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한테는 나날이 나이들어가는 세월이 무척이나 그렇다.
방금 전 내가 무슨 일을 했는지를 전혀 생각이 나지 않는 횟수가 자꾸만 늘어간다.
당뇨병 환자이기에 아침 저녁에 약을 먹어야 하는데 가끔은 헷갈린다.
먹었는지 안 먹었는지가 도통 기억되지 않는다. 이런 경우에는 기억력 감퇴보다는 치매초기 현상으로 봐야 하는가 싶다.
기억이 안 나는 것은 어디 약뿐이랴?
글쓰기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어제도 그랬다.
내 고교 친구 카페에다가 글 예닐 곱 개를 빠르게 올리다가 지치면 다른 카페에 들락거리면서 회원이 올린 글과 사진을 보고는 댓글 달고, 또 나도 잡글 올리기도 했다.
이 카페에서 내가 올린 글의 댓글을 읽다가 놀랐다.
내가 하루에 2건 글 올려서 규정에 어긋났기에 임시방으로 이동했다는 지적이었다.
그랬나? 그게 무슨 내용인데?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내 정보를 검색해서야 이동조치된 글, 잘못된 내 잡글을 확인했다.
내 잘못이다. 본의 아니게 실수했다. 하루 1건 올려야 한다는 규정에 어긋났으니까. 이 규정조차도 생각나지 않았기에.
기분이 묘하게 착잡하다. 내가 어느새 기억나지 않는 세월에 와 있고, 그 증세가 더욱 심해질 것이 뻔히 예상되기에...
오늘 아침에 서해안 시골 사촌동생한테서 전화가 왔다.
그의 셋째 매형이 어제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에서 돌아가셨기에 자기도 지금 서울 올라가는 중이라고 말했다.
서울 신촌에서 사진관을 운영하다가 ... 오랫동안 치매로 사회활동을 접었던 사촌 매형.
내 아내는 점심때에 성당 모임이 있다면서 오후에 함께 문상 가자고 말했다.
지하철 2호선을 타면 신촌역에 도착하고, 1번 출구에서는 병원 셔틀버스가 있다고 하니 쉽게 찾아갈 수 있다.
전철이 다니는 서울이 교통 불편한 시골보다 사회생활하기가 훨씬 편리하고, 또 활동비용도 적게 든다.
많은 사람들이 도회지로, 수도권으로 몰리는 이유이다.
65세 이상의 노인한테는 전철요금이 무료이기에 더욱 그렇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나이 많은 게 좋을 듯싶지만 나는 교통요금을 내던 과거가 훨씬 낫다.
활동력이 강했고, 생각도 뚜렷했고, 기억력도 있었기에.
대전 사는 누나가 나한테 '소식 들었느냐'며 나한테 물었다.
나는 이미 들었다고 대답했기에 핸드폰에서 들리는 누나의 목소리는 다른 이야기로 한없이 이어졌다.
1960년대, 70년대 초의 이야기이다.
벌써 60년 전, 50여 년 전의 산골마을 사람들의 이름이 줄줄이 이어지면서 시골에서 살았던 기억들을 떠올렸다.
서해안 뒷산에 10분 쯤 올라가면 산꼭대기.
서천군 바닷가, 아주 가깝게는 무창포해수욕장, 고개를 북쪽으로 살짝 틀면 대천해수욕장, 더 멀리 수평선 너머로는 서해안의 섬들이 손에 닿을 듯이 내려다보인다.
이런 산골마을에서 살았던 사람들은 하도 가난해서 학교에 다니지 못했거나 다녔더라도 초등학교 졸업이 끝이었다.
대전, 부산, 서울 등지로 이사 갔고, 시집 갔던 동네사람들.
수십 년이 지난 지금에는 수십 억 원에서 100억 대의 재산가로 변신했다고 한다.
하나의 예다.
대전 유성 수청골로 시집갔던 여자는 농사꾼 부인.
수청골이 유흥단지가 되어서 엄청나게 땅값이 올랐기에 지금은 백억 대의 부자네 부인이란다. 그런데도 서해안 산골출신의 동네 여자는 유성 재래시장에서 함지박으로 배를 파는 장사를 한단다. 얼굴은 햇볕에 타서 새까맣게 그을렸고...
시골에서 가난하게 살았던 흔적일까, 엄청나게 부자가 되었는데도 막일하고 함지박 장사를 하는 게 천직이란다.
어린시절 몸에 밴 습성은 그다지 변화하지 않는다는 하나의 사례이다.
이런 측면에서 사회저변을 엿보면 며칠 전 충남 태안군 화력발전소에서 일어난 인명사고가 안타깝다.
우리나라 석탄 화력발전소 12개(추측) 가운데에서 충남은 전국 52%의 화력발전소 용량을 차지한다. 그만큼 시꺼먼 탄가루와 매연이 나오는 해외 수입산 석탄을 태워서 그 열기로 전기를 생산한다는 뜻.
그 이면에는 엄청나게 비위생적이고 위험한 산업재해가 도사리고 있다는 증거이다.
입사한 지 3개월인 청년 24살 먹은 김용균이 혼자서 석탄 콘베이너 벨트에서 떨어진 석탄을 줍다가 급회전하는 기계에 빨려들어가 머리통이 끼어저 죽었다.
회사 관리실에서는 이 사실을 몇 시간 동안 알지 못했고, 정규직원이 아닌 비정규직 노동자의 실상을 낱낱이 보여준 또다른 이면이며, 추악한 사회현상이었다.
나는 사회약자들이 안타깝다.
시골에서 살다가 서울 올라와 송파구 잠실지역에서 사는 나.
이따금 석촌호수에 산책하러 나가면 쉼터에는 할 일이 없는 노인들이 무척이나 많이 나왔다.
더러는 충분히 일할 수 있는 사람도 있고, 노숙자도 이따금 눈에 띄인다.
나는 어제도 노숙자에 관한 글을 길게 썼다. 더 쓰다가 하루에 2건 올리는 실수를 저질렀다.
문제가 된 글을 임시 저장실에서 퍼서 여기에 올린다.
고개 숙인 젊은 노숙자
오늘도 서호 남측 자판기 옆 벤취에는 또다른 노숙자가 털모자 달린 두꺼운 외투를 뒤짚어 쓰고는 고개를 푹 숙였다. 발목이 들어나는 운동화. 노숙자용 가방이 여러 개 있고.
80대의 극도로 쇠약한 노숙자는 오늘은 보이지 않았다.
오늘도 또 보았다.
동호 수변무대 벤취에서 20말 30대초 쯤의 젊은이가 털모자 달린 외투를 뒤짚어 쓰고는 고개를 푹 숙였다. 두 다리를 길게 내밀고. 어깨에는 비닐돋자리가 든 가방 하나만을 맸다.
내가 시계를 보니 오후 4시 30분.
이 시간대이면 직장에서는 정신없이 일해야 하는 시각인데 왜 그 젊은이는 일하지 않고는 쉼터 벤취 위에 걸터 앉은 채 고개를 숙였을까? 들어갈 만한 직장이 없었을까? 밥이나 먹었을까? 오늘밤 잠은 어디에서 잘 것인데?
자살 직전의 모습이다.
두 다리를 쭈욱 뻗은 채 미동도 없이 고개를 쳐박았다.
연말 송년회 모임이 많은 세상에서 또 다른 이면을 엿본다. 끝.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다녀왔다.
망인의 나이 77살.
뭐가 급하다다고 저너머 세상에 일찍 갔을까.
가벼운 치매일 망정 오랫동안 병치레를 했다고.
서해안 내 고향 집에 얼마 안 떨어진 이웃 마을 산에 매장한다고.
젊은 시절에서 서울 등 도회지에서 살다가.... 시골에는 죽어서야 무서운 것들만 내려오나 싶다.
뭐가 좀 이상하다...
첫댓글 이렇게 많은 일들을 소상하게 기억하시는디~~~
다른 쪽에선 깜빡하신다니
서글프네여ㅠ
저도 많지 않은 나이지만
하두 깜빡거려서 꼭 갖고 나가야 할것은 차키랑 함께ㅎ
지금은 하릴읎이 디비졌으니
폰이랑 함께~~~^^
창고에 넣어진거 다시 들고 오시느라 애쓰셨네여ㅎ
수십 년 전의 어떤 기억은 초롱초롱한데도 방금 전 일어난 일은 전혀 생각이 안나대요.
아흔 살이 훌쩍 넘은 어머니와 함께 살 때에도 그랬지요. 엄니는 옛날 일은 기억하는데 방금 전에 한 행동은 전혀...
기억력 상실이 짙어지면 나중에는 치매초기가 되어 아무리 기억을 들려주어도 전혀 이해하지 못하대요. 기억력 상실과 치매는 조금 다르다고 하지만...
1949. 1.21. 생인 저는 흘러간 과거를 자꾸 꺼내려고 합니다.
생활이 다른 제 자식들 세대과는 전혀 이질적인 과거를 살아왔기에...
1950년대, 60년대, 70년대의 저너머 세상에는 2018년 지금과는 천지차이이지요.
저도 비슷해요.
방금 약을 먹었는지, 안 먹었는지.
잘 못 하면 두번 먹을테고
고민할 때가 많아요.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익어가는 세월속에 자연현상인 걸 어쩌겠어요.
최윤환님은 글을 쓰시니 얼마나 행복한 노후신지요.
아직 채 쓰지도 않은 초안...
자꾸만 벽시계를 쳐다보면서 아내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기에 글 잇기가 안 됩니다.
베리꽃님은 김정... 선생님.
님은 글 참신하게 재미있게 쓰시던데요.
제가 ~ 글을 잘 보았군요 곰내 최윤환 ~ 복숭아서리 올렸던 하조서 입니다
반갑습니다 ㅎㅎ
예.
댓글 고맙습니다.
봉숭아서리... 빙그레 웃습니다.
무엇을 뜻하는지를 알기에...
@최윤환 감사합니다 ~
님. 제가 보기엔 세월이 지나가니 기억이 감퇴되는게 아니고요,
내 고교 친구 카페에다가 글 예닐 곱 개를 빠르게 올리다가 지치면
다른 카페에 들락거리면서 회원이 올린 글과 사진을 보고는 댓글 달고,
또 나도 잡글 올리기도 했다 ......
이렇게 바쁘게 열심히 하시니까 그런 것 같습니다.
그 열정을 조금 줄이신다면, 주위가 잘 바라 보일 듯 여겨집니다만....
님은 기억력이 출중하네요.
이대로 주욱... 오래오래 즐겁게 사시겠군요.
기억력이 뛰어나기에...
기억력을 증진 시키는 것은 읽고 쓰고 입니다
이렇게 쓰시는 것이 병원 열번 가는 것 보다 훨 나아요 건강합시다 ~
운선 이순자 작가님.
오늘도 님의 책을 제 책꽂이에서 꺼내보았습니다.
'내 안의 나는 무지 예쁘다'
얼마큼 이뻐요?
저도 글 다듬어서 나중에 뜻을 잘 펼치고 싶습니다.
님의 또다른 책 '밥 한 술에 이야기 반찬'처럼요.