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호국 보훈의 달의 참회 /이 병 준
6ㆍ25참전용사는 물론 근세의 천안함
폭침에 의해 전사한 장병들의 예우(몸 값)가 단순하게 수학여행가다가 일어난 민간인
(학생)선박사고자의 보상에 비해 국가를 위해 전사한 무명 전쟁 영웅들을 얼마나 소홀하게 대접했고 하고있는지 그 실상을 <국가 보훈적 차원>에서 되새겨 보고자 이 글을 쓴다.
다음은 내가 신문 스크랩 해놓은 지 만 9년
이 경과된 [2011년 8월 22일자 조선일보 기사를 게제한다. 당시 8월 20일 미국 웨스트버지니아주 전역에 일제히 조기(弔旗)가
나부꼈다. 공공기관 건물마다 예외없이
성조기와 주기(州旗)를 기의 한 폭쯤 내려 게양했다. 60년 만에 신원이 확인돼 고향에 묻히기 위해 돌아온 6.25전쟁 무명 참전 용사의 유해를 기리기 위한 것이었다. 단 한 명을 위해 얼 레이 톰블린 주지사 대행은 지난 18일 조기 게양을 위한 포고령에 서명했다.
제임스 세뮤얼 머레이(Murray) 상병의
유해는 이날 낮 1시 그의 고향 신스턴에
위치한 머사닉 묘지에 도착했다. 군 의장대의 사열 속에 성조기가 덮힌 그의 관을 장병 6명이 들고 이동했다. 국방부ㆍ주정부ㆍ재향군인회 관계자가 차례로 나와 유해를 향해 경례했다. 시민 100여명은 30도가 넘는 날씨에도 60년만에 귀향해 영면에 드는 머레이를 고개 숙여 맞이했다.
1946년 17세에 군에 입대한 머레이는
6ㆍ25전쟁 발발 직후 한국에 파병됐다. 그는 1951년 2월 적군에 생포돼 황해도 수안 포로수용소로 끌려갔다. 그리고 같은해 4월 22일 연합군 폭격으로 목숨을 잃은 것으로 추정됐다.
미 국방부 산하 전쟁ㆍ포로 실종자 사무국
(DPMO)은 머레이의 가족들이 사망한 후에도 유해 찾기 노력을 중단하지 않았고, 지난해
12월 1991~94년 사이 북한으로부터 넘겨받은 미군 유해들 중 일부가 머레이의 것임을 DNA검사로 확인했다.
참전 중 사망한 장병은 알링턴 국립묘지에 묻히는 영예를 누릴 수 있지만, 머레이의 친척들은 그의 부모의 생전의 뜻에 따라 머레이의
유해를 고향으로 데리고 오는 것을 택했다.[ 워싱턴 임민혁 특파원 ] ]
10여 년 전에 신문에 게제된 기사는 참으로
감동적이었다. 미합중국이 왜 선진국이 되었겠는가. 국가를 위해 참전하여 전사한 용사에 대한 예우 하나만 보더라도 선진국 자격과
품격을 갖춘 국가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우리나라의 현실은 어떤가?
얄팍한 정치적 진영논리, 정권 잡은 주사파
들의 뒤틀린 논리에 의해 역사를 사사건건 비틀어 왜곡시키고 있으니, 전사자는 물론 독립유공자, 순국 열사, 생존해 있을 당시에 몇 분 안되는 백선엽 장군 같은 위대한 전쟁 영웅의 공적까지 폄훼시켰다. 외국에서 오히려 전쟁 영웅으로 더 추앙받고 있는 장군을 자국(自國)의 수준 낮은 정치 모리배와 사회주의 주사파 추종자들이 국가의 품격을 스스로 무너뜨리는 행위를 무참하게 자행하고 있으니 통탄할 일이다. 나라의 자존심과 국격은 그 나라 정치인의 품격과 그 국민의 수준을 보면 알 수 있다고 했다. 취임후 6.25 참전기념식에 한번도 참석하지 않은 국군통수권자가 존재하는 하는 이 나라, 호국영령들은 영원히 내 국토에서도 편안한 영면을 이루지 못할 것이다. <호국 보훈의 달>을 맞이하여 이 나라의 호국 보훈 정책이 국격을 업그레이드 시키는 방향으로 획기적 전환이 이루어지길 간절히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