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그 얘기가 시작됐는지 정확히는 모르겠다. 대학 때 대여섯 번을 제외하고는 그 뒤 한 번도 지리산 종주를 해본 적 없어 강렬한 로망을 간직한 감자바우를 위해 가을 지리 종주에 나서기로 뜻을 모았다.
카카오톡 단톡 방을 처음 만든 것이 8월 20일이었으니 한참 전에 얘기가 나왔을 것이다. 작년엔가 감자바우는 아톰과 단둘이 야간 버스를 이용해 성삼재에 내려 야심찬 종주에 나섰다가 화개재에서 뱀사골로 하산한 아쉬움이 있었다. 그 아쉬움을 달래야 한다는 것이었다.
단톡방이 만들어진 뒤 세심하게 준비물 논의에 들어갔다. 엄청 고민하는 지리산을 어르고 달래 어쨌든 7명의 성원을 만들었다.
오래 전부터 비 예보가 있어 많은 걱정을 낳아 단톡방이 연일 뜨겁기도 했다.
그런데 결행을 하루 앞두고 감자바우가 사촌형님을 잃는 슬픔을 당했다. 조카가 어려 집안에서 대소사를 논의할 사람이 없어 정작 지리산 종주를 가장 강렬하게 원하던 이가 빠지게 됐다. 처음부터 희망과용기, 산바람은 일박이일 일정을 생각했고, 나머지는 이박삼일 일정에 천왕봉 등정까지 각오했는데 정작 주인공인 감자바우가 빠지게 되자 대오가 단숨에 우르르 무너졌다.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은 지난 4일 모친상을 당한 경위를 지난 7일 산악회 카페 게시판에 올렸는데도 아무 반응이 없어 산행 이틀 전인 14일 단톡방에 '18일 결혼식 있어 어머니 장례에 와준 큰집 식구들에게 사의 표해야 해 17일 막차 버스를 예약했다'고 알렸는데도 누구도 내 궂긴 소식에 눈길을 주지 않는 것이었다.
어쨌든 나도 일박이일 일정이 불가피하다고 실토하자 의지 박약한 이들도 동조해 처음 이박삼일 5-2 일박이일이 2-5로 뒤집어지더니 결국 1-5가 됐다.
그리고 일찍 서울로 돌아온 김에 18일 정기산행은 서울 상암동 노을공원에서 한다고 공지했는데 반응은 달랑 꼬맹이 한 명 뿐이었다. 희망과용기 회장님도 어쩔 수 없이 임원의 중압감으로 끌려오는 분위기였다.
도중에 희소식도 있었다. 우리 산행 시점에 맞춰 비를 맞지 않을 것 같다는 예보였다. 산행을 하루 앞두고 감자바우 형이 갑자기 빠진다는 소식에 내가 '어머니 일 치러보니'라고 알렸는데도 역시나 아무 반응이 없었다.
16일 아침 6시 40분 남부터미널을 떠나는 영화여객 시외버스에 6명이 몸을 실었다. 10시 조금 못돼 구례터미널 내려 장을 봤다. CU 편의점인데 생각했던 먹거리들이 없어 머릿속이 하얘졌다. 정육점도 문을 닫아 앞이 캄캄했다. 어찌어찌 장을 보면서도 그 정신에 캔맥주 4개를 따로 구입했다. 산행 중간에 쉬며 오늘은 모친상 얘기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어서였다.
터미널 앞 택시 기사 한 분은 장 본다고 왔다갔다 호들갑 떠는 우리를 계속 지켜본 눈치다. 우리가 다가가니 4만 5000원을 부른다. 지리산이 구례 출신이란 점을 내세웠더니 4만원으로 깎아주겠다고 했다. 그 사이 꿈푸리와 아톰은 김밥을 사러 가 있었다.
해서 나와 회장님, 산바람이 먼저 떠나며 삼겹살을 살테니 정육점에 택시를 세워달라고 얘기했다. 그런데 트렁크에 배낭을 놓았더니 앞차를 타란다. 해서 후닥닥 출발했는데 택시는 김밥 사는 일행을 지나쳐 내달린다. 이거 아닌데, 천은사 가는 방향이라 중간에 정육점 같은 것 없을텐데.
조심스레 내가 "기사님, 우리 정육점 들르는 것 아니었나요?" 했더니 "뒷차가 그러기로 한 것 아니냐"고 대꾸한다. 그러면서 우리 일행에게 얘기해 김밥 집 맞은편 정육점 들르게 하라는 것이었다. 일행과 약간은 투닥거렸다.
내가 백두대간을 하며 어려움을 느끼는 대목 중 하나가 이거다. 지역 택시 기사분들과 소통하는 데 상당한 어려움이 따른다. 전라도 쪽도 문제고, 경상도 쪽은 더 문제가 상당하다. 기사분들이 다 좋으신데, 다 친절하고 산꾼들의 문제를 도와주려고 애쓰는데 각기 문제가 있다. 전라도 쪽은 너무 친절해 내 의사와는 상관 없이 내 일정을 본인들이 결정하려고까지 한다. 에를 들어 전북 장수의 한 분은 다음날 오후에 내가 만날 기사 분을 미리 자기가 정해놨다. 깜짝 놀란 것이 한참 대간 길을 걷고 있는데 그 기사 분이 왜 아직도 안 내려오는 거냐고 전화를 걸어왔다.
경상도 분들은 산꾼의 얘기를 듣지 않고 자신의 얘기만 한다. 이 얘기를 길게 하면 오영수 류의 기질론 같은 잘못된 길로 빠지게 되는데 아무튼 그런 점이 있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것, 내게도 그런 면이 있을 것이다.
아무튼 그런 법석을 떨어 택시는 시암재를 오른다. 2024년 한겨울 이곳을 택시로 내려오고 다시 오른 기억이 새로웠다. 대원사~성삼재 구간을 마친 뒤 다시 성삼재~만복대~바래봉 구간을 잇기 위해 택시를 불렀다. 4만 5000원이 처음에 비싸다고 생각했는데 길이 빙판이었고 시암재~성삼재 구간 바리케이드는 기사분들만 열고 닫을 수 있어 택시를 이용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해서 너그러운 나는 5000원 거스름돈을 받지 않았다. 이날도 시암재 주변에 비가 많이 와서인지 산사태 뒤끝을 보수 중이었다.
아무튼 10시 50분쯤 성삼재에 내려 국내에서 가장 높은 위치에 있다는 이마트점에서 보충 장을 봤다. 장조림이나 멸치조림, 깻잎반찬, 누룽지 같은 것들이 있어 적이 다행이었다.
11시쯤 구례 버스가 올라온다. 아 저걸 탔어야 했나 싶었는데 회장님이 9시에 구례터미널을 출발한 차가 이제 올라온 것이라 어차피 우리가 탈 수 없었던 버스라고 했다.
이마트 옆 벤치에서 짐을 나눴다. 삼겹살 세 근을 한 근씩 포장했는데 그걸 누구 배낭에 넣느냐를 놓고 한참 실랑이를 벌였다. 공교롭게도 80 둘과 81 한 명 등 연장자들의 배낭에 들어가 있어 나중에 산행 중에 한참 웃었다.
캔맥주는 왜 산 거냐고 누군가 지청구했던 기억이 있다.
11시 조금 넘겨 출발한 난 55분 만에 노고단 바 앞에 서 있었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누군가 날 보며 아는 척하는 느낌을 주는 것이었다. 내 연배쯤 돼 보이는데 왜 저러나 싶었다. 중간에 뭘 좀 챙기느라 속도를 늦췄다가 다시 높였더니 그가 내 앞에 있었다. 걸음이 이상했다. 대여섯 발짝 띄면 멈춰 서는데 영 이상했다. 좋은 아침이라고 인사를 건넸더니 뭐라고 대꾸하는데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네? 네? 하니까 뭐라고 얘기하는데 파킨슨병, 회복이란 단어가 들려온다. 아 파킨슨병을 이겨내 회복 훈련 중이란 얘기였다. 그 때 잠깐 멈춰 서 '대단하시다. 잘 이겨내시라' 응원했어야 했는데 뭐가 바쁘다고 그냥 머리만 까닥하고 걸음을 재촉했다. 지금도 너무 미안하다.
아무튼 공단 직원이 없어 바는 그냥 올렸다가 내려놓고 종주 길에 들어섰다. 비 뒤끝이라 하늘 말갛고 구름마저 예쁘다. 생각대로 단풍은 없고 가을 장마의 여파로 붉거나 노란 단풍 잎은 이미 바닥에 뒹굴고 있었다. 조붓하다. 다른 산객들이 없으니 더 좋다.
두 어르신이 우리와 반대로 산행의 마침표를 찍으러 걸어온다. "이제 시작이신가 보군요. 우리는 새벽 3시부터 얼마전까지 비를 쫄딱 맞아 엉망진창이었는데 ㅠㅠ" 우리는 속으로 키득거렸다. 두 분이 멀어지자 대놓고 만족감을 드러냈다 . 이거 최고 꿀맛이다.
누구나 아는 길이라 대충 넘어가려 한다. 다만 오래 내린 비의 여파로 진창길이 많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잎사귀들이 일찍 많이 떨어져 만복대와 남고리봉 능선을 조망할 수 있었던 점은 좋았다.
순식간에 돼지령(1424m) 거쳐 임걸령재(1432m)에 이르렀다. 시원한 물맛 보고 반야봉 못 미처 노루목에서 질등~왕시루봉 자락을 바라보며 오래 묵은 모친상 얘기를 꺼냈더니 모두 놀란다. 캔맥주가 음복이었던 셈이다.
회장님 반응이 재미있다. '네가 힌트 주듯 단톡방에 올려놓은 것을 왜 알아채지 못했다고 우리를 탓하는 것이냐?' 그게 아니라 이실직고할 타이밍을 찾지 못해 그런 것일 뿐이라고 답했다.
반야봉 오르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 같았지만 삼켰다. 삼도봉에 이르면 늘상 듣는 회장님 멘트다. "여기가 진짜 삼도봉이 아닌 것 알지?" 이곳은 전남도와 전북도, 경상남도가 경계를 맞댄 곳이라 진정한 삼도봉이라 할 수 없는 것이다. 그 자리에서 긴가민가해 늘어놓지 못했는데 자료와 기억을 되살리니 충북 영동군 상촌면 물한리에 진짜 삼도봉이 있다. 충청도와 전라도, 경상도가 서로 등을 맞대고 있다. 그 봉우리 역시 백두대간에 있어 가놓고선 곧바로 응대하지 못했다.
삼도봉에서 구례 맛집으로 통한다는 꼬마김밥 맛을 봤다. 싸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고 했는데 일행이 진득하게 기다린 보람이 있었다.
삼도봉에 이르자마자 드러눕는 이가 있었다. 우리끼리니까 괜찮지, 해선 안될 행동이다. 화개재 거쳐 토끼봉(1534m)을 올라서는데 젊은 외국인 커플이 정말 수줍게 우리를 맞는다. 연하천 대피소에 묵는다며 먼저 떠났다.
아니나 다를까, 5시쯤 되니까 대피소에서 꿈푸리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난 늘 그렇듯 속도를 올렸다. 총각샘 거쳐 명선봉 오르는데 조금 힘겹다. 올여름 무척 더워 대간도 쉬고 산행 자체를 꺼리고 평지 걷는 데만 익숙해져 그런가 벅찼다. 하지만 연하천 내려가는 계단길이 나오자 단숨에 내달렸다.
6시 조금 못돼 대피소(1495m) 취사장에 이르렀는데 한 팀뿐이었다. 오롯이 우리끼리 즐길 수 있겠다 싶었다 삼겹살 구울 준비를 마쳤는데 삼겹살 한 팩만 와 있다. 대피소 안 잠잘 자리를 마련하느라 그런다는 것이다. 6시가 넘은 시간인데 오자마자 취사장에 들러 먹을 것 꺼내놓고 잠자리를 봐도 되는데 왜 저러나 싶었다.
백두대간을 하며 혼자 모든 일을 챙기는 것이 익숙해져일 수도 있다. 다른 이들과 호흡을 맞추고 어울렁더울렁 해도 힘들고 어려운 길이다.
성삼재~노고단 3.5km, 노고단~임걸령 3.3km, 임걸령~화개재 4.2km, 화개재~연하천 대피소 4.2km 15.2km를 7시간 정도 걸려 걸었으니 나 혼자 걸을 때보다 90분쯤 늘었다.
아톰과 둘이서 버너와 코펠 준비하고 반찬 늘어놓고 찌개 끓일 준비 마치니 그제야 다른 셋이 나타났다. 난 연태 고량주를 챙겨 왔고, 아톰은 몽골 칭기즈칸 보드카를 챙겨 왔다. 삼겹살을 먹기 좋게 미리 정육점에서 썰어온 것이 신의 한 수였다. 두툼해 먹을 만했다. 코펠 뚜껑 프라이팬에 굽는 것이고 산 위라 기름을 처리하는 데 애로가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삼겹살 튀김에 가까웠다. 대피소에서 못 마시게 하니 각자가 필요한 만큼 양을 준비해 오니 그 점은 좋았다.
여튼 두 시간 정도 먹고 마시고 즐겼다. 고량주 냄새가 진동했겠다. 정신을 잠깐 차렸더니 대피소 직원이 문을 열고 "곧 소등합니다" 했다.
까무룩 잠들었다가 깨어 보니 12시를 조금 넘겼다. 왼쪽에 회장님이 자고 있었다. 그런데 다른 일행이 보이지 않는다. 왜 이러지? <20일 밤과 다음날 새벽 사이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