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三國志) - 8회 - 관운장(關雲長)과 장비(張飛)의 만남 - 유비(劉備)가 집으로 돌아온 지 어느덧 4년이 흘렀다. 그러는 동안에도 황건적(黃巾賊)의 세력(勢力)은 날이 갈수록 자꾸만 확대(擴大) 되어가고 있었다. 그리하여 이즈음에는 세상이 자기들 것인 양, 대낮임에도 불구하고 민간인(民間人) 재물(財物)과 관공서(官公署)를 공공연(公公然)히 약탈(掠奪)해 가건만 아무도 그들을 막아내는 힘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조정(朝廷)에서는 십상시(十常侍) 내시(內侍 : 환관(宦官)들이 권세(權勢)를 움켜쥐고 매관매직(賣官賣職)으로 정사(情事)를 주물러 대는 판인지라 관기(官紀 : 관리들이 지켜야 할 규율)가 날로 문란(紊亂)해져서 관군(官軍)으로서는 황건적(黃巾賊) 도당(徒黨)을 토벌(討伐)할 기력(氣力)이 전혀 없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뜻있는 사람들은 세상(世上)이 돌아가는 꼴을 보고 한숨을 크게 지으며 개탄(慨歎)해 마지않는 시절(時節)이었다. 탁현(涿縣) 고을에서 십 리쯤 떨어진 하동(河東) 해량촌(解良村)에 살고 있는 관우(關羽)라는 사람도 그런 사람들 중에 한 사람이었다. 관우(關羽)는 어려서부터 공맹학(孔孟學)을 익혀서 고서(古書)에 능통(能通)하였고 혁혁(赫赫)한 호반(虎班 : 무관(武官)의 반열)의 집안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어려서부터 무예(武藝) 또한 출중(出衆)한 사람이었다. 아울러 풍채(風采)가 좋기로도 유명(有名)한 사람으로서 얼굴은 말상(馬相)으로 길쭉한 것이 무르익은 대춧빛 같았고, 입술은 여자들이 연지를 바른 것처럼 붉었으며, 눈은 봉(鳳)의 눈에, 삼각(三角) 수염(鬚髥)이 두 자 길이나 되어 고개를 숙이면 배꼽에 닿을만하였고, 키는 무려 구척(九尺)에 이르렀다. 이런 관우(關羽)는 평소(平素)에 백학선(白鶴扇 : 학이 그려진 부채)을 애용(愛用)하였고, 어디 외출이라도 할 양이면, 반드시 수레를 타는 버릇이 있었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그가 수레에 앉아 백학선(白鶴扇)을 들고 외출(外出)을 할 때에는 마치 선인(仙人: 도를 닦은 사람)이 지상(地上)으로 하강(下降)을 한 것으로 여겨져서, 일대(一帶)의 사람들은 그를 <하동 선인(河東 仙人)>이라 불렀다. 봄볕이 따사로운 어느 날. 관우(關羽)는 백학선(白鶴扇)을 들고 툇마루에 앉아 봄볕을 즐기고 있었다. 한겨울 모질던 동장군(冬將軍)이 물러가고, 인근(鄰近) 산천(山川)에는 이미 봄빛이 무르익었지만 어지러운 세상(世上)은 조금도 누그러지지 않았다. 황건적(黃巾賊) 일당(一黨)들은 어제저녁에도 이웃 마을을 습격(襲擊)하여 백성(百姓)들의 많은 재물(財物)을 약탈(掠奪)해 갔다는 소식(消息)이 들려왔다. (봄은 대지(大地)에 무르익어서 도처(到處)에 복사꽃 살구 꽃이 아름답게 피고 있건만, 극심(極甚)한 황건적(黃巾賊)의 행패(行悖)에 민생(民生)은 도탄(塗炭)에 빠지고 나날이 인심(人心)은 날로 흉흉(洶洶)해 가고 있으니 세상이 이래서야 되겠는가?) 관우(關羽)는 봄볕 그득한 툇마루에 앉아 눈앞의 자연(自然) 경관(景觀)을 보며 백학선(白鶴扇)을 고요히 흔들고 있기는 하였지만, 그의 심중(心中)은 매우 착잡(錯雜)하였다. 사나이 대장(大丈夫)가 이 세상에 태어나 글을 배우고 무예(武藝)를 익혀 어지러운 세상(世上)을 그냥 수수방관(袖手傍觀)하고 있다는 것은 부끄럽기 짝이 없는 일 같았다. (사람이 있어야지... 뜻을 같이하고 생사(生死)를 같이할 만한 사람이 있어야지...!) 관우(關羽)는 문득 몸을 천천히 흔들며 소리 내어 중얼거렸다. 관우(關羽)가 자기 힘으로 세상(世上)을 한번 바로잡아 보려는 결심(決心)을 한지는 이미 오래되었다. 그러나 세상(世上)을 바로잡는다는 것은 혼자의 힘으로는 절대(絕對)로 안 될 일이 아닌가? 그리하여 그는 오래전부터 내심(內心)으로 뜻과 행동(行動)을 같이할 만한 인물(人物)을 찾고 있었지만 아직 그만한 역량(力量)을 가진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 (난세(亂世)에는 반드시 인물(人物)이 나타나는 법인데 어찌하여 인물이 이렇게나 없을 수 있단 말인가!) 관우(關羽)는 여러 차례 개탄(慨歎하다가 문득 깨달은 바가 있어서 백학선(白鶴扇)을 접어 무릎을 탁 쳤다. (그렇다! 집안에 가만히 앉아서 사람을 구할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찾아보아야 할 것이다!) 이렇게 결심(決心)한 관우(關羽)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애, 어디 있느냐?" 하고 굵다란 목소리로 사동(私僮 : 사사집에서 부리는 종)을 불렀다. "불러 계시옵니까?" 열다섯 살가량 보이는 사동(私僮)이 툇마루로 달려오며 대답(對答)한다. "나, 읍내(邑內)에 다녀올 것이니 말(馬)에 안장(鞍裝)을 얹어라! 그리고 청룡도(靑龍刀)를 이리 가져오너라!" 관우(關羽)의 입에서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사동(私僮)은 안방으로 달려가 청룡도언월도(靑龍偃月刀)를 들고 나온다. 길이가 한 장(丈)이 넘고, 무게가 다섯 관이나 되는 호품(好品)이 있는 칼이었다. 구 척에 이르는 큰 키에 기다란 칼을 가로 비껴 허리에 차고 나서니 관우(關羽)는 누가 보아도 기골(奇骨)이 장대(壯大)한 늠름(凜凜)한 천하(天下)의 대장군(大將軍)이었다. 그는 이제부터 탁현(涿縣) 고을에 나가 세상(世上) 돌아가는 정세(情勢)도 살펴보고, 가능(可能)하다면 뜻을 같이할 수 있는 사람도 찾아보려는 것이었다. 대문 밖으로 나오니 말(馬)은 이미 대기(待機)하고 있었다. 관우(關羽)가 몸을 날려 마상(馬上)에 올라 채찍을 한 번 호되게 후려갈겼다. 말은 채찍 한 번에 완전히 제압(制壓)되어 흙먼지를 일으키며 앞으로 세차게 달려나갔다. 이렇게 인마 일체(人馬 一體)는 십릿길을 바람을 일으키며 잠깐 사이에 달려갔다. 그야말로 기운찬 전진(前進)이요, 번개같은 속도(速度)였다. 그리하여 탁현(涿縣) 고을이 바로 눈앞에 바라보이는 지점(地點)에 이르렀을 때 관우(關羽)는 말고삐를 당겨 말을 급(急)히 멈추었다. 관우(關羽)는 말을 멈추고 나서 말을 달려오며 본 먼지 구름이 일고 있는 먼 광경(光景)을 유심)有心)히 바라보았다. (웬일일까?) 관우(關羽)는 중얼거리며 고개를 갸웃해보았다. 관우(關羽)의 눈에 들어온 것은 많은 사람들이 한테 엉켜 먼지를 일으키며 들끓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러면서 아우성조차 아득히 들려오는 것이 아닌가? (아무튼 한번 가 보자!) 관우(關羽)는 그렇게 생각하며, 말머리를 그쪽으로 돌리며, 박차를 가했다. 그리하여 수풀을 가르고 쏜살같이 달려가 보니 넓은 들판에서는 한바탕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었다. 이쪽은 키가 장대하고 시꺼먼 수염이 모질게 난 한 사람이 사십 명을 상대로 싸우고 있었는데 그들 모두가 머리에 누런 수건을 질끈 동여맨 것으로 보아서 틀림없는 황건적(黃巾賊)이 아니런가? 말하자면 한 사람이 황건적 사십여 명을 상대로 싸움을 벌이는 것이었다. 기량(技倆)이 얼마나 뛰어났던지 이미 땅바닥에는 이십여 명의 황건적 시체(屍體)가 널브러져 있을 뿐만 아니라, 그는 아직도 닥치는 대로 황건적을 후려갈기고 있는데 몸이 날래기는 가히 호랑이요, 힘이 세기로는 황소와 같았다. 관우(關羽)는 처음에는 <도와주어야 할까?>하고 망설였지만 상대의 솜씨가 가히 일취월장(日就月將)인지라 가만히 지켜보기로 하였다. 괴력(怪力)의 거한(巨漢)은 덤벼드는 어떤 놈은 땅바닥에 메다 꼿아 버리기도 하고 또 어떤 놈은 다리몽둥이를 부러뜨리는 바람에 비명(悲鳴)을 지르며 쓰러지기도 하고, 칼을 빼어들고 공격(攻擊)하는 놈은 칼끝을 피해 뒷덜미를 움켜잡고 냅다 잡아 돌리다가 패대기를 쳐대는데, 처음에는 상대(相對)가 한 사람뿐인 것을 보고 만만하게 덤벼들었던 황건적(黃巾賊) 놈들도 상대가 워낙 세다 보니 한 놈, 두 놈 꽁무니를 빼기 시작하더니, 급기야(及其也) 모두 뒤도 돌아다보지 않고 도망(逃亡)을 치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이 천하에 도둑놈들아! 게 섰거라!" 괴력(怪力)의 장사(壯士)는 산이 무너질 듯한 고함을 지르며 따라가더니 절뚝거리며 도망가는 몇 놈의 뒷덜미를 번개같이 낚아 채 또다시 내동댕이를 쳐버리는 것이었다. 관우(關羽)는 멀찍이 멈춰 서서 그 광경(光景)을 통쾌(痛快)한 기분(氣分)으로 바라보았다. 그러면서 이제야 인물 다운 인물(人物), 장수 다운 장수(將帥) 한 사람을 발견(發見)했구나 싶었던 것이었다. 이렇게 황건적들(黃巾賊)이 모두 <걸음아 날 살려라>하며 줄행랑을 쳐버리자 괴력(怪力)의 거한(巨漢)은 숨찬 모습도 보이지 아니하고 손과 손을 마주 탁탁 털고 이어서 옷에 묻은 먼지 흙을 툭툭 털어내더니 뒤로 돌아서서 읍내(邑內)로 들어가려고 하는 것이었다. 관우(關羽)는 그제서야 말에서 내려 그 사람 앞으로 걸어갔다. 그리하여 빙그레 미소(微笑)를 지으며 말을 건넸다. "누구신지 모르지만 정말 통쾌(痛快)한 싸움이었소. 황건적(黃巾賊) 사오십여 명이 형씨에게 꼼짝 못하고 당했구려." 하고 정중(鄭重)한 어조(語調)로 말을 걸었다. 괴력(怪力)을 보인 거한(巨漢)은 멈칫 멈춰 서서 관우(關羽)를 시답지 않은 시선(視線)으로 바라보다가, "당신(當身)은 누구요?" 하고 퉁명스럽게 내뱉었다. "나는 하동(河東) 해량촌(解良村)에 사는 관우(關羽)라는 사람으로 자(字)는 운장(雲長)이란 사람이오. 나도 귀공(貴公)처럼 황건적(黃巾賊) 도당(徒黨)을 엄청나게 미워하는 사람이오. 우리 서로 이름이나 알고 지냅시다." 괴력의 거한은 그 소리를 듣자 갑자기 얼굴이 환해지며, "아, 그러면 당신(當身)이 그 관운장(關雲長)이시오? 당신 이름은 그동안 많이 들었소. 그러잖아도 내가 언제 한번 찾아가 만날까 했는데 이렇게 우연히 만나게 되어 반갑소. 내 이름은 장비(張飛), 자(字)는 익덕(益德)이오." 하고 머리조차 꾸벅 수그려 보이는 것이었다. "허어... 장공(張公)이 나를 어떻게 아셨기에 나를 만나려고 하셨소?" 운장(雲長)이 적이 놀라며 물었다. "나는 혼탁(混濁)한 이놈의 세상을 바로잡아보려고 사방(四方)으로 쓸 만한 사람을 찾는 중이오. 그런데 듣자 하니 하동(河東) 해량촌에 관운장(關雲長)이라는 인물(人物)이 쓸만하다기에 한번 찾아볼 생각이었소. 정작 만나 보니 풍채도 풍채(風采)려니와 대사(大事)를 함께 도모(圖謀)할 수 있을 것 같구려!" 실로 말버릇이 우악(愚惡)스럽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사람만은 다시없이 진실(眞實)해 보이는 데다가 뜻이 일맥상통(一脈相通)하므로 관우(關羽)는 빙그레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그거 참, 듣던 중 반가운 소리요. 나도 사람을 찾는 중인데 장공(張公)이 쓸만한 사람으로 보이니 우리 서로 뜻을 합쳐 어지러운 세상(世上)을 바로잡아 보시려오?" "좋소! 그런 의미(意味)에서 우리 읍내(邑內)로 들어가 술이라도 한잔 나누며 허심탄회(虛心坦懷)하게 대화(對話)합시다." 장비(張飛)는 예의범절(禮儀凡節)과 체면(體面) 치례(致禮)하고는 거리가 있는 말과 우악(愚惡)스럽고 순진(純眞)한 성격(性格)을 보였다. "좋은 말씀이오. 장공(張公)같은 보기 어려운 인물(人物)을 만났는데 내 어찌 술을 사양(辭讓)하리오. 어서 함께 갑시다." 두 사람은 잠시 후(暫時 後) 가까운 주막(酒幕)에 들어가 앉았다. 그리하여 술을 서로 주고받는데 장비(張飛)는 힘이 장사(壯士) 일 뿐만 아니라 주량(酒量)도 밑빠진 독이나 다름없었다. "장공(張公)은 싸움만 잘하는 줄 알았더니 술에도 장사구려! 도대체 오늘은 어쩌다가 황건적(黃巾賊)놈들과 싸움이 붙었소?" 관운장(關雲長)은 술을 권(勸)하며 물어보았다. 그러자 장비(張飛)는 술을 마셔 가며 이렇게 싸우게 된 경위(經緯)를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지금은 탁현(涿縣) 고을에서 산돼지를 잡아 고기 장사를 해먹고 있기는 하지만 호반(虎班)으로서 무사(武士)들을 거느리고 있었소. 그런데 황건적(黃巾賊) 놈들이 우리 고을에 쳐들어와서 집집마다 불을 지르고 성주(城主) 님을 죽여 버리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낙백(落魄)을 하고 말았소. 그러나 성주 님의 원수(怨讐)를 갚고 황건적(黃巾賊) 놈들을 없애 버리고, 세상을 바로잡아 볼 생각에서 성주(城主) 님의 외동딸인 부용(芙蓉) 아가씨를 중심(中心)으로 흩어진 옛날 부하(部下)들을 모으려고 애써 보았지만 모두들 황건적(黃巾賊)의 기세(氣勢)에 눌려 꽁무니를 빼더군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지난달부터 산이 많은 이곳 탁현(涿縣) 고을로 와서 산돼지를 사냥해다가 고기를 팔아 연명(延命)을 하고 있었는데 오늘도 사냥을 나가려니까 몇 놈이 나타나서 나더러 돈을 내놓으라는 것이 아니오? 그렇잖아도 황건적 놈들에게 앙심(怏心)을 품고 있던 판인데 놈들이 되먹지 않게 놀길래 그 몇 놈을 박살(撲殺)을 내버렸지요. 그랬더니 본보기로 몇 놈만 혼낸다는 것이 얻어터진 놈들이 일당(一黨)을 끌고 와서 이렇게 사오십 명이 되어버린 것이오." "그나저나 대단하시오. 몇 놈만 혼 내려다가 물경(勿驚) 사오십 놈들을 한꺼번에 맨손으로 물리쳐 버렸으니 하하하..." "나는 워낙 성미(性味)가 사나워서 한 번 손을 대기 시작하니까 어디 한두 놈만 죽여 없애고 참겠소이까. 그래서 덤벼드는 놈들 족족 씨알머리도 없이 부숴버린 게지요." "아무튼 구경만 해도 통쾌(痛快)합디다." "나도 오늘은 오래간만에 울적(鬱寂)하던 가슴이 탁 트이는 것 같소. 더구나 당신(當身)을 만나고 보니 더욱 통쾌(痛快)하오 하하하...." 관운장(關雲長)과 장비(張飛)는 술을 나눠 가며 통쾌(痛快)하게 웃었다. 서로 간에 마음과 뜻이 맞았던 것이다. 술을 한 잔 한 잔 거듭하는 동안에 어느덧 석양(夕陽) 무렵이 되었다. 관운장(關雲長)은 마지막 술잔을 내려놓으며 장비(張飛)에게 이렇게 말했다. "자, 오늘은 이만 헤어지고 일간(日間) 다시 만납시다. 나는 언제든지 집에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 장공은 내일이라도 우리 집에 한번 놀러와 주시지 않으려오?" "아니, 우리가 뜻을 같이해서 큰일을 도모(圖謀)해 보자더니 이대로 헤어지자는 말이오?" 장비(張飛)는 화를 불끈 내면서 투덜거린다. "하하하, 장공(張公)은 성미(性味)도 급(急)하시오. 여기는 술집이라는 사실을 아셔야 하오." "여기가 주막(酒幕)이란 것을 내가 모르는 줄 아시오? 우리가 대사(大事)를 도모하는 데 주막이 무슨 상관(相關)이란 말이오? "주막(酒幕)이란 곳이 술을 마시는 곳이지 대사를 도모(圖謀)할 장소(場所)는 아니잖소. 장공(張公)은 나를 믿고 수고스러운 대로 내일 아침에 내 집까지 와 주면 고맙겠소." 관운장(關雲長)이 장비(張飛)의 손등을 부드럽게 두드리며 달래는 바람에 장비도 약간 누그러졌다. 그러나 아직도 어딘가 불만이 남아서, "그 양반 참, 성미(性味)도 누그럽기만 하네. 이왕 만난 김에 죄다 털어놓고 말할 일이지. 내일까지 미룰 건 뭐란 말이오!" 하고 투덜거렸다. "하하하, 천하(天下)의 대세(大勢)가 하루아침에 이루어질 일이 아니니까, 서로 간에 생각도 하고 계획(計劃)도 신중(愼重)하게 세워야 할 게 아니오?" 관운장(關雲長)은 빙글빙글 웃으며 장비(張飛)를 다시 달래 놓고 나서, "장공(張公)이 만나 본 사람들 중에 우리와 뜻을 같이할 만한 인물이 더러 있습디까?" 하고 화제(話題)를 돌려 물어보았다. "웬걸요! 모두 다 쥐새끼같이 소심한 놈들뿐이어서, 쓸 만한 위인(偉人)이 한 사람도 없던걸요!" 장비(張飛)는 머리를 설레설레 저으며 부인(否認)하고 나서 잠시(暫時) 궁리(窮理)에 잠긴다. "아 참, 쓸 만한 인물(人物)이 한 사람쯤 없는 것도 아니오." 하고 큰소리로 외쳤다. "쉿! 듣는 사람이 없기는 하지만 목소리가 너무도 크오." 관운장(關雲長)이 은근(慇懃)히 책망(責望)을 하자, 장비(張飛)는 찔끔하며 움츠러들기는 하면서도 여전한 기세(氣勢)로 말한다. "제길, 남의 눈치가 이렇게도 무서워서야 무슨 큰일을 한단 말이오.... 이제 생각하니 우리와 뜻을 같이 할 사람이 한 사람은 있는 것 같소 " "그 사람이 누구요?" "이름은 유비(劉備)라고 하는 친구인데 내가 4년 전쯤 우연(偶然)한 일로 한 번 만나 보았는데, 그 사람이라면 제법 쓸 만할 것이오." "대체 유비(劉備)란 사람이 어떤 사람이길래..." "그때 탁현(涿縣) 누상촌(樓桑村)에서 돗자리를 짜 먹고 있다지만 옛날엔 한(漢)나라의 종실(宗室)이었던 모양입디다." 관운장(關雲長)은 그 소리를 듣고 내심(內心)으로 만족(滿足)해하였다. 그런 사람을 대외적(對外的)으로 떠받들고 나서면 민심(民心)을 간단(簡單)히 집중(集中)시키기 용이(容易)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의심(疑心)되는 바도 없지 않아서, "유비(劉備)라는 인물(人物)이 한(漢)나라 종친(宗親)인 것은 확실(確實)합디까?" 하고 장비(張飛)의 말을 반신반의(半信半疑)하며 물었다." 그러자 장비(張飛)는 자신의 허리에 찬 칼을 보여 주면서, "이 칼은 그에게 선물로 받은 것인데 조상(祖上) 때부터 물려오는 보검(寶劍)이라 합디다." 관우(關羽)는 장비(張飛)가 가리키는 검(劍)의 문양(文樣)을 보며 고개를 크게 끄덕인다. "음... 그런 사람이 있다면 장공이 한번 만나 보아 주구려 장공(張公)은 그 사람의 집을 아시오?" "집이 어딘지는 모르지만 누상촌(樓桑村)으로 가서 찾자고 나서면 사람이야 못 찾겠소?" "그러면 수고스러운 대로 장공(樓桑村)이 그 사람을 한번 찾아봐 주시오. 그래서 뜻을 같이할 수 있겠거든 나도 한번 만나게 해 주시오." "그럽시다그려! 오늘은 이미 날이 저물었으니 내일쯤 찾아보리다. 그 사람을 만나기만 하면 댁으로 데리고 가기로 하지요!" "만약(萬若) 그 사람이 우리 집에 오기를 꺼려 한다면 내가 그 사람을 만나러 가도 괜찮소." "말을 안 들으면 끌고서라도 가면 될 게 아니오?" "하하하, 동지(同志)를 삼으려는 사람을 억지로 끌고 온대서야 될 말이오?" "어쨌든 그 일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 그리 아시오." 장비(張飛)는 주막(酒幕)을 나오자 이내 관운장(關雲長)과 작별(作別)을 하였다. 그러나 무슨 일인지 얼른 발길이 돌아서지지 않아서 말을 달려가는 관우(關羽)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과연 오늘에서야 사람다운 사람을 한 사람 만났구나.) 첫인상(人相)으로 보아 저 사람이라면 족(足)히 큰일을 함께 도모(圖謀)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이 장(章)에서 만나는 중요 인물 소개> 관우(關羽) : ( ? ~ 219) 자(字)는 운장(雲長)으로 하동군 해현(河東郡 解縣) 출신으로 이곳은 중국 최대의 염호(鹽湖) 가 있어 소금 생산지로 유명한 곳이다. 한(漢) 나라 시절에는 소금이 국가 전매품(專賣品)이어서 밀매가 성행했는데 관우(關羽)는 소금 밀매(密買)에 관여했다가 소금 상인을 죽이고 유주(幽州) 탁현(涿縣)으로 도피하여 지내던 중 장비(張飛)와 유비(劉備)를 차례로 만나 형제지의(兄弟之義)를 맺게 된 대의(大義)를 중시(重視)하고 강직(剛直)하며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충의(忠義)의 화신(化身)이다. 관우는 신장이 9척이나 되고 붉은 얼굴에 배꼽까지 이르는 길고 아름다운 삼각(三角) 수염(鬚髥)을 가지고 있으며 82근이나 되는 청룡언월도(靑龍偃月刀)를 휘두르고 적토마(赤兎馬)를 탄 용맹(勇猛)한 장수였다. 전투(戰鬪)에서 맞은 독(毒)화살을 당시(當時)의 명의(名醫)였던 화타(華陀)에게 어깨를 째어서 뼈를 긁어내는 수술(手術)을 받으면서도 태연(泰然)하게 바둑을 두었다는 일화(逸話)도 전해지는 호장(虎將)이다. 이렇게 오래전부터 충의(忠義) 무용(武勇)의 상징으로 중국 민간에서 숭배(崇拜)되어 온 관우(關羽) 급기야는 민간에서는 그를 무신(武神)과 재신(財神)으로 모시는 등 민간 신앙(信仰)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그리하여 1601년 우리나라에도 관우(關羽)의 동관왕묘(東關王廟)가 세워지기도 하였는데 줄여서 동묘(東廟)라고 불리는 동관왕묘는 지금은 지하철역(驛) 이름으로도 불리지만 1963년부터 보물 제142호로 지정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동묘(東廟)는 동대문구(현:종로구) 숭인동 238-1번지에 있다. 지하철 6호선 동묘앞역 5번 출구로 나오거나 지하철 1·4호선 동대문역 4번 출구로 나와 5분 정도 걸어가면 된다. 자세한 설명은 링크를 참고하시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