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행복한 날, 행복한 아침입니다. 새 날을 허락해 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오늘 아침 하나님이 주신 말씀은 "오늘 우리 교회는 하나님의 시각에 진정 살아있는 교회로 서 있는가?"라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 1-3절은 멸망을 목전에 둔 북이스라엘을 바라보면서, 그들을 향해 부르는 선지자 아모스의 애가 중 일부입니다. 즉 아모스는 북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멸망의 심판 계획을 알고, 그들을 위한 애통함을 애가로 지어 부른 것입니다. 그렇다면 ‘애가(哀歌)’ 라는 것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 말입니까? 애가에 해당하는 히브리 원어 ‘키나’ 는 ‘여종’ 혹은 ‘노래하는 여자’ 에서 유래한 단어입니다. 고대 근동 지역에서는 사람이 입종할 경우, 슬픈 노래를 부르며 호곡하는 여인을 사서 장례식장 분위기를 돋우곤 하였는데, 애가라는 말이 여기서 유래된 것입니다. 이러한 ‘카나’ 의 어원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애가는 이미 죽은 자나 이미 멸망한 나라를 위한 노래인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다윗은 죽은 사울 왕과 요나단을 위하여 애가를 지어 부른 바 있으며(삼하 1:17), 선지자 예레미야는 멸망한 예루살렘을 목도하며 처절한 슬픔의 노래를 장문에 걸쳐 지어 부른바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경우와 달리 아모스는 아직 멸망하지도 않은 북이스라엘을 위하여 애가를 지어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그가 북이스라엘을 이미 멸망한 것으로 간주하였음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아모스가 이렇게 멸망하지도 않은 북이스라엘을 멸망한 것으로 간주한 것은, 완고하여 하나님의 거듭된 재앙을 통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돌이키지 않은 북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할 것이 너무도 자명한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하나님은 북이스라엘에 대한 멸망의 심판을 이미 선포하신 상태입니다. 하나님께서 멸망의 심판을 선포하신 이상, 북이스라엘이 멸망하는 것은 기정사실입니다. 하나님은 한번 정하신 뜻을 돌이키지 않으시기 때문에, 심판을 선포하셨으면, 반드시 이행하십니다. 그러한 점에서 북이스라엘은 살았으나, 이미 죽은 시체와 방불한 처지에 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에 아모스는 하나님의 심판으로 말미암아 멸망할 북이스라엘을 바라보며 애가를 지어 부른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한 가지 알아야 할 사실은, 북이스라엘이 아직 멸망하지 않았으나, 이미 멸망한 것과 다름없는 상태에 있었던 것처럼, 비록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지만, 실상 죽은 것과 다름없는 교회나 성도가 있을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본문의 배경이 되었던 아모스의 애가가 불려진 때가 언제입니까? 때는 북이스라엘의 최고의 번영기라 모두가 인정하는 때였습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생명력이 넘치던 때였습니다. 하지만 아모스나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북이스라엘은 죽은 것과 다름이 없었습니다. 이는 마치 살아 있는 꽃을 꺾어 물병에 꽂아 두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비록 향기로운 향을 풍기며 최고의 아름다움을 꽃피우고 있지만, 꽃은 이미 꺾여 모든 공급원을 잃은 상태이며, 얼마 가지 않아 시들어 말라 버릴 것입니다. 이처럼 교회도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런 문제도 없는 생명력있는 교회이지만, 이미 그리스도에게서 잘려져 죽음을 향해 가는 죽은 교회가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아모스 시대에 북이스라엘이 살았다 하는 이름은 있었으나, 이미 죽은 상태였듯이, 계시록에서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지고 있었으나, 주님으로부터 죽었다는 평가를 받은 사데 교회(계 3: 1)처럼, 오늘 우리의 교회도 그러한 평가를 받을 수 있습니다. 표면적으로 보면 생명력이 넘치는 교회일 수 있습니다. 매주 교인들이 증가하고, 각종 예배를 드리며, 많은 집회를 갖고, 대외적으로도 활발한 활동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그 교회가 하나님 중심의 교회가 아닌, 인간 중심의 교회가 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보다는, 인간의 뜻에 따라 움직이며, 공동체와 개인의 죄가 누룩처럼 그 교회를 더럽히고 있음에도 회개의 메시지, 심판을 경고하는 메시지가 울려 퍼지지 않고, 또 그러한 메시자가 울려 퍼져도, 회개하지 않는다면, 그 교회는 분명 주님으로부터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실상은 죽은 자로다’ 라고 하는 선언을 듣고 말 것입니다.
우리는 이에 대한 두려움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하여 우리 교회가 그와 같은 선고를 듣지는 않을지, 또 교회의 지체인 우리들 성도들 각자가 그러한 선고를 듣게 되지는 않을지 냉철하게 살펴봐야 합니다. 여러분, 생명을 살리는 곳이 되어야 할 교회가 죽은 자들을 위한 영안실이나 장례식장이 되어서야 되겠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하나님 중심으로, 오직 하나님의 뜻과 영광을 위해 교회를 세워가야 할 것입니다. 죄의 누룩을 제거하고 죄인들로 돌아서서 회개케 하는 역사를 이룩하는 교회, 거룩하고 순결한 교회로 우리의 교회를 재건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 교회가 진정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살아 움직이는 생명력 있는 교회로 세워지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교회된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각자 기도드리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