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하늘에 우물을 판다
파란 물로
그리운 사람의 눈을 적시기 위하여
깊고 깊은 하늘의 우물
그곳에
어린 시절의 고향이 돈다
그립다는 거, 그건 차라리
절실한 생존 같은 거
가을은 구름밭에 파란 우물을 판다
그리운 얼굴을 비치기 위하여
-『부산일보/오늘을 여는 詩』2023.10.24. -
상상해보면 ‘하늘 우물’은 얼마나 기이하고 아름다운가! 우리의 머리 위에 깊고 푸른 우물이 드리워져 우리의 낯빛, 몸짓 등을 선명한 그림자로 보여주고 있다면 쉬이 헛된 생각을 품지 않을 것이다. 그때 하늘은 ‘천경(天鏡)’, 즉 거울이 되어 우리의 마음을 비추고 닦게 하여 이 우주가 얼마나 장엄하고 환한지를 알게 한다. 하늘을 올려다보며 살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조병화 시인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가을 하늘은 그 푸른 물기로 ‘그리운 사람의 눈을 적셔’ 씻어주기도 한다는 것이다. 하늘이 주는 세례,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에서의 ‘은총’일 것이다. 지상과 천상이 맞닿아 영적인 교감을 자아내는 신비! 그러므로 하늘을 바라보며 사는 것은 ‘그리운 것’이 되고, 참된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한 ‘절실한 생존 같은 것’이 된다. 공활한 가을 하늘의 기운이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