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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키운 스승은 시·청각 장애와 난독증" [고두현의 문화살롱]
출처 한국경제 : https://www.hankyung.com/article/2024073098531
■ 역경을 기회로 바꾼 사람들
고야, 청력 잃고 내면 성찰 깊어져
뭉크, 망막질환 딛고 2만3600여점
백내장 모네, 독창적 '수련' 선봬
귀먹은 베토벤, '신의 소리' 표현
다빈치·에디슨·아인슈타인은
난독증 덕분에 역발상법 키워
고두현 시인
“나에게 그림을 가르친 스승은 렘브란트, 벨라스케스, 자연, 그리고 청각 장애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스승은 청각 장애다.” 스페인 화가 프란시스코 고야가 자주 한 말이다. 고야는 46세 때 콜레라에 걸려 고열에 시달리다가 청력을 잃었다. 이후 그의 그림은 한층 깊어졌다. 애쿼틴트 기법의 판화집 ‘카프리초스’를 통해 부패한 가톨릭교회를 고발하면서 ‘이성이 잠들면 괴물이 깨어난다’는 부제를 붙인 용기도 여기에서 나왔다. ‘옷 벗은 마하’와 ‘옷 입은 마하’, ‘전쟁의 재난’ 시리즈 등의 명작들이 청각 장애라는 시련을 겪은 뒤에 탄생했다.
드가의 초기작 '욕조'(왼쪽). 시력 상실 후의 '목욕 후 목덜미를 말리는 여인'에선 윤곽이 희미해졌다.
색깔 구별 못하자 과감한 실험
고야가 스승으로 삼은 렘브란트는 시각 기능에 문제가 있었다. ‘빛의 화가’로 불리는 렘브란트는 왼쪽 눈동자가 바깥쪽으로 몰리는 외사시(外斜視)를 겪었다. 그래서 입체감을 살리는 데 애를 먹었다. 이런 단점을 만회하려고 그는 먼 곳을 어둡게, 가까운 곳을 밝게 그렸다. 그 결과 현대의 3차원 영상처럼 입체미가 뛰어난 작품을 그릴 수 있었다. 이처럼 신체적인 결점을 딛고 예술적 창의성을 꽃피운 인물이 많다.
‘절규’를 그린 노르웨이 화가 에드바르 뭉크는 망막 질환을 앓았다. 태어날 때부터 몸이 약했던 그는 왼쪽 시력이 좋지 않았다. 67세부터는 오른쪽 안구 출혈로 두 배의 고통을 받았다. 주로 쓰던 눈의 시력을 잃은 그는 아픈 눈을 통해 본 사물을 제대로 표현하려고 애썼다. 이후 왼쪽 눈에도 비슷한 출혈이 생겼다. 이런 고통을 딛고 그는 수많은 명작을 남겼다. 그가 공식 기증한 작품만 유화 1100여 점과 판화 1만8000여 점, 드로잉 및 수채화 약 4500점 등 2만3600여 점에 이른다.
프랑스 화가 에드가 드가도 망막 질환으로 고생했다. 신체의 움직임 묘사에 뛰어난 그는 36세에 오른쪽 시력이 약해지고 얼마 뒤에는 왼쪽 시력까지 나빠졌다. 이때의 어려움을 그는 윤곽과 그림자의 변화로 극복했다. 그의 초기작에는 표정이나 근육 움직임이 섬세하게 표현돼 있지만, 후기작에서는 거친 윤곽과 굵은 그림자가 두드러져 보인다. 망막 질환이나 망막 중심부 황반 질환이 생기면 사물의 중심부가 왜곡되거나 흐려져 보인다고 한다.
인상파의 창시자 클로드 모네의 고민은 백내장이었다. 중년 이후 지베르니에 정착해 연못과 수련을 그리던 그가 점차 시력을 잃더니 색을 구별하기조차 어려워졌다. 색깔 감각이 흐트러지자 노랗거나 빨간색을 제대로 인식할 수 없었다. 화가로서는 절망적인 상황이었지만, 그는 그림에 새로운 기법을 적용했다. 수련과 연못 사이를 선명하게 구분하는 대신 흐릿하게 처리하고, 인식할 수 없는 색은 붉은색으로 과감히 표현했다. 이렇게 해서 빛을 본 작품이 노년의 독특한 ‘수련 연못’이다.
목이 긴 인물 그린 건 난시 때문
근시와 난시인 화가도 한둘이 아니었다. 오귀스트 르누아르와 폴 세잔은 근시 환자였다. 둘의 그림을 보면 가까운 거리는 자세하게, 먼 거리는 단순하게 생략한 게 많다. 르누아르는 관절염, 세잔은 당뇨 질환까지 앓았지만 이를 이기고 불후의 명작을 남겼다. 난시 때문에 독창적인 그림을 남긴 화가도 있다. 이탈리아의 아마데오 모딜리아니와 스페인의 엘 그레코는 그림 속 인물들을 유난히 기다랗게 묘사했다. 그 이유를 난시에서 찾는 연구자가 많다.
음악에서는 베토벤의 사례가 가장 극적이다. 그가 난청을 감지한 것은 28세, 청력을 완전히 잃은 것은 45세였다. 이후 죽을 때까지 ‘듣지 못하는 작곡가’로 힘든 시기를 보냈다. 다른 질병에도 시달렸다. 하지만 좌절하지 않았다. 그는 곁에서 보기 안쓰러울 정도의 노력 끝에 남이 듣지 못하는 ‘천상의 소리’를 포착했다. 귀 대신 눈으로 작곡하고, 온몸의 신경을 총동원해 리듬을 만들었다. 그 결과 현실의 제약을 뛰어넘는 ‘신의 선율’을 창조할 수 있었다.
이전에는 금기시됐던 불협화음, 갑작스러운 악상 변화, 일반인의 청각으로는 파악하기 힘들 만큼 복잡한 구조 등의 전위적인 혁신까지 일굴 수 있었다. 그래서 ‘악성(樂聖)’ 베토벤의 음악이 청각 장애에도 불구하고 나온 게 아니라 청각 장애 덕분에 나왔다는 말이 등장했다.
역경이 우리를 강하게 만든다
난독증 때문에 ‘거꾸로 발상법’의 대가가 된 사례도 흥미롭다. 르네상스 화가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동화작가 안데르센, 과학자 에디슨과 물리학자 아인슈타인은 읽고 쓰는 방식에 문제를 겪은 ‘학습장애아’였다. 영국 버진그룹 창업자이자 회장인 리처드 브랜슨도 재무제표조차 읽지 못하는 난독증 환자다. 이들이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은 크게 세 가지. 글자에 갇히지 않은 포괄적 관점, 큰 그림으로 세상을 보는 능력, 남들과는 다른 사고방식이다.
토머스 웨스트 미국 댈러스대 교수는 난독증을 앓은 인물들의 사례를 통해 ‘시각적 사고’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운다. 난독증으로 학습장애를 앓은 이들은 자신만의 이미지를 떠올리며 활자의 감옥에서 벗어나려 노력했고, 그 결과 훌륭한 성과를 얻을 수 있었다. 독서에는 적합하지 않지만 예술이나 지형 인지, 건축 등 다른 분야에서 특별한 재주를 발휘하는 천재들이 글을 읽지 못하면서도 재능을 발휘하는 경우는 의외로 많다.
불이 쇠를 단련하듯 역경은 우리를 강하게 만든다. 시력이 약해진 화가는 남다른 감각으로 새로운 세상을 볼 수 있게 해줬다. 드가는 “진정한 예술이란 당신이 보는 것이 아니라 당신을 통해 다른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라고 했다. 난독증 환자들이 세상을 바꾼 주역으로 성장한 것은 기적과도 같다. ‘난독 천재’ 아인슈타인이 “세상을 사는 데는 두 방식이 있는데, 하나는 기적이란 없는 듯 사는 것이고 또 하나는 모든 것이 기적이라고 생각하며 사는 것”이라고 말한 까닭을 알 것 같다.
어쩌면 인류 문명사를 꽃피운 힘의 원천이 이 같은 삶의 태도에서 비롯됐는지 모른다. 세상은 고통으로 가득한 것 같지만, 고통을 이겨내는 사람들로 가득하기도 하다.
고두현 문화에디터 kdh@hankyung.com
빛명상
동우야, 네 다리가 되어 줄게
세상에는 많은 장애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팔이 불편한 사람, 다리가 불편한 사람, 몸 전체가 불편한 사람 등 장애도 여러 가지이다. 그러나 나는 이런 사람들을 장애인이라고 하지 않는다. 그들은 그저 몸이 불편할 뿐 보통 사람들과 다름이 없다. 그보다 숱한 마음과 정신에 장애를 가지고도 팔다리가 멀쩡함을 들어 정상인처럼 행동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몸에 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생활에서 약간의 불편을 느끼기만 한다. 그러나 마음과 정신의 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자신의 인생 전반에서 고통이 기다리고 있다.
“선생님, 오늘 저는 백 미터 달리기를 했어요. 몇 등 했는지 아세요?”
“글세, 내가 마법의 구슬을 보니 일등을 한 게로군…….”
“어떻게 아셨어요? 선생님, 정말 마법의 구슬이 있으세요?”
“그럼, 있고 말고.”
“저도 그런 구슬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누가 나를 싫어하고 좋아하는지를 알 수 있잖아요. 선생님께서 무얼 하는지도 알 수 있고요…….”
“동우야, 마법의 구슬은 네게도 있어. 몰랐니?”
“예에? 어디요?”
“전에 선생님과 네가 약속하던 날, 네 마음속에도 마법의 구슬이 생겼단다.”
“예에? 제 마음속에요?”
“그래, 네 마음속에……. 전에 선생님과 만났을 때 동우 네가 직접 선생님한테 그랬지? 이젠 휠체어를 탄 네 모습이 부끄럽지 않다고…….”
“예. 그랬죠.”
“그때 네 마음속에는 이미 마법의 구슬이 생긴 거야. 그래서 너는 그 구슬을 통해 세상을 볼 수도 있고, 선생님이 무엇을 하는지 알 수도 있단다…….”
“저는 그 구슬을 볼 수 없겠네요. 마음속에 있으니…….”
“아니, 언제든지 네가 원하면 그 구슬을 볼 수 있지. 그렇지 않다면 그 구슬을 통해 세상을 볼 수도 없을 테니까…….”
“알 것 같으면서도 잘 모르겠어요.”
“아니야, 아마 동우는 이 선생님 말이 무엇인지 잘 알 거야.”
“알겠어요. 오늘부터 저는 마밥의 구슬을 어떻게 내가 볼 수 있는지 찾아봐야겠어요. 만일 찾지 못하면 선생님께 다시 전화 드릴께요. 그땐 선생님께서 찾아주세요.”
“그래. 그러마…….”
동우가 어머니 등에 업혀 내게 처음 왔을 때는 초등학교 6학년이었다. 어머니 등에 축 늘어져 업혀 온 동우를 처음 보았을 때 나는 부상당한 천사를 보는 느낌이었다. 휠체어를 들고 동우의 아버지가 뒤미처 들어서지 않았더라면 나는 동우를 그저 엄마를 따라오다 잠이든 어린아이로 생각했을 것이다.
“어떻게……?”
동우를 휠체어에 앉히도록 기다리던 나는 동우와 동우의 부모를 번갈아 보며 그렇게 말문을 열었다. 휘체어에 앉은 동우도 동우를 데리고 온 부모도 모두 너무나 커다란 고통에 휩싸인 얼국들이었다.
“예, 선생님. 보시다시피 우리 아들이…….”
겨우 말문을 뗀 사람은 동우의 아버지였다. 아직 한창 나이인 삼십대의 젊은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의 마음은 온통 어지러운 상념들로 인해 세상살이 자체가 버겁게 느껴져 보였다.
“아드님이 왜요? 어디가 아픈가요?”
동우 보모는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선생님께서는 동우가 휠체어를 탄 것이 보이지 않으십니까?’ 하는 얼굴로 나와 동우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아드님이 어디가 불편한데요?”
한동안 말을 꺼내지 못하던 동우의 부모는 이내 내 뜻을 알아차렸는지 고개를 푹 떨구었다.
“부모님이 아드님을 아픈 아이라고 생각하니까 아이도 자신이 아프다고 생각할 밖에요.”
나의 말에 동우 어머니는 ‘흐흑’ 소리를 내며 흐느끼기 시작했다.
동우의 아버지는 서울의 유수 기업의 과장이었다.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 우수한 성적으로 유수 기업에 입사하여 첫사랑이었던 동우 어머니와 결혼을 했다.
든든한 직장이 있었고, 당당한 실력이 있었기에 아무것도 거리낄 것이 없던 두 부부에게는 걱정거리가 있었다. 그것은 동우 어머니가 두 번이나 이유 없는 유산을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에 대한 우려도 잠시, 두 번의 실패 끝에 동우를 낳았다. 동우는 어릴 때부터 영특하고 밝고 명랑한 아이였다. 그들 부부에게는 이제 세상 부러울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동우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동우 아버지도 승진을 했다. 동우네는 이제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었다. 그러나 운명의 신은 그들에게 한 번의 역경으로 이제부터 새로운 삶을 살도록 종용하고 있었다. 동우가 초등학교 5학년 때의 일이었다.
“아빠, 비온다.”
“내가 보기에는 저 정도 비는 그냥 걸어가도 돼.”
“아냐, 많이 온다구…….”
“글쎄, 아빠가 보기에 저 정도면 우산 쓰고 걸어가도 된다니까…….”
“아빠, 오늘만……. 오늘만 안 될까? 으응, 아빠…….”
동우네에게는 한 가지 약속이 있었다. 아파트 단지를 나가서도 한참 걸어야 하는 동우의 학교를 비가 많이 쏟아지는 날에만 차로 데려다 주기로 한 것이 그것이었다. 그 날도 부슬비가 내리고 있었는데, 동우는 그 정도의 비로도 걸어사 학교에 가기 싫었던 모양이었다. 늘상 있는 실랑이였지만 언제나 실랑이 끝의 승리자는 아버지였다. 꾀를 부리는 동우를 그냥 학교로 보냈던 것이다.
그날도 아버지는 아파트 주차장까지 따라 나오며 실랑이를 벌이는 아들 동우의 등을 밀어 그냥 걸어서 가도록 했다. 그것이 동우 아버지가 평생 후회할 일로 남게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그저 부모된 도리로 아들을 강하고 씩씩하게 키우고 싶었던 마음뿐이었다. 버스 한 정거장도 안 되는 거리를 자가용으로 실어 나르는 부모가 되지 않겠다고, 무엇이든 원하면 앞에 대기하고 있다가 튀어나오듯 대령하는 부모는 되지 않겠다고 두 부부는 동우가 아기일 때부터 약속을 했던 터였다.
“동우네 집이죠?”
남편과 동우를 보내고 청소에 밀린 빨래를 하느라 분주하던 동우 어머니는 낯선 남자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순간 뭔가 불길한 예감으로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예, 그런데요…….”
“여긴 XX파출소인데요. 일단 XX병원으로 오셔야겠는데요…….”
동우 어머니는 순간 불길한 예감으로 가슴이 뛰어 아무것도 생각할 수가 없었다.
“우리 동우한테 무슨 일이 생겼나요?”
애써 마음을 가라앉히며 동우 어머니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교통사곱니다.”
“네? 교통사고라니요? 누가요?”
동우 어머니의 물음은 당연한 것이었다. 교통사고라면 동우 아버지가 더 유력했다. 아파트 단지를 나가 얼마간 걷기는 해야겠지만, 평소대로 인도로만 걸어갔다면 동우는 학교까지 단 한 차례도 건널목을 만나지 않고 학교에 도착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동우가요. 일단 병원으로 오셔야 오셔야겠는데요…….”
“무슨 병원이라 하셨죠? 예. 예예…….”
동우 어머니는 전화를 끊으며 별 일 아니길 바랐다. 그저 찰과상 정도를 입은 정도일 것이라고 믿고 싶었다. 그러나 손이 떨리고 가슴이 후들거려 무엇부터 어떻게 하고 집을 나서야 할지를 몰랐다. 수화기를 들고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응, 무슨 일이야? 나 회의 들어가야 하는데…….”
“동우가, 동우가 교통사고를 당했대요.”
“뭐어? 교통사고? 어디서? 그래, 얼마나 다쳤대?”
그러나 남편의 질문에 동우 어머니는 단 한 마디도 하지 못하고 그저 병원 이름만 대고 전화를 끊었다. 마음은 급한데 무엇부터 해야 할지 모르던 동우 어머니는 겨우 병원까지 갔다. 병원에는 몇몇 사람과 경찰이 있었다.
“제가 동우의 엄만데요……. 우리 동우 지금 어딨죠?”
“동우 어머니십니까? 동우는 지금 수술 중입니다.”
“예? 수술이라니요?”
“일단 여기 앉으세요…….”
“아니, 수술이라니요? 우리 동우가 어디를 얼마나 다쳤기에 수술을 받는다는 거예요?”
“일단 앉으세요. 진정하시구요…….”
“괜찮아요. 우리 동우가 얼마나 다쳤다는 거죠?”
나약한 모습을 보이면 자신에게 거짓이라도 말할까. 동우 어머니는 정신을 다잡으며 경찰에게 다그치듯 물었다.
“아직 정확한 것은 모르지만……. 조금 많이 다쳤어요…….”
“글쎄, 조금 많이 얼마나요? 얼마나 다쳤단 말이에욧?”
경찰의 ‘많이’ 라는 말에 동우 어머니는 이성을 잃어가고 있었다.
“무슨 일이야? 동우는 어딨어? 여보……. 어떻게 된 겁니까?”
그때 동우 아버지가 도착했고, 남편을 보자 동우 어머니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입에서는 ‘동우가 많이 다쳤대요…….’가 새어 나왔지만 그 소리는 입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학교 앞에서 인도로 뛰어든 차에 치였습니다. 지금은 수술 중이고 정확한 사항은 모르겠지만 많이 다친 것 같습니다. 아마도 수술이 끝나봐야…….”
“인도로 차가 뛰어들어요?”
“예, 빗길 과속 운전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가해자는 그 자리에서 뺑소니를 치려다 저기 저 택시 기사 분에게 붙잡혀 구속됐습니다.”
동우가 학교 정문이 보이는 지점에서 빗길을 과속으로 질주하던 차에 쓰러지는 모습을 보았던 택시 기사는 잠시 후, 차를 빼내어 급히 뺑소니를 치려던 운전자를 온몸으로 막다가 여기저기 찰과상을 입은 상태였다. 인근에 지나던 경찰차가 그들의 실랑이를 발견하여 운전자는 잡히고 택시 기사와 경찰 한 명이 동우를 병원으로 운반한 모양이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우리 동우가 얼마나 많이 다쳤던가요?”
“아, 예. 글쎄요. 제가 의사가 아니라서……. 제가 보기에 좀 많이 다친 것은 분명합니다…….”
동우 아버지는 담배를 피우려고 병원 밖으로 나왔다. 아침 내내 차로 데려다 달라며 조르던 동우의 얼굴이 떠올랐던 것이다. 만일 자신이 동우를 태워다 주었더라면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 자책으로 마음이 더욱 착잡해져 왔다. 그러나 그 자책이 영원히 동우 아버지의 멍에가 될 줄은 그때까지도 알지 못했다.
아무도 상상조차 할 수 없었지만, 상상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동우의 상태는 심각했다. 수술을 마치고 중환자실로 옮겨가는 동우의 머리는 붕대로 감겨있었다. 동우의 부모는 동우가 머리를 다쳤다고 생각했다. 이마나 머리가 깨져서 몇 바늘 꿰매었다기엔 너무도 장시간의 수술이었다.
“우리 동우가 어떻게 된 겁니까?”
담당의사는 동우 부모를 일단 자신의 진료실로 불렀다.
“앉으시죠.”
불길한 예감은 자꾸만 동우 부모의 뒷덜미를 잡아당기고 있었다.
“동우의 상태가 별로 좋지 않네요…….”
“예? 그럼…….”
“조금 더 상황을 지켜 봐야겠지만, 아무래도 하반신 마비를 각오하셔야 되겠습니다…….”
“예에? 머리가 아니라……?”
“머리는 괜찮습니다. 아직까지의 소견으로는 머리에 큰 이상이 발견될 것 같지는 않습니다.”
“하반신 마비라면…….”
“예. 척추에 이상이 생겨서……. 수술로 응급조치는 했지만 낙관할 상태가 아니군요……. 각오를 하셔야겠습니다.”
그렇게 동우는 하루 아침에 하반신 마비로 걷지도 뛰지도 못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것으로 동우네의 아픔이 그친 것은 아니었다. 동우가 자신의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괴로워하는 것을 지켜 봐야 했기 때문이었다. 어떤 누구라 잠시 정신을 잃고 일어났을 때, 자신이 걷지도 일어서지도 못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담담하게 받아들일 것인가? 동우는 그저 울기만 했다. 스스로 몸을 일으키지 못한다는 사실은 어린 동우가 받아들이기에는 힘겨운 일이었다.
“동우야, 동우야. 왜 이래?”
동우는 느닷없이 온 몸을 비틀며 소리 지르고 울고 있었다. 자신에게 벌어진 일이 도무지 믿어지지도 않을뿐더러 그것이 어떤 일인지조차 감지하기 힘들었던 것이다. 그 후로 동우는 말을 잃었다. 밥도 잘 먹지 않았다. 어머니가 자신의 대소변을 받아내는 것이 안쓰러웠다고 했다. 그래서 조금만 먹으면 엄니가 덜 고생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에서 밥을 잘 먹지 않았다고 동우가 말을 했을 때, 나는 동우를 가슴에 쓸어안고 눈물을 흘렸었다.
어린 소견으로도 자신의 대소변을 받아내는 어머니가 얼마나 안쓰러웠으면 고픈 배를 부여잡고 밥을 거부했을까…….
“얘, 동우야! 너 뭘 먹은 거야? 동우야!”
동우가 다치고 6개월이 지난 어느 날, 잠시 동우의 식사를 준비하던 어머니는 동우가 세탁실에 쓰러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어린 마음에 세상을 등지고 싶었던 동우는 세탁실에 있던 표백제를 마셨던 것이다.
동우는 세상의 어두움과 찌든 삶 등을 모르고 활기차게 뛰어놀아야 할 어린이였다. 배냇병으로 고생을 했던 아이도 아니었고, 두 발로 뛰어다니고 걸어다니며 건강하게 생활했던 열한 살 박이 아이였던 것이다. 그런 동우가 잠시 정신을 잃고 있다가 깨어보니 두 다리를 쓸수 없게 되었다. 다리가 움직이지도 않았고, 화장실을 갈 수도 없었다. 그것이 어린 동우가 세상을 등지고 싶을 만큼 힘든 일이었다.
동우는 자신 때문에 언제나 슬픈 표정인 아버지와 어머니를 보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고 했다. 다른 일가 친척들이 위로한다고 찾아와 동우 몰래 눈물을 훔쳐내는 것을 보는 것도 힘든 일이었다고 했다. 그리고 무엇이든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해 주려고 눈치만 살피는 부모님을 보는 일도 힘들었다고 했다. 하다못해 친구들이나 선생님이 방문해 눈물을 흘리는 것도 동우는 참을 수 없이 힘들었다고 했다. 너무 힘들어서 죽기를 작정했다고 했다.
“먼저 아버지 어머니께서 생각을 바꾸셔야겠습니다. 동우가 어디가 어때서요? 부모님이 동우를 장애인이라고 생각하는 한 동우는 영원히 장애인일 수밖에 없습니다. 동우는 그저 몸이 조금 불편할 뿐이라고 생각하세요. 동우가 이렇게 된 것이 모두 부모님 탓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이건 동우가 이겨내야 할 또 하나의 동우 인생이니까요. 세상에는 동우보다 더한 장애를 딛고 훌륭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부모님의 도움이 절대적입니다. 부모님이 먼저 강해지셔야 합니다. 그래야 동우도 강해지지요…….”
그 후, 동우는 일주일에 한 번씩 나에게 초광력을 받으러 찾아왔다. 날이 갈수록 동우와 동우 부모님의 얼굴은 환하게 빛이 나기 시작했다. 동우는 이제 휠체어에 앉은 채 스스로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나씩 익혀가고 있었다. 학교도 다시 나가고 친구들과도 예전처럼 즐겁게 떠들며 놀았다.
“우리 동우, 여자 친구 생긴 것 같다…….”
“예에? 선생님께서 어떻게 아세요?”
“선생님에게는 마법의 구슬이 있거든. 그래서 그걸 보면서 동우를 부르면 동우가 뭘 하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어.”
“에이, 그건 동화책 속에서나 나오는 얘기예요. 저는 중학생이라구요.”
“안 믿어도 상관없어. 하지만 선생님에게는 마법의 구슬이 있단다.”
“엄마가 말씀드렸죠?”
“아니. 엄마는 내게 그런 말씀 하신 적 없는데…….”
“진짜 이상하네…….”
아직은 휠체어를 타고 정상적인 아이들과 공부를 하기에 어려운 점이 더 많은 동우이지만. 이제 동우는 그런 것들을 힘겨워하지 않는 아이가 되었다. 동우의 부모도 장애인을 위한 복지 시설이 잘된 뉴질랜드로 이민 갈 생각을 하고 있지만, 나는 그 어떤 답도 내려주지 않았다. 그것도 올곧게 그들의 몫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동우가 이제는 어디에서고 당당하고 씩씩하게 성장할 것이라는 것만은 자신할 수 있었다.
동우야 선생님 책을 읽고 있겠지? 네 이야기를 이렇게 썼다고 선생님을 미워하지는 않겠지? 선생님은 네가 얼마나 착하고 씩씩한 아인지 잘 알고 있단다. 선생님이 앞부분에 썻듯이 신체의 장애자보다 더 고칠 수 없고 인생에 불편을 가진 장애자는 정신에 장애를 가지고도 그것을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들이야. 선생님은 네가 그런 사람들을 위해 일하는 멋진 사회인이 될 것을 믿는다. 그리고 너와 네 가족들이 어디에 있건 선생님은 언제나 우주의 빛에 기도할게. 건강하고 바르게 살아갈 수 있도록 말이야. 그리고 잊지마. 선생님은 마법의 구슬로 언제든지 너를 지켜 볼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동우야. 언제든 네가 힘들 때에는 우주의 마음을 생각하렴. 네 불편한 다리가 되어 줄 거야…….
출처 : 행복을 찾는 사람들에게
2000.07.07. 초판 P. 73~84
첫댓글 아이를 강하게 키우고자 했던 행동이 오히려 사고로 힘든 상황으로 돌아왔을 때 부모의 마음이란...
아이와 부모를 밝고 긍정적으로 변화시켜주신 초광력과 학회장님... 감사와 공경의 마음 올립니다.
귀한 글 감사드립니다.
빛과함께.감사합니다
부모님의 의도는 깊은 뜻이 있었는데 갑작스런 사고로 하반신 마비라니 온가족의 걱정은 이루말할 수 없습니다.
빛을 만나 가족을 변화시킨 초광력에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감동적인 이야기네요. 감사합니다.
귀한 감동적인 빛이야기 감사합니다
역경을 기회로 만든 예술가들,
동우도 빛을 알고 건강하게 잘 성장하였으리라 믿습니다 .
감사합니다 .
소중한 글 감사합니다
가슴이 아픈일을 이겨낼 수 있도록 힝을 주시는 학회장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청각. 난독
역발상 역경
우리를 강하게 만듭니다.
빛명상 감사하고 감사합니다.
역경을 기회로 바꾼 사람들 이야기, 절망에 빠진 동우네 가족들이 초광력 빛을 만나 변화된 이야기 모두 감동입니다.
감사합니다
마음 찡한 감동적인 빛이야기 감사합니다
귀한 빛이야기 감사합니다
감사 합니다.
동우가 언제든 힘들때에는
우주의 마음을 생각하며
건강하고 씩싹한 동우로
성장하길 빛VIIT 안에서
살아가는 성우를 응원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귀한 빛역사가 담긴 이야기를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운영진님 빛과함께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감동적인 빛이야기 감사합니다.
어여운 과정을 지나 빛을만나 씩씩하게 살아가게되었으니
참으로 감사한 인연입니다.
우주마음과 학회장님의 은혜에 감사와 공경을 올립니다
교통사고로 절망속에서 힘들어하던 동우가 빛을 받고 다시 밝고 건강하고 씩씩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며
따뜻한 감동과 교훈을 얻습니다.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어주시는 우주마음과 학회장님께 감사와 공경의 마음을 올립니다.
역경을 기회로 바꾼 사람들의 삶을 보며 새 희망을 얻습니다. 감사합니다.
소중한 빛과의 인연으로 밝게 살아가게 된 동우의 이야기 감사합니다.
동우 친구 지금은 자라서 어른이 되어 있겠군요. 건강하고 씩씩하게 우주 마음.빛마음 안에서 잘 살고 있을거라 생각됩니다. 귀한글 감사드립니다. *
동우이야기...감동적이네요 귀한글 감사합니다^^
감동적인 빛이야기 입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귀한 글 감사합니다.
눈물겨운 동우이야기~ 마음이 아려옵니다~
빛안에서 씩씩하게 살아가고 있으리라 믿습니다~
귀한 빛이야기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귀한 빛 의 글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귀한 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_^
동우 빛과함께 힘내요 ~ !
감사합니다.
동우 가족이 빛을 만나서 정말 다행입니다.
빛의 글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