서 회사측이 비춰주는 영상화면을 보면서 답답해 했다.
잘나고 멋지고, 아름다운 것들만 보여주었기에. 그 크고 넓은 회의장에는 나와 일행(한 두 명에 불과)과 몇몇의 임원들이나 시청하고.
이들 업체의 홍보는 진짜의 진실을 보여주지 않았다.
어떤 공단인지 모르겠다. 공장 안에 들어섰더니만 생산근로자 모두가 서서 일하고 있었다.
'아니 왜 서서 일해요? 무척이나 피곤할 터인데? 의자 없어요?'
'서서 일하면 능률이 오르니까요.'
라는 안내자의 대답에 나는 입을 딱 벌리고 말았다.
세상에나... 서서 일하려면 얼마나 다리가 아프고 힘이 들 터인데... 의자에 앉아서 쉴 수도 없게끔 쥐어짜는 게 회사방침이던가?
30년이 흐른 지금에는 노동자 인권이 나아졌을까?
2018년 지금에는 근로자/노동자의 대우가 나아졌는지를 모르겠다.
일전 충남 태안군 화력발전소에서는 인명사고가 발생했다.
불과 24살 먹은 젊은 청년(비정규직) 김용균이가 석탄 운반하는 기계에 머리가 끼어서 압사당했다.
혼자서 일하다가 죽었는데도 관리실에서는 몇 시간 동안이나 사망사고 사실을 전혀 몰랐다.
이 사고는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약자를 쥐어짜서 번 돈으로 재벌이 되는 것일까?
큰 부자가 되는 것일까?
얼마쯤 더 많이 가져야 슈퍼재벌이 되는 거여?
나는 서해안 산골마을에 주소지를 둔 늙은이다.
처자식이 있는 서울 아파트에서 머문다. 추운 겨울이기에 시골 내려가서 텃밭 가꿀 수도 없고...
이런 내가 서울 송파구 잠실지역에서 리어커를 끌고 쓰레기장에 버려진 폐지를 주워서 리어커에 실고서 파지를 팔까?
아니다. 그럴 용기가 전혀 없다.
위 사례에서 파지를 줍고 모아서 판 돈으로 불우이웃 성금을 낸 노인한테 나는 고개를 수그린다.
고맙습니다. 일할 수 있는 그날까지 더욱 건강하세요.
카페에서는 긴 글 올리면 혼이 난다.
너무나 길다고...
그런데 나한테는 이런 글은 무척이나 짧다.
아쉽지만 이쯤에서...
2018. 12. 17. 월요일.
나중에 다듬자.
첫댓글 파지를 줍는 노동의 가치, 그 파지를 팔아서 낸 성금의 가치
둘다 신성한 가치라 생각합니다
다만 파지를 주워서 모았다가 파지줍는 분들에게 전달한다면 일거양득이 되겠네요
아직 다 쓰지 못한 초안인데도 벌써 댓글 달아주셨군요.
우리 사회... 너무나 진실을 모릅니다.
과거를 되돌아볼 줄도 모르고요.
사회약자를 보듬는 마음들이 무척이나 부족합니다.
부자들 떼부자들은 속이고 감추고, 관계, 정치계, 법조계 등을 등에 엎고는 비리를 엄청나게 저질러서 음성으로 축재한 것이지요.
그런데 위 사례서 드는 작은 부자들. 고작 작은 집 여러 채,. 작은 건물 소유주의 재산...
그거 언제 쌓아올린 것인가요? 극히 짧은 세월에 쌓아 올린 흔적입니다.
저는 1968년 대전에서 서울로 올라왔는데...서울 정말로 꼬질꼬질하고 후졌대요. 서울역전 뒷편 서대문구...
실망으로 가득 찼던 수도...
2018년인 지금에는..
부정한 방법으로 축적된 돈이 문제이지
정당하게 버는 돈은 문제가 없다고 봅니다.
가난이 죄가 아니라 가난에서 벗어나지
않으려는 게으름이 죄라고 한것처럼...
예. 님의 댓글이 맞습니다.
저는 지금 서울 송파구 잠실에서 삽니다.
우리나라 부자들은 서울 서초구 강남구 송파구 3구에 몰려있지요. 새로운 지역이지요.
저는 1970년 초. 여동생이 대학다니면서 한남동에서 전세 자취생활.
제3한강교 넘어 강남구 말죽거리에 가면 전세돈으로 땅을 살 수 있는데.. 여동생이 고개를 흔들대요.
그 후진동네.. 어떻게 한강넘어 강남으로 내려가느냐고요?
수십 년이 지난 지금 강남구 말죽거리...
상상을 초월하게 큰 부자들이 살대요.
세상 정말로 빠르게 변했대요.
최윤환님 ~ 죄송하네요
좀전에올린글 답없어 견인했습니다
하루한편 인거 아시잖아요
제가 두 개 올렸나요?
정신없어서 깜박 잊었나 봅니다.
오늘 친구의 카페에 글 여러 개 올리다가 지치면 다른 카페에 들어가고 나오고 했다가
친구 카페로 착각했나 봅니다.
무엇을 올렸는지 생각도 안 납니다.
조심하겠습니다. 정말로 죄송합니다.
카페 질서 해치고 싶은 의도는 전혀 없습니다.
좋아하는 카페이기에...
최윤환 ~ 곰내님과 닮은듯 느껴집니다 아뭇든 남을위해 베푸는것은 좋은현상이지요
첨부터 끝까지 글이 길긴 기내요 ㅎㅎㅎ
고맙습니다.
카페 글에서는 길다는 것 압니다.
카페에 올리는 글은 저한테는 소중한 글감입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구미가 경북이군요. 고쳤습니다.
삶방에서 규제 풀렸습니다.
지난 8. 12. 활동정지되었고, 10. 12. 활동정지 풀렸습니다.
저는 떳떳하게 활동하고 싶어서 본명으로 활동하겠다고 했습니다.
한 번 확인해 보세요.
댓글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